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편돌이-99화 (100/201)

99화. 장사가 안돼요, 자동차가 너무 커서 (4)

떠오르는 말이 많다. 그걸 아는 양반이 술 먹고 24시 편의점 앞에 차를 대놓고 갔냐, 경쟁업체 편의점 쁘락치 활동이라도 하러 왔냐, 지금 싸우자는 거냐, 등등.

그 외에도 몇 마디 더 있었으나 전부 삼켰다. 이놈이 무슨 의도로 나한테 이러는 건지 얼추 짐작이 됐기 때문이다. 어, 이 녀석이 나한테 뭐라고 하네? 열받네…?

차 좀 빼달라는 말의 어디가 어떻게 열받을 말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말야. 찾아오는 오크들 모두가 이런 개막장은 아니었으니, 이놈들 문신에 부정적 특성이라도 달려있는 게 아닐까.

이놈들 진상 짓과는 별개로, 확실히 체감되는 종족 특성은 하나 있다. 오크들은 소속감이 강하다.

“빨리 처나와, 새끼들아! 술 식잖아!”

“아, 기다려 봐. 저 편돌이가 너 붙잡고 뭐라는 거냐, 지금?”

“이 사장님께서 차 좀 빼달라시잖아.”

“뭐? 차? 이봐요 사장님, 차를 왜 빼라는 건데요.”

분노가 전염이라도 된 건지, 오크 무리 놈들이 싸그리 동조해 오기 시작한 것이다. 대답한다고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질문을 해왔으니….

매장 절반이 장시간 가려져 있는 게 매상 하락에 얼마나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가. 이걸 최대한 상세히 설명해 줬는데, 당연히 소용없었다.

“차를 어디로 빼라는 건데요, 주변에 차 댈 곳도 없는데.”

그건 이제부터 늬들이 알아서 해야지, 나한테는 왜 물어.

“근처에 공영주차장도 없고, 유료주차장에라도 갈까요? 주차비는 사장님이 주고?”

“…….”

“우리 술 먹었는데 차는 누가 몰아. 대리 불러서 주차하나? 차 조금 옮긴다고 대리 부를 수도 없는 거잖아.”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말을 계속 내게 해오는데, 이쯤 되니 내가 역으로 묻고 싶다. 편돌이 놈 부탁 들어주기 싫단 말을 굳이 이렇게 빙 돌려서 해야 돼?

여기서 일하며 말이 안 통하는 놈을 안 만나본 건 아니다. 서로 쓰는 언어가 안 맞아서 문제였던 중인족 놈들도 있었고, 알코올 농도가 안 맞아서 문제였던 엘프 놈들도 더러 있었으니까.

근데 이놈들은 뭐가 불만인지 모르겠다. 그놈의 축구 때문이야? 늬들 응원하는 팀이 이기니까, 늬들도 덩달아서 말씨름하면 다 이길 거 같고 그래?

내 공감능력이 딸려서인가, 떠오르는 게 하나밖에 없다. 취한 떡대 오크들에게 말을 건 것부터가 등신짓이었다는 것.

“지금 힘드시면… 나중에, 언제 빼주실 수 있으십니까.”

당장 빼주는 건 포기한다 치고, 저 차가 언제 빠지는지라도 알아야겠다 싶어 물었다. 지금은 밖에 행인이 많아도 새벽 되면 한가해질 테고, 아침에 손님들 몰릴 때까지만 빼준다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모르신다고요?”

“당연하지, 밤새 술 먹을 건데. 사장님께서는 밤새서 술 먹고, 다음 날에 알람 맞춰서 딱딱 일어나요?”

이걸 토대로 계산을 해봤다. 밤을 새우겠다 말했으니 취침 시간을 오전 6시, 술 먹고 자겠다 했으니 수면시간이 못해도 8시간.

일어나서 차 빼러 나오는 데에 30분 걸린다 치면 최소 오후 2시 반이 되는데, 그때면 출근 시간이고 점심시간이고 다 지나갔을 때다.

그동안 우린 뭐 어쩌라고. 매장 못 보고 손님이 지나쳐도, 차 댈 곳 없어서 그냥 지나쳐도, 매상 박살 나도 그냥 그러려니 해?

“아니, 사장님. 우리가 평생 저기 주차할 것도 아닌데 그만 좀 땍땍거리시면 안 돼?”

“…예. 죄송합니다. 살펴 가십쇼.”

난 할 만큼 했다.

이 오크 놈들이 술 냄새, 깡패 냄새 풀풀 풍기고 있기는 해도, 자동차 3m 옮겨서 주차하는 정도는 군말 없이 해줄 줄 알았다. 근데 그것마저 싫어?

