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편돌이-112화 (113/201)

112화. 편의점 직원들이 힘을 숨김 (2)

* * *

이번엔 내가 물었다.

“응급실은 무슨, 이놈 지금 후회하고 있기라도 한 거예요?”

“응? 후회?”

“아니, 이게 아니라 그.”

다시 물어봤다. 고작 이 영상 하나만으로 고블린이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는 거냐?

“설명하려면 좀 돌아가야 되긴 해. 괜찮으세요, 경관님?”

“괜찮습니다.”

“찬이는?”

안 될 거 없다. 고개 끄덕이자, 점장이 영상을 뒤로 되감다가 한 부분에서 일시정지했다. 고블린이 쓰레기봉투 내려놓은 뒤, 손을 풀기 직전의 순간.

“여기구. 이 고블린분 손을 잘 봐봐.”

재생버튼을 누르되, 이번에는 배속이 조절된 채다. 0.25배속으로 재생되는 영상 속에서 고블린이 다시 손을 푸는데, 아까는 미처 몰랐던 요소가 하나 늘어났다.

손 푸는 동작이 괴랄했던 것이다. 손을 꽉 쥐었다 편 게 첫 번째 동작.

엄지를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을 세 번 쥐고, 이후엔 새끼손가락만 남기고 두 번. 이후엔 검지만 편 채 쓰레기봉투를 가리켰다가, 마지막으로 다시 새끼손가락을 편 채로 한 번…?

“이놈 왜 이러는 거예요. 지금 이게 마법 쓰는 건가?”

“그건 아니구. 이게 마법 쓰는 동작이었으면, 이 동작이 끝나고 나서야 돈 가방이 쓰레기봉투로 변했을 거잖아?”

그렇긴 하다. 이놈은 처음부터 쓰레기봉투를 들고 왔으니까. 이게 위장 마법 시전 동작일 리는 없겠지.

“이미 쓰인 마법을 인계받는, 음… 비밀번호를 입력했다구 보면 돼. ‘앞으로는 이 마법에 대한 마나를 내가 책임지고 소모하겠다―’라는.”

점점 더 모르겠어서 이후로는 그냥 듣기만 했다. 마법을 쓰기 위해 시전자에게 필요한 요소가 크게 두 가지. 연산식, 그리고 마나.

허나, 한 시전자가 두 요소를 모두 갖추지 않고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꼼수가 있다. 두 시전자가 각각 하나씩을 담당하는 것이다. 한 명은 연산식, 한 명은 마나.

이렇게만 들으면 합리적으로 보이나, 이 꼼수에는 아주 큰 문제가 있다는 게 점장의 설명.

“물론, 단발성 마법 경우에는 큰 문제까지는 안 일어나는데―”

“단발성 마법?”

“아. 음, 그러니까, 찬이가 마법 화살을 한 발 쏜다구 칠게. 그 화살은 발사돼서, 날아가고는, 표적에 꽂힌 뒤에 사라지겠지?”

“어… 네. 그렇겠네.”

“이게 단발성 마법이구, 만약에 이 마법 화살을 찬이가 원격으로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다고 치자. 이러면 원격으로 움직이는 데에 또 마나를 소모할 거잖아?”

이게 지속성 마법이란다. 처음에 마나를 한 번 소모하고 끝나는 게 아닌, 마나를 계속해서 공급해야만 효과가 발휘되는 마법.

“저 쓰레기봉투에 걸린 마법이 그거야. 지속성 위장 마법. 다른 누군가가 마법을 쓴 뒤에, 마나는 저 고블린이 부담하도록 했다는 거지. 어때?”

어떠냐 묻는다면, 이젠 알겠다.

“다른 이종족에게 자기 목숨줄 걸었단 얘기네요.”

“응.”

이 세상 모든 생명체는 마나를 지니고 있다고 했었다.

그 마나가 소진되면 소진될수록 쇠약해지며, 0이 될 경우는… 죽을 터다. 직접 귀로 들은 건 아니지만, 정황상 그렇게 되겠지.

헌데 이 고블린은 다른 이종족이 시전한 마법에 자기 마나를 쓰겠다며 인계를 받았다. 쉽게 말해, 남이 준 보증각서에 사인을 해버렸단 소리다.

“아무튼 그런 상황이구, 이젠 이 위장마법이 어떻게 작동하느냐인데… 아까 세 번째 동작 봤지. 검지로 위장 마법 걸린 돈 가방 가리킨 거.”

“기억해요. 예.”

“자신과 돈 가방을 마나로 연결한 거야. 마지막에 새끼손가락 접었다 편 건, ‘이거 진짜로 하게?’라는 약속을 확인하는 동작이구.”

새끼손가락 접었다 폈으니까 약속. 이렇게 생각해 보면 그럴싸한 것 같기도 하고….

