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편돌이-137화 (138/201)

137화. 우리 매장 정상영업합니다 (4)

* * *

질문을 잘못했다. 언제 오신 건지를 물어볼 게 아니라….

“뭘 좀 찾고 있었습니다, 어르신. 그런데 여긴 어쩌다 오시게 된 거예요?”

반가운 게 아닌 건 아닌데, 이 날씨에 대리기사 일이 전혀 수요가 있을 것 같지 않아서였다. 차 끌고 나온 양반들이 렉카를 부르면 불렀지, 대리기사를 부르진 않을 거 아냐.

아니면 어르신께서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계시기라도 한 건가. 여쭙자, 빗물에 짓눌려 챙이 구부러진 중절모를 벗고는 대답하셨다.

“아까 톡을 보내셨더군요. 매장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그, 답장하신 걸 보긴 했는데….”

“그걸 보고 나니,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 말이지요….”

구부러진 챙을 다시 다듬으신 뒤, 머리에 쓰고는 인자하게 웃으며 마저 말씀하셨다.

“반려가 자는 사이에 슬쩍 나와봤습니다.”

이렇다 하시는데, 솔직히 별로 믿기진 않았다.

빗소리가 하도 커서 코앞에서 얘기하지 않으면 목소리가 파묻힐 정도인데, 이 빗소리 속에서 잠을 어떻게 자?

슬쩍 나왔다는 것도 적당히 둘러대는 말이실 테고. 마음 같아서는 여기 지하에 이상한 게 있으니, 당장 집에 가시는 게 낫지 않겠냐고 권하고 싶었지만….

말 안 했다. 나보다는 이런 일을 수도 없이 겪어보셨을 테고, 나 신경 써 준다고 나오신 분한테 내가 뭔 말을 더 해. 대신, 하나만 더 물어봤다.

“그 톡 뒤에 제가 한 문장 더 보낸 게 있는데, 그건 못 보신 거예요?”

“어떤 문장 말씀이십니까?”

“여기 오시지 말라고 적어놓은 거요. 그거 읽음 표시 뜬 거 봤는데.”

“제가 나이가 들어 눈이 침침해서 그런가, 미처 못 본 것 같습니다.”

“예….”

“야, 이찬. 이거 말인데.”

등 돌린 채로 금연초 십수 모금을 빨아대던 누나가 이쪽을 돌아보다, 어르신과 시선을 마주치고는 눈이 동그래졌다. 어르신께서 누나에게도 바로 넉살 좋게 인사를 건네셨다.

“반갑습니다, 윤하 양.”

“…네, 저도 반가워요, 울프 어르신. 그런데, 제가 얘랑 얘기할 게 좀 있어서요. 마저 얘기해도 될까요?”

놀란 것도 잠깐. 어지간히도 급한 상황인지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려고 하더라.

“물론이지요. 헌데, 저도 옆에서 잠깐 듣고 있어도 되겠습니까?”

“상관…없어요. 네. 어차피 내일 되면 기사 다 나올 건이라서.”

표정이 말 늘어놓는 것에 맞춰 차근차근 구겨진다. 금연초 한 모금을 마저 빨고는 파이프를 손에 쥐는 윤하 누나.

“들어서 기분 좋을 거 하나 없을 내용이기는 하지만….”

“여기가 맞아서 그런 거야? 누나?”

“어. 거의.”

이후엔 짧은 설명.

대부분의 게이트는 공간을 빨아들이는 패턴이 일정하다. 수챗구멍에 물 빨려 들어가듯 회오리치는 형태. 이건 나도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지금 이 안쪽은 그게 아냐. 사다리 배배 꼬이는 것부터 시작해서 바닥이 보였다 말았다 하고, 구부러지기도 하고, 빗물은 보이지도 않는 뭔가에 막혀서 내려가고 있지도 않고.”

일반적인 게이트는 결코 아니고,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부를 확인해 볼 가치가 차고 넘친다고 한다. 도중에 말 끊고 물었다.

“확인해 볼 가치가 있는 정도야? 100%가 아니고?”

“이 업계에 100% 같은 거 없어. 단 하나도. 지금 경우에는 특히 더 그렇고. 나도 경험이랑 추측만으로 말하는 거고….”

“경험?”

“이 현상을 전에 본 적이 있으니까. 핵심 게이트 닫으러 갔을 때.”

윤하 누나가 10년 넘게 구르면서 핵심 게이트 관련 건수를 딱 두 건 맡아봤고, 그중 하나가 지금과 현상이 거의 동일했다고 한다.

“그때 선배 중 한 명이 이거 보고 이렇게 말을 하더라. 단순히 공간을 빨아들이는 게 아니라, 빨아들이는 동시에 토해내는 것 같다고.”

“허어….”

“지금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이고. 그때 그것도 핵심 게이트였으니까 이것도 그게 아닐까, 딱 그 정도야.”

설명 듣고 맨홀 내부를 다시 바라보니, 정말 누나 말대로 공간을 내뱉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막 바라본 지금도 사다리의 층간 간격이 한창 줄어드는 도중이다.

