소설리스트

이세계 편돌이-79화 (80/201)

79화. 여긴 난장판이지 편의점이 아니에요 (2)

기프트카드 쓰는 법은 간단하다. 카드를 산 뒤에, 뒷면에 붙은 스티커 떼면 보이는 일련번호를 입력란에 적으면 끝. 참 쉽죠?

“입력란? 그게 으디 있는겨?”

“그게….”

어디에 있는지를 설명하려다, 말았다.

이거 하나 설명한다고 끝날 일이 아닐 게 뻔했고, 서서히 멘탈에 금이 가고 있어서였기도 했다. 이 건은 나보다는 고객센터 직원이 해야 할 일 아닌가? 아니면 가챠겜 GM이나?

그래도 방법은 알고 있고, 생각해 보면 못 해줄 일도 아니지 않나― 싶었다. 이 해골들 다 보내고 나면 어차피 한산해진다. 어르신 장단 잠깐 맞춰주는 것쯤이야.

“이분들 가시면 해드릴 테니까, 잠깐 저기 앉아 계세요.”

해골 양반이 올려놓은 백팩에 보루를 담으며 말했다. 그래도 자기가 무리한 부탁 하는 줄은 아는지, 별말 없이 테이블로 가서 앉더라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와, 다음 해골이 건넨 메모지를 받아들었다. 담배 네 보루에 웬 이상한 게 하나 적혀있었는데, 어… 막심?

“손님, 이거 커피 말고 딴 거 말씀하시는 거죠?”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뼈만 남은 양반이 이걸 대체 어디에 어떻게 쓰겠다는 건진 몰라도….

“저희 매장엔 이거 없어요. 다른 데 가보셔야 할 거 같은데.”

안 팔아서 못 판다. 설령 있어서 팔았다 쳐도 오늘 밤 잠자리가 뒤숭숭했을 것 같고.

이 양반들 지금 중대장이랑 같은 버스 타고 부대 복귀하는 거잖은가. 행여나 구매품 검사 했다가 걸리기라도 해봐, 중대장이 많이 실망하지 않겠어?

“…….”

휑한 얼굴로 고개를 살짝 늘어뜨리는 게 실망한 눈치다. 해골 양반들을 하도 받아서 그런지, 이젠 두개골에서 표정이 얼추 보이는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담배만 팔아 보냈고, 다음 해골이 건넨 메모지에 적힌 건 담배 두 보루.

이걸 파는 시점에서 담배 재고가 절반 밑으로 떨어졌고, 나도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건 절대 재고 못 남긴다. 이제 겨우 반의반 받았는데, 이걸 어떻게 남겨?

마음의 짐을 내려놓자 담배 보루 바코드들도 좀 더 찰지게 찍히기 시작했고, 열여섯 번째 해골에게 재고함을 열어 보이며 말했다.

“손님, 죄송합니다. 담배가 다 떨어져서.”

텅 빈 재고함을 바라보던 해골이 담배 진열대 쪽을 힐끗 바라봤으나, 이번엔 내가 고개를 저었다. 이건 진짜로 안 된다. 재고함 텅 빈 건 밖에서 안 보여도, 진열대는 훤히 다 보이거든.

이것들까지 싹 털렸다간 폐점 직전의 편의점으로 보이게 될 거다. 그래서 못 판다.

이후, 추이를 잠시 지켜봤다. 계산대 앞의 해골이 뒤에 줄 서 있던 다른 해골들에게 눈짓을 했고, 일제히 퇴장.

잠시 뒤, 데스나이트 중대장이 들어와서는 내게 이런 걸 물었다.

“갓갓길길에에… 버버스스 세세워워놔놔도도 괜괜찮찮소소…?”

부대원들 다른 편의점 보낼 건데 차 좀 세워놔도 괜찮겠냐. 이 소리 같은데, 휘하 부대원한테 이렇게까지 해주는 중대장이 존재하는 게 신기하다. 나 복무하던 곳 중대장은 실망밖에 안 하던데.

그나저나, 미처 생각 못 했던 부분이다. 이 근방에 다른 편의점에 있나…?

생각하고 자시고 할 일도 아니었다. 당연히 있겠지. 도심지니까.

여기서 없는 상품 찾던 손님들도, 없어서 못 판다고 하면 대부분 순순히 나가기도 했고. 주변 편의점이 여기 하나뿐이었으면 그렇게 쿨하게 나가진 못했을 터다.