싫으면 뭐 어떻게 해, 경찰 불러야지. 그래도 문신충 떡대 열둘 앞에서 대놓고 경찰을 부르긴 좀 그렇고, 일단 내보내고 보자.

이런 이유로 살펴 가라고 말하고 끝내려 했다. 헌데.

“아, 죄송합니다? 진짜 죄송한 거 맞아요?”

“예?”

“말투가 아니꼽잖아요, 지금. 그리고요, 죄송하다고 말하면 다 끝나?”

그…럼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야. 갓길 일일 주차권이라도 끊어 달라고?

뭔가 바라는 게 있어 뵈는데 그게 뭔지 짐작이 되질 않는다. 진짜로 일일 주차권이 필요해서 이러는 거냐, 아니면 시비 걸 놈이 없어서 이러는 거냐.

물어보려고 입을 열었으나, 말은 못 꺼냈다. 손님이 와서였다.

“밖에서 다들 축구 얘기만 하는군요, 사장님.”

대리기사 어르신이셨다. 매장 상황을 아직 못 보셔서인가, 들어온 직후엔 목소리가 밝으셨으나….

“혹시 사장님께서도 축구 보시―”

여기까지 말한 뒤,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바로 말을 멈추셨다. 뒤이어 오크 떡대들 뒤통수를 바라보고, 자기 쪽으로 고개 돌린 오크 하나랑 눈을 마주치고.

몸에 새겨진 문신들을 마지막으로 훑어보시고는, 짧게 한마디를 내뱉으셨다.

“이거 참.”

오크 놈들이 걸어오는 시비에도 등골이 멀쩡했건만, 저 한마디 듣고 나니 오싹 소름이 밀려오더라고. 바로 어르신께 여쭤봤다.

“손님, 혹시 찾는 것 있으십니까?”

정말 찾는 물건이 뭐냐고 여쭤본 건 아니다. 말 걸 빌미가 필요했을 뿐이다. 지금 어르신께서 뭔 생각 하시는진 알겠는데, 가능하면 그 생각 접으시라는―

“사장님, 눈 굴리지 말고 이쪽 봐야지.”

“제가 눈 굴리려고 굴린 게 아니고요, 그.”

저 어르신께서 주먹 쓰시는 걸 딱 한 번 봤던 게 떠올라서였다. 근무 둘째 날, 요 앞 사거리서 오크 둘이 시비 붙었던 거.

그때 어르신께서 몸소 행차하셨고, 강냉이 4개 추수하시는 데에 딱 2초 걸리셨다. 지금 그때랑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 같아서 그런다. 여기가 텍사스 옥수수밭이 되게 생겼다니까?

사실 이것도 잘 모르겠다. 1:2로 싸우는 것과 1:12로 싸우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니까. 일이 어떻게 풀릴지 알 수가 없으니, 아예 일 자체가 안 벌어졌으면 하는 바람인데….

“그럼 뭔데. 저 할배한테 신고해 달라 하려던 거 아니야?”

“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잖습니까, 잠깐 얘기 좀….”

“할배라.”

어르신께서 무덤덤한 어조로 툭 내뱉자, 오크들 몇몇이 고개를 돌려 어르신을 바라봤다. 시선에 전혀 개의치 않고, 한마디를 더 말씀하셨다.

“사장님. 이 말버릇 고약한 청년들과는 어쩌다 엮이시게 된 겁니까?”

선전포고였다.

오크들도 똑같이 느꼈나 보다. 말이 끝나자마자 어르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오크 하나가 바로 손을 치켜들었다.

“이런 썅, 이 노친네가 지금 뭐라고―”

말보다 주먹이 앞서고 있다. 치켜든 손을 어르신의 어깨로 뻗어 붙잡으려 했지만, 바로 반응하셨다. 한 손으로는 오크의 손목을 손등으로 비껴 친 뒤―

“손버릇도 마찬가지고 말이죠.”

다른 한 손을 곧게 내질러, 오크의 어깨를 손바닥 밑으로 밀치듯 가격하셨다. 손바닥이 닿는 동시에 맑고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팔이 축 늘어진다.

“어.”

팔이 축 늘어진 오크가, 의아하다는 듯이 늘어진 자기 팔을 내려다봤다. 고개를 내린 그대로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는 있으나, 문어 다리마냥 흐느적거리기만 하고 있다.

“뭐야, 내 팔 왜 이래.”

“어깨가 빠져서 그렇습니다. 마력 순환이 흐트러졌으니, 감각도 못 느끼실 테고….”

말을 늘이며 모자를 벗으시고는, 오크 무리 사이로 터벅터벅 걸어와 모자를 건네오셨다. 건네주셨으니 일단 받아 들기는 하겠는데….

“잠시 맡아주시겠습니까.”

“어르신, 뭘 어쩌시려고….”