100% 확신은 못 해도 반드시 확인은 해야 한다는 게 누나 입장인 것 같은데, 아직 중요한 걸 못 들었단 말이다. 바로 물었다.

“게이트 안 닫으면 자연소멸돼서 개판 난다고 했잖아, 누나. 이건 자연소멸되기까지 몇 시간 남은 거임?”

“…그건 계측하는 법이 따로 있어서 난 모르는데. 짐작되는 거라도 얘기해 줘?”

그거라도 들어야 좀 안심이 될 것 같다. 묻자, 누나가 내뱉듯 대답해 줬다.

“3시간. 그때 이거랑 똑같은 현상 일어나는 곳 가리키면서, 계측관이 딱 3시간 얘기하더라.”

“이야….”

괜히 들은 것 같다. 앞으로 3시간 동안 우리가 뭘 할 수 있나….

우선, 도시 전체에 전파가 터지질 않고 있다.

누나가 여기 찾아왔던 것처럼 다시 날아가서 지원 요청을 하는 데에 얼마나 걸릴까. 짧게 걸린다 치고, 보고를 한다 친들 일이 술술 풀려줄까? 지금 그쪽도 일할 헌터가 없다는데?

헌터 측 인원이 없는 상황이라 하니, 마법청 내부 상황도 비슷할 것이다.

그 공무원 양반들 일하는 걸 내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무진장 바쁠 것 아닌가. 당장 도시에 게이트 터지는 것만 시간당 수백 건씩 받고 있을 텐데.

설령 모든 일이 잘 흘러간다 쳐도, 이세계 매―직 윗대가리들이 신속하게 일을 처리해 줄 것 같지도 않다. 이종족 떠내려가는 것보다 지들 주차장 물 빼는 게 더 급하다는 양반들이라잖아.

“…….”

누나가 금연초만 뻑뻑 피우고 있는 것도,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일 거고. 어딘가에 도움을 바라는 행위 자체가 아무 의미 없다는 거.

뭔가 하기는 해야 한다. 3시간 내로.

떠오르는 건 딱 두 가지. 더 늦기 전에 이 거리 밖으로 역돌격을 실시하든가, 아니면….

“사장님.”

“…….”

“사장님.”

“…아. 네, 어르신.”

도중에 어르신께서 조곤히 말을 걸어오셨는데,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거리 저편의 어딘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계셨다.

“지금 상황이 많이 급박한가 보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고 계시는 방향에 뭐가 있어요?”

“행인이 두 분 계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여성분들이고.”

이 동네에 열린 가게래 봐야 내 매장밖에 없는데, 행인은 웬 행인?

설마 하는 심정으로 바라봤는데, 어르신 말대로 사람 형태로 보이는 둘이 폭우를 헤쳐 가며 꾸역꾸역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여성분들인지는 아직 모르겠고.

우선, 한 명은 오토바이로 보이는 탈것을 끌고 오고 있다. 머리카락이랑 옷 색은 검정색이고.

다른 한 명은 오토바이를 붙잡은 한 명에게 반쯤 매달리다시피 한 상황이었는데, 도중에 발을 헛디뎠는지 빗물에 풍덩 자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검은 머리의 누군가가 오토바이를 바닥에 세우고는 자빠진 한 명을 일으켜 세우는데, 물에서 건져지는 인물이 단말마의 비명에 가까운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아앙!! 푸헥!”

“하….”

“혹시 아는 분들이십니까? 사장님?”

반쯤 터졌던 속이 방금 저거 듣는 순간 마저 다 터졌다. 엘레나 양이랑 이루엘 경관이다. 둘이 어떤 영문으로 서로 만나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바라보는 도중, 이루엘 경관이 세워놨던 오토바이가 옆으로 기울어 물에 잠겨버렸다. 이거 구경만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닌 것 같다.

“둘 다 아는 얼굴이에요, 어르신. 가서 좀 도와주고 오겠습니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윤하 양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네? 어떤 걸요?”

한창 생각하던 누나가 우리 둘을 바라보고,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도 똑같이 따라보고는 곧바로 금연초 파이프를 집어넣었다.

“저도 같이 갈게요. 계속 생각해 봐야 답도 안 나올 것 같고.”

“뭔 생각 하고 있었는데.”

“이따 돌아가서 얘기해 줄 테니까, 일단 저쪽부터 좀 돕자.”

하여 셋이서 나란히 물살 헤치며 둘에게 향했다. 반쯤 다가갈 즈음 이루엘 경관이 우리 셋을 발견했는지, 오토바이를 내버려 둔 채로 다가오더라.

코앞까지 와서는, 엘레나 양이 붙잡은 어깨의 반대쪽 손으로 거수경례를 하는 경관.

“순경 이루엘입니다.”

경관도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늘 각이 잡혀 있던 제복은 물에 홀딱 젖어 몸에 달라붙은 채고, 넥타이는 줄이 끊어지기라도 한 건지 보이질 않는다. 경찰모도 마찬가지고.

때문에 머리카락 색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오늘만큼은 금발을 단 한 오라기도 찾아볼 수가 없다. 하긴, 이 날씨에 대민 지원을 하라고 하면 어느 경찰이 스트레스를 안 받겠어.

