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편돌이-101화 (102/201)

101화. 장사가 안돼요, 자동차가 너무 커서 (6)

곧이곧대로 정리해 봤다. 어르신과 똑같은 체술을 다루시는 분을 만났었는데, 그분이 어르신과 똑같은 부대 출신으로 추측되고, 그 부대 임무 중 하나가 대통령의 호위.

“그럼 그분이 이 세상 대통령이랑 맞담배를 태워보셨을 수도 있다― 그런 얘기십니까?”

“글쎄. 그 시절 대통령이 담배를 폈는지 아닌지에 달리지 않았을까?”

잠이 확 달아나는 이야기다. 만나본 군부대 윗대가리래 봐야 실망 원툴 중대장이 전부였던 놈이, 전직 파이브스타 호위부대 출신 대리기사를 다 만나고… 아.

“점장님, 저 여쭤볼 거 하나 떠올랐습니다.”

“응.”

“어제 오크 놈이 비겁하게 대리기사를 부르냐― 이런 얘기를 했었는데요. 그놈이 말한 대리기사가 제가 생각한 거랑 좀 다른 것 같거든요?”

어제 어르신께 이걸 못 여쭤봤다. 못 떠올려갖고. 그 오크 놈이 말해온 뉘앙스가 운전보다는 어째 좀….

“대신 싸워주는 기사가 아니냔 얘기지.”

“예. 진짜 그게 맞아요?”

“진짜 그게 맞는데?”

지금은 이 용도로 쓰이는 일이 거의 없지만, 존재하는 건 사실이랜다. 이 세상에서 대전쟁이 일어난 직후, 치안도가 밑바닥을 찍던 시절에 생겨난 단어.

그 시절엔 오크들이 호전성을 못 버리고 깽판 치는 걸 막아줄 공권력이 없었기에, 오크랑 엮일 일이 생기거든 다들 별도의 대화 수단을 마련했다고. 그게 대리기사다.

“싸움하시는 분을 돈 주고 고용했다― 라고 말하기는 좀 그러니, 고르고 고르다가 기사라는 단어를 쓰게 된 거구. 이것도 좀 헷갈려?”

“헷갈리진 않는데, 상황이 이해가 안 돼서 그래요. 그 말씀대로면 제가, 어….”

“호위를 받았단 거지. 호위 특수부대 출신분께 말야.”

몸 둘 바를 몰라야 할 상황이 맞구만. 근데, 아니. 편돌이 놈의 대체 어디가 마음에 든다고 이렇게까지 해주냐? 대통령급 인물들 호위하던 분이….

“그거야 물론, 찬이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 거지.”

“저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찬이는 가끔 표정으로 물어보거든. 그리구, 이건 내 대답이 맞아.”

“아, 예….”

“그러니까 그런 줄 알면 돼.”

그런 줄 알라니 그런 줄 알란다. 의기양양 그 자체인 얼굴로 말을 맺고는, 대뜸 날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분 혹시 낮에는 안 오신대?”

“안 여쭤봐서 모르겠는데. 나중에 오시면 한번 여쭤볼까요?”

“응. 만약에 내가 아는 그분이 맞으면 엄청 반가울 것 같아서.”

이건 나도 반길 상황이다. 잘 맞아떨어지면, 점장이 왕년에 어떻게 잘나간 대마법사인지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점장 나이가 정확히 몇인지도 물어볼 수 있을 테고….

“방금 나한테 미안해야 할 생각 했지.”

“몰라요. 저 집에 갈랍니다.”

* * *

집 가기 직전까지 점장이 꿀밤을 세 대 때렸다.

뭔 생각 했는지 이실직고하면 살려주겠다며 투덕대 오는데, 논리적으로 따져보니 그냥 죽는 게 낫겠더란다. 그래서 그냥 맞았다.

헌데 자고 일어나 보니 대마법사에게 꿀밤을 맞은 덕분인가, 머리가 상쾌해지고 점장 보자마자 물어봐야 할 것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물어보려고 15분 일찍 출근했는데, 못 했다.

“점장님. 어제 호위부대 분이랑 협업하셨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몰라. 나 일할 거야.”

“그럼 옆에서 돕겠습니다. 손님이 좀 많네.”

평화롭게 질답 나누기엔 손님이 좀 많아서였다. 줄 선 손님이 여덟. 슬그머니 점장 옆에 서서, 물건 가져오는 족족 봉투에 담고 위치 안내도 해주고….

여섯가량을 보낼 즈음 깨달았다. 이건 내가 못 이길 싸움이다.

“말씀하신 게 맞습니다. 죄송해야 할 생각 한 거.”

“찬아, 갑자기 목숨이 아까워진 거야?”

“오늘따라 특히요. 이실직고했으니까 이제 살려 주시는 겁니까?”

“응. 그 대신, 앞으로 그러면 안 돼. 알겠어?”

“네.”

이제서야 점장이 마침내 태세를 바꿨다. 여우 태세에서 토끼 태세로 돌아온 점장이, 앞에 서있던 손님을 보내고는 대답해줬다.

“그분이 먼저 찾아오셨어. 호위 임무에 쓸 마법 몇 가지를 배우고 싶으시다면서.”

