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편돌이-156화 (157/201)

156화. 앞발은 무겁게, 뒷발은 가볍게 (1)

* * *

저 도베르만이 인도 한복판에 또아리를 틀고 웅크린 상태다. 바라보는 도중에도 고개만 들어 하품을 하고, 입맛을 다셔대는 게 무척 여유로워 보인다.

그러다 우리 둘과 시선이 마주쳤는데, 우릴 지그시 바라보던 놈이 콧방귀를 한 번 뀌고는 다시 자기 품에 얼굴을 파묻더라.

그러면서도 한쪽 눈은 우리 쪽으로 고정된 채다. 저 도베르만이 어떤 무리 소속인지를 알고 있어서인가, 저 시선이 내게는 살짝 불쾌하게 느껴졌다.

저놈이 우릴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나는 하나대로 저놈이 저러고 있는 게 의아한지, 날 올려다보고는 물었다.

“저 껌은 멍뭉이, 왜 저런 대에 엎드려 있는 걸까여? 다치면 어쩌려구.”

“다치진 않을걸? 거리에 우리 둘밖에 없잖냐.”

“그러킨 해두….”

행인이 없으니 발이나 자전거 바퀴에 챌 일도, 맹견이라며 신고를 당할 일도 없다. 저놈도 그걸 아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엎드려 있는 걸 테고.

“그래두, 바닥에 진흑도 엄청 만은대.”

“그러게.”

공원 벤치나 잔디에 안 있고 왜 밖에서 저러고 있는가, 이유가 어렴풋이 떠오르기는 한다. 이게 맞으면 그건 그것대로 나한테는 문제지만 말야….

“…일단 멍멍이 녀석부터 찾고, 걔 밥부터 좀 먹이고 보자.”

“헉. 멍멍이, 밥 못 먹엇서여?”

“내 생각엔 그래. 이 공원도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다.”

시민공원 안으로 들어와, 계속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공원도 거리와 마찬가지로 온 사방이 진흙과 물웅덩이로 가득하다.

간간이 보이는 자판기들은 물에 잠겼던 건지 죄다 불이 꺼져 있고, 그 옆에 세워진 쓰레기통은 깡통 하나 없이 텅텅 비어있다. 쓰레기들마저 죄다 떠내려갔나 보다.

마저 걸어 공원 중앙에 위치한 분수대에 도착했는데, 여기는 여기대로 상황이 꽤나 기묘했다.

“와. 멍뭉이들이 엄청 만아여, 아조씨. 죄다 까맣구.”

작동을 멈춘 분수대 위에 도베르만 십수 마리가 무리를 짓고 모여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는 가운데의 한 마리를 나머지 도베르만들이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다.

쟤넨 또 왜 저러고 있나 싶어 가만히 지켜봤더니, 잠시 후에 가운데의 도베르만 한 마리가 한쪽 앞발을 탁 딛고는 크게 울음소리를 내더라.

― 컹, 컹!

울음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다른 도베르만들이 일제히 흩어졌고, 가려져 있던 놈의 모습이 드러났다. 온몸에 온통 상처가 가득하긴 했으나, 서 있는 자태가 위풍당당하다.

“으으. 저 멍뭉이는 괴롭힘을 만이 받았나 바여….”

“괴롭힘을 받은 게 아니라, 많이 싸우고 많이 이겨서 저렇게 된 걸 거야. 대장 말야.”

“정말여? 저 멍뭉이가?”

“내 눈엔 그렇게 보인다. 지금은 부하들 시켜서 뭘 찾고 있는 거고.”

“어뜬 걸 찾아여?”

“그건 나도 모르겠다.”

모른다고 대답하긴 했지만, 왠지 저놈이 뭘 찾고 있는 건지를 알 것 같다. 이게 내 피해망상이면 다행일 텐데 말야….

혹시 모르니 좀 서두르는 게 좋아 보인다. 바로 하나에게 물었다.

“하나야.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이상한 거 본 거 있어?”

“내?”

“그… 마력 같은 거라든가.”

잠깐 걸어 보고 느낀 게, 이 공원이 생각 이상으로 넓다. 일단 걸으면서 둘러보자는 생각에 분수대 있는 곳까지 와 보기는 했는데….

마냥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니, 편법을 한번 써 볼 생각이다. 전에 핵심 게이트를 찾을 때, 하나가 마력이 모인 곳을 감지해 내게 알려줬던 적이 있다.

멍멍이 녀석도 몸에 마력 비스무리한 게 있으니,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대략적인 방향은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묻자, 하나가 한번 고개를 갸우뚱했다.

“으음….”

잠깐 고민하는 듯하다, 내 오른편을 바라보며 느릿느릿 꼬리 끝을 흐느적거린다. 말하는 자기도 헷갈린다는 어투였다.

“쩌어기… 멀리. 아주 멀지는 않구.”

“저쪽에 뭐가 있는데?”

“하얀색 큰 거랑, 알록달록한 거 여러 개. 근대, 막 엄청 흔들거려여.”

