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만 2세 토르람쥐 쥐생 최후의 람쥐썬더 (3)
* * *
누나가 마저 설명하길, 이 핵심 게이트라는 게 아주 위험하지는 않다고 한다. 문제는 이게 게이트를 부르는 게이트라는 점과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도 불분명하다는 점.
“균열 자체가 운동장만 한 것도 있고, 테마가 게이트 바깥까지 구현되는 것도 있고, 내부공간 없이 게이트 핵만 달랑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고… 또 뭐가 있더라?”
이게 무슨 소리야. 설마 큰 거 오나? 진짜 큰 거 오나??
“그러니까, 게이트 안에 화산이 있으면 진짜로 바깥에서 화산이 터질 수도 있다?”
“그 지역 이종족들이 한날한시에 재수가 없어진다면, 그럴 수 있지. 여튼.”
누나가 다시 펜을 쥐어 삼각형의 주변에 원을 하나 그리고는, 짜증 난다는 듯 펜촉을 세게 쿡 찍었다.
“이 원 안쪽 어디에서든지 게이트가 나올 수 있고, 그 안쪽에서는 핵심이 되는 게이트가 나올 수 있다. 뭐, 그렇다고.”
말을 맺고는 펜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금연초 파이프를 꺼내 손아귀에서 빙글빙글 돌려대기 시작하는 누나. 설명할 게 없어서라기보단 더 말할 기분이 못 된다는 느낌이었다.
이해야 물론 된다. 5일 철야한 다음 날 오후 10시까지 풀근무를 뛰고 왔는데, 내일부터 또 철야 각이 섰다? 나라도 사무실 책상 하나 엎었지.
위로라도 해야 하나― 생각하는 사이, 어르신께서 몸을 살짝 기울이며 누나에게 말을 건넸다.
“윤하 양. 지금 그린 원이 학원지구, 산림공원, 밑의 시민공원을 아우르는 원이라고 하셨지요.”
“예. 더 궁금하신 거 있으세요?”
“궁금한 것은 없고… 이 원 안에 제 집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아.”
“제 반려는 지금쯤 자고 있을 테고.”
어르신께서 지내시는 집이 누나가 그린 원 안의 어딘가에 있는 듯했다. 누나에게 물어보는 어르신 얼굴이 무척 진중하다.
거기에 걱정도 좀 더해져 있고. 반려분이 많이 걱정되시나 보다. 누나랑 멋쩍게 시선을 교환하는 사이, 슬며시 모자를 고쳐 쓰고는 일어나시더라.
“오늘 밤은 반려 곁에 있어야겠습니다. 미리 알려주어 감사합니다, 윤하 양.”
“오히려 제가 죄송하죠. 걱정 미리 하시게 만든 셈인데. 다른 사무소 측에 감시해 달라 부탁드릴 수는 있는데, 해드려요?”
“아뇨. 제가 알게 된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양복의 손목 부근을 한 번 더 매만지시고는 내게 넌지시 말을 건네오셨다.
“오늘은 감사했습니다, 사장님.”
“그건… 예. 저도요.”
오히려 어린놈 말 들어주셔서 감사하다, 말하려다 말았다. 누나 앞에서 개인사를 언급하는 걸 어르신께서 탐탁잖게 생각하실 것 같아서였다.
누나도 머리 복잡할 건데, 그런 얘기 들으면 더 머리 복잡해질 것 같고.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어르신께서 마지막으로 인사하고는 나가셨고, 누나와 단둘이 남았다. 정문 벨소리가 멎을 즈음 누나가 내게 물었다.
“저 늑대인간 어르신이랑은 어쩌다 알게 된 거야?”
“우리 매장 단골이라갖고.”
“단골? 저분 단순한 민간인은 아닌 거 같은데?”
실제로도 단순한 민간인 아닌 게 맞다. 슈퍼 민간인이지.
돌이켜보면, 이 매장 단골들 중에 평범한 인물 자체가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찐사랑 찾는 제약회사 서큐버스, 코딩하는 치와와, 순혈 드래곤 꼬마, 만성피로 엘프 경관이라든가.
더해서 손님이라고도 정상‘인’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포메라니안이 한 마리… 아.
“멍멍이는 어떻게 됐어? 매장 박살 나는 거 감상하느라 물을 타이밍을 놓쳤네.”
“걔는… 잘 있을걸? 둘이 이종족들 눈치 보지 말고 얘기하라고 적당한 곳에 자리 만들어 주긴 했는데….”
아침 일찍 출근한 거라 이 시간에 뭘 하고 있는지까지는 잘 모르겠단다. 다만 누나 눈으로 보기엔 둘이 서로 할 말이 아주 많아 보였다고.
“멍멍이가 ‘스승님께 가르침을 청하오. 날아다니려면 본견이 어떤 식으로 수련을 해야 하겠소?’라고 묻는 건 봤다.”
“그 말 뒷발로 아무나 막 걷어찬다며. 멍멍이 걷어차이지는 않았고?”
“안 그러더라고. 자기 말 알아들으니까 자기도 신기한 거겠지.”
