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게이트가 편돌이에게 미치는 영향 (6)
* * *
며칠 전, 매장에서 오크 진상 열두 놈과 해프닝이 있었었다. 갓길의 봉고차 주차 이슈 때문이었고, 호전성이 종족 특성인 오크 놈들이 작정하고 시비를 걸어오던 상황.
내게 걸린 시비를 어르신께서 대신 받으셨고, 원펀치 원탈골이라는 가성비 좋은 방식으로 오크 놈들의 어깨 열한 개를 손수 뽑아버리셨었다.
그 후에는 대리 콜 받았다며 서둘러 나가시던 게 마지막 모습. 점장에게 이 어르신 얘기를 했을 때, 점장은 이 어르신께서 호위기사단 출신이 아니신가― 추측했었지.
둘이 나란히 서 있는 지금은 여고생, 중년 노신사, 그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안 보이지만 말야. 아까 대화하던 거 보면, 둘이 상당히 마음이 잘 맞는 듯 보였다.
“저도 잘 지냈습니다. 근데 두 분이서는 언제부터 얘기하고 계셨던 거예요?”
“얼마 안 됐어, 찬아. 한 10분쯤?”
10분 전에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어르신이 들어와 담배 구매하시고, 점장이 안녕히 가라며 꾸벅 인사하자 어르신께서도 맞인사를 하셨고.
인사하시면서 모자 벗으실 때 늑대 귀가 달려 있는 걸 보고, 점장이 ‘어, 늑대인간이면 혹시?’ 싶어서 내게 들은 이름을 말했단다.
어르신께서 그걸 어찌 알았냐 묻고, 점장이 내 얘기 하고. 내 얘기 꺼낸 시점에서부터 서로 대화가 술술 통했다고.
“그래서 방금까지도 찬이 얘기 하구 있었지.”
“제가 대화 주제 삼을 만큼 재미있는 놈은 아닌데 말입니다….”
“맞는데? 재미있는 애 맞는데?”
이러고는 허리를 쿡쿡 찔러댄다. 어르신도 거들어오셨다.
“자격증 따셨을 때의 얘기를 잠깐 해주셨는데, 사장님께서 무척 머리 회전이 빠른 청년이다―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어… 제가요?”
“예. 제가 잠시 옛날 생각까지 나게 됐었으니 말이지요. 헌데 업주님, 그 이후엔 어떻게 됐습니까?”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신다는 눈치다. 이러시는 걸 보면, 점장이랑 어르신이랑 앞으로 1시간은 넘도록 대화 나눌 것 같다.
대화에 끼기도 뭣하니, 유니폼 갈아입고 물건이라도 채우고 있든 해야 될 것 같은….
“죄송해요. 제가 지금 살짝 몸이 안 좋아갖구,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아뇨, 아닙니다. 제가 진작 알아봤어야 하는데….”
“그러실 거 같아서 열심히 숨겼지. 찬아, 인수인계.”
“예.”
점장이 손짓해 오길래 바로 카운터 안으로 들어갔다. 인수인계 사항으로 특이한 건 없었으나, 점장 개인적인 의견이 하나 있었다.
“이젠 정말 아주 안 좋은 밤이 되어버렸어, 찬아.”
“그게, 어… 혹시 아침에 그 안 좋은 일 얘기하신 그거?”
“응. 그거.”
이 기분 안 좋은 것 때문에 몸 상태마저 덩달아 안 좋아진 건가 보다. 가까이서 보니 낯빛이 평소에 비해 확실히 안 좋다.
“이 근처에서 마법으로 싸움이라도 나려는 걸까….”
이러기는 하는데, 여기에 대고 ‘혹시 모르니까 어떻게 하자~’라며 안일한 말을 할 수는 없다. 나름대로 떠오르는 정론을 말해줬다.
“일단은 아무 걱정 말고 들어가십쇼, 점장님. 설마 게이트 열리고 그러겠습니까?”
“그게 차라리 낫지. 가까이 가지만 않으면 되니까….”
“생기거든 뭐라도 붙잡고 있을 테니까 들어가셔요. 12시간 계셔서 피곤하실 거 아냐.”
“…응. 조심해, 찬이.”
“예. 점장님께서도 조심하십쇼.”
이렇게 점장은 느릿느릿 퇴근. 이 과정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어르신께서 말해오셨다.
“서로 많이 의지가 되시나 봅니다.”
“서로인지는 모르겠고, 저는 점장님께 가르침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이 동네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어서.”
“허어, 그건 처음 듣는 얘기군요.”