듣는 나도 헷갈린다. 하얀색 큰 거가 멍멍이라고 치면, 알록달록한 거 여러 개는 뭐고 흔들거리는 건 또 뭐야. 이 녀석이 지금 혼자 있는 게 아니라는 건가?

이 하얀색 마력이 멍멍이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뭐든 간에 근거 없이 돌아다니는 것보단 이게 낫다. 하나에게 안내를 부탁한 뒤, 따라서 걷기를 5분.

한 공용화장실 건물에 도착했는데, 화장실 내부에서 웬 겁에 질린 개 울음소리가 잔뜩 들려오고 있다. 그 뒤로는 말소리.

― 끼잉… 끄으응.

― 으르르….

― 캥, 캥!

― 그건 본견도 알고 있소. 하지만―

내비게이션 성능 확실하네. 하나가 건물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해하고 있길래, 얼른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덕분에 제대로 찾아온 것 같다.”

“내. 근대여, 아조씨. 멍멍이가 왜 화장실애 잇는 걸까여?”

“어… 글쎄?”

“휴지가 업나?”

그건 지금부터 알아봐야지. 건물에 좀 더 가까이 가보니, 이 소리들이 남자화장실 안에서 나고 있다. 이놈이 그래도 수컷이라고 남자화장실에 들어가 버린 것 같다.

“하나야. 얘 데리고 나올 테니까,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고개 끄덕이는 걸 확인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맨 처음으로 보인 게, 등을 돌리고 있는 개들 여러 마리.

푸들, 알래스카 맬러뮤트, 삽살개 등으로 견종이 다양했다. 공통점이라면 모두 똑같이 꼬랑지를 말고 있다는 것, 멍멍이가 하는 말에 대꾸하는 울음소리에 힘이 없다는 것.

그리고 멍멍이가 화장실 벽을 등진 채 이쪽 방향을 보고 있는데, 진창에서 몇 번 구르기라도 한 건지 온몸의 털이 진흙으로 뭉쳐 엉망이었다.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내가 안 보이는 건지, 계속해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멍멍이.

“다들, 이대로 굴복하면 끝이라는 걸 잘 알고 있잖소이까. 그렇지 않소?”

“끼잉, 끼이잉. 헥헥.”

“무서워하는 것도 십분 이해하오, 삽살 나으리. 허나,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있는다고 달라지는 것도―”

“야, 멍멍아.”

길어질 것 같아 목소리를 좀 낮춰 불렀다. 말하던 멍멍이가 곧바로 쭈뼛 고개를 들고는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안 그래도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는 당황하며 외쳐왔다.

“사, 사장님. 이 먼 곳까지는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이오?”

“그리 멀지도 않더만, 뭐. 지금 많이 바쁘냐?”

이 대화 후에야 출입구를 등지고 있던 개들이 날 돌아보았는데, 죄다 얼굴이 핼쑥한 게 며칠은 굶은 몰골들이다.

요 며칠은 거리 자체가 난리였으니 아예 먹을 걸 구할 수가 없었을 테고… 방금 얘기한 내용대로면, 오늘은 오늘대로 사연이 있는 듯하고.

낯선 사람과 마주치고도 아무 움직임을 안 보이는 걸 보면, 굶은 탓에 도망칠 기운조차 없는 것 같다. 개들을 눈으로 슬쩍 훑던 멍멍이가 재빨리 말해왔다.

“다들 안심하셔도 좋소이다. 저분이 본견이 자주 말했던 그분이거든.”

멍멍이의 말에 나란히 몸을 돌려 앉아서는, 저마다 한마디씩을 내게 말해왔다.

“왈, 왈!”

“헥, 헥. 끼잉.”

“으르릉….”

“우프.”

난 뭔 소린지 하나도 못 알아먹겠다. 내 눈치를 보던 멍멍이가 개들이 했던 말들을 하나하나 전부 통역해줬다.

“이 진도 나으리께서는, 매일 햄버거를 제공해 주신다는 게 무척 굉장하다고 말해주셨소이다.”

“그러냐…?”

“그렇소이다. 그리고 이 삽살 나으리께서는, 다 좋으니 자길 유기견 센터에 넘기지만은 말아 달라고 하셨고.”

“허어….”

이놈들 경제적 기준이나 사연이 쌍으로 불쌍하긴 했지만, 내가 지금 이걸 듣겠다고 온 게 아니다.

“이 푸들 나으리께서는, 사장님을 결코 믿지 않겠다고 하셨소이다.”

“내가 뭘 어쨌다고?”

“마음의 상처가 깊으신 분이니 양해해 주시구려. 사장님. 그리고, 이 맬러뮤트 나으리가 하신 말씀은… 혹시 매장에 개껌이 있소?”

“돈 주면 팔아 줄 수는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습식 사료라도 좀 챙겨올 걸 그랬다. 이 상황이 하도 부담스러워서 아예 멍멍이한테 손짓을 해 봤다.

