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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편돌이-115화 (116/201)

115화. 게이트가 편돌이에게 미치는 영향 (3)

* * *

이 날개 달린 말 녀석에 대해 여태껏 크게 신경을 안 썼었다.

정확히는 못 썼다. 이 녀석이 컨테이너를 날라 올 때면, 늘 그 안에서 괴랄한 것들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빚다 만 점토 조각상 같은 생김새의 드래곤 비늘, 지 목덜미에 불붙이고 다니는 말 박제….

생각해 보니 딱 그 두 번밖에 못 봤네. 우선 누나에게 인사부터 했다.

“한 반년 만에 보는 것 같네, 누나. 하이.”

“일찍도 인사한다.”

“그런데 누나, 혹시 저 녀석 말할 줄 알어?”

묻자, 한쪽 눈썹을 찌푸리며 대꾸해 온다.

“뭔 소리야, 말이 어떻게 말을 해?”

“막 물거나 앞발로 차지는 않고?”

“그건 나 빼고 죄다 걷어차기는 하는데… 진짜 왜 물어보는 거야?”

그럴 이유가 있어서다. 매장 안쪽을 돌아보니, 멍멍이가 계산대 밑 모서리에서 머리만 빼꼼 내밀어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는 채였다.

문을 슥 열자, 지금 상황이 정말 괜찮은 게 맞냐는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더라. 의견을 말해줬다.

“괜찮어, 이 누나 착해.”

“지금 누구한테 말하는… 어머. 강아지네?”

의아함 가득하던 누나 얼굴이 멍멍이를 보자마자 확 풀어졌다. 말에서 폴짝 뛰어내려서는, 보도에 쭈그려 앉으며 내게 묻더라고.

“이찬. 저 애 뭐야, 키우는 거 데려왔어?”

“그건 아니고, 어… 직접 얘기 한번 해봐.”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 멍멍아, 손― 쯧쯧쯧.”

혀 차는 소리 내는 게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다. 누나 손짓에 멍멍이가 총총 걸어와서는 손에 앞발을 탁 얹었다.

그러고는 떼는데, 누나가 표정을 헤벌쭉 풀어서는 정신을 차리질 못했다. 아예 멍멍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호들갑까지 부려댄다.

“이찬. 방금 봤어? 봤지?”

“뭘?”

“손― 하니까 손 줬잖아 방금. 와, 이 애 엄청 똑똑하네….”

이 누나가 강아지를 이렇게 좋아하는 줄은 몰랐다. 맨손으로 ATM 뽑아다 메치고 부수는 누나가 이러고 있는 게 참….

“나 보고 있는 것도 봐, 얘 나한테 말 걸려는 거 같지 않아?”

“…사실, 그게 맞기는 하오만….”

“?”

“정녕 말을 해도 되는 건지, 아닌지를 고민 중이었던지라 대답이 늦었소. 미안하구려.”

어째 들어본 기억이 나는 말이다. 멍멍이가 대뜸 꺼낸 말에 누나가 우뚝 멈추고는, 한참 동안 멍멍이랑 아이컨택만 하고 있더라.

그러다 날 바라봤다.

“?”

“걔 영물이고, 설명해 줄 테니까 들어봐. 누나.”

첫 만남이 어땠는지는 생략했다. 땅콩이 떼이나 안 떼이나― 따위의 얘길 했다간 이 녀석 트라우마가 재발될 것 같아서였다.

하여 이 녀석이 쓰레기통도 뒤지고, 여기서 일감도 구하려 했고. 공원에 흑풍파인지 뭔지 하는 똥개들한테 시비도 당했고, 하나라는 이름의 드래곤 꼬마랑 놀기도 했고―

지금 상황이 좀 힘들다. 말 마친 뒤에 누나 반응이 어떨지 반쯤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누나가 아주 정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찬. 너는 이 쪼끄만 애가 그 고생을 하는 동안 구경만 했단 얘기야?”

“그건 그, 우리끼리는 얘기 다 끝난….”

“화내지 마시구려! 이 길은 본견이 걷기로 한 길, 어느 누구도 강요한 게 아니외다!”

꼬리 세차게 흔들며 중후한 목소리로 항변하는 멍멍이. 누나가 아직은 덜 익숙한 건지 반은 어이없다는 듯한, 반은 귀엽다는 듯한 얼굴이 됐다.

“그러니까, 그… 숙녀분? 혹시 성함을 여쭈어도 되겠소이까.”

“서윤하. 누나라 불러도 돼.”

“그럴 수는 없소. 본견, 이제 겨우 두 살밖에 되질 않아서 말이오. 혹시… 윤하 아가씨라 불러도 되겠소이까.”