“상관없을 거 같습니다. 주차단속 CCTV가 있기는 한데, 저기에 누가 걸렸단 사례는 없어서.”

편의점 정문 앞에 45인승 버스가 떡하니 서 있는 게 미관상 안 좋기는 하지만, 그러려니 했다. 부대 복귀할 양반들이 길어봐야 몇 시간 주차하겠어.

“알알겠겠소소….”

내 대답에 살짝 목례를 하고는, 밖으로 나가서 부관급 해골한테 몇 번 손가락을 까딱이더라. 지시를 받은 해골이 다른 해골들을 옹기종기 모아서는 쇼윈도 왼편으로 데리고 가버렸다.

재고함이 뼈도 안 남긴 했지만, 어쨌든 끝은 끝이다. 이제….

“끝난겨?”

“네. 잠깐만 기다려 보십쇼.”

카드 팔아야지. 대답하며 카운터에서 나와, 기프트카드 진열대의 재고를 확인했다. 아까 20만 원권 한 장 빼놔서 남은 게 1장, 15만 원권이 3장, 나머지는 다 짤짤이.

짤짤이들 중 그나마 고액의 카드를 싸그리 긁어모으고 나니, 200만 원 분량이 채워지기는 했다. 어느새 계산대로 온 어르신에게 카드를 보여주니, 어르신이 어리둥절해하셨다.

“뭔 카―아드가 이렇게 많디야?”

“그러게요….”

도합 34장. 하 씨, 이걸 언제 다 긁고 있냐….

막막해한다고 해결이 되나. 바코드를 찍기에 앞서, 어르신께 카드 쓰는 법부터 알려드려야겠다 싶었다. 어르신께 스마트폰을 건네받아, 스토어 어플을 켠 뒤 다시 건네드렸다.

“이거까진 아시죠? 게임 다운받으시려고 들어오셨을 테니까.”

“어엉. 알어.”

“이다음에, 보이는 화면 우상단에 줄 세 개 그어진 거 누르시면요….”

“으디? 이거?”

어르신이 눈이 많이 침침하신지, 검색창을 보고 이게 줄 세 개 그어진 그거냐고 되물으시더라고. 갈 길이 먼 것 같다.

“그거 말고요.”

세 번의 시행착오 끝에 줄 세 개 그어진 버튼을 누르셨고, 떠오르는 목록을 보니 ‘코드 사용’ 항목이 바로 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뜬 어르신이 맨 위에서부터 항목을 헤아리다, 코드 사용 버튼을 찾고는 터치하셨다.

“지금 떠오른 곳에다가 코드 입력하시면 돼요. 아까 카드 스티커 뗀 거.”

“아이구, 이 간단헌 걸 몰라서 음청 헤맸네….”

테이블에 앉으신 뒤로 내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셨던 게 이 이유에서였나보다.

방법 알려드렸으니 이제부턴 알아서 하시겠거니 했는데, 카드 뒷면을 뚫어져라 바라보시던 어르신이 물으셨다.

“그. 미안헌디. 뒷면에 이게 뭐라고 적힌겨?”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요, 무작위 문자니까 그냥 보이시는 대로….”

“글씨 그게 아니구, 글씨가 조막만 해갖고 잘 안 보여.”

그러니까… 나보고 읽어달라고? 35장 카드에, 장당 16자씩 적힌 일련번호를 전부 다?

“내가 수전증도 좀 있어서 말여… 미안혀.”

직접 입력해주면 참 고맙겠다는 말로 들린다. 이건 제가 아니라, 아들내미나 손주한테 부탁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면 본사 찾아가거나???

“…스마트폰 주세요.”

반쯤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말했다. 이 어르신이 하기 싫어서 나한테 짬처리하는 게 아니잖은가. 안 보인다는데. 가챠겜에 200만 박는 걸 가족이 허락하지도 않을 거고….

어르신께서 수줍게 스마트폰과 카드를 건네오셨고, 보이는 대로 입력해줬다. 20만 원이 결제되었고, 이제 남은 게 34장.

“이거 좀 오래 걸려요. 도중에 손님 오면 손님도 받아야 되고 그래서. 괜찮으세요?”

“괜찮여. 내가 부탁하는 건디.”

그럼 됐다.

다음 카드 바코드를 찍은 뒤, 결제가 완료된 걸 확인하고 뒷면 스티커를 벗겨 다시 입력. 이 짓을 한 번 하고 나서 POS기 시간을 확인해 보니, 딱 1분 30초 정도가 지난 채였다.