들어보니 멍멍이가 저 하늘의 별이 되거나, 말발굽 모양 타투가 새겨질 일은 없을 것 같다. 일이 어떻게 풀릴지는 몰라도, 최소한 다치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여기까지 말 나눈 뒤, 슬쩍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확인하는 누나.
내색은 안 하고 있지만, 눈 게슴츠레 뜬 게 엄청 피곤해 보인다. 슬슬 마무리 짓고 보내야 할 것 같다.
“누나. 이 근방서 또 일 터질 거 같아?”
“안 터져. 지금쯤 게이트 닫았을 테니까. 그래서 안 터질 것 같긴 한데….”
말하는 도중 뭔가가 복받쳤는지, 기지개를 켜는 동시에 대뜸 신세 한탄을 해댄다.
“아, 몰라! 터져도 다른 사무소 녀석들이 하겠지, 진짜 몰라. 이번 주 내내 10시간도 못 잤다고.”
“마인드 좋네. 일 없으면 진짜로 들어가서 자는 게 어떰? 잠은 자야 할 거 아냐.”
“그래. 지금이라도 좀 자야―”
―우우웅.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나 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주머니에서 바로 폰을 꺼내 확인하고는 오만상을 찌푸리는 누나.
“…하, 씨….”
“뭐라고 적혀있길래.”
“내 사무소 근처 거리에 불났댄다. 당직이 이모티콘으로 울고불고 난리가 났네.”
“불 끄는 건 누나 일 아니지 않아?”
“그 불이 지금 자동차 들어서 집어 던지고 있다잖어.”
그건 확실히 울고불고할 만하겠다. 집어 던졌다는 자동차 크기가 소형인지 SUV인지 물어보려 했으나, 그 전에 누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무소 녀석들 죄다 현장 나가서 없다 하네. 가 봐야 될 거 같다.”
“아니, 10초 전만 해도 모르는 일이다, 안 한다 해놓고는….”
“여긴 형식상으로는 다른 사무소 영역이라 그렇고, 내 사무소 앞은 진짜로 내 사무소 영역이잖아. 암튼, 이찬 너.”
따지려는 말마저 원천 차단해 버린 뒤에 마저 말을 이었다. 누나의 첫 마디가, 오늘 나눈 대화는 어디 가서 따로 언급하지 말 것.
“하라고 해도 할 지인도 없어. 근데 그건 왜?”
“엠바고 걸릴 내용이라 그래. 아까도 말했다시피 전부 추측이기도 하고.”
이야, 나 참 출세했다. 평생 뉴스 보며 투정만 부리던 놈이 지인 잘 둬서 엠바고 걸릴 내용도 미리 들어보고 말야. 나도 하나 물어봤다.
“점장님한테는 어떻게 해? 돈 주고 차린 매장이 통째로 시공의 폭풍에 빨려 들어갈 판인데, 당사자는 알아야 할 거 아냐.”
“…언니한테는….”
누나 반응이 엠바고 문제를 떠나, 점장에게만은 말하기가 그렇다는 늬앙스다. 그래도 말은 해줬다.
“네가 말 잘 좀 해줘. 나 갈게.”
“가기 전에 하나만 더, 누나.”
“어떤 거?”
“나한테나 어르신한테나, 엠바고 걸릴 내용을 굳이 왜 말해준 거야?”
묻자, 뭔 소릴 하냐는 듯 쓴웃음을 짓는 누나. 쓴웃음 지은 채로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 이런 질문을 해왔다.
“어쩔 수 없는 일을 모르고 당하는 거, 알고 당하는 거. 넌 어느 쪽이 낫냐?”
바로 대답했다.
“알고 안 당하는 거.”
“그럴 거 같아서 말해봤다. 우리가 남남도 아니고. 나 간다.”
말하고는 대꾸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나가버린다. 배웅이라도 해줘야겠다 싶어 따라 나갔는데, 그새 사라진 채였다.
이리하여 혼자 남았다. 택시도 버스도 없는 거리에서 뭔 수로 사라진 건지를 잠깐 상상해 보려다, 관뒀다. 알아서 잘 갔겠지.
당장 해야 할 일이 많은 상황이기도 했고. 아까 적당히 닦고 말았던 우유 자국들도 마저 닦아야 하고, 혹시라도 더 부서진 곳들 없는지도 마저 확인해야 하고….
게이트. 점장한테 지금 전화를 하는 게 맞나.
이것만큼은 금방 결론을 냈다. 자고 있을 사람 깨워다 ‘매장 한 번 박살 났는데 제가 고쳤어요~’ 해 봐, 퍽이나 잠이 오겠냐고.
* * *
이번엔 아침 7시 반까지도 손님이 안 왔다. 이틀 새 기록 경신되는 게 예사롭지가 않다.
실제로 거리 행색도 예사롭지 않게 변해버렸다. 행인을 넘어서 아예 오가는 차량의 수 자체가 눈에 띄게 줄었다. 거리에 늘 경적 소리가 가득했는데, 이젠 자동차 배기음조차 희미해져 버렸다.
