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편돌이-150화 (151/201)

150화.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다 (2)

* * *

점장과 쇼윈도 커튼을 치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사실 많이 궁금하긴 했어, 찬아. 정말 인간분들 말고 다른 종족이 하나도 없는 세상이 있는 걸까, 마법이 정말 없는 걸까, 정말 없는 거면 마법 없이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또.”

“예.”

“인간분들이 그렇게 많은데 왜 하필이면 찬이만 여길 보고 드나들 수 있는 걸까, 찬이 말고 다른 분들이 매장을 볼 수는 있는 걸까, 서로 말은 통하는 걸까.”

“허어….”

“그리구, 또….”

사실 말이 대화지, 점장의 호기심 목록을 내가 조용히 듣는 것에 가깝긴 했다. 커튼을 내리는 3분가량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다, 카운터 안에 들어가서야 말을 맺었다.

“엄청 재미있을 것도 같구.”

이것만은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재미 하나도 없다.

안 그래도 재미없는 세상이, 코로나가 사람들 얼굴 절반을 가려버린 이후로는 훨씬 더 재미없어졌다. 이걸 말할지를 잠시 생각하다, 말았다.

점장 눈이 막 롤러코스터에 탈 차례가 온 아이마냥 반짝거리고 있어서였다. 그래, 재미없는 영화라고 해서 굳이 스포일러까지 할 이유는 없지….

“아까 뉴스대로면 오늘 아침 손님 하나도 없을 게 뻔하니까, 지금이 기회야.”

“위기가 아니고요?”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 훌륭한 리더라구 하길래, 한번 다르게 말해봤지. 지금 스위치 누를게, 찬아.”

재빨리 등을 돌려 천장만 올려다보았다. 매장 바닥이나 천장이 미세하게 흔들리다 멈추고, 수 초 뒤에 블라인드를 촤륵 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긴 날씨 엄청 좋다. 안개도 전혀 없구.”

“그렇습니까.”

“응. 엄청 화창해.”

뒤돌아 블라인드가 걷힌 쇼윈도 밖을 바라보니, 점장 말대로 옅은 안개 하나 없이 화창했다. 하늘은 조각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랗고.

늘 그렇듯 인적 드문 가로수길이다. 반경 100m 내에 세워지고 있는 건물은 단 한 채도 없고, 아주 가끔 길 잃은 자동차나 한두 대 돌아다니는 곳.

내게는 그저 평범한 시골이지만, 점장은 정문 손잡이에 손을 올린 채 뚫어져라 밖을 바라보고만 있다. 뭐가 그리 신기한 건지.

그러다 날 올려다보며 묻더라.

“밖에 나갈 때 혹시 조심해야 할 점 있어? 뭘 준비해야 한다든가.”

“어… 부동산 사기랑 보이스피싱, 사이비 종교 입교 권유 정도?”

“그건 나 사는 곳이랑 똑같네. 다른 건 없구?”

“딱히요. 그냥 별생각 없이 와지고, 별생각 없이 나가지더라고요.”

“그럼 나도 별생각 없이 해봐야겠다.”

이러고는 두 발자국을 물러선 점장이 출퇴근할 때처럼 자연스럽게 매장 밖으로 나가려 했다. 문을 당겨서 열고, 매장 밖으로 나가려다….

“아얏.”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이마를 부딪쳤다.

“괜찮으세요, 점장님?”

“아야야….”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진 않았으나, 부딪친 게 어지간히도 아팠는지 주춤거리며 이마를 두 손으로 부여잡았다. 대체 뭐에 막힌 거야?

열린 문 밖으로 손을 뻗어보니, 막히는 일 없이 손이 잘만 나갔다 들어온다. 점장이 눈물을 글썽이며 다시 다가와서는, 내가 손 뻗은 위치 밑으로 손바닥을 내민다.

