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다 (5)
* * *
생각이 있겠냐고. 아니, 이런 곳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
“입지도 출퇴근까지 도보로 5분이면 충분하니, 이곳보다 당신에게 더 잘 맞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학원지구에서 여기까지 지하철 타고 4, 50분인데 어떻게 도보로 5분 만에 출퇴근을 해요?”
“그거야, 직장을 옮기면 되는 일입니다.”
“아. 안 가요, 안 가.”
아예 손사래까지 쳐 줬다. 이 교수 양반이 날 자기 밑에 두고 부려 보겠다는 꿈을 아직도 포기 안 한 모양인데, 이게 다 서로를 위해서 이러는 거다. 난 영문장 한 줄만 봐도 멀미가 나는 놈이라니까?
그런 놈한테 이 세상 논문 쥐여줘 봐야, 논문 귀퉁이에 낙서로 애니메이션 만들어 제출하는 게 고작일 거다. 그걸 모를 양반도 아니면서 왜 툭하면 조교수 영업을 해대는 건지….
내가 질색을 하는 반면, 교수는 예상한 반응이라는 듯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 날카로운 눈으로 날 잠깐 내려다보다, 평탄한 어조로 마저 말을 잇는다.
“굳이 학원지구 내부 기숙사가 아니더라도, 당신 자격증을 출입증 삼아 거주할 수 있는 시설이 몇 군데 있을 겁니다.”
“그런 곳이면 단체생활 해야 되는 거죠? 다른 반마법사분들도 같이 계실 텐데.”
“그렇겠죠.”
이것도 썩 안 내킨다. 오크, 드워프랑 같은 식탁에서 아침 먹고, 시간 나눠 세탁기 돌려쓸 상황 자체가 전혀 상상이 안 돼.
“…고민 좀 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살 곳을 아예 못 찾았을 때의 차선책 정도는 될 것 같다. 내가 단체생활을 싫어하긴 해도, 찜질방에서 2―3주씩 묵을 수도 없는 거니까.
생각하는 도중, 교수가 내밀고 있던 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별생각 없이 확인해 봤는데, ‘마법청 차장’이라 적혀 있었다.
벨소리가 울리는 폰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다 통화 거부 버튼을 누르고는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는 교수. 그러고는 내게 물었다.
“외에 궁금한 점 있습니까.”
“어… 그런데 방금 전화 받으셔야 했던 거 아니에요?”
“무슨 말 해 올지를 아니 굳이 받지도 않았습니다.”
참 신박한 통화방식을 다 본다. 말하면서 눈매가 살짝 찌푸려진 걸 보면, 그 차장 양반이 교수한테 달갑지는 않은 인물인 듯하다.
“그것 말고는 없습니까?”
“사실 다른 것도 하나 있긴 합니다.”
이건 편의점 직원으로서의 질문이다. 지금 거리에 행인이 하나도 없다.
이번 게이트 건으로 이 세상 이종족들이 나돌아다니기를 꺼리는 탓도 있겠지만, 솔직히 거리 꼴 자체가 걸어 다니기 싫게 생겼다.
온통 진흙탕에, 길 건너 점포 중에는 아직도 입간판이 자빠져 있는 게 몇 돼서였다. 버스정류장의 LED 광고판은 물을 한번 먹어서인지 흐릿하고.
이것들이 좀 치워진 뒤에야 거리에 다시 행인들이 많아질 것 같다. 묻자, 교수가 한 치의 주저 없이 대답해왔다.
“늦습니다. 관공서, 주요시설, 인구 밀집 지역 등 수습해야 할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들도 여기랑 상황이 비슷한가 봐요.”
오늘 새벽에 점장과 봤던 뉴스 영상을 떠올려봤다. 집채만 한 닭이 치킨집 지붕 위로 올라가 목이 터져라고 울어대고 있었다.
그 닭 잡으면서 휘날렸을 깃털 치우는 데만 해도 한세월이 걸릴 테고, 다른 곳들이라 해서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 여긴 자동차 박살 난 곳은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봐야 하나.
“예. 이곳이 수습되기까지는… 길면 2주 정도 걸릴 겁니다.”
당분간은 매출에 뚫린 구멍이 계속 커지기만 할 것 같다. 점장은 간간이 손님이 온다고는 했지만, 그건 이 말을 아직 못 들었으니 할 수 있었던 말이겠지….
“다른 건 없습니까?”
“…예. 없어요.”
“그럼, 제가 궁금한 것 하나만 묻고 가 보겠습니다.”
“어떤 거요?”
“당신, 매장 업주님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들은 직후엔 뭐 이런 걸 묻나 싶어 바로 대답을 못 했다. 업주랑 직원이면 업주랑 직원인 거지, 이런 걸 굳이 왜 물어보는 거야?
“업주님에 대해 아는 게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 겁니다.”
“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쇼. 거주지가 궁금하신 건지, 연령이 궁금하신 건지….”
“…흠.”
이렇게 예시를 들어도 반응을 안 하는 걸 보면 따로 궁금한 게 있는 모양인데, 정확히 어떤 게 궁금한 건지를 물어봐야 대답을 해주든 말든… 아.
