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치와와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3)
* * *
잠깐 있으래서 잠깐 있어 봤다. 펼친 노트북으로 프로그램을 하나 실행하고는 신나게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하는 치와와.
발바닥 놀림에 따라 웬 영어 가득한 화면 위로 지도, 인터넷 사이트가 잠깐씩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는데,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돼서 중간에 물었다.
“손님,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말하면 니가 알아?”
“그건 아닌데, 손님께서 알아듣게 설명해주시면 되지 않나?”
“닥치고 기다려 봐, 새끼야.”
기다리란 말에 가만히 앉아 있던 게 3분. 도저히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아서 얼음컵에 아메리카노 한 잔 말아왔다.
테이블에 탁 올려놓는 순간, 치와와가 하던 작업이 끝났는지 노트북을 내 쪽으로 돌렸다. 화면에는 붉은 점이 촘촘하게 박힌 지도가 찍혀있는데, 찍힌 점에 뒤덮여 지도 원형이 보이질 않을 지경이다.
“이게 마법청 엿같은 새끼들이 게이트 발생 현황 발표한 거고.”
“뭔. 그럼 이 점 수백 개 찍힌 것들이 다 게이트 열렸다 닫혔단 소린가?”
“그럼 내가 이 지랄을 왜 하고 있겠냐고. 마저 봐.”
이어서는 다른 지도 하나를 더 띄웠는데, 방금 보여준 지도에 비해 점 개수가 배는 더 늘어있었다.
“이건 그 새끼들이 아직 발표 안 한 거, SNS에 글 올라오는 것들 다 종합해서 새로 만든 거다.”
“SNS 글은 왜… 그보다 이건 또 어떻게 하셨대요?”
“그걸 말하면 니가 아냐니까?”
“아, 예. 아무튼 무슨무슨 방법 쓰셨다 치고. 그래서요?”
“즈그들 집 앞에 게이트 열렸다 닫힌 걸 자랑거리로 아는 또라이들이 몇 있다. 그놈들 인증샷 올라오는 게 빠르면 3분 전 것도 있는데, 마법청의 게을러터진 새끼들이 3분 전에 열린 것들까지 전부 파악을 했겠냐?”
게이트가 열렸다 닫힌 여파로 도심지 각 곳에서 하늘에서 냉동 참치 우박이 떨어지거나, 소화전이 살아 움직이거나 하고 있는데, 그걸 인증샷을 찍어서는 SNS에 신나게 올려대고들 있다고.
이런 건 보통 민원이나 보고받은 것들만 집계해 통계를 내기 때문에 표본이 모자란다는 게 치와와의 설명이었다. 말하며 또 다른 지도를 띄우는 치와와.
“이런 건 표본이 존나게 많을수록 정확도가 높아.”
세 번째로 화면에 나타난 지도는, 기존에 찍혀있던 점 외에 푸른색 점 몇 개가 추가로 찍힌 변화가 있었다.
세어보니 개수가 총 여덟 개. 치와와가 푸른 점이 찍힌 부근의 상가 하나를 발톱으로 쿡 누르며 마저 말을 잇는다.
“여기가 니 영업하는 매장이고. 이 주변이 게이트 나타난 것들 추합해서 핵심 게이트인지 뭔지 있을 만한 곳 추린 거다. 중심 될 만한 곳.”
“이 여덟 곳이 말이죠. 다른 덴 없고?”
“니 구역이 직경 1.5km라며, 씹새야. 왜, 꼽냐?”
안 꼽다. 내가 자가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여덟 곳 둘러보는 데에만 몇 시간은 걸릴 테니까. 지도의 점들을 바라보다, 떠오르는 소감을 내뱉었다.
“손님께서 이런 일까지 하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이런 썅, 그럼 나 이런 일 한다고 여기저기 자랑이라도 하고 다녀?”
“그 소리가 아니라 그냥 몰랐다고요. 근데 느닷없이 전 왜 도와주시는 겁니까?”
방금까지 그랬듯 ‘그건 니가 왜 궁금해하는데?’ 같은 대답을 해올 거라 생각했다. 아니면 네가 알 바 없으니 신경 끄라든가.
헌데 이걸 묻자, 치와와가 오히려 기가 찬다는 투로 되물어왔다.
“아니, 매장 망할 것 같다며 씹새야.”
“그러긴 했죠.”
“여기 망하면 난 어디서 일해?”
대안으로는 카페, 스터디 카페, 그리고 집이 있다.
설령 이곳들이 아니더라도 다른 좋은 곳들 많은데, 왜 하필이면 플라스틱 의자 쓰는 곳 와서 이러는 거야. 진짜 딴 곳에서 출입 금지 조치 받기라도 한 건가?
