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편돌이-88화 (89/201)

88화. 5살 차이는 친구 해도 돼 (3)

내가 아직 젊었을 적, 강아지 산책 알바를 3개월가량 하며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지구상에 포메라니안을 싫어하는 꼬맹이는 없단 것이다.

아파트 단지 놀이터 부근을 산책할 때 이걸 절실히 체감했는데, 미끄럼틀 타고 놀던 꼬맹이들이 포메라니안이랑 눈 마주치자마자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하더라?

개 주인이 애가 다른 사람 손 안 타게 해주세요― 라며 주의를 줬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도망쳤는데, 이 꼬맹이들이 지치지도 않고 아파트 단지 한 바퀴를 다 쫓아오더란다.

이걸 3개월 버텼고, 힘들어서 알바 때려치웠다. 어쨌든 요점은.

“멍멍아. 너 나랑 일 하나 같이 하자.”

“일? 일을 말이오? 본견이?”

“일이라고는 했는데, 엄청 거창한 건 아니고.”

딱히 준비할 것도 없었다. 멍멍이를 들어 꼬마에게 안겨준다. 끝.

“엥?”

“하나야. 이 녀석 누구 집 개냐고 물어보면, 니가 기르는 거라고 해.”

꼬마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멍멍이를 내려다보고, 멍멍이도 따라서 꼬마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퍼뜩 뭔가를 떠올렸는지 외쳐왔다.

“아하. 본견이 사랑의 징검다리를 놓으면 되는 것이구려!”

“그 수준까지는 안 바라고, 그냥 애가 손 하면 손 주고, 반응이 시원찮다 싶으면 손도 좀 핥아주고 해주면 된다.”

“하지만 본견, 양치질 안 했는데.”

“걔는 그런 거 신경 안 쓸 테니까 니도 신경 꺼, 인마. 그래도, 어….”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어떤 돌발상황이 발생할지를 가능한 만큼 생각한 뒤, 멍멍이에게 그대로 주입시켰다.

“…이렇게만 해주면 돼. 궁금한 거 있냐.”

“음….”

“당장 없으면 넘어가고, 하나야. 너는 저기 가서 얘 껴안고 있다가, 얘기하고 와라.”

꼬마는 내가 뭘 어떻게 하려는 건지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으나, 잠시 뒤 해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아조씨가 하는 말이니 잘 듣겠다, 이런 생각 같다.

“아조씨. 저, 이야기 잘하구 오께여.”

“그래. 잘하고 와.”

“내.”

대답하고는 멍멍이를 안은 채로 끙끙대며 의자에 앉았다. 당장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이젠 지켜보면 되겠지.

잠시 후, 정문이 열렸다. 매장에 들어선 건 붉은 여우 코볼트 둘. 아빠와 아들 관계로 보였고, 아들 여우 코볼트가 매장을 슥 둘러보고는 사자후를 내질렀다.

“와! 꽈자 엄청 많타!”

“아들. 아빠 밖에서 돈 꺼내올 테니까, 여기 있어. 알았지.”

“아빠, 아빠. 꽈자 먹어두 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과자도 사줄게.”

“내―”

이런 대화가 오간 뒤, 아빠 되는 양반이 바로 카운터로 와서는 내게 목소리를 죽여 물었다.

“사장님, 혹시 근처에 담배 필 만한 곳 있나요?”

정문 바깥 갓길, 좀 떨어진 곳이면 어디서 피우든 상관없다. 대답하려다, 말을 바꿨다. 이 질문을 해오는 의도가 뭔지 깨달아서다.

“저기 오른쪽으로 조금 가시면 좁은 골목 있기는 합니다.”

“감사합니다. 저, 그리고 혹시 화장실도….”

“건물 뒤켠 돌아가 보시면 있어요. 열어뒀구요.”

애한테 담배 피우는 모습 보여주기 싫으니 멀리 가서 피우고 오겠다는 거다. 화장실은 담배 피운 손 씻겠다는 의도일 테고.

이 여우 코볼트도 속내가 들켰단 걸 깨달았는지, 머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이 몰래 나가버렸다. 담배 한 대 피우는 데에 대충 5분 정도 걸릴 테니….

애랑 꼬마랑 좀 오래 대화할 수 있겠네. 흐름이 괜찮다. 정문이 닫힌 걸 확인한 뒤, 이번엔 여우 코볼트 쪽을 주시했다.

“와, 편이점 엄청 크다….”