점장 손바닥이 매장 안팎의 경계선, 여기서 막혀 더 나아가질 않았다. 아예 체중을 싣고, 어깨로 밀쳐가며 안간힘을 써도 마찬가지였다.

“…….”

한참을 애쓰던 점장이 손을 떼고는, 경계면에 두 손바닥을 맞댄 채 중얼거렸다.

“…이유가 뭘까?”

“점장님.”

표정이 살짝 굳은 게, 농담을 꺼내선 안 될 분위기 같다. 대답 없이 팔짱을 낀 채로 밖을 바라보다, 대뜸 카운터에서 이면지 두 장을 가져왔다.

“이거 하나만 해볼게, 찬아.”

“예.”

대답하자, 곧바로 이면지 한 장을 구겨서는 정문 밖으로 집어 던진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이면지가 열린 정문 너머의 인도 위로 툭 떨어졌다.

이면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점장이, 나머지 한 장을 똑같이 구겨서는 천장에 대고 오른손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고는 다시 이면지를 집어 던지는데, 이번엔 이면지가 포물선이 아닌 일직선으로 올곧게 날아갔다. 그러다 경계선까지 도달해서는….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떨어진 이면지를 주운 뒤, 보이지 않는 벽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실험 결과를 말해왔다.

“마력이 있는 물건은 이 밖으로 못 나가는 것 같아.”

나도 그렇게 보인다. 마법이 안 걸린 이면지는 아무 저항 없이 나가진 반면, 마법이 걸린 이면지는 뭔가에 가로막힌 듯 뚝 떨어졌다.

이세계의 생명체들은 모두 체내에 마력을 지니고 있다. 점장에게 물었다.

“그 이유는 짐작이 가세요?”

“글쎄….”

“체내의 마력을 잠깐 없앤다든가, 그런 건 안 되는 거고?”

“응. 그건 나도 어떻게 못 해.”

“어떤 식으로요?”

“마력이 없을수록 몸에 안 좋거든. 마력이 아예 없어지면, 그땐….”

말을 늘이는 점장. 그다음 내용이 어떤 건지는 따로 묻지 않았다. 최소한, 내 집에 누군가를 초대할 일은 앞으로도 없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조용히 바깥의 이면지를 주우러 가려 했는데, 점장이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쉽다. 찬이 집 한번 가 보구 싶었는데.”

점장이 내가 사는 세상에 뭘 기대하고 있던 건지는 모르겠다. 29년을 살아본 경험자로서는 심심하고, 평범하다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세상이었으니까.

하지만 점장이 말로 표현한 것 이상으로 아쉬워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잘 알겠더라. 영 거북한 분위기라 얼른 주제를 돌렸다.

“돌아가실래요?”

“아냐. 이왕 온 거, 좀 더 있다가 가지 뭐.”

말하며 내 어깨를 바라본다. 내가 밖에 떨어진 이면지를 주우러 나가려다 멈춘 탓에, 어깨 절반이 내 세상 쪽으로 빠져나와 있는 자세로 서 있는 중이다.

마법이 있는 세상과 없는 세상, 두 사이에 내 몸을 반씩 걸치고 있다. 몸을 빼려던 도중,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그, 점장님.”

“응.”

“잠깐 손잡아도 되겠습니까?”

내 말에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어온다. 손을 잡아 조심스레 편의점 밖으로 걸어 나왔다. 붙잡은 점장의 손이, 두 세상을 가르는 벽을 지나….

밖으로 빠져나왔다.

놀란 표정이 된 점장을 이끌어 두어 걸음을 더 내디뎠다. 인도까지 걸어 나와 뒤를 돌아보니, 점장 몸이 온전히 밖으로 나와진 채였다.

혹시라도 놓칠까 싶어 다른 손으로 점장 손을 마저 부여잡았다. 손이 잡힌 그대로 주변을 돌아보며 딱 한 글자를 내뱉는 점장.

“오.”