이 양반 욕하는 걸 생각해보면, 집 근처 카페 같은 데에서 치와와 출입 금지 팻말을 붙여도 이상할 거 없긴 하겠다. 치와와가 노트북 화면의 지도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거면 그 개같은 거 찾을 수 있냐?”
“글쎄요. 일단 찝어 주신 곳들 한번 가보기는 할 텐데, 다음에는… 어….”
“다음엔 뭐.”
“모르겠습니다. 당장 일 받아온 지 1시간도 채 안 돼서 생각이고 자시고―”
“야, 씹새야.”
“왜요.”
“지금 밖에 비 오는 거냐?”
이번엔 또 뭔 소릴 하려는 거야. 생각하며 쇼윈도 밖을 봤는데, 치와와 말대로 쇼윈도에 물이 한두 방울씩 맺히기 시작했다.
바라보는 도중 후두둑 빗줄기가 한번 쏟아지고는 멈췄다. 바깥 도로가 빗물에 적셔져 가는 걸 뚫어져라 바라보던 치와와가 대뜸 말했다.
“나 간다.”
“아까까지만 해도 일 다 끝내고 간다면서요.”
“이런 씹새가, 베란다 장판에 곰팡이 슬면 니가 물어줄 거야?”
집에 창문을 열어두고 오기라도 한 모양이다. 솔직히, 무진장 싫기는 해도 이 양반이랑 오늘만큼은 대화를 마저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긴 했지만….
지가 가겠다는 걸 억지로 붙잡을 수는 없다. 붙잡으려다 이 양반 눈알 튀어나오는 꼴 보고 싶지도 않고. 그래도 받을 건 받고 보내야 했다.
“아까 그 지도 사진들이라도 주고 가십쇼. 이따가 슬슬 둘러보게.”
“아, 빨래 널어놓고 나왔다고!!”
“거 사진 주는 데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오래 걸려요?”
오래 걸리지는 않는 건지, 치와와가 이 드러내며 으르릉거리면서도 접으려던 노트북을 다시 펴 조작하기 시작했다. 메모장을 켜고는 화면을 가리키며 한마디.
“폰 번호 적어, 씹새야.”
이런 젠장할, 근무 첫날에만 해도 이놈한테 내 폰 번호를 알려주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그래도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 수 없다. 자판으로 폰 번호를 적어주자, 컴퓨터 톡으로 전화번호를 입력해서는 그대로 사진을 전송하는 치와와.
잠시 후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확인해보니, 개인톡으로 지도 사진 세 장이 딱 전송되어 있다.
“갔냐?”
“온 거 같습니다. 근데 혹시 다른 것도 나중에 부탁드리면 주실 수 있습니까?”
“그 다른 게 뭐고, 언제 달라는 건데.”
“둘 다 아직 모르는데요?”
“이 씹새가….”
어이없다는 투로 노트북을 덮고는, 의자 옆 노트북 가방에 챙겨 넣으며 마저 말해왔다.
“주면. 그땐 니 할 일 할 수 있을 거 같냐?”
“그건 모르지만, 노오력은 해보려고요.”
“봉투나 좀 줘 봐. 친환경으로.”
봉투는 또 왜 달라는 거야?
싶었으나, 100원짜리 봉투가 조건이라면 전혀 나쁘지 않은 거래다. 인심 쓴다는 생각으로 봉투 두 개 뜯어 건네주자, 하나를 집어 노트북 가방에 덮어쓰는 치와와.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 머리에 뒤집어썼다.
“손님?”
“착용감 개같네.”
개같으면 쓰질 마라. 호흡에 맞춰 봉투 친환경 마크가 구겨지거나 펴지거나 했는데, 우산이 필요하면 필요하다 말을 하지 왜 봉투를 뒤집어쓰는 거냐?
이걸 미처 묻기도 전에 치와와가 정문으로 성큼 걸어 나가 버렸고, 혼자 남았다. 먹으라고 둔 아메리카노는 발톱 하나 갖다 대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가 마셨다. 빨대로 두어 모금을 빨며, 저 양반의 정신과 진단명이 도대체 뭐일지를 잠깐 생각해봤다. 딱히 떠오르는 게 없더라.
이후엔 빗방울에 뒤덮여가는 쇼윈도 밖을 바라보았다. 비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
이 날씨면, 사무실 안쪽에서 카펫이랑 우산 진열대부터 꺼내는 게 맞겠지만….
“…여덟 개.”
푸른 점들 간격이 꽤 넓었었다. 아침부터 시작하면 늦겠지.
* * *
점장에게 톡을 하나 보냈다.
[ 확인하시면 바로 연락 주세요 ]
매장 비우기 전에 점장한테 말은 해둬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전화를 몇 번 걸어봤는데, 자꾸 소리샘으로 연결되더라.
이후엔 화장실 다녀온다는 말과 연락처를 코팅지에 적어 정문에 붙여놨다. 이후엔 우산 진열대에서 적당한 우산 하나 꺼내 계산하고, 밖으로 나와서 문 걸어 잠그고.