이곳 넓이가 동네 편의점 네 개를 합쳐놓은 정도의 크기다. 진열할 공간도 그만큼 많고, 장난감이나 다른 편의점서는 잘 안 파는 식품들도 많고.

저 여우 애는 이런 넓은 편의점을 처음 와보는 것인지, 유제품 코너나 장난감 진열된 걸 구경하며 일일이 신기해하고 있다.

꼬마에게 관심 가질 여지가 없었다는 얘기다. 허나, 예상한 범주 내의 돌발상황이다. ‘들어올 애가 늬들이 있단 걸 아예 모를 수도 있다.’

그땐 멍멍이 니가 관심을 끌어줘라, 미리 언질을 해뒀다.

“멍!”

느닷없는 개 울음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여우 아이. 주변을 둘러보다, 쇼윈도 쪽에 앉은 하나와 멍멍이 쪽에 시선이 멈췄다.

“어?! 멍뭉이―”

감탄하려다, 멍멍이를 안은 게 드래곤이라는 걸 깨닫고는 황급히 말을 멈춘다. 숨을 삼켰다는 게 눈에 보일 만큼 긴장한 얼굴이었다. 이것도 예상한 상황이긴 했지만….

눈으로 직접 봐도 당최 납득이 안 됐다. 종족과는 별개로, 도대체 외견상 어디에 무서워할 건덕지가 있어서 저러는 거야. 본능에 각인된 수준의 뭔가가 있는 건가?

“에….”

대치 상태가 지속되는 와중, 멍멍이가 하나의 품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뛰어내려서 털을 한번 부르르 털고는, 여우 꼬마의 코앞에서 멈춰 털썩 주저앉는다.

그러고는, 혀를 내밀고 헥헥대기 시작했다.

“아, 멍뭉아. 가면 안 대.”

꼬마에게는 멍멍이를 껴안고 있으라고만 말해뒀다. 일부러.

때문에 당황했는지, 의자에서 일어나서는 멍멍이에게 달려갔다. 몸을 숙여 껴안아 보려 시도했지만, 멍멍이는 유려하게 몸을 비틀어 벗어나고는 여우 꼬마의 다리에 쉴 새 없이 털을 비벼댔다.

주문대로 잘해 주고 있다. 저 애가 꼬마를 지나치게 무서워하거든, 널 그만큼 좋아하게 만들어라. 쓰다듬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이렇게 판을 짜놓으면, 개 주인에게 허락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말을 걸 수밖에 없으리란 생각에서였다. 다행히도 생각대로 됐다.

“…그, 어….”

“에?”

“용 친구야. 너이 집애서 멍뭉이 기르는 고야?”

여우 애가 떨리는 목소리로 꼬마에게 물었다. 잠깐 생각하던 꼬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저기, 어… 쓰다듬어 바두 대? 시르면 말구….”

“아니야. 갠차나.”

잘 풀려가는 것 같다. 괜찮다는 말에 여우 애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똑같이 몸을 숙여 멍멍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

그러려다, 멈칫했다. 이유가 뭔지는 빤히 보였다.

“그… 얘가, 막 물지는 안치?”

여기가 제일 중요한 타이밍이다. 혹시라도 물지는 않을까.

이 생각이 싫어도 들 수밖에 없다. 개의 이빨은 흉기가 맞고, 모든 개는 언제라도 다른 누군가를 물 수 있도록 입을 텅텅 비워두고 살기 때문이다.

이건 간단한 해결책이 있고, 미리 언급을 해뒀다. 여우 아이의 질문에, 멍멍이가 바로 귀를 쫑긋거리고는 과자 코너로 달려갔다.

순식간에 돌아와서는 다시 여우 아이를 올려다보았는데, 입에는 과자 봉지를 하나 물고 온 채다. 과자 봉지 물고 있는 동안은 손 못 물 테니까.

“엥? 꽈자? 나 주는 고야?”

여우 아이의 질문에 멍멍이가 고개를 끄덕였, 야. 그건 좀 노골적이지 않냐?

“우아. 친구야, 얘가 나 꽈자 준대! 꽈자!”

“에. 그치만, 나 돈 업는대….”

“나두….”

하나와 여우 아이, 둘 다 동시에 시무룩해져서는 과자 봉지만 하염없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건 예상외의 상황이긴 했지만….

“서비스로 줄 테니까, 그냥 늬들 먹어라.”

허락해줬다. 과자 한 봉지로 해결할 수 있으면 싼 거지.