아까 봤던 광경이 떠오른다. 고개 빳빳한 걸로는 둘째라면 서러울 양반이 점장에게는 격식이란 격식은 다 차리던 거.
교수가 편의점 들를 때마다 모든 편돌이에게 이렇게 격식을 차리지도 않을 테니,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잠깐 말을 고른 뒤 대답했다.
“저는 따로 안 여쭤봤어요. 좋은 분이라는 것만 압니다.”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겁니까?”
“예. 저보다는 점장님께 직접 물어보시는 게 더 도움되실걸요? 내친김에 김밥이라도 좀 사 가시고.”
이 양반이 찾아온 게 오늘로 두 번째인데, 찾아와서는 늘 지 할 말만 하고 갔지 뭘 사 간 적이 없다. 여기가 편의점이지 만남의 광장은 아니잖아.
내친김에 매장 매출이나 좀 올려보자. 권하자, 편의점 안쪽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교수. 마침 카운터의 점장도 우리 쪽을 바라보던 중이었다.
교수와 눈이 마주치고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점장. 체감상 십 초가량 점장을 바라보던 교수가 고개만 살짝 꾸벅이고는 말해왔다.
“나중에 연락하겠습니다.”
그러고는 자기 차에 타서는 가 버렸는데, 대체 뭐가 궁금했던 건지가 짐작이 안 된다. 궁금해 죽겠지만 차마 본인한테 물어보기는 힘든 무언가?
차가 떠난 방향을 바라보고 있자니, 습기 머금은 바람이 훅 불어와 몸에 오한이 돋더라. 매장으로 들어가자마자 점장이 물었다.
“찬이, 얘기 잘하구 왔어?”
“예. 제 얘기는 잘했는데… 매장에 안 좋은 소식을 하나 듣고 왔습니다.”
“응?”
어리둥절해하는 점장에게 내 얘기, 집 얘기를 전부 꺼낸 뒤, 마지막으로 이 거리 치워지는 게 2주 뒤에나 이뤄질 것 같다고 말했다. 매장 매출에 드리워진 암운도 그때쯤 똑같이 치워질 테고.
점장이 침울해할 내용 같아 가능한 한 뒤로 미뤄서 말했는데, 정작 이 말을 들은 점장이 골똘히 생각에 잠길 뿐 별 반응이 없었다. 괜히 내 발이 저려져 점장을 불렀다.
“점장님?”
“…아, 응. 다른 거는?”
“이게 제일 중요한 내용 같아서 다른 건 따로 안 물어봤습니다. 그다음에는 바쁘다고 차 타고 가버렸고요. 왜요?”
“그게, 교수님께서 나를 좀 뚫어져라 쳐다보시는 것 같더라구. 혹시나 싶어서.”
확실히 점장에 대해 궁금한 게 꽤 많은 눈치이긴 했다. 근데, 이걸 내가 말하는 게 맞나 싶다. 교수가 점장에게 차마 못 물을 걸 내게 대신 묻는 눈치였으니까.
고민하다, 가능한 사견 없이 겪은 그대로 말했다. 점장이 당사자니 점장도 알아는 둬야지.
“예. 궁금해하는 것 같긴 했습니다.”
“어떤 게?”
“그건 말을 안 하더라고요. 저랑 점장님께서 어떤 관계냐든가, 점장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냐든가.”
“으음….”
팔짱을 낀 점장이 표정을 바꾸지는 않았다. 어리둥절해하는 얼굴 그대로였지만, 점장을 꽤 오래 봐 와서인지 이 모습이 지금은 살짝 다르게 보이더라.
뭘 궁금해하는지를 몰라서가 아니라, 그러니까….
“…그분이 찬이한테 그런 걸 왜 여쭤보신 걸까?”
그걸 왜 궁금해하는지가 역으로 궁금하다는 얼굴이다. 방금 말을 듣고 나서 확신했다. 점장이 말을 돌릴 때의 살짝 가라앉은 그 어조야.
나도 바로 말을 돌렸다.
“점장님께서는 기억 못 해도, 교수는 따로 기억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점장님 은퇴하시기 전에 이런저런 일 많이 하셨었으니까―”
“찬이는.”
“…예.”
“찬이는 나한테 궁금한 거 없어?”
산더미처럼 있다. 그중 하나가, 점장이 편의점을 하고 있는 이유.
외에도 은퇴한 이유라든가, 해 온 일이 그렇게 많으면서도 얼굴에 주름 한 줄 없는 이유라든가, 액면이 아닌 실제 나이가 얼마인가 같은 것.
그리고, 점장 이름. 내가 여기서 만난 손님들 이름을 전부 알게 됐지만, 정작 제일 많이 봐 온 사람 이름을 모르고 있다. 이걸 지금 물어보면 대답을 해줄까.
눈을 바라봤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점장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전혀 짐작되지 않는다. 잠깐 고민하다 대안을 떠올렸다.
“예를 들면요?”
점장이 자기 얘기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편의점을 하는 이유나 나이는 몇 번 에둘러 물어봤고, 늘 에두른 대답이 돌아왔었으니까.