“좀 낯간지럽긴 한데… 네가 괜찮다면야.”

“감사하오. 여튼 본견, 염치 불고하고 부탁드릴 것이 하나 있소.”

운을 떼고는 누나 등 뒤의 말을 올려다보는 멍멍이. 날개 달린 말이 흔치 않은 존재라는 것 정도는 아는 모양이다. 아니면 직감적으로 느낀 거던가.

“저분과 대화를 나누고, 가르침을 얻고 싶소이다.”

“대화? 너 쟤랑 대화도 할 수 있니?”

“가능할 거라 생각되오. 본견, 그래도 말을 하고 듣는 재주는 제법 있는 편이어서.”

강해지고 싶으나 그 방법을 모른다. 대사장님을 통해 ‘영물에게 물어보라’라는 대답을 들었으나 실행하질 못하고 있다.

내가 미처 말 못 했던 부분을 마저 읊는 멍멍이. 말을 마치자 누나가 바로 대답해 왔다.

“나야 상관없어. 대신, 내 부탁 두 개만 들어줄래?”

“뭐든 말씀하시오.”

“하나는, 좀 이따가 해도 되겠냐는 거? 오늘은 이찬 저 녀석이랑 일 얘기 하러 온 거였거든. 물류 나르고.”

“물론이외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쟤랑 무슨 얘기 했는지 나중에 좀 알려줘. 나도 엄청 궁금하다.”

이러고는 환히 웃으며 멍멍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나도 헌터 생활 오래 했지만, 너 같은 애는 진짜 처음 본다. 귀엽고.”

“윤하 아가씨. 본견을 그….”

“왜. 어디 팔아 치우거나 할까 봐?”

멍멍이가 숨을 삼킨다. 바라보던 누나가 잠깐 머리 쓰다듬는 걸 멈추고는 마저 말을 이었다.

“글쎄. 마켓에 올리면, 신기한 애완동물 찾는 놈들이 군침 흘리긴 하겠지만….”

“끼잉….”

“난 그렇게 해서까지 돈 벌고픈 마음 없거든. 다 떠나서, 쓸 시간이 없어. 시간이.”

“아, 누나. 야근 벌근하는 건 다 끝났어?”

“옛저녁에 끝났지. 지금은 보상휴가 쌓다 온 거고….”

어제까지 밤샘 근무가 5일째였고, 이 시간까지 일하고 나서야 겨우 쉬는 거라고. 난 이 헌터는 죽어도 못 해 먹을 것 같다.

“이찬 네 얼굴 볼 겸 물류 나르고, 이왕 보는 김에 일거리도 같이 들고 왔던 건데. 덕분에 좋은 경험 하네. 고맙다, 야.”

“…갖고 온 일거리는 뭔데.”

“이게 나한텐 별거 아닌데, 너한테는 좀 위험할 수도 있는 그런―”

“일단 보여나 줘봐. 보고 쫄든 말든 하게.”

누나가 아무 조건 없이 멍멍이 부탁 들어줬다. 나도 누나 부탁 하나쯤은 눈 딱 감고 들어주는 게 맞겠지.

묻자, 누나가 어깨 으쓱하고는 주머니에서 작은 병 하나를 꺼냈다. 안에 들어있는 게….

이건 또 뭐냐. 불타는 물? 물 태우는 불? 아니면 둘 다?

“이건데. 혹시 오늘 손님 많았냐? 손님 있을 때 꺼내긴 좀 그런 물건이라.”

“아직 개시도 못 했어.”

10시에 교대하고, 멍멍이랑 대화 시작한 후로 손님이 정말 한 명도 안 왔다. 당장 거리를 둘러봐도 손님은커녕 이종족 그림자조차 없다.

근무 시작한 이래로 이런 날은 또 처음이다. 내가 의아해하는 반면, 누나는 그럴 만하다는 듯 작게 콧숨을 쉬었다.

“참, 다들 뉴스만 쳐다보고 있나 보네.”

“TV에서 나오지 말라고 한 거야? 이종족들?”

“직접 봐봐. 나 금연초 잠깐 피울 테니까, 너희 먼저 들어가 있고.”

라길래, 멍멍이 품에 안아서 안으로 들어왔다. 카운터에서 폰을 꺼내 테이블에 자리 잡는 동안, 멍멍이가 품에서 날 계속 올려다봤다. 불안하다는 눈치였다.

“사장님,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일어났었나 보오.”

“그러게. 나도 지금 좀 봐야겠다.”