“정말여, 아조씨?!”

“그래. 정말이니까 먹어.”

“우아! 꽈자 먹어야지! 꽈자!”

“그, 저기… 친구야.”

“응? 왜?”

“울 엄마야가, 어른이 마싯는 거 주며는, 꼭 감사하다구 해야 한대써.”

하나가 저런 말을 할 줄도 몰랐지만, 느낌이 괜찮다. 자연스럽잖아. 여우 아이도 아차 싶었다는 표정을 짓고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저! 울 아빠두 그랫써. 감사해여, 아조씨!”

“감사해여, 아조씨.”

“그래….”

이 이후로는 잘 풀렸다. 과자 봉지 뜯느라고 끙끙대는 걸 내가 뜯어서 쥐여주고, 테이블 앞 의자에 나란히 앉고, 멍멍이는 서로 끙끙대며 들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서로 과자를 깨작이며 대화하는 걸 들어보니, 평범했다.

“친구야. 너는 몇 살이야?”

“나는 일곱 살.”

“나랑 똑같내! 나두 일곱 살. 와, 이 꽈자 마싯따.”

“응. 마싯써.”

“저기, 이 멍뭉이는 이름이 머야?”

“멍뭉이.”

“엥? 멍뭉이 이름이 멍뭉이야? 진짜루? 푸하하!”

여우 아이의 반응에 멍멍이가 살짝 침울해진 얼굴이 되었으나, 다행히도 입을 열지는 않았다.

아무튼 구도가 이러했다. 여우 아이가 대화를 주도하고, 하나는 거기에 대답만 하고.

“엄청 신기하다! 멍뭉이 이름이 멍뭉이!”

“으응….”

대답하는 것마저도 무척 조심스럽다는 인상이었는데, 이것만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이렇게 평범하게 대화하는 게 거의 처음일 테니까.

물론 여우 아이도 조심스러운 건 매한가지였다.

“…그런대, 친구야.”

“응.”

“친구는 용인 거지?”

“으응. 순혈 용. 엄마야가 그렇대.”

“나아는, 용 친구랑은 이야기 해보는 거 처음이야.”

“정말루?”

“울 엄마가, 잘못하면 매―앤날! 용이 잡아간다구 그래갖구… 잡아갈 줄 아랏거든.”

이게 그건가 보다. 애들이 가정교육을 판타지로 받았다는….

“내가…?”

“응! 그래서, 처음엔 무서엇는대! 너는 나 안 잡아갈 꺼 가터.”

“왜에?”

“꽈자 나누어 먹구 있으니깐!”

이런 씨, 이게 과자 한 봉지로 해결될 문제였어?

들은 직후에는 어이가 없다는 생각부터 들었는데, 재차 생각해 보니 이런 단순한 문제는 아닐 거라 여겨졌다. 아마, 저 여우 아이가 외향적인 성격이어서겠지.

운 좋게도 하나의 첫 번째 대화 상대로 친화력 높은 애가 찾아와 준 것이다. 다른 말로는 튜토리얼의 요정이 있다.

“그러니깐, 에―”

이 시점에서 딱 5분이 지났고, 정문 벨이 울렸다.

애 아빠가 담배 다 피우고 돌아온 것이다. 들어와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꼬맹이들과 멍멍이 쪽을 바라보았다.

“아들, 뭐 하고 있었어?”

“나, 얘랑 놀구 있었어! 꽈자도 먹구, 멍뭉이도 만지구!”

“아들, 아빠가 강아지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고 했잖아?”

“왜에, 얘 안 물어! 엄청 얌전하구!”

“나중에 손 씻어야 되잖니. 너 손 씻는 거 싫어하잖아.”

이 말을 들은 멍멍이가 아까보다 조금 더 침울한 표정이 되었으나, 다행히 이번에도 입을 열진 않았다. 내가 미안해, 인마….

아빠 여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하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가야. 아들이랑 잠깐 놀아준 거니?”

“아… 내에.”

“고마워. 그런데, 아들이 이제 가야 돼서. 놀이공원 가기로 했거든.”

“노리공언… 여?”

“응. 그러니까 나중에 또 보자. 아들, 콜라 뭐 마실래.”

“제로콜라!”

“그래. 그거 먹자.”

이 아빠 여우, 애 보는 게 익숙한 것 같다. 마무리 무진장 빠르게 짓네.

자기 아들을 데리고 음료 코너 쪽으로 가서는 1분도 채 안 되어 돌아왔는데, 음료와 과자 몇 봉지가 손에 들린 채였다.