열쇠를 주머니에 챙긴 뒤, 거리를 한번 둘러보았다.
피고용인이 이런 판단을 하는 게 옳은 짓은 아닐 테지만, 거리 꼴이 어딜 어떻게 봐도 장사가 안되게 생겼다. 오후 11시, 평소라면 주정 부리는 귀쟁이들이나 진상들이 득시글할 시간.
진상은커녕 이종족들 그림자도 안 보인다. 자동차는 당연하고, 심지어 먹자골목 쪽에도 불 켜진 건물이 하나도 없다. 장대비가 화룡점정을 찍어버렸고….
오늘 밤 매장 지키고 있어봐야 월급도둑밖에 못 될 테니, 차라리 이 일이라도 미리 해두자는 생각이었다. 출발하기에 앞서, 지도를 한번 확인해봤다.
“…왼쪽 같은데.”
가장 가까운 파란 점이 왼쪽, 먹자골목 방향이다. 우산을 펼쳐 거리로 나섰다.
한 걸음 만에 운동화 안으로 빗물이 왈칵 스며들었다. 양말이 젖어 들어가는 걸 무시한 채로 계속 걸었다. 버스정류장의 배차가 끊긴 전광판, 불조차 흐릿한 지하철 입구.
10분가량을 더 걸어 먹자골목에 도착했다. 술 꼴은 편의점 진상 놈들 태반이 다 여기서 생산됐던 것일 터다. 상가가 배럭이고, 진상이 감염된 테란인 거지.
때문에 이곳을 썩 좋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었는데, 막상 와보니 이곳도 내 상상 속 이미지와는 많은 부분이 달라진 채였다.
대부분의 간판이 불이 꺼져있다. 고깃집, 호프, 칵테일 바, 노래방. 그나마 불 켜져 있는 게 무인 오락실과 인형뽑기 가게 정도.
쓸쓸했단 얘기다. 이 골목이 비 내릴 때마다 매번 이 꼴이 났던 건 아닐 텐데….
“…어쨌든.”
온 건 온 거고, 이젠 뭘 해야 하는가.
걸어오면서 짧게 생각했던 건 있다. 교수가 속한 대책위원회에서 반마법사들을 끌어모았던 이유. 민간피해의 예방, 대처와 핵심 게이트가 자연소멸하기 전에 찾아내 먼저 제거하는 것.
민간피해 쪽을 생각해보자. 만약 이 근방에서 게이트가 열렸다 닫혔었다면, 필시 어딘가에서 피해가 발생하고 있을 거다.
아까 SNS에 나왔던 얘기대로 우박처럼 떨어진 냉동 참치가 해동되어 펄떡이고 있다거나, 누나 말처럼 자동차가 뒤집어지고 있거나….
다른 반마법사 양반들이야 자동차를 다시 뒤집는 마법적 수단 하나 정도는 있겠지만, 난 그런 상남자스러운 짓 못 한다. 해동된 참치랑 싸워도 내가 질걸?
그러니 당장은 이걸 배제하고, 딱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해볼 생각이다. 게이트 찾는 거.
교수가 마법청, 헌터 협회 같은 곳에 인력 요청을 하라고는 했지만, 그것도 정도껏이다. 최소한의 근거가 있어야 공무원을 부를 명분도 생기는 것 아니겠는가.
그 근거를 만들기만 하면 될 일이다. 게이트의 구성성분이 어떻게 돼먹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게이트 내부에서 뭐가 나왔었는지는 기억하고 있다. 마석.
내부에서 마석이 나오는 곳이니, 게이트도 마법이랑 연관이 있겠지.
그리고, 마법 관련된 일이라면 지우는 거 외에도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있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일그러져 보이는 건 없다. 아직은.
“아니야?”
막막함에 거리에 대고 중얼거려 봤다. 당연히 대답은 없다. 이 골목에 문제가 없어서 내가 허탕을 친 걸까, 아니면 방법이 틀린 걸까.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 한 번으로는 근거가 못 된다.
이전에 이 짓거리를 하다 멀미로 기절할 뻔한 적이 한 번 있었다. 자격증 첫 번째 실기 시험, 관짝 백수십 개를 한눈에 확인하려고 했을 때.
그 정도는 해야 한다. 지울 게 없는 이상,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이 짓 하나뿐이다. 뭐라도 좋으니 결과를 내야 해. 그래야 내가 납득할 수 있다. 그러니까.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고.”
자격증을 손으로 움켜쥔 뒤 눈을 떴다.
그러자 눈을 뜨기 전과 후, 주변의 풍경이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단순히 어디 한 군데가 일그러져 있다, 이런 수준이 아니었다.
온 세상이 일그러져 보였던 것이다. 비에 젖은 땅, 밤하늘, 가로등 불빛 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