그럼에도 무표정에 무덤덤한 어조로 인사해 오는 게,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화를 내 본 적이 있기나 할까 싶다. 반면.

“헤엑, 헤엑… 콜록, 콜록, 콜록!”

엘레나 양은 당장이라도 실신할 듯 경관에게 매달리다시피 하고 있다.

아예 작정하고 나온 건지 레인부츠에 우비를 입은 채였는데, 그 우비 밑으로 흙탕물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걸 보면 방수에 별 효과는 없어 보인다.

매달리고 있는 것도 힘에 부치는지 점점 미끄러지고 있고. 바로 경관에게 권했다.

“그분 제가 붙들고 있겠습니다, 경관님. 아는 서큐버스라서.”

“으으으… 콜록.”

“잠깐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망설임 없이 어깨를 내밀어 내게 엘레나 양을 맡기고는 몸을 비틀거리는 경관. 겉으로 드러내지만 않았지, 빗길 헤쳐온다고 죽을 고생을 했나 보다.

넘어지려는 경관 어깨를 누나가 재빨리 붙잡아 세운 뒤, 경관 팔을 자기 어깨에 두르며 말했다.

“경관님도 부축이 좀 필요하시겠네.”

“괜찮습니다. 저는 신경 안 쓰셔도….”

“신경 쓸 것까지도 못 돼요. 오늘 특히 힘드셨을 텐데.”

이루엘 경관이 이 세상 사회에서 차별을 많이 받는 종족이다. 엘프.

누나가 이걸 신기하게 받아들일지 안쓰러워할지가 살짝 궁금했는데, 경관을 부축하는 데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후자 쪽인 것 같다.

경관도 살짝 놀란 눈치이긴 했어도 거절은 안 했다. 대신, 뒤를 돌아보며 중얼거리듯 말하더라.

“뒤에, 업무용 오토바이가….”

“제가 들고 오겠습니다, 경찰관님.”

바라보던 어르신께서 짧게 말씀하시고는, 다리를 들어 계단을 딛듯 빗물 표면 위에 발을 올리셨다. 그러고는 호흡을 가다듬듯 짧은 숨소리 한 번.

“흠.”

그러고는 빗물 표면 위에 올라서신 뒤, 물 위를 탁탁 달리기 시작하셨다. 아니,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냐?

“이야, 저거 나도 하기 힘든 건데. 저분 진짜 뭐 하시는 분이야?”

“전직 군인이시긴 한데, 누나도 저거 할 수 있어?”

“집중 빡세게 하면 걷는 정도는 가능한데, 저렇게 오토바이 건져 올리는 건 못 하지. 머리 터지는 짓이야, 저거.”

“허어….”

“내 전공 아니기도 하고.”

이 짧은 대화 사이에 어르신께서 오토바이를 가져오셨다. 한 손으로. 여전히 물 위를 딛고 서 계셨는데, 150kg은 나갈 오토바이를 들고 계심에도 목소리가 평온했다.

“워낙 오랜만에 해보는 거라, 힘에 좀 부치는군요.”

누나는 감탄사 한 번 더 내뱉고, 엘레나 양은 기진맥진해서 바라볼 여유도 없는 것 같고.

나랑 이루엘 경관만 어르신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는데, 도중에 경관이 다시 거수경례를 하며 말했다.

“협조 감사드립니다.”

“괜찮습니다. 대리기사 일을 하다 보면 자주 겪는 일이니 말이지요.”

이 말에 경관이 의문 가득한 얼굴이 되었으나,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꾸벅꾸벅 눈 감기는 게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경관님, 엘레나 양, 몇 분 정도 이렇게 걸어온 거예요?”

“1시간 좀 안 됩니다.”

“우에엑….”

엘레나 양이 헛구역질하는 게, 더 지체하다간 첫 만남의 데자뷰가 일어날 것 같다. 다른 넷을 둘러보며 권했다.

“일단 매장으로 돌아갑시다, 손님분들. 거기 비 안 들어오게 막아놨거든요?”

넷이 말없이 고개만 끄덕여 동의했고, 이렇게 다섯이서 말없이 매장으로 향했다. 매장 근처까지 오며 계속 드는 생각이, 상황이 10분 단위로 점점 어이없어지고 있다는 것.

내가 말문 텄던 매장 손님들이 죄다 몰려들고 있다. 하나 녀석은 엄마한테 가서 없긴 하지만, 그게 백번 다행이지. 그 녀석은 이 날씨에 밖에 나오면 빗물 위로 뿔밖에 안 보일 건데….

이 어이없다는 생각이 매장 정문 열고 들어설 즈음에는 정점을 찍었다. 똑같이 낯익고, 보고 싶었던 사람이 서 있어서였다. 로비 정중앙에.

“어, 찬아. 하이.”

“어….”

“가게 안에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서, 직접 찾으러 나가려던 참이었는데.”

돈 주고 차린 매장 꼴이 난장판이 되었는데, 점장 표정은 왜 이리 평온한지 모르겠다. 그대로 우리 다섯과 매장을 한 번 더 돌아보고는 마저 말을 잇는 점장.

“오늘따라 손님이 많네.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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