“호신용 마법 같은 게 따로 있어요? 물리적으로?”

“있기야 한데, 그런 건 내가 말씀 안 드렸지. 아이언 골렘도 맨손으로 부수시는 분들이니까.”

“흠….”

생각보다 스케일이 좀 큰데?

“그분이 나한테 여쭤보셨던 게, 10km 바깥에서 마법으로 저격해 오는 저격수를 미리 포착할 방법이 있겠냐는 거였어. 그걸 전부 방어하리라는 확신이 없으셨거든.”

“그건… 빗나가라고 물 떠 놓고 기도해야 되는 거 아녜요?”

“보통은 그런데, 기도가 안 통하면 그분이 실직자가 되시잖아. 잠깐 얘기해 보니까 좋은 분 같아서, 나도 신경 써서 맞춤형으로 알려드렸지.”

“맞춤형 마법이면, 어떤….”

“초고위력 탐지 마법.”

이후 점장이 마저 설명하길, 10km 바깥에서 대통령의 머리통을 정확히 저격해 터트리는 건 마법적으로도 꽤나 어려운 행위라는 것이다.

고려해야 할 사항이 크게 두 가지. 대통령 주변에 24시간 시전되어 있는 몇 겹의 보호막 마법을 전부 뚫을 수 있을 만큼의 위력, 그 위력을 한 점에 집중하는 정확도.

이 두 요소를 고려하며 마법을 시전할 경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대략 30분쯤 걸리니까, 전부 시전되기 전에 10km 직접 뛰어가서 제압하시는 게 제일 낫겠다 말씀드렸던 것 같아.”

“그게 돼요? 탁 트인 트랙 달리는 것도 아닌데?”

“솔직히 나도 말씀드리면서 이게 진짜 되나? 싶기는 했는데… 나중에 오셔서 잘 썼다 하시더라구. 보람 있었는데.”

말을 맺으며 만족스러웠다는 표정을 짓는 점장.

나는 아주 만족스럽진 않았다. 만약에 초고위력 탐지 마법으로 저격 지점을 탐지했다 치자. 이러면 탐지한 즉시 매―직 폭격기를 불러다 그 지점을 폭격하면 되는 거 아냐?

이걸 물었는데, 점장 생각에는 상황이 좀 애매했다고 한다. 남의 머리통을 터트리려는 놈들이 자기 머리통 걱정을 안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나.

폭격기로든 마법으로든, 자기들 머리통이 위협받는 걸 깨닫는 즉시 자리를 옮길 게 뻔했다는 거다. 자리를 옮긴 뒤엔, 뭐… 다시 한번 골통 분쇄 마법을 시전하려 들었을 테고.

“그럼 불안할 거 아냐. 언제 어디서 똑같은 짓 또 할지 모르는데.”

“저도 그런 상황이면 잠 설칠 것 같긴 합니다.”

저격수들을 무조건 잡긴 잡아야 하는데, 마법을 써서는 안 된다. 눈치채고 튀어버리니까.

그리고 때마침 호위부대 분들이, 마법을 쓰는 게 아니라 마력을 가공하는 데에 뛰어난 분들이셨단 거다. 신체를 강화해서 직접 발로 뛰어 조지고 부숴서 끝냈다고.

“그분들 말고는 해결 못 했을 거라는 말씀 같네.”

“응. 지금 생각해 봐도. 근데 찬아, 이건 왜 궁금한 거야?”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어르신이랑 대화할 거리가 있으면 좋겠단 정도였는데요….”

듣고 난 지금은 이걸 대체 뭐라고 말해야 하냐, 고민만 깊어진다. 혹시 10km 밖에서 저격수를 탐지한 뒤 30분 내로 주파하는 마력 컨트롤을 요구하는 부대에서 근무하셨느냐.

이것보단 차라리 오른쪽 눈에서 안광 쏘실 수 있냐는 질문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그런 것들을 네가 어떻게 아냐며 물어보셔도 할 말 없기도 하고.

“다 듣고 나서 여쭙는 것도 웃기긴 한데, 이거 이 세상 군사기밀 같은 건 아니죠?”

“기밀 맞는데?”

“아, 예….”

“그러니까 그 어르신께 말고는 얘기하면 안 돼. 알았지.”

아무렴, 내가 고용주 군사재판 받을 짓을 왜 하겠는가. 나도 먹고는 살아야지….

말할 사람도 없다고 대답한 뒤, 바로 인수인계를 받았다. 특이사항이 하나 있었다. 나한테.

“아까 찬이 폰으로 전화 세 번 왔었어. 똑같은 번호로.”

내가 지금 폰이 두 개다. 나 사는 세상에서 쓰는 거 하나, 이 세상에서 쓰라고 점장이 준 매직 맛폰 하나. 그걸로 마법도 쓰고, 점장이나 손님들이랑 문자도 하고 그랬다.

내 세상서는 두 개 다 못 할 것 같아서 줄곧 두고 다녔었고, 두고 다닐 때는 일부러 전원을 꺼놨었다. 통화권 이탈에 대해 해명하는 것보단 배터리가 다 떨어졌다고 변명하는 게 더 쉬울 것 같아서였다.