멍멍이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폰 화면을 켰다. 뉴스 화면에 뜬 기사들 중 가장 큼지막했던 게, [ 게이트 발생 52시간 경과… 마법청 ‘가급적 외출 삼갈 것’ ]

스크롤을 주륵 내려보니, 근처에서 게이트가 발생할 경우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가, 징조는 어떻게 파악하는가, 제보는 어떻게 하는가 등의 내용이 적혀있다.

보면서 느낀 게, 이 빌어먹을 게이트란 게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것.

아침에 뉴스 보던 이종족들이 막 불안해하거나 지구 멸망을 외치려 들지는 않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게 안 위험한 거면 외출은 왜 삼가는 거며, 밖에는 또 왜 안 나오는 건데? 미세먼지야?

“사장님, 무어라고 적혀있는 것이오?”

“게이트 열렸으니까 급한 일 아니면 밖에 나오지 말란다. 멍멍아.”

“말씀하시오, 사장님.”

“누나랑 잠깐 일 얘기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옆에서 듣고 있을래? 싫으면 갖고 놀 거리라도 던져주고.”

“듣게 해주면 고맙겠소. 본견도 견식을 넓히고 싶어서.”

글쎄. 이런 얘기 듣는다고 견식이 넓어지겠냐마는….

생각하는 와중 누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오자마자 우리 앉은 테이블로 와서는 아까 보였던 병을 다시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누나. 얘 옆에 앉혀놔도 돼?”

“안 될 거 없고, 이찬. 이게 뭘로 보이냐?”

묻길래 다시 한번 바라봤다.

엄지손가락만 한 병 내부를 푸른 액체와 붉은 기체가 각각 메우고 있는데, 이게 비율이 글쎄… 시시각각 달라지고 있다.

거의 1, 2초 간격으로 기체가 액체를 메울 듯 집어삼키려다가도, 파도치듯 액체가 기체를 집어삼키려 하기도 하고. 이게 찻잔 속의 태풍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그… 솔직하게 말해도 됨?”

“그럼 거짓말하게?”

“애매해서 그래. 이게 씨, 불타는 물 같기도 하고, 물 태우는 불 같기도 하고….”

가방끈 짧은 티 내기 싫어서 안 말하려 했던 감상이었는데, 누나가 오히려 수긍을 해왔다.

“그래, 이찬. 너는 이게 물불인지 불물인지를 알려주면 된다.”

이…런 거면 내가 아니라 국어연구원을 찾아가 보는 게 맞지 않나?

싶어서 누나에게 보충 설명을 요청했다. 우선, 누나가 이 물불인지 불물인지 모를 것을 가져온 곳이 게이트 내부.

“안쪽이 바닷가에 모래사장 펼쳐진 게이트였는데, 모래사장 쪽 움푹 패인 곳에 이게 조금 고여있었단 말야. 허락받고 병에 담아온 거고.”

“그건 또 무슨….”

“마저 들어. 아까 네 표현을 빌린다면… 이게 불타는 물이면 크게 상관이 없어.”

게이트 내부에 존재하는 것들이 원체 해괴한 것들이라, ‘조금 해괴한 정도’까지는 그러려니― 넘길 수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게 많이 해괴한 물건일 때.

이게 만일 물 태우는 불일 경우에는 좀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데,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누나가 말을 안 해줬다.

“부탁하면서 얘기는 왜 안 해주는데?”

“괜히 니 불안하게 하기 싫어서 그런다. 전문 조사원한테 맡기려니까 며칠 걸릴 거라 하더라고. 잘못 건드리면 터질지도 모른다면서.”

“허어….”

“그래서, 내가 아는 야매 중 제일 확실한 야매한테 찾아왔다― 이거지.”

늘 생각하는 거지만, 누나가 날 지나치게 과대평가를 한다. 마음 같아서는 이런 건 나 같은 뉴우비 말고 고인물들 찾아가라 말하고 싶지만….

며칠 뒤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을 구태여 날 찾아온 데엔 이유가 있을 터다. 우선, 병에 잠깐 동안 시선을 집중해 봤다.

일그러져 있다. 이 불과 물이 마나를 머금고 있는 건 확실해 뵌다. 머금고 있는 건 확실한데….

“…둘 중 하나가….”

마나량이 더 많다. 일그러진 정도가 달라 보인다. 어떤 게 많은지는 모르겠다. 죄다 뒤섞여서다. 한 곳이 유난히 일그러지는가 하면, 갑자기 또렷이 보이기도 하고 있다.

여기서 눈을 끔벅였다. 이쯤이면 됐다.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 이거 얼마짜리야.”

“글쎄, 잘 없는 매질이라서 1ml당 10만 원은 넘길 거 같은데….”

“이거 못 쓰게 만들어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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