“딱히 할 기회가 없었을걸요? 아마도. 근데 어르신, 저 유니폼만 바로 갈아입고 오겠습니다.”
“예.”
바로 유니폼 갈아입고 왔는데, 어르신께서 잠시 폰 화면을 들여다보시고는 집어넣으시더라. 대리 콜 확인하신 거겠지.
작게 쓴웃음 지으시는 게 바라시던 상황은 아닌 것 같고. 내 무식함 자랑보단 이 주제로 대화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카운터로 들어와서 여쭤봤다.
“어르신, 오늘 대리운전 일은 잘되어 가십니까?”
여쭙자, 다시 한번 쓴웃음을 짓는 어르신.
“아뇨. 오후 8시 즈음 밖에 나왔는데, 아직까지 이렇다 할 콜은 못 받았습니다.”
“어우….”
“다들 불안한 거겠지요. 저도 오늘은 반려에게 밖에 나가지 말라 일러두었었고.”
“아하.”
“예. 저도 오늘은 안식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흐름을 한번 상상해 봤다. 우선, 게이트 열린 곳 근처 회사들이 임시휴업을 했고, 시간이 남은 직장인들이 자기 가족들 데리고 놀러 나갔다 돌아온 상태.
저녁이 된 지금은 어떤 생각일까. 자식이든 누구든 가족 구성원이 밖에 나간다고 하면, ‘그래도 위험하니까 나가지 마렴’ 하면서 말리지 않았을까?
게이트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거라 했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왜 거리에 이종족이 없는지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확신은 없다. 내가 집단심리학 전공자도 아니고, 게이트 관련 일을 보거나 겪어본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나저나, 반려?
“어르신. 어르신께서 사모님 얘기하시는 건 제가 처음 듣네요.”
“엇, 제가 아직 사진을 안 보여드렸던가요?”
“네. 전에 손녀분 사진 보여주시려 했는데, 주차 때문에.”
“아아, 그랬었지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아주 자연스럽게 지갑에서 사진을 꺼내시는 어르신. 어르신의 묵은 한을 이제서야 풀어드리는구나 생각하며 사진을 봤다.
사진관에서 찍은 듯한 가족사진이었다.
붉은 커튼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에 구성원이 정확히 5명. 정중앙에는 어르신, 바닥에 다리 뻗고 앉아 웃고 있는 여자아이가 한 명― 오메.
“와, 이 애가 손녀분이에요?”
“어떻습니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지 않습니까?”
이건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이다. 여기에 대고 ‘그건 좀 아플 것 같은데요?’라고 대답했다간 내 어깨가 문어 다리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하여 당장 대답은 안 하고 사진만 뚫어져라 봤다. 애 머리카락이 허리춤까지 내려오는 은회색에, 머리 위로 어르신과 똑같이 귀가 솟아있다. 몸집이 덜 자라서 그런지 아직 앙증맞다.
그리고 덧니. 다문 입가에 덧니가 삐죽 튀어나와 있는 게 묘하게 개구지다는 인상이다. 부모님한테 장난 실컷 치다가, 혼나면 펑펑 울 것 같은 인상이야.
여기까지 감상한 뒤, 소감을 순화해서 들려드렸다.
“얘는 아역배우 시키셔야겠습니다, 어르신.”
“그렇지요? 참, 아들에게 말을 해도 아들은 운동선수를 시키겠다고….”
확실히 활동적인 인상이긴 해. 어르신께서 손녀딸 자랑을 주륵 늘어놓으시는 사이 사진을 마저 훑어봤다.
앉아 계신 어르신 옆에 떡대가 굉장한 늑대인간 한 명. 이게 어르신 아들분일 거고, 이 아들분이 서큐버스 한 명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다. 이게 어르신 며느리분이실 건데….
“그, 어르신.”
“―그래서 아들에게 말했지요. 내가 너를 키울 때에는….”
“어르신?”
“…아, 죄송합니다. 말씀하시지요.”
모자 매무새를 다듬으신 뒤, 웃음기 쏙 빠진 목소리로 말해오신다. 손녀딸 자랑할 때면 성격이 바뀌는 타입이셨구만.
“다른 게 아니고, 여기서 어르신 사모님을 찾아보려고 했거든요. 안 보여갖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어르신을 포함해 네 명은 누군지 짐작이 됐는데, 지금 가리킨 한 명의 정체가 전혀 짐작이 안 가서였다.
외견으로만 보면 20대 초반의 인간 여성. 머리카락이 연주황색에, 품종을 모를 흰색 꽃 한 송이가 머리에 꽂혀 있다. 은은하게 미소 짓고 있는 게 추정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른스러워 보인다.
