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편돌이-100화 (101/201)

100화. 장사가 안돼요, 자동차가 너무 커서 (5)

팔 멀쩡한 오크가 운전대를 잡진 않았다. 취한 건 사실이니까.

그래도 고분고분 차를 빼주기는 했다. 지 열쇠로 운전석을 열어서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고, 뒷범퍼를 잡아 질질 끌고 가는 식으로 말이다.

이 광경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더란다. 운전대 안 잡고도 차 뺄 수 있으면서 튕기기는 왜 그렇게 튕겼냐라든가, 이 오크도 최소 1대 600쯤은 치겠다라든가―

1대 600쯤 치는 오크 열둘, 어깨 스물네 개를 도대체 어떻게 먼지 한 톨 안 묻고 뽑아버릴 수 있냐는 거라든가. 봉고차를 10m가량 질질 끌고 간 오크가 돌아와서는 어르신께 물었다.

“저 정도면 충분합니까, 어르신?”

어투가 공손 그 자체다. 말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답하시고는, 잠시 뒤에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오크에게 물었다.

“혹시 이 편의점에 자주 오는 편입니까?”

“낮엔 몇 번 왔었는데요. 그건 왜―”

“저도 여길 자주 와서 말입니다.”

“어….”

“혹시라도 다시 찾아오거든, 또 마주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게 내 귀엔 이렇게 들린다. 의도가 뭐가 됐든 여기 두 번 다시 찾아오지 마라. 한 번 더 눈에 띄는 그 즉시 이쩜오크로 만들어 버리겠다.

오크도 자기 목숨 관련된 부분에서만큼은 눈치가 있는 건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우물쭈물 대답했다.

“예… 예. 기억하겠습니다, 어르신.”

“그리고… 아. 골목에서 쉬고 있는 청년들은 30분 정도 뒤면 멀쩡해질 테니, 안심해도 됩니다.”

이건 30분 뒤에 알아서 데려가라는 말 같고. 이 말에 오크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반쯤 도망치듯 골목 쪽으로 달려가 버렸다.

오크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와중, 어르신께서 물으셨다.

“사장님.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몸은 멀쩡한데, 마음이 좀 많이 다친 것 같습니다.”

내가 이전에도 편의점 알바를 해봤고, 취해서 찾아온 깡패 손놈들을 안 받아본 것도 아니다. 그거 1+1 상품 아니다, 니가 찾는 그 상품이 여긴 없다, 먼저 말도 걸어봤었고.

그래도 그 손놈들은 최소한의 상식이란 게 있었다. 다른 상품 골라와라, 딴 데 가서 찾아봐라, 친절하게 대답해주면 알아는 들었다고.

그리고 난 차 빼달라는 부탁이 비상식적이거나 알아듣기 힘든 부탁이었다고는 생각 못 하겠다.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 같아 어르신께 여쭤봤다.

“어르신. 궁금한 거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요.”

“제가 오크들을 많이 안 만나봐서 그런데, 차 빼달라는 부탁이 오크들한테는 많이 무례한 부탁이에요?”

내 결론은 이거다. 이세계 근무 1달 차인 내가 술 취한 오크들 습성을 이해 못 한 탓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

이 결론은 딱 절반만 맞았다.

“편견으로 들리실 수 있겠지만, 오크들이 대체로 그렇습니다.”

“술 상관없이?”

“예. 술 상관없이. 젊은 오크들은 그중에서도 특히… 무례한 편이고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오크들 종족 특성이 호전적이라는 것이다.

인큐베이터 동기들끼리 뻐드렁니를 부여잡고 싸워대는 것부터 시작해, 유치원 일짱의 자리를 두고 혈투를 벌이기도 하고, 중등 교육과정을 밟는 도중에도 교복에 피가 마를 날이 없고….

성인이 되고 나서도 호전성은 어쩔 수가 없어서, 철이 덜 든 오크들이 사소한 이유로 시비를 걸고 어떻게든 싸움을 벌이려 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걸 다른 이종족들이 용납을 해줘요?”

“해주기는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기도 하고요.”

이 나아지는 과정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합의금을 많이 많이 내는 것.

합의금 액수가 투잡 월수입을 초과하는 시점부터 사회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단다. 못 그런 오크들은 다 굶어 죽었기 때문에 내가 만날 일도, 걱정할 일도 없을 거라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오크들의 오랜 전통을 따르는 것. 예로부터 오크들은 분쟁의 요소가 생기거든 대화가 아닌 별도의 수단을 사용해 왔다 한다.

“주먹을… 아니지. 더 강한 자의 의견을 따른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오크가 고분고분 차를 빼준 것도, 어르신께서 자신들의 전통을 존중한 데에 대한 감격의 표현인 듯하다. 여기까지 말씀하신 뒤, 어르신께서 턱을 매만지며 덧붙이셨다.

“물론 경찰을 부르는 게 가장 편한 해결 방법이긴 합니다. 아니면 이미 신고하신 겁니까?”

