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편돌이-110화 (111/201)

110화. 음머어어어어어어어

* * *

유치원 등교하는 게 대체 왜 위험하다는 건지 모르겠다. 근처 놀이터 유치원의 명운을 건 집단 패싸움이 시작되기라도 하는 것인가?

아니면 바바리맨이 출몰하기라도 건지, 뭔지. 떠오르는 게 없어 재차 물었으나, 꼬마도 상세히 들은 게 아닌지 설명을 거의 못 했다.

“선생님이여, 먼가 나타나따구 하셧구. 그….”

이게 끝. 괜한 거 물어봐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뒤, 20분가량 거품총 쏘는 거 구경하고 총을 돌려받았다. 총 건네는 표정이 하마터면 즐거워 죽을 뻔했다는 표정이다.

“수고했어, 꼬마야. 우리 손님 없는 동안 과자 파티 할까?”

이 말에는 고개를 붕붕 젓는 꼬마. 점장이 시무룩해하자, 꼬마가 황급히 덧붙였다.

“언니야, 제송해여. 엄마야가 오라셔갖꾸….”

“…아, 응! 그래서구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달아두는 걸로!”

“달아두어?”

“나중에 오면 과자 준다는 얘기야, 하나야.”

누가 꼬마고 누가 왕년의 대마법사인지 모르겠다. 가방을 챙긴 꼬마가 보조 바퀴 달린 자전거에 올라타서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

중간쯤 멀어져서는 멈춰 선 뒤, 내려서 다시 손을 흔들고는 올라탔다. 아예 안 보일 때까지 손 흔들어줬다.

“꼬마가 창고에서 있었던 일로 맘 안 쓰면 좋겠는데. 걱정되네….”

“저는 점장님이 맘 쓰실 게 더 걱정됩니다.”

“으으. 들어가, 찬아.”

“옙.”

이후 퇴근해서는 집 들어가서는 샤워하고 바로 드러누웠다. 저녁 9시 반 즈음 일어나 다시 한번 씻고, 출근준비 하고….

편의점 정문 열고 들어서자, 점장이 태블릿PC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게 보였다. 우선 인사부터 했다.

“오늘도 소프트한 밤입니다, 점장ㄴ”

“찬아, 찬아. 와서 뉴스 봐봐.”

벌떡 일어나서는 내게 태블릿PC를 보이는 점장. 가까이서 보니 화면은 뉴스 영상이 일시정지된 상태였으며, 헤드라인이 눈에 딱 보였다.

[ 학원지구 3번 블록에서 C급 게이트 발생… 6년 만에 처음 ]

게이트가 뭔지는 안다. 내부에 오만 것들이 괴수대잔치를 벌이고 있으며, 처리하지 않으면 세상에 요상한 자연재해가 일어난다는 균열.

윤하 누나가 자주 말해줬었고, 말할 때마다 크게 대수로운 일은 아니라는 투였기에 나도 그런 게 있구나― 기억만 하고 있었다.

헌데 헤드라인을 보니, 누나 말과는 달리 대수로운 일처럼 보였다.

“학원지구면 학생 애들 무진장 몰려있는 곳이잖습니까. 이거 괜찮은 거예요?”

“괜찮기는 한데, 여튼 보면 알 거야.”

점장이 재생 버튼을 마저 눌러줬다. 집중해서 보겠단 생각이었는데, 첫 화면을 보는 순간 눈을 떼기가 오히려 힘들어지더라.

“뭔?”

우선은 밤하늘. 찍은 지 얼마 안 된 영상같다.

각도는 헬기에서 찍은 듯한 각도에, 화면 정중앙에 시계탑이 비치고 있다. 헌데 이 시계탑 꼭대기에 무슨 노이즈 같은 게 끼어있다.

처음엔 영상 로딩이 덜 된 줄 알았는데, 시계탑 말고 찍힌 다른 건물들은 1080p 화질로 멀쩡하더라. 이 노이즈가, 그러니까….

[ 9시 40분 현재, 학원지구 3번 블록 상공에서 촬영된 영상입니다. 보시다시피,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시계탑 위에…. ]

블랙홀? 웜홀? 이거 진짜 뭐냐?

이과, 혹은 외계 출신이 아니면 구분하기조차 힘들 듯한 무언가가 허공에 떠 있는데, 이 떠 있는 무언가를 중심으로 시계탑 꼭대기가 반쯤 빨려 들어가듯 굽어있다.

비유하자면, 시계탑이 공간 채로 변기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딴 게 세상에 도대체 왜 나타나는 거야. 또 코딩 꼬였어?