“야, 멍멍아. 바쁜 거 아니면 나가서 좀 얘기하자. 밖에 하나 기다리고 있거든?”

“뭣이? 하나 아가씨도 여기 계신단 말이오?”

“니 걱정 많이 하길래 같이 와 봤다. 니 여기 있는 것도 걔가 알려준 거야.”

내 말에 쪼르르 발치까지 달려와서는, 출입구 밖으로 빼꼼 고개만 내밀어 주변을 둘러보는 멍멍이.

그러다 이쪽을 바라보던 하나와 눈을 마주치자, 못 이기겠다는 듯 고개를 떨구고는 터벅터벅 하나를 향해 걸어가 털썩 주저앉았다.

“…안녕하시오, 하나 아가씨.”

“응. 엄청 안녕.”

그러고는 몸을 숙이고 앉은 하나가 멍멍이를 품에 안아 들어 꼭 껴안는다. 우비 앞이 순식간에 진흙 범벅이 되어버렸으나,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싱글벙글한 얼굴이다.

“멍뭉이는 잘 지냈서?”

“본견이야 물론 잘 지냈….”

미처 대답을 마치기도 전에, 멍멍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눈이 커진 하나가 멍멍이를 내려다보다, 살포시 내려놓고는 말했다.

“멍뭉아. 우리 이따가 같이 쪼꼬렛 먹자.”

“강아지는 초콜렛 먹으면 안 된다, 하나야. 큰일 나.”

“내?? 진짜여??”

“그게 참말이오, 사장님?”

“어. 초콜렛 먹으면, 과산화수소 먹어서라도 전부 게워내야 돼.”

“과산화수소는 무엇이외까. 스테이크 같은 것이오?”

“그 소가 그 소가 아니야, 인마. 여튼….”

얘기가 딴 데로 새는 것 같아 주제를 바꿨다. 공원에 대체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며, 늬들은 왜 죄다 남자화장실에 숨어 있던 거냐.

묻자, 멍멍이가 차마 대답은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꼬리나 귀가 바닥, 머리에 바싹 붙어버린 게 여태 봐온 것들 중 제일 좌절감 가득한 모습이다.

그러고는 한마디.

“이 공원은 이제 명이 다했소.”

이러고는 설명을 시작했는데, 이틀 동안 이 거리에 행인이 단 한 명도 오질 않았다고 한다. 먹고 버려지는 음식이 없었다는 뜻이다.

때문에 캠핑장 같은 핫플레이스를 본거지로 삼던 흑풍파며, 공원 구석에서 근근이 먹고 살던 떠돌이견들이며 구분 없이 똑같이 굶어가고 있는 게 현 상황.

“이대로면 다 같이 공멸할 판이라, 본견이 흑풍파 대장인 검은 흑풍을 찾아가 말했소이다. 일이 이렇게 된 거, 먹고살 길을 찾아봐야 하지 않겠냐고. 헌데….”

“헌데?”

“검은 흑풍은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 뭐요.”

공원에 먹을 게 없다. 그럼 먹을 입을 줄이면 되겠네?

라는 독재자스러운 발상으로 공원의 떠돌이견들을 죄다 밖으로 쫓아내고 있고,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게 화장실에 모여 있는 저 녀석들이라는 것이다.

“이곳에 숨어있을 수 있는 것도 잠깐뿐일 것 같소. 이곳이 벌써 세 번째 화장실이고, 수십 마리가 넘던 머릿수가 이젠 고작 다섯이 되어버렸으니 말이오.”

“흠….”

듣자마자 떠오른 생각은, 이게 이렇게 심각한 일인지를 잘 모르겠다는 거다. 조만간 이 공원도 유지보수를 할 테고, 그때면 전부 정상으로 되돌아가는 거 아닌가?

특히 요 며칠간은 비 때문에 밖에 나가서 놀질 못했으니, 정상이 되고 나면 그간 산책을 못 했던 행인들이 열이 받아서라도 공원으로 뛰쳐나올 거다. 그때면 먹을거리도 넘쳐나게 될 테고.

허나, 이 녀석들이 이런 내용을 당연히 알 리가 없다. 며칠 전에는 비도 무진장 내렸고, 그 이후로는 손님이 없었으니 ‘공원 망했다―’라고 생각할 법도 해.

나도 떠돌이견 사회에 대해 아는 게 없기도 했고 말이다. 한번 쫓겨나고 나면 다신 못 들어가는 법이라도 있는 거겠지. 모르는 척 마저 물었다.

“아까 대충 들어보니까, 멍멍이 너는 공원 상황을 어떻게든 해보고 싶은 눈치던데 말야.”

“그렇소.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당장 본견도 묵을 곳을 새로 찾아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리니.”

“너 뭐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묻자, 한참 대답이 없던 멍멍이가 이를 악물고는 읊조려왔다.

“딱 한 번, 딱 한 번만 더 맞서 싸워보려 하오. 흑풍파 녀석들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