바람결에 점장 머리가 살랑였다.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눈이 부셨는지, 질끈 감은 채 다시 고개를 내린다. 왜 이런 시도를 한 건지 가능한 한 풀어서 말해봤다.

“점장님께서 저 근무 첫날에 약 만들어 주셨잖습니까. 잠 잘 자는 약이요.”

“…아. 맞아. 약 괜찮았어?”

“예. 괜찮았습니다. 가지고 나올 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점장이 방금 이면지를 던진 것, 점장 손이 가로막힌 것. 이걸 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 그때도 모종의 경로로, 내 체질이 제 역할을 해준 게 아닐까.

“퇴근 전에는 이렇게도 말씀해 주셨었고요. 이 체질은 제가 마음먹은 대로, 바라는 대로 움직여준다고.”

“그것두 기억나.”

“그래서 한번 해봤습니다. 그래서, 어떠십니까.”

“여기?”

“예. 크게 다를 것 없지 않아요?”

저쪽 세상에서 차 타고 1시간 정도 나가면, 이곳과 비슷하게 생긴 곳이 얼마든지 있을 거다. 차이점이라면 지금 그곳은 먹구름 천지겠지만, 여기만은 날씨가 맑다는 것.

“이 동네에 진짜 아무것도 없습니다. 학생들 제일 놀 만한 데가 PC방인데, 그곳들도 동네에 사람이 다 빠져서 파리만 날리고―”

“괜찮아. 날씨 좋은걸. 공기도 맑구.”

“그게 유일한 장점이긴 합니다. 원체 시골이라서.”

“이거면 됐지, 뭐.”

본인이 좋다니 그런 건 줄 알란다. 여튼, 손은 놓지 않았다.

저 벽을 지나오는 건 어떻게든 했다 쳐도, 내가 손을 뗐을 때도 똑같이 되어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잠자는 약은 그저 약일 뿐이었지만, 점장은 살아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냥 손 부여잡고, 점장이 만족할 만큼 주변을 둘러보기만을 가만히 기다렸다. 손에 밴 땀이 서늘해져 갈 즈음에서야 점장이 입을 열었다.

“…살면서.”

“예.”

“한 번은, 다른 세상에 있어 보는 게 소원이었어. 꼭.”

“왜요?”

“그냥. 이런 경험 언제 해볼 수 있겠어?”

이게 목적이라면, 나보다는 더 좋은 안내인들이 얼마든지 있지 않나 싶다. 내가 이 몸뚱어릴 좀 더 잘 다룰 수 있었으면, 좀 더 먼 곳까지 데려갈 수 있겠지만….

지금은 이게 한계다. 딱 편의점에서 네 발자국 걸어 나와, 내가 얼마나 촌구석에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지금은 이 정도지만, 나중에는 좀 더 멀리까지 나와볼 거다. 월급 주는 직장 상사 소원이라는데 들어줘야지, 뭐 어떻게 해.

“지금도 제 집 가고 싶으십니까? 점장님?”

“가보고야 싶지. 데려가 줄 거야?”

“아뇨. 저 손 놓칠까 봐 무서워 죽겠으니까, 일단 들어가십쇼. 점장님.”

* * *

다시 매장에 돌아와, 이미 합의 본 내용을 재조정했다. 다음엔 좀 더 준비해서 제대로 된 때에 와보자.

“손잡은 채로 지하철 타고 버스 탈 수는 없으니까, 나중에 확신 생길 때 다시 와 봅시다. 점장님.”

“찬이가 체질 더 잘 다루게 될 때?”

“예. 그게 언제가 될진 잘 모르겠지만….”

“언제라도 괜찮아. 우리 오래 볼 거잖아.”

말하며 자기 스커트에 땀을 슥슥 닦는다. 세 발자국짜리 나들이이긴 해도 아무튼 나왔다는 사실이 중요했던 건지, 아까의 아쉬워하는 느낌은 싹 씻겨 사라져 있었다.