전부 다 하고 나서 봤을 때는 50분 지나있었고. 도중에 손님이 몇 번 와서 흐름이 끊기기도 했고, 현자타임이 찾아오기도 해서였다.

이야, 나는 이 돈 벌려면 보름을 일해야 하는데, 어르신은 내 보름을 가챠겜 쥬얼 사는 데에 태우시네….

“입력 다 끝났어요, 어르신.”

“아, 그려? 이제 우짜면 디야?”

“하시는 게임 들어가셔서, 사고 싶은 거 사시면 됩니다.”

“참 고마워. 내가 이거 하겠다고 몇 날 며칠을 고생했는질 몰러. 딴 데 가면 죄다 못 해주겠단 말만 혀대구.”

“아, 그러심까….”

눈이 아파서 질끈 감은 채로 대답했다. 결제 끝난 카드들은 이제 플라스틱 쓰레기다. 이따 버리든지 해야지….

눈두덩이를 매만지고 있는데, 어르신이 뭐라 뭐라 말을 해오셨다.

“근디 그걸 청년이 해줬응께….”

이어서 주섬주섬 뭘 꺼내는 소리가 들리길래, 불안감에 슬쩍 눈을 떴다. 어르신이 뭔가를 꺼내 내게 내밀고 계셨다.

확인해보니 5만 원권 지폐 10장. 뭐야, 더 긁으려고?

“오늘 결제 더 못 해드려요, 어르신. 아까 보니까 200만이 최대한도드만.”

“그게 아니구, 청년 받으라구.”

“예?”

순간 멍해졌다. 이건 또 뭔 소리야.

“돈 가지라구. 나가 무진장 고마워서 그려.”

“…그….”

듣고 나서도 당연히 상황 파악이 안 됐고, 뭔 반응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돈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내 반응이 의아한지 어르신이 되물으시더라고.

“왜 그려. 돈이 적어?”

“그게 아니라….”

한참 동안 생각하다 겨우 떠오른 말이 이거였다.

“돈을, 그… 절 왜 주십니까?”

“말했잖여. 고마워서 주는 거라고.”

그러니까, 이 세상은 고맙다는 이유만으로 50만 원씩 냅다 퍼주는 팁 문화가 보편화된 건가? 이거 참 훌륭한 문화다. 이것만큼은 나 사는 곳에도 꼭 전파하고 싶….

기는 개뿔, 이 어르신이 연세를 잡수시며 신경계 감각, 특히 금전감각 쪽에 종양이 자라난 게 분명했다.

“어르신. 고맙다는 마음은 잘 알겠는데, 좀 더 생각을 해보시고―”

“나 생각 많이 하고 주는 건디 말여.”

“아니….”

“내가 말여, 바둑을 엄청 잘 두어. 얼마나 잘 두냐면 말여, 저기 탑골공원서 한가락 하는 친구들헌티도 진 적이 읎을 정도여.”

별로 중요한 얘기는 아닌 것 같아 흘려들었다. 이 돈. 돈을 내가 받는 게 맞냐, 안 받는 게 맞냐….

솔직히, 못 받을 거 없긴 하다. 이 50만 원 벌려면 내가 계산대에 5일 가까이를 죽치고 있어야 한다. 이 돈 받으면 내 인생 5일이 절약되는 거잖아?

문제는 그 뒤의 일이다. 이 어르신이 지금 츄리닝 입고 계신다. 신발은 해진 슬리퍼고, 갖고 계신 폰도 옛날 기종스럽게 생겼고.

평소에 이렇게 돈 쓸 분처럼 보이질 않았다는 뜻이다. 예시를 하나 들자면, 이 어르신이 가진 돈 다 써갖고 50만 원이 급히 필요한 상황이 온다고 쳐보자.

그 상황이 오면, 제일 먼저 내게 줬던 이 돈부터 떠올리지 않을까? 줬다가 뺏는 건 미안한데, 내가 돈이 급해서 어쩔 수 없다면서?

이게 아니더라도, 돈 문제에 이 어르신 가족이 엮여있을 가능성도 있다. ‘아이고 아버님, 애 학원비를 왜 편돌이를 주셨어요!’ 하면서 며느리가 돈 돌려받으러 찾아올 수도 있을 거고, 아니. 이건 억측인가….

