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치와와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2)
* * *
내가 이해를 못 하는 게 어지간히도 답답했는지 치와와가 지 하는 일에 대해 보충 설명을 해줬다.
들은 걸 그대로 읊자면, 자기가 공공기관 및 기업 네트워크 보안 담당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주로 보안을 해킹한 뒤 취약점을 설명하는 보안전문가라고.
이외에 여러 전문용어 섞인 설명을 십수 분에 걸쳐 해왔고, 최대한 주의 깊게 들은 뒤 소감을 말해줬다.
“예?”
“이런 시팔, 야. 이게 마우스라는 건데 말이야….”
곧바로 무선마우스를 집어서는 충혈된 눈으로 내게 내밀어 보이는 치와와.
‘그걸 누가 몰라요’라고 얘기했다간 안구 실핏줄 터지는 꼴을 보게 될 것 같다. 근데, 진짜로 모르겠는 걸 어쩌란 말인가?
다 떠나서, 무슨 함수 취약점이니 인젝션이니, 공부를 해야 알 전문용어들이 이 치와와 입에서 나오고 있는 이 상황 자체가 어이가 없었다. 이게 이 세상 치와와 코볼트 종족 특성일 리는 없을 거고….
“여기 버튼 두 개 보이지. 왼쪽에 있는 게 왼쪽 마우스 버튼이고, 오른쪽에 있는 게 오른쪽 마우스 버튼이야.”
“코딩하는 데에 마우스도 써요? 영화에서 보면 키보드만 다닥다닥 하더만.”
“이 새끼는 어디서 뭘 보고 왔길래 이런 개소릴 하는 거야?”
“아니에요?”
“그거야 당연히 영화니까 그렇, 근데 니는 말해봐야 알아 처먹지도 못할 걸 왜 자꾸 묻냐?”
맞는 말 같아서 나도 이 부분은 더 안 묻기로 했다. 그래, 치와와들이 원래 코딩을 잘하는 거든, 이 양반만 매―직 UFO에 납치돼서 빔을 맞고 돌아온 거든 나랑 뭔 상관이란 말인가? 자기 할 일 잘하면 그만이지.
잠깐 조용히 있었더니, 치와와가 노트북 화면을 한 번 보고는 다시 물어왔다.
“그래서 영업 몇 시까지 하냐고.”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저희 24시간 연중무휴라고.”
“다른 곳도 다 영업시간이 그러냐?”
매장마다 다르고, 프랜차이즈와 계약을 어떻게 맺었는가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24시간 연중무휴, 혹은 18시간 영업.
야간에 불 꺼진 편의점이 보이거든, ‘어? 저 편의점은 왜 불이 꺼져있지?’ 생각할 게 아니라 18시간만 영업하기로 계약 맺은 곳이라 생각하면 된다.
이걸 말해주자, 잠깐 내 얼굴을 바라보던 치와와가 홱 몸을 돌려 노트북에 발바닥을 얹었다.
“아침까지 일하다 갈 거니까, 너도 니 할 일이나 해.”
이럴 거면 다른 곳 영업시간은 왜 물어본 건지 물어볼까 하다 관뒀다.
난 이 치와와의 분노 수치를 이런 방식으로 측정하고 있다. 기분이 좋을수록 화를 내고, 기분이 좋지 않을수록 침착해지는 역비례 관계.
이 측정방식으로 추측하자면, 이 치와와가 화가 머리끝까지는 아니어도 그 직전까지는 올라와 있는 게 분명하다. 당장 이 양반이 자기 얘기를 이렇게 길게, 침착하게 해온 게 이번이 처음이잖은가?
그 이유가 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남들 다 게이트 때문에 쉬는데 혼자 일하는 게 열받기라도 하는 거겠지. 정문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제 할 일 하고 오겠습니다. 잠깐 나갔다 올게요.”
평소라면 ‘그럼 매장은 누가 보는데, 씹새야’ 하며 우리 매장 걱정을 할 상황임에도 말없이 자판만 두드려대고 있다.
바로 밖으로 나와 전화를 걸었다. 뱀파이어 교수에게.
늦은 시간에 전화하는 셈이 되긴 했지만, 어차피 잠 안 잘 거잖은가. 뱀파이어니까. 통화음이 두 번 울리고 나서 끊겼다.
[ 통화할 시간 없습니다. 지금 바쁘니 나중에― ]
“할게요. 아침에 얘기했던 거.”
교수가 말을 우뚝 멈췄다. 잠시 뒤 한마디.
[ 3분만 기다리십시오. ]
이러고는 전화가 끊어졌고, 기다리는 동안 밤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먹구름이 좀 많다. 곧 비라도 오려나 보다.
이번 주 내내 환하던 달빛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다. 폰 시계의 분침이 딱 3번 바뀌는 순간 전화가 걸려왔다.