블라인드 줄을 부여잡고 내리려다, 동작을 멈추고는 떠올랐다는 듯이 말해왔다.

“그리고, 이 경험으로 하나 알게 된 것도 있구 말야.”

“어… 이 앞에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거 말씀하시는 거죠.”

“응. 찬이, 살면서 마법 외에 다른 것도 지워본 적 있어?”

없다. 집안 마이너스 통장이라면 죽어라고 지워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체질이고 자시고 믹서기에 수명 갈아보니까 어떻게든 해결되던데?

“저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긴 한데요….”

“그럼 마법이라 치구, 저 벽을 찬이가 내 손 잡아서 같이 나갈 수 있게 해줬잖아. 그럼 이것도 마법이라 봐도 되지 않을까?”

다소 비약이 섞인 결론이기는 했다. 나는 마법보다는 좀 더 신기한, 그러니까. 두 세상의 존재를 아는 동시에 할 짓이라고는 더럽게 없는 어떤….

“신을 얘기하는 거면, 난 아니라 생각해.”

“뭔가 확신이 있으신 거예요?”

“이게 신이 관련되어 있는 일이면, 분명 우릴 좀 더 일찍 만나게 해줬을 테니까.”

“…….”

“내가 신이었으면 그렇게 했어.”

이 말을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하게 해왔는데, 내가 점장만큼 진지하게 생각하고 한 말이 아니라 차마 대꾸를 못 하겠다. 적당히 받아줬다.

“뭐… 이제라도 만난 게 어딥니까.”

“찬이는 신을 믿어?”

“반반이에요. 저는 직접 만나본 상대 아니면 안 믿지만, 주변에 하도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저 사람들이 근거 없이 저러는 건 아니겠지―’ 생각하고 존중해 주는 정도.”

“뭔가 찬이답네. 어쨌든….”

말을 늘이고는, 정문의 보이지 않는 벽을 지그시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마법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요소는 하나도 없구, 마력도 전혀 안 느껴지긴 하지만… 감추는 방법이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

“예를 들면요?”

“밤에 찬이 오면 말해줄게. 일단 들어가, 찬아.”

“제가 어딜 들어갑니, 지금 퇴근하라는 얘기세요?”

“응. 찬이, 지금 일하면 바이오리듬 꼬일 거 아냐.”

난 내 바이오리듬보다 점장이 더 걱정이다. 내가 오후 4시부터 오전 7시까지를 꼬박 잠들었고, 그 시간 동안 매장 지킨 게 점장이잖은가.

“내 걱정 하지 말구, 얼른… 아. 맞다.”

블라인드를 치다 말고는 카운터로 돌아가, 내 폰을 만지작거리는 점장. 그러다 얼굴이 살짝 밝아져서는, 화면을 꾹꾹 누르며 내게 돌아와 내밀었다.

“입금 잘 됐다. 찬이 월급.”

“끼얏호오오우!!”

드디어! 드디어!!

내가 한 달 동안 진상들 받고, 자격증 따겠다고 ATM 패대기치는 꼴도 보고, 빗물에 떠내려도 가보고 해저 탐사도 하고 게이트핵이 꼬나보는 시선도 다 보긴 했지만, 드디어!

드디어 첫 월급이 들어왔다. 해냈어, 해냈다고!

“얼마쯤 들어왔습니까. 30일 12시간 꼬박 일했고, 세금 3.3% 떼면 대충―”

“그중 8시간은 야간수당. 4시간은 주간수당에 둘 다 주휴수당 계산했구, 그동안 찬이 안 먹은 식비에 창고에서 일해준 것도 같이 계산했으니까….”

753만 원.

내 계좌에 753만이 꽂혀있었다. 점장을 바라보니, 점장이 싱긋 웃고는 대꾸해줬다.

“3만 원은 찬이 치킨 시켜 먹으라고 따로 보냈어.”

“…….”

“오늘 고마웠어, 찬아. 밤에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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