“하려고는 했었어요. 그 직전에 딱 오셔갖고.”

“이런. 제가 괜한 일을 해버렸군요….”

“아뇨? 전혀요.”

정말로 괜한 일을 하셨다는 표정이셨는데, 난 진심이었다.

설령 경찰을 불렀다손 쳐도, 경찰이 출동하기까지의 몇 분을 내가 버틸 수 있었을까? 진즉에 오크들 손에 붙들려 아코디언이 되어버렸을 것 같은데?

그걸 미연에 방지해 주셨으니 나로서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폭력보단 대화를 더 선호하긴 하지만… 말을 들어 먹질 않는데 내가 뭘 더 어떻게 해.

마음 같아선 콜 받으실 때 드시라고 잠 깨는 껌이라도 사고 싶은데, 안 받으실 것 같다. 길게 얘기하고 싶으신 느낌도 아니라 냉큼 주제를 돌렸다.

“아까 나가시기 전에 말씀하시던 거 있잖습니까. 손녀분이 벌써 구구단을 깨쳤다고.”

“아… 네. 그랬지요.”

“저는 유치원 때 구구단이 뭔지도 몰랐거든요. 손녀분께서 타고난 거 아닌가?”

어느 정도냐면, 이 매장 최저연령 단골손님에 비견될 정도다. 유치원 다닐 나이면 서로 또래라는 건데, 새하얀 그 녀석이랑 붙여두면 서로 좋은 친구가 되지 않을까?

“허어, 제가 그리 명석한 편은 아니었어서 말이지요….”

내색을 안 하시려고는 해도 기쁘다는 티를 팍팍 내고 계신다. 마저 말씀하시려다, 스마트폰 진동 소리와 동시에 손을 움직이셨다.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확인하시고는, 내게 꾸벅 고개를 숙이신다.

“지금 나가봐야 될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죄송하실 게 뭐 있나요, 일하시는 건데.”

나도 내 일 할 때가 됐다. 떡대 오크 놈들이 사라져서 그런가, 아까까지도 눈치만 보던 손님들이 슬쩍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따라서 고개 꾸벅인 뒤, 나란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르신께서 콜 받은 위치가 어디인지 검색하시는 걸 멍하니 바라보다가, 질문 하나가 떠올라 바로 입에 담았다.

“어르신, 이건 좀 딴 얘기긴 한데요.”

“어떤 얘기 말씀이십니까.”

“오늘 두 번 도와주셨고, 두 번 다 개인적인 일이니 신경 쓰지 말라 하셨잖습니까. 그래도 이건 못 여쭤보면 제가 잠을 못 잘 것 같아서.”

주차 분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온갖 곳에서 다 일어나고 있을 터다. 싸움도 마찬가지일 거고. 평소에도 그런 것들에 일일이 관여를 하시는 편이냐?

지나치게 도움만 받는 것 같아서 그렇다. 받은 만큼 갚고는 싶지만, 내가 어르신만큼 수화에 능통한 것도 아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사장님. 제가 최근 들어 절실히 느끼는 게 하나 있습니다.”

“어떤 걸요?”

“예의 바른 대우를 받는 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기억되는 것도 마찬가지고.”

이해가 되기는 한다. 옛날이야 나이 든 분들 말을 귀담아듣고 실천하다 보면 떡이 나오는 경우가 태반이었겠지. 들을 이유도, 가치도 있었다는 얘기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했고, 여러 가지가 많이 퇴색됐다. 궁금한 게 있거든 인터넷 잠깐 검색하면 다 나오잖는가. 단순한 잡담을 하더라도 마음이 맞는 경우도 드물고.

이걸 몸소 느껴오신 듯하다. 콜을 받아 손님을 태울 때나 지금 같은 경우나, 노친네란 말을 들으신 게 처음은 아니실 테니까. 이렇게 이해를 하려면 할 수는 있지만, 글쎄….

“그게 제 일이니까 그렇죠. 편의점이 서비스업이고, 손님 응대하는 게 업무니까….”

“담배 이름 기억해 주시는 것도 업무에 포함이 되어있습니까?”

“그…건 아닌데요.”

“그런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늙은이를 보고 계신 겁니다. 변덕이라 해도 할 말은 없지만요.”

겨우 담배 이름 기억했다는 이유로? 이게 수지타산이 맞는 거냐?

모르겠다. 내가 어르신만큼 연륜을 쌓은 것도 아니고, 늑대인간 성향을 완벽히 아는 것도 아니잖은가. 탐탁지는 않았어도 할 말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어서 어영부영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수긍 못 한 게 눈에 빤히 보였는지, 어르신께서 나가기 전 한마디를 더 덧붙이셨다.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나중에 또 뵙죠.”

그러고는 나가셨고, 혼자 남진 않았다. 손님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밀고 들어온다. 카운터로 돌아와 바코드를 찍으며, 마음에 걸리는 점 하나를 계속 복기했다.