“서로 연결하는 동작을 일부러 넣어둔 건, ‘돈 가방을 끝까지 책임져라―’라는 시전자의 의도가 있었을 거구. 이거 잃어버리면 너 큰일 난다, 이렇게.”

“아하….”

“그런데, 책임을 끝까지 못 졌네? 찬이가 마법 풀어버려서.”

“…네?”

잠깐 머리가 멍해졌다. 그러니까, 이게.

‘잃어버리면 큰일 난다는 제약이 추가된 위장 마법.’ 이런 느낌의 마법이 걸린 돈 가방을 고블린이 인계받아, 멀리서 열심히 마나를 소모하고 있었다.

헌데 그걸 내가 풀어버렸다. 이 경우엔 어떤 큰일이 일어나는가?

“돈 가방 금액이 최소 억 단위라구 했었잖아.”

“어억.”

“아마, 그만큼 강한 책임을 쥐여줬을 거야. 연결이 강제로 끊어진 경우니까, 더 큰 일이 일어났을 거구.”

만약, 정말 만약에. 내가 어느 조직에서 일하며 억 단위 든 돈 가방 나르다 경찰한테 뺏겼다 가정해봤다. 팔다리 한두 군데 부러지는 걸로는 절대 안 끝난다.

“그래서 응급실 갔다 하신 거구만….”

“많이 다쳤을 테니 대학병원 응급실, 돈 가방이 제대로 운반되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을 테니 이 근방, 찬이가 마법 푼 직후에 반동이 왔을 테니 그날 새벽.”

돈 가방 발견한 그날 새벽, 이 매장 인근의 응급실 있는 시설 좋은 병원에 입원한 고블린을 찾아라. 이게 점장의 결론이었다.

그리고 난 살짝 우울해졌다. 알고서 한 짓도 아니고 당할 놈이 당할 짓 당한 거라고도 생각하지만, 내가 살면서 누굴 응급실 보내본 경험이 있어야지….

“이걸로 끝. 찬이는 너무 일만 하지 말구, 가끔은 마법서도 좀 봐.”

“예?”

“단발성, 지속성 마법 말야. 이번엔 복습한 셈 치구.”

복습은 또 뭐야. 예습조차 안 했던 내용… 아니지. 이 마법 두 종류가, 이 세상에선 당연히 알아야 할 상식이라는 말이렷다. 특히나 지금처럼 다른 사람 앞에서는 더욱더 말야.

“…냄비 받침으로 써서 없는데. 몇 권 빌려주실 수 있어요?”

‘일만 하느라 옛날에 배운 것들도 까먹었다―’라는 설정을 잡자는 말로 이해했다. 알아야 될 걸 모르는 티를 내면 수상하게 보일 거 아냐.

“그럼 나중에 빌려줄 때, 냄비 받침도 같이 줄게.”

“굳이?”

“응. 굳이. 경관님, 고생하셨어요.”

점장이 말 걸자, 경관이 고개 들고는 수첩을 탁 닫았다. 닫히기 전에 곁눈질로 슬쩍 봤는데, 대화 내용으로 거의 빼곡하더라.

닫은 수첩을 앞주머니에 넣은 뒤, 점장 쪽으로 살짝 목례를 해왔다.

“조언 감사드리고, 말씀 주신 사항은 개인적으로 따로 조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요? 서에 따로 말 안 하시고?”

“못 합니다. 아직은.”

단답한 뒤에 바로 풀어서 설명해줬는데, 우리가 협조를 하겠다 해서 당장 협조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서에 정식으로 보고도 올려야 하고, 마법청 쪽에 ‘그쪽에서 발급한 자격을 보유한 자들과 협동수사를 하겠다―’ 라며 동의도 구해야 하고.

“며칠 걸릴 겁니다. 하지만 말씀 주신 내용대로라면, 그 고블린의 신변도 빨리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고.”

“그거 천천히 하셔두 돼요. 그 고블린분, 한 10주 정도 입원해 계실 거라서.”

“그래서입니다. 별로 좋은 가정은 아닙니다만….”

잠시 입술을 매만지다, 평탄한 어조로 말했다.

“아마 지금, 그 고블린을 찾고 있는 자들이 꽤 많을 테니까요.”

“어… 아하.”

점장은 바로 이해한 눈치였고, 난 두 번 곱씹고 나서야 겨우 이해했다. 당장 돈 가방 받아야 될 놈이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돈 가방이 안 온다 쳐봐.

그럼 관련된 누군가한테 물어보겠지. 돈 가방 왜 안 오냐? 누군가가 대답할 것이다. 운반책이 나르다 잃어버렸는데요? 뭐? 그놈 어디 있어?

“하여, 좀 서두르겠습니다. 업주님의 자격증 조회는 제가 서에서 따로 처리할 생각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저야 고맙죠. 근무 끝나면 침대에 뻗어버려갖구.”