이유는 내가 직접 확인했다. 출근 시간대에 뉴스를 틀 여유가 생겼을 정도로 손님이 줄어들어서였다.
[ 수년 만에 일어난 학원지구의 게이트 발생. 거주민들의 의견을 여쭙기 위해 직접 거리로 한번 나와봤습니다. ]
[ “수년 전에는 제가 여기 안 살았어서요. 솔직히 불안하기는 한데… 그래도 일은 해야죠.” ]
[ “진짜 큰일이에요. 아들내미 학원도 보내야 하는데….” ]
[ 학원지구의 B~D블록은 아직까지도 임시휴교 상태이며, 교육청에서는 조만간 휴교령을 전 블록으로 확대하는 방안까지…. ]
[ ‘만일의 경우를 위한 조치일 뿐이다.’라며 협회와 마법청에서 입장을 밝혔음에도, 시민들의 불안은 좀처럼 사그라들질 않고 있습니다. ]
클레임이 들어오면 줄이겠다는 심산으로 뉴스 소리를 좀 크게 키워놨는데, 아무도 뭐라 하는 손님이 없었다. 오히려, 뉴스 소리에 귀를 기울여오는 경우가 더 많았다.
“계산 다 됐습니다, 손님. 담아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뉴스 소리에 귀 기울이던 리트리버 코볼트가 거의 반사적으로 대답하고는 페트 음료 여덟 병가량을 한 아름 안아 들고 뛰쳐나가 버렸다. 제대로 안 듣고 그냥 대답만 한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뉴스에 귀 기울이는 손님들 눈치 줘 가면서 보냈고….
9시 즈음 되어서는 늘 하던 대로 담배나 현금 시제를 맞추고. 다 맞추는 데에 3분도 안 걸렸다. 담배는 두 갑 판 게 전부였고, 현금 없이 전부 카드 결제만 했었으니까.
마친 뒤 남은 시간이 50분가량. 다시 뉴스를 틀고 밖만 바라봤다.
뉴스에선 계속 똑같은 논조의 이야기만 반복했다. 다들 몸조심하라고.
거리도 계속 똑같다. 9시가 넘어서도 차 몇 대는 돌아다니던 거리에 이젠 아무것도 없다. 눈치 없는 햇살뿐이다.
그리고 난, 똑같지는 않았다. 기시감이 차근차근 쌓여가고 있다. 언제 어느 진상이 와서 날 괴롭힐까― 따위의 기시감이 아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조만간 안 좋은 일 하나가 터질 것 같은….
“찬아!”
덜컥 정문 열리는 소리, 정문 벨 울리는 소리와 함께 점장이 나타났다.
“늦어서 미안, 오늘 버스가 아무리 기다려도 안 와서!”
들어오자마자 성큼성큼 걸어와서는 미안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 점장. 말 듣고 시간을 확인해 보니 10시 2분이었다. 이 정도면 늦은 것도 아니구만, 뭘.
“버스 배차도 줄었어요? 게이트 때문에?”
“내비게이션 보니까, 평소엔 8대 운행하던 게 3대밖에 운행 안 하더라구. 그래서 택시 타고 왔는데 좀 늦었네. 진짜 미안….”
“뭘요, 나중에 저도 2분 지각하면 되지. 인수인계 바로 하실래요?”
“아니, 일단 찬이 퇴근 준비부터 하자. 늦었으니까.”
내가 이 세상 건너로 퇴근하는 과정이 대충 이렇다. 손님 없는 거 확인한 뒤엔 커튼 치고, 정문 걸어 잠근 뒤에 공간이동 하는 스위치를 조작하는 걸로 끝.
5분 정도 걸린다. 나야 7분에 퇴근하든 이후에 퇴근하든 그게 그거인 놈이라 상관이 없었으나, 점장이 워낙 미안해하는 눈치라 그러려니 했다.
하여 커튼 치고, 정문 걸어 잠그고.
점장이 카운터 안으로 들어가는 사이, 정문에서 등 돌린 채로 유제품 코너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밤에 우유 두 통이 터졌었다. 이것도 인수인계해야 하는데.
이렇게 1분. 기다렸는데, 공간이동을 할 때마다 느꼈던 그 감각이 오질 않았다. 돌아보자, 점장이 스위치가 들어있는 밑 선반 방향을 가만히 내려다보기만 하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질문에도 전혀 대답이 없었는데, 얼굴 낯빛이 심상치가 않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는 얼굴이다.
그대로 두어 번 스위치 딸칵이는 소리가 더 들려왔고, 잠시 후엔 점장이 아예 매장 밖으로 뛰쳐나와서는 직접 손을 치켜들었다.
―딱.
손가락 튕기는 소리. 허나 반응이 없다. 굳은 듯이 손을 치켜들고 있던 점장이 서서히 손을 밑으로 내리다가, 날 돌아보았다.
아랫입술을 잘근 깨문 채였다. 그대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해왔다.
“…그, 찬아.”
“예.”
“미안. 오늘 찬이 퇴근 못 시켜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