처음엔 이게 어르신 따님이라 생각했는데, 그러면 사모님이 안 계시는 게 되어버린다. 아까 반려란 단어 쓰셨던 걸 보면 먼저 사별하신 것도 아닐 거고.
아니면 이게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말실수를 했다 싶었는데, 어르신께서 인자하게 대답해오셨다.
“그분이 제 반려입니다.”
“……예?”
“어떻습니까. 60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젊지요?”
“어…….”
사진을 다시 확인해 봤다. 아무리 봐도 20대 여성이 맞다. 고개 돌려 어르신도 봤다. 추정 60~80대 전후의 늑대인간 노신사.
“…그.”
이거 순 도둑놈 아니냐?
튀어나오려는 말을 꾹 삼켰다. 여기에도 이세계 상식선에서 통용되는 뭔가가 있겠지. 눈 끔벅이며 사진을 자세히 보니, 이 20대 여성분의 눈이 묘하게 반짝거리는 게 눈에 띄었다.
눈에 꼭 별가루라도 담겨있는 것 같다. 이 반려분도 인간과 외형이 비슷한 거지, 인간 종족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이분 종족이 뭐예요?’라고 물어보면 그건 왜 물어보냐는 얘기 들을 것 같고….
“…엄청 앳되시네요. 어째 저보다 더 젊으신 것 같어.”
“그렇지는 않습니다. 살아온 세월 이야기를 하면, 제 반려는 나이 들어 보이는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화를 내는 편입니다만….”
나이 지긋한 분이 아내를 반려라 부르는 것도 이 세상 와서 처음 들어보는 것 같다. 어르신 표정이 또 화해지신 것 같아, 이때다 싶어 여쭤봤다.
“그런데, 이 반려분과는 어떻게 만나시게 된 거예요?”
어디서 만났는지부터 시작해 유추할 거리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 여쭤봤는데, 이 부분에서 어르신 표정이 살짝 굳으시더라고.
잠시 뒤, 작아진 목소리로 대답해주셨다.
“…옛날 군 복무 시절에 만났습니다.”
군인이었던 시절에 만났다. 이 어르신께선 점장피셜 호위기사단 출신이다. 그 호위기사단에서 복무하던 시절에 만난 거면, 이 반려분이 혹시….
“혹시나 해서 여쭙는 얘깁니다만.”
“어… 아, 예.”
“사장님께서는 따로 생각하는 게 있으신 겁니까?”
생각하는 도중, 어르신께서 내게 말해오셨다. 목소리가 귀에 박히듯 들려왔다.
곧바로 어르신 눈을 마주 본 뒤, 침을 한 번 삼켰다. 눈에 방금 한 질문에는 반드시 대답을 해줘야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내가 건드려선 안 될 부분을 건드린 듯하다. 별 의도는 없었다, 둘러대 봐야 상황만 악화될 것 같아 솔직히 이야기했다.
“아까 뵈신 분 있잖습니까. 그러니까, 업주님이요.”
점장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을, 어르신께서 아셔야 될 부분만 말씀드렸다. 옛날에 마법사셨고, 어떤 부대의 군인분과 협업을 한 경험이 있으시다.
그 군인분이 어르신과 어깨를 뽑는 절차와 방식이 거의 동일하시고, 어르신이 혹시 옛날 호위부대 출신이 아니신가― 추측을 하셨었다.
여기까지 말씀드리자, 어르신께서 드물게 놀란 눈이 되셔서는 정문 밖을 바라보셨다.
“허어. 그 학생 같은 외견의 업주님께서….”
“저도 그거 궁금해서 몇 번 여쭤봤는데, 나이 들어 보이는 얘기 하지 말자고 화내시더라고요.”
“…실례되는 질문이긴 합니다만, 업주님의 종족이 혹시 어떻게 되십니까?”
“인간이세요. 저랑 똑같이.”
종족 물어보는 게 이 세상에선 실례되는 질문이 맞나 보다. 반대로, 실례되는 질문을 꺼낼 만큼 이 문제가 어르신께는 중요한 문제라는 거고.
생각에 잠겨 계시던 어르신께서, 모자를 벗으셔서는 테이블에 내려놓으셨다. 진지한 얘기 하실 때면 늘 이러시더라.
“…예. 그 업주님께서 추측하신 대로, 제 옛날 복무처는 특수 호위기사단이었습니다. 제3군단 소속의 비밀부대.”
이게 내가 들어도 되는 부류의 말인가. 싶었으나, 말씀하시길래 일단은 들었다. 어르신께서 마저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