그러니 억지로 물을 생각은 없다. 딱 예시를 들어주는 것만 묻겠다. 말하자, 점장 입술이 잠깐 벌어졌다가….
시선을 살짝 내리깔았다. 대답해오는 목소리가 침울하다.
“그냥, 이런 거 말 안 하는 이유라든가.”
어떤 것도 말해줄 수가 없는 모양이다. 딱히 신경은 안 쓴다.
“교수가 저한테 점장님에 대해 물었을 때, 딱 이 한마디만 하고 말았습니다. 좋은 분이라고.”
“…응.”
“전 그거면 됐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십쇼.”
당장 나조차도 내 얘기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어른이 되어 살아온 삶, 죽어라고 일해 온 것들, 그 과정에서 겪었던 몇몇 일들.
그 모든 게 한마디로 정리가 된다. ‘그냥 일만 했어요.’
구식 기계처럼 살아 온 10년이 고작 1초, 겨우 세 어절로 짤막하게 정리된다는 거다. 그래서 싫다. 그리고, 내가 싫은 짓을 남한테 억지로 시킬 생각도 없다.
그러니, 가만히 기다릴란다. 나한테 말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그때면 테이블에는 오징어 다리 약간, 피처 맥주 한 병과 잔 두 개가 놓여있겠지.
그래도 점장 침울한 표정이 가시질 않아, 몰래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9시 30분이다.
“오늘은 좀 일찍 교대하시죠, 점장님. 근무도 엄청 오래 하셨는데.”
방금 대화로 생각이 깊어진 건지 고개만 작게 끄덕인다. 인수인계 사항으로는 오늘은 한적하다, 6월 신상품 라벨은 조만간 배송 올 거다, 두 가지.
짤막하게 마친 뒤, 담배를 세던 도중 점장이 등 뒤에서 말해왔다.
“나 은퇴한 건 알지, 찬아. 마법사.”
“예. 알죠.”
“조용히 지내고 싶어서 은퇴했어. 내가 한 일로 날 싫어하는 분들이 좀 많았거든.”
점장이 어디서 미움을 받을 사람이 결코 아닌데 말이다. 이유가 뭘까.
떠오르려는 의문을 머리 긁적여 털어낸 뒤, 받은 만큼 되돌려줬다.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점장님.”
“응. 수고해, 찬이.”
* * *
오후 9시 반부터 오전 9시까지 20만 원 팔았다. 평소의 반도 안 된다.
핵심 게이트가 이 세상에 남긴 여파가 어느 정도인지를 여실히 체감할 수 있는 매출이었다. 매출 외에도 여러 가지 사례가 있기는 했는데, 예를 들면….
“진열대에는 안 보여서 그러는데, 혹시 라면 남은 것 있나요?”
“아침에 해 뜨자마자 다 팔려서 없고, 내일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라면이 불티나게 팔렸는데, 이유는 짐작이 갔다. 이 거리보다 낮은 지대에서 살던 양반들 집은 다 물에 잠겼을 거 아냐. 쌀도 마찬가지일 거고.
때문에 당장 먹을 게 없어서인지, 쉽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을 찾는 손님들이 꽤 됐었다. 손님들 몰골도 말이 아니었던지라 돌려보내는 내가 괜히 다 미안해지더라.
외에는 높은 지대에 살았던 듯한 직장인들. 먹고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매장에 찾아온 건 똑같았으나, 간간이 중얼거리는 내용들이 꽤나 귀에 밟혔다.
“젠장, 그동안 일 안 해서 좋았는데 말야….”
“그러게 말야. 비 더 안 내리나.”
양복 입은 고블린 둘이 더 이상 합법적 유급휴가로 꿀을 빨 수 없게 된 게 아쉬운 건지, 담배 한 갑씩 사 들고 나가면서는 이런 말을 중얼거리더라고.
집이 물에 잠겨서 라면 사러 오는 손님들도 있는 판국에 잘도 저런 말이 나오나 싶었으나, 억지로 이해를 하려면 이해는 됐다. 지들이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일 테니까.
마찬가지로, 그게 지금 할 소리냐며 집단린치를 당하든 말든 나와 상관없는 얘기기도 했고. 여하튼 몇 번은 속이 가라앉고, 몇 번은 속이 근질거리는 말도 들어가며….
9시가 됐고, 제법 되던 행인들이 귀신같이 사라졌다.
딱 필요한 만큼만 밖에 나가 있겠다는 집단심리가 반영된 결과일 터다. 출근은 필수여도 외출은 선택이잖은가. 날씨도 아직 꿀꿀하고.
담배도 많이 팔린 게 아니어서, 30분가량 담배 세고 바닥에 묻은 진흙들을 닦아낸 뒤엔 할 짓이 없어졌다. 그대로 카운터에 앉아 뉴스라도 들여다보고 있을까 생각하던 즈음―
― 짤랑.
벨이 울리고, 반가운 손님이 한 명 왔다.
“어서 오세… 이야, 진짜 오랜만이다, 하나야.”
“안녕하새여, 아조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