[ 조짐이 발견된 것은 오전 4시. 게이트 발생 지역 근처의 교육 시설들에 휴교를 권고한 뒤 추이를 지켜보려 했다는…. ]

[ …다행히도 발생 위치가 6층 높이의 상공인 덕에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게이트가 확장될 것을 우려하여 인근 500m 이내에 통행금지 조치가 취해졌으며― ]

2~4번 블록에 존재하는 학원이나 유치원 전부가 아침부터 임시 휴교령이 내려진 상태며, 근처 상가나 주택 등에 있던 이종족들도 이미 모두 대피한 상황.

현재는 게이트 내부에 빨려 들어간 이종족이 있는가― 를 헌터들이 수색 중이다. 이 말을 끝으로 영상이 맺어졌다. 소감을 말했다.

“돌겠네요.”

“많이?”

“많이 돌아버릴 정도는 아니고, 오늘도 이상한 게 튀어나왔다는 느낌이긴 한데….”

내가 자격증 따겠다고 강도질하는 ATM도 잡아봤고, 관짝 백수십 개랑 눈싸움도 했다. 어제만 해도 봄 내음 나는 폭발에 머리카락도 휘날려봤고.

근 1~2주간 멘탈이 단련된 덕인지, 보면서 어이가 터지기는 해도 퇴직 사유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았다. 아니면 다친 이종족이 없다는 내용을 봐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

“그래도 이게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닌가 봅니다. 여기 6년 만에 처음이라고도 적혀있고.”

“응. 이 근방에 빌딩들 올라간 게, 게이트가 잘 안 열려서 그랬던 것두 있으니까.”

“그래요? 왜… 아니지. 애초에 이 게이트란 게 왜 생기는 겁니까?”

이 게이트가 아주 무섭진 않은데, 걱정이 안 되냐면 그건 또 아니다.

지금이야 멀리 있는 시계탑 꼭대기에서 게이트가 열렸으니 망정이지, 이게 만약 편의점 정문 앞에 떡하니 나타난다면?

미래의 내가 울고불고 난리를 칠 게 눈에 훤하다. 내 물음에, 점장이 잠깐 고민하다 대답해줬다.

“글쎄… 사실, 게이트가 왜 발생하는지는 학자분들끼리도 의견이 분분해갖구.”

“아직 연구 중인가 보네요.”

“응. 게이트에 대한 건 나보다는 윤하한테 물어보는 게 좋을걸? 윤하는 업계 이종족들한테 얘기 많이 들을 테니까.”

“듣고 보니 그렇네.”

확실히 이쪽이 나을 것 같다. 윤하 누나가 A급 헌터라 했으니까.

헌데 당장 전화를 걸기는 좀 그렇다. 며칠 전에 누나가 이번 주에만 게이트를 두 개 닫았다― 라는 식으로 얘기를 했었던 게 떠올라서였다.

“말 나온 김에 얘긴데요 점장님. 윤하 누나랑 최근에 통화되십니까? 엄청 바쁘다고 하던데….”

“나도 통화는 거의 못 했구, 새벽에 톡 온 건 있어. 봐봐.”

점장이 내민 폰 화면을 보자, 누나가 점장에게 보낸 톡이 네 개 있었다. 보낸 시간은 딱 14시간 전.

[ 돌겠네 ]

[ C블록 게이트 열림 ]

[ 나도 가야됨 ]

[ 나중에 전화할게 언니 ]

“허어….”

학원지구에서 열린 게이트가 누나 사무소 관할이었나 보다. 문자 하나하나에서 초과근무자의 애환이 느껴지는 게, 참….

“이건 안부 전화라도 걸어봐야겠슴다, 점장님. 아니면 벌써 하셨어요?”

“아직 못 했어. 언제까지 바쁜질 몰라갖구.”

“그럼 제가 한번 걸어볼게요.”

근무교대까지 5분 정도 시간이 남아있다. 바쁘다 하면 미안하다 끊으면 그만이고, 안 바쁘면 궁금한 거나 물어보지 뭐.

전화를 걸었는데, 이도 저도 안 됐다.

[ 고객님이 통화 중이어서, 잠시 후 삐 소리가― ]

“통화 중이랍니다, 점장님.”

―…드르렁.

“업무 전화 받고 있나 부다. 차라리 다행이야.”

“통화 중인 게요?”

―퓨우….

“응. 게이트 안에는 전파 안 통해서 마석 박은 무전기 쓰거든. 전에 윤하가 말해줬어.”

“아. 안엔 안 들어가고 밖에서 전화 통화 받고 있다는 얘기신….”

―드르러어엉….

“…잠시만요.”

웬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매장 음악에 간간이 코 고는 소리 같은 게 들려온다. 코를 고는데, 여기에 증폭을 여덟 배쯤 걸어놓은 듯한―

“꺼어어어억!!”

이번에는 스무 배쯤 되게 들린다. 점장을 내려다보니, 귀를 틀어막으려 했는지 반쯤 손을 들어 올린 자세였다.

잠시 뒤, 점장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확인해 보고 오겠습니다, 점장님.”