혼란스럽다. 살면서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있어봐야 알지. 한참을 고민하다, 마음 가는 대로 대답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참말루?”

“예. 제가 그 돈 받을 만큼 뭘 해드린 건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마음에 걸렸다. 넙죽 받았다간, 나중에 비슷한 연배의 어르신 손님이 올 때마다 오늘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아. 하루 이틀 지난다고 잊을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은 아니니까.

사람이 쉽게 돈 벌면 쉽게 망가지고, 나도 사람이다. 이 생각으로 사양했더니, 어르신이 아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상한 뜻 있는 게 아니라, 진짜루 50만 원어치 고마워서 주는 건디 말여… 부담돼서 그려?”

“예. 부담되는 게 맞고. 이상한 뜻으로 주시려는 거 아닌 것도 아니까, 그 돈은 그냥 바둑 친구분들한테 밥을 사든지 하시고….”

“돈이 부담되믄… 그, 관상 한번 봐줘도 디야?”

“뭘 봐주신다구요?”

“나가 취미로 관상 보는 법을 몇 년 배웠는데 말여, 아주 백발백중이여. 바둑친구 손주 태어나는 날도 때려 맞혔을 정도라니께?”

이 어르신은 왜 이렇게 할 줄 아는 게 많으시냐?

관상 한 번 보는 비용이 평균 5만 원인 걸로 알고 있다. 그걸 생각하면 이것도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안 받았다간 그럼 자기가 뭘 주는 게 좋겠냐며 되물을 것 같고….

“정 그러시다면…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취미로 배웠다 하시니, 취미에 어울려드린다는 정도로 받아드리면 되겠지.

못 이기는 척 부탁드리자, 어르신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대충 하시는 말이 이러했다.

“보니께, 올해까지는 사는 게 순탄치 않았을 것 같은디… 맞어?”

대답은 안 하고 속으로 수긍했다. 7년 가까이 알바처나 공장만 전전했고, 기껏 취직한 회사는 2년도 안 되어 코로나로 망해버렸으니.

“올해는 많이 나은디… 큰일을 몇 번 겪을 것 같기도 허고.”

“큰일이면, 제가 자동차나 트럭에 치일 예정이라는 말씀이신가?”

“글씨? 아무튼 큰일이여. 혼자서는 안 될 일들.”

취미 삼아 배우셨다는 분이 왜 이렇게 불길한 말만 하시는 건지. 다니던 회사 한 번 망하고 이세계에 직장 구했으면 됐지, 내 인생이 뭘 더 어떻게 꼬이려고….

“그런 일들이긴 해두, 다 잘될 거 같어.”

“어떻게 잘되길래요.”

“청년이 그, 인복이 무지 좋은 상이라서 말여. 눈 쪽이 특히.”

이거 참 놀랍다. 허구헌날 맥아리 없다는 말만 듣고 살던 내 눈탱이에 그런 비밀이 있었다니?

내가 속으로 구시렁거리고 있단 걸 눈치채셨는지, 어르신께서 덧붙이셨다.

“인복에도 두 종류가 있어서 말여. 이종족이 잘 붙고 잘 떨어져 나가는 관상이 있고, 한번 붙은 복이 오래가는 관상이 있고 그려.”

“저는 어느 쪽입니까.”

“둘 다. 잘 붙고, 쉽게 안 떨어져. 음청 좋은 거니께, 좋아해도 디야.”

좋아하라고 해도, 지나가던 어르신이 ‘너 잘될 거여’ 한다고 순수하게 좋아할 놈이 몇이나 될까 싶다.

“그리구,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겨, 청년. 나중에 다 도움이 될 거여.”

“작은 것들은 또 뭡니까?”

“낸들 알어? 아무튼 관상이 그렇대.”

관상을 보시는 건지 사주풀이를 하시는 건지 물어보려다, 귀찮아서 관뒀다. 여기까지 말씀하신 어르신께서 드디어 만족하셨는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고마웠구, 귀찮게 해서 미안혀 청년. 나 이만 갈께.”

“예. 살펴가십쇼.”

이렇게 나가셨고, 한산해졌다. 이제 기프트카드들 치우고, 떼어낸 스티커들 버리고 나면 좀 쉴 수 있겠지….

생각하며 카운터를 내려다보았다가,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돈을 어르신께서 안 들고 갔기 때문이다. 이걸 날 보고 뭐 어쩌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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