[ 바쁘니 짧게 말하겠습니다. 막 등록 절차가 끝났고, 지금부터는 당신도 이 사건의 관계자입니다. 담당구역 내에서 경찰청, 헌터 협회, 마법청에…. ]
“잠깐만요. 어디어디?”
[ …경찰청. 헌터 협회. 마법청. 세 기관을 통해 필요한 인력을 차출할 수 있고, 외에 다른 수단으로 게이트의 탐색 혹은 탐문, 긴급상황 시 게이트를 직접 소멸시키는 것에 관해 권한을 가지게 됩니다. ]
듣고 나서도 실감이 잘 안 났다. 경찰 부르면 경찰이 와서 나한테 도너츠 나눠주고, 헌터 협회나 마법청에 징징대면 나 찾아와서는 내 하소연 다 들어준다는 얘기인가?
상상을 해 봤는데, 편돌이가 유니폼 입고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하는 꼴이 꽤 우스울 것 같긴 했다. 교수가 마저 말을 이었다.
[ 또, 당신의 담당 구역은 당신이 근무하는 편의점을 중심으로 반경 1.5km의 원형 범위 내. 이의가 있다면 다른 구역을 배정하겠습니다. ]
“없어요. 다른 건요?”
[ 시작하면 됩니다. 아니면, 다른 의문 사항 있습니까? ]
산더미처럼 있긴 했다. 마법청 전화번호가 도대체 몇 번이냐?
따위를 물어봤다간 북한 공작원이냐는 말을 들을 게 뻔했다. 잠깐 고민하다, 방금까지 들은 말들 중 제일 모호했던 부분을 물어봤다.
“아까 다른 수단이라 하셨는데, 그게 뭐예요?”
[ 법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전제에 한해 사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말하는 겁니다. ]
“그러니까 그게 뭔지를 알아야 좀 생각을―”
[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 ]
실리주의 오지게 따지는 양반이 똑같은 말을 반복해오고 있다. 답답하다는 어투로. 이후로는 중얼거리듯 말을 이어왔다.
[ 위원회에서는. ]
“예.”
[ 도심지 내 게이트들의 발생 규모, 빈도, 피해 현황을 고려했을 때, 핵심 게이트가 자연소멸하기까지 최대 7일 정도가 남았다 추정하고 있습니다. ]
“최소는요.”
[ 2일. ]
지금도 수많은 반마법사들이 발바닥에 땀 나도록 움직이고 있단다.
이미 일어난 민간피해도 수습해야 하고, 게이트 예상 발생지점에 반마법사를 포함한 인력을 배치해야 하고, 핵심 게이트 발생지점을 파악해 자연소멸하기 전에 먼저 제거해야 하고.
[ 일일이 방법이나 수단 등을 지시할 여유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당장 민간피해 목록의 경우에도― ]
“이해하는데요. 경력 2, 3주 차 뉴비 부사수한테 사수로서 해줄 말 없으세요? 짤막한 팁이라든가.”
이대로 전화 끊었다간 막막한 기분만 들 것 같아서였다. 잠시 말이 없던 교수가, 혀를 한 번 쯧 차고는 이런 말을 해왔다.
[ 국가자격증 시험 때, 어떤 식으로 시험을 치렀었습니까? ]
“시험 치른 거야 뭐….”
[ 당신이 가장 좋은 결과를 이뤄내던 그 방식대로 하십시오. 당신이 알아야 할 정보들은 새벽 중에 pdf 파일로 발신할 테니, 송신하는 대로 바로 확인하십시오. 끊겠습니다. ]
이러고는 진짜로 전화를 뚝 끊어버렸고, 통화 시간이 3분도 채 안 되게 찍혀있었다. 말마따나 바쁘긴 더럽게 바쁜가 보다.
뒷주머니에 폰을 집어넣은 뒤, 다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막막한 건 여전했지만, 그렇다고 이미 꺼낸 말을 물릴 수도 없다. 시험 치를 때 했던 짓이라면….
마법을 지우는 건 내가 했지만,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는 다른 사람 도움을 엄청 받았지. 일 고르고 힘쓰는 건 누나가 다 도와줬고, 마지막 일은 점장이 직접 골라줬었으니까.
지금은 과정을 밟는 게 중요한 상황이다. 도움을 구하고 싶어도, 누나나 점장이나 각자 볼일 본다고 발에 땀 나게 뛰고 움직이고 있을 거고….
“…….”
막막한 기분이 점점 진해져 간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진짜 반마법 서적 같은 거나 더 들여다볼 걸 그랬네.
― 툭.
생각하는 도중, 팔목에 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올려다봤더니, 허공에 가로등 빛에 반사된 빗방울들이 간간이 보이고 있었다.
“뭔 놈의 비야, 또.”
들어가서 마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매장 안으로 들어갔더니, 치와와가 정문 벨 울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막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야, 씹새야!!”
“왜요.”