“봉투도 하나 같이 주시구요.”

“옙.”

계산해서 들려주자 내게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왔고, 자기 아들의 손을 잡았다. 이대로 나가기 전, 여우 아이가 몸을 돌려서 하나를 보며 작별 인사를 건네왔다.

“잘 있어, 친구야!”

이러고는 밖으로 나갔고, 조용해졌다. 잠깐의 정적 뒤에 멍멍이가 몸을 부르르 털고는 외쳤다.

“본견이 이름이 어때서! 털은 또 어때서!!”

“니 이름이 신기한 게 맞긴 해. 객관적으로.”

“사장님?”

“야. 내 이름이 이인간, 아니면 이사람이었어 봐. 너도 신기해했을 거 아니냐?”

더해서 지금은 털에 먼지가 없긴 하지만, 공원 자판기 밑에서 한 시간 반을 뒹굴다 온 놈이다. 몸에 미세먼지 무진장 많이 붙어있겠지. 더럽다 생각할 만도 하다.

“그래도 본견은 멍멍이라는 이름이 좋소.”

“나도 싫어서 하는 말 아냐, 신기한 거지. 그러니까 기분 풀어, 인마.”

말한 뒤, 일부러 멍멍이를 끌어안아 머리를 훅훅 털어줬다. 털어주던 중에 표정을 보니 마음이 좀 풀린 듯해서, 다시 내려놓고 꼬마에게 말을 걸었다.

“하나야. 어땠냐? 쟤가 너보고 친구라는데.”

“…아조씨.”

“어.”

“저여. 하구 시픈 말이 엄청 만앗는대….”

아쉬움 가득 담긴, 가라앉은 어투다. 일단 마저 들었다.

“나아는 너 안 잡아갈 꺼야. 말하려구 햇는대여….”

“말하려고 했는데?”

“말이 안 나와갖구… 못 햇서여. 제송해여.”

이 제송하단 말을 재해석하면 이런 의미가 아닐까 싶다. ‘내가 긴장해서 말을 잘 못 했다, 기껏 자리 만들어 줬는데. 미안하다.’

글쎄다. 이 정도면 잘한 거 아냐?

이 꼬마한텐 생애 첫 긍정적인 대화였을 거잖은가. 심지어 순혈 용이라는 페널티까지 안고 있는 애인데.

“흠….”

사과할 일 아니고, 넌 충분히 잘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긴 했지만….

이게 정답은 아닐 것 같다. 자기가 부족했단 걸 꼬마가 스스로 인지를 한 상태고, 문제가 무엇인지도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내가 보기엔 그랬다.

이런 상황이면, 잘했다는 말을 칭찬이 아닌 위로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거고. 고민하다가,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하나 네가 말을 좀 소심하게 하기는 했지.”

“소심여…?”

“자신감이 없었단 얘기야. 자신감이 무슨 뜻이냐면, 음….”

“자신감이라는 말은 아라여. 엄마야가, 늘 가지구 살라구 그랫서.”

“그러냐. 어쨌든, 나쁘진 않았다.”

“…정말여?”

“방금 나간 여우 애가 잘 있어― 라고 말하면서 나갔잖아. 너가 잘 있어 줬으면 했으니까 잘 있으라고 말해준 거 아니겠어?”

“에….”

“너랑 노는 게 재미없었으면 그 말도 안 했겠지.”

아빠에게 배웠을 뿐인 가정교육, 형식상의 작별 인사 아니냐― 라며 따져도 할 말 없긴 하다. 그래도 일어난 사실만 놓고 본다면, 내 말이 틀린 건 아니잖은가? 잘 있으라고 했잖아. 쟤가.

“그러니까, 쟤 말대로 잘 있어 보잔 얘기야.”

“…잘 있으려면, 어뜨케 해야 대여?”

“다음에 봤을 때 더 나아지면 돼. 오늘보다 좀 더 자신감 있게.”

가능한 꼬마가 이해할 수 있을 단어만 써보려 했는데, 그래도 말이 좀 어렵다.

어떻게든 말을 마치고 꼬마를 바라보니, 어느 정도는 이해했다는 얼굴이었다. 반이라도 이해해 줬으면 성공이라는 생각이었다.

잠시 뒤, 꼬마가 손등으로 눈가를 슥 비비고는 말해왔다.

“…다음애는여. 저어가 꽈자 살래여.”

“그래. 그러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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