“전원 끄는 걸 까먹었네. 혹시 누가 건 전화인지도 보셨어요?”

“안 봤지, 찬이 전화긴데. 그래도 세 번 연달아 전화한 게 급한 용건 같아서… 괜한 얘기 한 거면 미안하구.”

“아녜요. 저 정오까진 폰 거의 안 보니까. 바로 확인해 볼게요, 점장님. 감사함다.”

“응.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줘.”

이러고는 퇴근. 점장이 버스 타고 떠난 걸 확인한 뒤, 바로 폰 화면을 켰다. 전화 세 번 걸려온 시간이 오후 7시에, 발신자가… 엘레나.

서큐버스다. 며칠 전에 묘약 얘기 나눴던 걸로 회사에서 대답을 받았나 보다. 전화를 걸자 신호음이 채 한 번도 울리기 전에 수신해줬다.

[ 사장님! 전화 받아주셨네요! ]

“예. 그런데, 사장님이라고요?”

[ 네? 왜요? ]

“아뇨, 전에 헤어질 때 제 이름 불러주셨잖습니까.”

낯 가리는 성격에 꽤나 용기 내어 입 밖에 냈다는 인상을 받았었고, 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기억하고 있다. 나도 서로 이름 부르는 쪽이 더 편하기도 하고.

[ 어… 제가 그랬나요? 사장님 성함? ]

“뭐뭐 씨~ 라고 존칭까지 붙여주셨었… 아니다. 제가 잘못 기억하는 거일 수도 있겠네요.”

도중에 일부러 말을 바꿨다. 그때 그랬던 게 지금은 부끄러워졌을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럼 내가 나 편하겠다고 강요하는 모양새가 되는 거잖아?

이런 식의 대화가 처음이라 그런가, 뭔 말을 꺼내고 말아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다행히도 엘레나 양이 그때 일을 잊지는 않았다. 부끄러워는 했어도 말야.

[ 제가 그런… 아, 그게, 어. ]

“아니면 제가 기억하는 게 맞는 건가?”

[ …네. 찬이, 씨. ]

“다행이네. 저 부르실 때, 지금보다 더 편하게 부르셔도 돼요. 자주 얼굴 볼 사이끼리 뭘.”

[ 편하게라면… 찬이 오빠? ]

“그거 말고. 어조 말입니다, 어조.”

[ 어조. 아, 아앗. ]

돈 엮인 관계끼리 호형호제하는 건 가능한 한 지양하는 편이다. 일이 안 풀려. 서로 지나치게 편해져서 할 말을 못 하게 된다.

난 이 생각이라 안 내켰고, 엘레나 양은 29살 모쏠 편돌이를 오빠라 불러버린 반동으로 부끄러움이 가득 차올라버린 듯했다. 허둥지둥 말을 돌리더라.

[ 사장님, 아니. 찬이 씨! 제가 전화 드린 게, 그게 왜냐면요! ]

왜였냐면, 회사에 묘약 관련해 내 얘기를 했던 게 긍정적으로 검토가 되었다는 것이다. 담당은 엘레나 양 자신으로 정해졌고, 미팅 일정을 정하려 했다고.

“직접 해주신다니 다행이네. 엘레나 양은 언제가 편하세요?”

[ 언제라도 상관없어요! 찬이 씨 편하실 때면요. ]

“음….”

서로 언제가 편하냐며 묻다가 날 샐 흐름이다. 멍하니 쇼윈도 너머만 바라보다, 떠오르는 대로 말했다.

“지금 퇴근하신 건가?”

[ 아직요. 퇴근 등록 막 하고 엘리베이터 기다리고 있었어요. ]

“그럼 여기 잠깐 들렀다 가시는 건 어떠십니까. 가볍게.”

엘레나 양이 이 앞 정류장에서 환승하는 걸로 알고 있고, 환승하기 전에 잠깐 매장 들러서 대화하는 정도면 부담도 덜하지 않겠냐는 거다. 바로 전 만남이 이렇게 흘러가기도 했고.

물론 내 편할 대로 생각하는 거긴 해. 바로 물어봤다.

“부담되시면 오늘 말고 딴 날로 하셔도 돼요. 지금 퇴근하시는 거면 피곤하실 텐….”

[ 아뇨, 저 팔팔해요! 일정도 없고, 집에서 할 것도 없고! 또! ]

회사 로비에서 연구실 다시 돌아가는 데 3분도 안 걸린다, 반출 허가 받아놔서 따로 거칠 절차도 없다, 오후에 전화드렸던 것도 언제든 괜찮다고 말하려 했던 거다―

역으로 지금이 아니면 절대로 안 된다는 어투로 쉴 새 없이 말해온다. 도중에 끊었다.

“그럼 이따 뵙는 걸로.”

[ 네! 저, 여기서 가면 어… 40분 정도? 그때 봬요! ]

이러고는 뚝. 전화를 끊는 순간, 카운터 앞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야, 씹새야.”

“아, 죄송합니다 손… 예?”

“전화 다 끝났냐?”

아니, 이 치와와는 또 언제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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