“왜는 시발, 매장 안에 손님 두고 처나가면 매장은 어떻게 해. 도둑 새끼 와서 금고 털어다 튀면. 니가 책임질 거야?”
“뭐 훔치신 거 있어요?”
“내가 도둑 새끼야? 물건을 왜 훔쳐?”
5분 사이에 맛이 가버린 걸 보니, 코딩하다 막혔던 곳이 뚫려서 기분이 좋아지기라도 한 모양이다. 심란한 마음에 슬쩍 권해봤다.
“슬슬 들어가십쇼. 밖에 게이트 열린 거 때문에 언제 개판 날지 모른다는데.”
“그게 내 일 대신 해줘?”
“일이야 대신 안 해주겠지만, 그래도 여기보단 집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려고 월세 내고 사시는 걸 건데.”
“집에서는 일 안 돼, 씹새야. 침대가 너무 편해서.”
이건 이해가 됐다. 왜, 집에서 마저 하고 내일은 좀 쉬어야지― 하고 회사 칼퇴근하면서 잔업거리 가져와도, 막상 집에 오면 죄다 내팽개치고 뻗게 되는 거.
“그럼 마음대로 하시든가….”
“야.”
“또 왜요?”
“밖에는 왜 나갔다 온 거냐?”
바람 좀 쐬러 나갔다, 대답하려다 말았다.
이 치와와가 온갖 쌍욕을 섞긴 했어도 뭐 하는지 말을 해줬으니, 나도 받은 만큼은 돌려주는 게 맞지 않나. 잠깐 생각하다, 자격증 꺼내며 대답했다.
“저 부업으로 반마법사 일 뛰거든요. 겸사겸사 나랏일 좀 하고.”
“이 새끼, 국가의 개였어?”
“그런 거 아니고, 먼저 물어보셨으니까 좀 들어보십쇼. 밖에 게이트 여기저기 열리고 있는 거, 그걸 어떻게 해보는 걸 제가 하겠다고 일을 물었는데….”
그 게이트 열린 이유가 핵심 게이트란 게 어딘가에 있어서고, 나보고 이 주변에서 그걸 한번 찾아보랜다. 도중에 민간피해 발생하면 그것도 나보고 해결하라고도 했고.
솔직히 민간피해 부분은 잘 모르겠다. 내가 마법을 지우는 거지, 마법으로 박살 난 물건을 건드려서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잖은가. 이건 내 폰이 알아서 해주는 일이고….
“그래서 그 게이트를 찾고 싶은데, 어떻게 찾아야 하나― 이 생각 하다가 들어왔어요. 네.”
적당히 말 맺고 치와와를 바라보니, 눈가 위쪽으로 쌍심지마냥 주름이 자글자글해진 상태였다. 어이없다는 투로 내게 물었다.
“편돌이가 그런 일은 왜 하고 있냐?”
그러게 말이다.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나.
아까 택시 타고 돌아올 때, 이 주제에 관해서 고민을 좀 해봤었단 말이다. 잠깐 알바나 하고 빠지려던 계획이 왜 이렇게까지 꼬인 거며, 내가 이 세상에서 정확히 뭘 하고 싶은 건가.
택시 내릴 즈음에서야 결론 비스무리한 걸 낼 수 있었다. 1시간 남짓 고민해 봐야 당장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라는 거.
딴 세상에서 29년을 살았단 말이다. 1시간 고민하는 걸로 쉽게 답 낼 수 있을 만큼 쉬운 삶을 산 것도 아니고.
그래서 생각을 좀 단순히 해봤다.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가 아니라, 당장 내가 이걸 왜 하고 싶은가. 왜 해야 하는가. 이건 답이 쉽게 나오더라.
“이 빌어 처먹을 게이트 때문에 손님이 안 오잖아요, 손님이.”
나 다니던 직장이 코로나 때문에 망했고, 그 경험을 이 망할 게이트 때문에 또 하게 생겼다. 이틀 동안 매출이 10만 원도 안 나왔다니까?
내가 지금 단순한 알바면 또 몰라, 단년 계약도 맺고 명목상이긴 해도 매니저 직함 달고 있다. 그럼 뭐라도 해봐야 할 것 아닌가. 매장 매출이랑 직결된 일인데.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둘째 치더라도요. 이러다 매장 망하게 생겼어.”
말을 마친 뒤 쇼윈도 밖을 바라보는 도중, 치와와가 대뜸 말을 내뱉었다.
“그 빌어 처먹을 게이트는 어떻게 찾는 건데.”
“저도 몰라요. 뭐, 게이트들 열리는 곳들 다 뭉뚱그려다가 한가운데서 열릴 것 같다느니 뭐니 하는데….”
“야.”
“예.”
대답하며 치와와를 바라보니, 막 절전모드에 들어간 노트북을 다시 켜는 중이었다.
“잠깐 있어 봐, 씹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