“잠깐 대화만 나누고 오려 합니다. 개인적으로 하는 일이니, 사장님께서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봉고차 나르실 때 하셨던 말과 내용이 똑같다. 똑같은데, 내 귀엔 전혀 다르게 들린다. 뭔가, 이놈들은 내가 직접 조지고 말겠다는 단호한 의지 같은 게….

직후 어르신께서 뒷짐을 지시고는 밖으로 나가버리셨고, 걸음걸이가 워낙 홀연했던 탓에 나나 오크들이나 반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진짜 싸움 나는 거야? 진짜?

이 상태로 정적만 흐르던 와중, 어깨 빠진 오크가 자기 팔을 흔들거리며 물었다.

“지금 이게 어깨가 빠져서 이런 거라고?”

내가 정말 몰라서 묻는 거니 대답 좀 해달라는 어투였다. 이걸 듣고 나서야 오크들이 정신이 돌아왔는지, 각자 한마디씩 내뱉어댔다.

“…저 미친 노친네 잡아!”

“잡아서 반 족쳐! 감히 어깨를 빼?”

“도끼로 대가리를 깨버려야 정신을 차리지.”

저마다 전의를 불태우며 하나둘씩 뛰쳐나갔고, 맨 마지막에는 팔 빠진 오크마저 반대쪽 어깨로 정문을 들이받고는 나가버렸다.

이리하여 혼자 남게 됐는데, 아니 도끼로 대가리를 깨버린다고? 이 시국에?

믿기 힘들었으나, 좌시하기도 힘들었다. 문신 중에 쌍도끼 문신이 하나 섞여 있는 걸 본 기억이 나서다. 이거 다리에 매달려서라도 말려야 할 상황 아닌가?

이 생각에 카운터 가림막을 걷고 뛰쳐나가려 했는데, 드워프 하나가 매장 안에 들어섰다. 타이밍 왜 이러냐.

“어서 오십쇼. 그런데 제가 지금 급한 볼일이 있어서―”

“화장실?”

“그건 아닙, 혹시 어떤 거 찾으십니까?”

“라이터.”

라이터 하나쯤이야 금방 사가겠지….

“라이터 여기 있어요. 제가 지금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

“어떤 게 좋냐.”

“태풍 대비하실 거면 터보라이터, 아니면 아무거나 쓰셔도 돼요. 그게 그거라서.”

“음….”

말을 늘이고는 드워프 특유의 장인정신 같은 것이라도 발동한 건지, 라이터 진열대를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한다.

이러길 족히 2분. 보라색 라이터를 내게 내밀며 묻는다.

“이거 잘 켜져?”

“직접 켜보셔도 됩니다. 근데 손님, 제가 지금 진짜 나가봐야 돼서….”

“뭐 때문에?”

장작 패는 거 말리러 가야 한다, 말하려다 삼켰다. 쇼윈도 한쪽에서 어르신이 모습을 드러내셔서였다. 그 뒤엔 왜인지는 몰라도, 아까 뛰쳐나갔던 오크 무리 중 하나가 따라오고 있고….

둘이 그대로 매장 안으로 들어섰는데, 어르신께서는 양복에 먼지 하나 묻지 않고 깨끗한 반면 오크는 몸이 구정물 범벅이다. 한번 크게 뒹군 듯한 모양새다.

“나갈 이유가 있었는데, 이젠 없네요. 천천히 고르셔도 됩니다.”

“아니. 다 골랐다.”

바코드 찍고, 천 원 받아서 계산 마치고 거슬러줬다. 드워프가 나간 뒤 오크의 얼굴을 좀 더 유심히 살폈는데, 이놈이 날 바라보는 표정이 심상치 않다.

“…이 새끼.”

“누구. 저요?”

“비겁하게 대리기사를 불러?”

자차도 없는 내가 대리기사를 왜 불러? 역으로 물으려던 찰나, 옆에 어르신께서 작게 헛기침을 한 번 하셨다.

헛기침 한 번에 오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마냥 조용해졌고, 어르신이 터벅터벅 다가오셔서는 말씀하시더라.

“차는 곧 빼준다 하니, 안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어르신. 근데 다른 오크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밖에 앉아서 쉬고 있습니다.”

바깥 길거리 어디에 앉을 곳이 있다는 거야. 생각하다 속뜻을 깨달았다. 어깨 빠진 채로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단 얘길 돌려서 하신 거구만.

어렵긴 했지만, 그 오크들이 죄다 풍선인형마냥 뒹굴고 있을 광경이 상상이 되기는 했다. 반면, 눈앞의 이 오크는 어깨가 멀쩡해 뵌다.

“그럼 이분은요?”

“그게, 이 친구가 차 주인이라고 해서 말이지요.”

“예.”

“운전은 할 수 있게 해둬야겠다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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