“아냐. 같이 가자.”

원인이 뭔지 아는 눈치였고, 나도 따로 묻지는 않았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이 음료 진열대 부근. 음료 진열대 쪽으로 가자 과연, 편돌이가 두려워하는 상황들 중 순위권인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음머음머….”

미노타우로스 한 놈이 바닥에 뻗어 자고 있던 것이다.

왼쪽 발굽은 생필품 진열대 맨 밑 칸에, 오른쪽 발굽은 음료 진열대 유리창에 비스듬히 올려진 상태.

생필품 쪽은 바닥에 있는 대로 엎질러진 채였으며, 음료 쪽은 발굽이 맞닿은 부분에 금마저 가 있다. 정황상 이 양반이 몸 뒤척이면서 후려친 것 같다.

“이 미친….”

정육점 출장 문의가 마렵다. 야간에도 영업하는 곳 있나? 이세계니까 있지 않을까?

망설이는 사이 미노타우로스가 게슴츠레 눈을 떴다. 지긋이 아이컨택 하고 있기를 수 초. 가소롭다는 듯이 콧김을 후욱 내뿜고는 생필품 쪽으로 몸을 뒤척여댔다.

이 과정에서 왼쪽 발굽이 생필품 진열대 2층 칸을 찍어 내리듯 후려쳐 완파됐다. 이건 나중에 폰으로 고치든지 하고….

“푸우우.”

이런 상황이 가끔, 아주 가끔 있다. 술 꼴은 진상이 안 보이는 곳으로 스리슬쩍 가서는 드러누워 잠들어 버리는 상황.

편돌이로서는 미칠 노릇이다. 잠을 얌전히 자면 깨워서 보내면 그만인데, 취객들마다 잠버릇이 각자 다르잖은가. 몸 뒤척이거나, 코 골거나, 잠꼬대를 하거나, 아니면―

“음머어….”

셋 다 해당되거나. 이 상황이 특히 거지 같은 점은, 편돌이로서 미연에 방지할 방법이 거의 없다는 점.

들어오는 취객마다 일일이 쫓아가서 감시할 수도 없을뿐더러, 기립 자세에서 바닥에 뻗어 잠드는 과정이 순식간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지들 집에 가서 그렇게 자면 좀 좋아?

진짜 그나마. 그나마 방지할 방법이 있다면, 낯빛 보고 ‘아, 저 양반 많이 취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취객들을 집중마크하는 것인데….

“점장님. 이 양반 언제 들어온 겁니까?”

“찬이 오기 직전에. 받을 때만 해도 멀쩡하셨는데, 이렇게 취하신 줄은 몰랐네….”

코앞에서 봐도 전혀 모르겠다. 미노타우로스들이 원체 털이 붉은 양반들이라, 낯빛만 봐서는 얼마나 취한 건지 구분이 전혀 안 된다.

“…음머어어어억!!”

누가 들으면 편의점에서 소 잡는 줄 알 거 같다. 일단 대화부터 해보자는 생각으로 몸을 숙여, 미노타우로스 어깨에 손을 뻗었다.

“손님. 이런 데서 자면 입 돌아가요.”

손이 닿자마자 고개를 홱 들어 날 노려보며 소리쳐온다.

“달려간다!”

“예? 어디로요?”

“아무도 날 막지 못해!!”

어디로 달려가겠다는 건지는 밝히지 않고 다시 뻗어버린 미노타우로스. 잠꼬대였나 보다. 몸 숙인 채로 점장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거 마법으로는 어떻게 안 되는 거죠, 점장님.”

“되는 건 되지. 내일 이분이 소송 거실 걸 감수한다면 말야….”

보호를 제외한 어떤 목적으로든, 이종족 대상으로 마법 쓰는 건 중범죄라 안 된댄다. 알고 있던 부분이라 더 묻지는 않았다.

대신 점장과 팔다리를 들어 나르는 상상을 해봤는데, 점장이 팔 한쪽 들어 올린다고 낑낑댈 모습이 머릿속에 빤히 그려지더라.

나는 두 걸음 나르다 허리 뿐질러질 게 분명했고. 근육질에, 키가 2m 좀 안 되는 게 평균인 종족이니까. 우선 경찰 부르고, 그걸로도 안 되면 이삿짐 센터에라도 연락해야 하나….

―짤랑.

정문 벨소리. 반사적으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점장님. 손님 받고, 가능한 한 이쪽 오지 마시라 하겠습니다.”

“응.”

말한 뒤 빠른 걸음으로 로비로 나왔는데, 오?

막 들어온 이종족이 손님이 아니었다. 정문 입구에 서서 주변을 훑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바로 경찰모를 벗어 꾸벅 고개를 숙인다.

이후에는 늘 해온 대로 무미건조하게 인사를 해왔다.

“순경 이루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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