“그럼 그렇게 하고, 저번에 이찬 님께서 협조해주신 일. 이번에 업주님께서 자문해주신 일에 대한 비용도 차후 지급될 겁니다.”

말하며 명함 한 장을 꺼내서는 카운터 위에 올려놓는 경관. 점장이 받아드는 걸 확인한 후에는 경찰모를 뒤집어쓴 뒤, 마지막으로 고개를 꾸벅 숙여왔다.

“바로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옙, 고생하셨슴다.”

“조심히 가세요, 경관님.”

이렇게 엘프 경관이 나갔고 점장과 단둘이 남게 됐는데, 10시를 훌쩍 넘긴 시각임에도 점장이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내친김에 물어봤다.

“점장님. 혹시 편의점 운영하시는 거 말고 다른 일 같이 하는 거 있으세요?”

“지금은 없어. 여러 일에 손 벌리면 피곤하잖아.”

“그럼 이건 왜 하신 겁니까.”

“그야, 내 편의점 앞에서 장난쳤으니까 그렇지!”

왕년의 대마법사답다면 대마법사답고, 점장답다면 점장다운 대답이었다. 편의점 앞에 돈 가방 버리고 간 게 장난이랜다.

“그래두, 이런 일 한 분들 얼굴 한번 뵙구 싶다는 이유 정도였는데 말야….”

“길어져서 부담될 것 같으면 물리셔도 되지 않나? 저는 애매해도, 점장님은 자격증 조회하느라 시간 걸린다 했잖아요. 경관분이.”

“싫어. 돕겠다 한 걸 어떻게 물려? 대마법사 자존심이 있지.”

“허어….”

“그리고, 옛날에 몇 번 해본 일이기도 하구.”

확실히 녹화영상 볼 때 점장 표정이 예사롭지 않긴 했다. 그때 말 걸었으면, ‘실례지만 방해하지 말아 주시겠어요?’ 같은 대답을 해왔을 것 같어.

“나는 해본 일이라 괜찮은데, 찬이는?”

“뭐가요?”

“그야, 찬이는 이런 일 처음일 거잖아.”

“그 얘기시면 뭐… 이 세상서 겪은 일 중에 처음이 아닌 게 있기나 한가 싶은데.”

“그 얘기 아닌 거 알면서.”

그 얘기 아닌 거 안다. 꼬마애 친구 만들어주고, 관짝도 들여다보고, 큐브도 맞추고, 묘약도 같이 만들고….

별짓을 다 하긴 했지만, 이건 그것들과는 궤가 다른 일이다.

범죄 수사 공조잖은가. 그것도 매―직 범죄. 회사 차량 2년 몰며 과속딱지 한번 안 떼어본 모범 시민으로서 껄끄러운 일인 건 사실이다. 그래도.

“제가 못 할 일이면 점장님께서 뜯어말리셨을 거잖습니까. 안 그래요?”

확신 갖는 방법은 다양하다. 믿을 만한 사람 말 듣고, 경험자 말 듣고, 능력 있는 사람 말 듣고, 안 되는 건 안 된다 말해주는 사람 말 듣는 거.

점장이 이 넷을 다 충족한다. 그리고, 난 아직 점장에게 하면 안 된다는 말을 못 들었단 말이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겠지.

대충 이런 생각이다. 맺자, 점장이 소감을 말해줬다.

“찬이, 첫날에 엄청 당황하구 그랬던 게 눈에 아직도 선한데 말야….”

“아니. 그건….”

“이젠 완전 이 세상 사람 다 된 거 같아.”

“아, 맘대로 하십쇼. 놀리시든가 말든가.”

“오. 그래도 돼?”

“되겠어요? 빨리 퇴근이나 하셔요. 밖에 버스 신호대기 중인데.”

딱 맞게 버스가 왔다. 바깥을 가리켰는데, 내가 역으로 놀리려는 건 줄 알았는지 싱글 웃으며 곁눈질만 하더라.

“아니, 진짜 왔다니까요?”

말하자 몸을 홱 돌려 바라보고는, 허겁지겁 짐을 챙기는 점장.

“진짜 왔네! 나 갈게!”

“옙. 내일 봬요.”

점장이 곧바로 뛰쳐나가 버스에 올라탔고, 멀어졌다. 어둠 너머로 버스가 멀어지는 걸 바라보다, 카운터로 돌아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편안하다. 점장 말마따나, 나도 약간이나마 이 세상 사람이 되긴 됐나 봐. 사람이 적응의 생물이라는 게 틀린 말이―

“아니지.”

아까 윤하 누나한테 전화를 하려다 말았었다. 바로 스마트폰 들어 화면을 봤는데, 누나한테서 딱 카톡 세 줄이 와있었다.

방금 온 것들이었는데, 어째 내용이 불길하다.

[ 내일 밤에 감 ]

[ 일 하나 같이 하자 ]

[ 야근하러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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