물어볼 게 하나 더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정작 그게 뭔지가 기억이 안 났다.

* * *

손님은 새벽 1시 즈음 뚝 끊겼다. 이후로는 늘 그랬듯 한가한 새벽이었고….

아침 8시. 해 뜨고 직장 다니는 손님들이 몰려왔는데, 손님들 몰골 영 말이 아니었다. 특히 남성 이종족 손님들. 눈은 죄다 충혈되어 있고, 다크서클이 짙다.

20분가량은 별 생각 없이 계산하다가, 숙취해소제 재고가 다 떨어질 즈음 깨달았다. 축구 얘기 한다고 다들 밤을 새운 거다. 표정이 특히 우울한 양반들은 뭐, 응원하던 팀이 져서 그런 거겠지.

이 양반들한테 응원의 한마디를 건네면 단골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타인의 응원이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이미 깨달았을 것 같더라.

그냥 말없이 남은 시간을 근무했고, 교대 10분 전 점장이 왔다.

“찬아, 하이.”

“하이요, 점장님.”

“잘 받아주니까 좋다. 밤에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설마 또 일이 터졌냐는 표정을 짓는 점장에게 그 설마가 맞다고 설명해 줬다. 안와골절 전문가 오크 열둘이 내 안와를 골절시키려 했다.

“…진짜로?”

또 심각한 표정이 됐다. 이런 게 싫어서라도 좀 비밀스럽게 살고 싶은데 말야.

“진짜로요. 그런데 점장님, 이런 일은 앞으로 말 안 하면 안 됩니까?”

“안 돼. 이런 일만큼은 서로 솔직하자고 약속했잖아.”

“그렇긴 한데요. 그래도 뭔 일이 일어난 건 아니니까 얼굴 좀 피시고….”

“그건 결과론이구. 만약에 뭔 일이 일어나서, 찬이가 하루아침에 눈탱이 밤탱이가 되어버렸어 봐. 주의를 안 준 내 잘못이 제일 큰 거 아냐?”

난 불가항력이라 생각한다. 편의점에 언제 어느 종족이 와서 진상을 부릴 줄 알고 미리 다 언질을 줘? 나이 스물아홉 먹은 놈이 알아서 할 일이지.

“그런 거 맞아.”

“아직 안 늦으셨으니까, 지금이라도 팁 있으면 말씀해 주셔요.”

“응. 찬이, 혈색 좋은 뱀파이어분들 혹시 뵌 적 있어?”

“아직은 없는데, 혈색이 좋으면 좋은 거 아녜요?”

“건강하신 게 아니구, 머리에 피 쏠리신 거야. 모자라갖구. 그런 분들은 찬이 맨살 유심히 쳐다볼 수도 있는데, 가급적 눈 마주치지 말고….”

외에도 켄타우로스 꼬리 품평회 하지 말라, 실례다. 마왕님 믿냐고 물어보거든 무교라고 대답해라, 고블린들이 돈 얘기 꺼내거든 그런 거 모른다고 해라.

“그리고 오크분들은― 그러고 보니 어제 그 오크들이랑은 어떻게 해결했어?”

“제가 뭘 하진 않았어요. 그냥, 어….”

“그러면?”

“대리기사 단골손님 한 분께서… 이분 얘기는 제가 처음 하는 건가요?”

“응. 난 처음 들어봐.”

이왕 말 나온 김에 전부 말했다. 편의점 내외로 손님들끼리 시비 붙은 게 두어 번 있었고, 그 대리기사분께서 해결해 주셨었다. 종족은 늑대인간.

전직 군인 출신이시고, 오크 어깨를 무척 잘 뽑으시는 분이다. 이 부분을 말하는 시점에서 점장이 고개를 크게 갸웃했다.

“어깨를 잘 뽑으신다? 마법이 아니야?”

“마법은 아니라고 직접 말씀하셨고… 마력 회로를 꼬아버렸다는 말도 하긴 하셨었네. 근데 그게 왜요?”

“떠오르는 게 있어갖구. 그분, 기사단 출신 아니실까?”

난 모른다. 이세계서는 대리기사분들 모인 사무소를 기사단이라고 부르나?

“그게, 옛날에 기사단서 복무하신 분이랑 일했었는데, 나랑 협업하셨던 분도 어깨를 잘 뽑으셨어. 그때 그분이었는진 모르겠는데….”

“다른 분이셨다 치고, 그분은 복무내용이 뭐였길래 어깨를 그렇게 잘 뽑으셨대요?”

“높은 분들 호위.”

진짜 궁금해서 물어봤다. 구체적으로 뭐 하는 높은 분들을 호위한 거냐고.

군 장성이나 국회의원 보디가드 같은 걸 생각하며 물었는데, 점장이 딱 세 글자를 대답해 줬다.

“대통령.”

“누구요?”

“대통령. 그분은 대통령 호위하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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