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집 구하러 왔는데요 (2)
* * *
역에 도착해 내린 뒤, 밖으로 나와 가장 가까운 카페로 들어갔다. 자격증 시험 치를 때, 누나가 아메리카노 홀짝이고 있던 그곳이다.
학교가 수업시간이어서인지, 아니면 게이트로 내려진 휴교 조치가 아직 안 끝나서인지는 몰라도 손님이 별로 없더라.
그래도 난 구석이 좋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해 구석진 자리에 앉아, 점장에게 내 판단에 대한 근거를 최대한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지금 눈앞에 두 개의 원룸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점장님. 평수는 8평으로 동일한데 한 곳은 단층, 한 곳은 복층 원룸이고, 월세는 관리비 포함 3만 원 차이고.”
[ 그렇게 얘기하니까 꼭 사회실험 같다, 찬아. ]
“어려운 사회실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쓸 수 있는 공간이 1.5배 늘어나는 거잖아요.”
물론 복층 구조의 단점이야 나도 알고 있다. 단층 원룸에 비해 위아래 공간이 넓고, 데우거나 식혀야 할 내부 공기도 그만큼 많아진다. 냉난방비가 배로 들어간단 소리다.
외에도 계단을 오르내리기 귀찮다는 것, 복층이 위층에 가깝기 때문에 층간소음에 더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 막상 써먹으려면 어디에 써먹을지 난감하다는 것 등등.
하지만 이 모든 걸 상쇄하는 큰 장점이 있으니, 바로 내 집이 복층이 된다는 것이다. 무려 집 안에서 계단을 타고 오르내릴 수 있단 말야. 부르주아가 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니까?
[ 나도 그 마음은 잘 알지. 아는데,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래. ]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복층이 안 좋은 이유가 따로 있는 거예요?”
[ 그게,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긴 한데…. ]
“아유! 복층 살면 안 돼, 학생! 큰일 나.”
느닷없이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자, 생강차가 올려진 쟁반을 들고 가던 기니피그 코볼트 한 명이 내 등 뒤에 멈춰 선 상태였다.
앉아있는 나와 눈높이가 딱 맞는다. 근데 이 기니피그 대체 누구야?
“이 동네 복층이 말야, 오크들 지내던 곳을 복층으로 만든 곳이 많아서 그래. 오크들이 키가 내 세 배는 되잖아. 안 그래, 학생?”
“?”
“그런데 오크 애들이 아~주, 아~아주! 더럽게 살잖어. 벽지 한 겹 벗기면 온갖 얼룩 잔뜩 져 있고, 화장실 천장 열어보면 막 술병 떨어지고 그래. 이해했지?”
듣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럭저럭 연상이 되기는 했다. 오크들 평균 신장이 2.3m 정도로 꽤 큰 편이니, 그만큼 집도 내부 공간이 높은 곳이 필요할 것이다. 복층 집처럼.
때문에 복층으로 지어진 원룸들 대부분이 오크들이 지내던 곳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이 동네는 학교가 몰려 있는 만큼 특히 젊은 오크들이 많다.
그리고 젊은 오크들이 어떤 족속인가? 이건 나도 매장에서 직접 체험해 본 적이 있는지라 아주 잘 안다. 근데 이 기니피그 아줌마 진짜 누구야. 내가 아는 코볼트인가?
“총각 보니까 내 아들내미 생각이 나서, 걱정돼서 말해 봤지.”
“어… 감사합니다.”
“고맙긴 뭘. 커피 맛있게 먹어, 학생.”
이러고는 걸음을 옮겨 카페 2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올라가버렸다. 뒷모습을 바라보다, 폰에 대고 말했다.
“이쪽 동네 복층이 오크 애들 살던 곳을 개조한 거라 문제가 많다고 하네요.”
[ 응? 누가 말해줬어? ]
“그게, 지나가던 아주머니께서….”
지나가던 기니피그마저 기겁을 하며 말릴 정도니, 이 근방에서 복층 원룸을 구한다는 게 얼마나 무식한 짓인지는 잘 알겠다.
내 세상에서 가지고 지내던 기준만으로 집을 구한다는 게 마찬가지로 무식한 짓이라는 점도 잘 알겠고. 점장에게 다시 한번 물어봤다.
“혹시 더 알아두면 좋은 것들 있습니까? 점장님?”
[ 알아두면 좋은 거야 많긴 하지만, 집만 구하는 거라면… 나보다는 거기서 살아 본 사람이 더 잘 알지 않을까? 윤하라든가. ]
“예? 누나 이 근처 살았어요?”
[ 살았었지. 윤하가 고등학교를 거기서 나왔거든. ]
“아. 그럼 아예 누나한테 물어보고, 적당한 집 찾으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 바로 톡으로 누나한테 집 추천해 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답장이 오길 기다리던 도중, 해야 할 일이 하나 떠오르더라.
단골손님들한테 이사간다고 아직 말을 안 했다. 잠깐 고민하다, 그냥 단골들에게 문자 한 줄씩을 싹 돌렸다. ‘우리 매장 학원지구 쪽으로 이사 갑니다.’
이후, 주문한 커피를 절반쯤 마셨을 즈음 첫 답장이 왔다. 울프 어르신이셨다.
[ 그렇습니까? ]
[ 멀지는 않군요 ]
[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님 ]
바로 여쭤봤다.
[ 지금 쉬는 중이세요? ]
[ 예. 이 시간에는 반려와 꽃을 가꾸며 지내고는 합니다. ]
[ 손재주가 없어서 자주 꾸중을 듣기는 하지만 말이지요 ]
손재주가 없으시다는 것치고는 답장하시는 속도가 빠르신데 말야. 잠깐 고민하다, 마저 톡을 보냈다. 그 고생을 같이 했으니 이 정도는 여쭤봐도 되겠지.
[ 혹시 학원지구 쪽에서도 콜 받으십니까? ]
[ 아무렴요. 교직원분들이나 젊은 친구들 콜이 잦습니다 ]
바로 납득이 됐다. 학생들 많은 곳이니 뵐 기회가 적어질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점을 미처 생각 못 했네.
[ 사장님께서도 지금 쉬는 중 아니십니까? ]
[ 바쁘진 않은데, 알아봐야 할 게 있어서 잠깐 학원지구 쪽 와 있습니다 ]
[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
[ 근처에 원룸 알아보러 왔어요 ]
이 문자를 보내자, 수 초도 되지 않아서 답장이 왔다.
[ 혹시나 싶어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복층 원룸은 멀리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
뭐야. 난 복층 얘기는 한마디도 안 했는데?
[ 또, 수도 시설이 잘되어 있다고 적힌 곳도 멀리하시는 게 좋을 듯하고요 ]
[ 거긴 왜요? ]
[ 주로 해양생물 계통 코볼트분들을 위해 지어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자주 관리하지 않으면 쉽게 곰팡이가 슬어버리거든요 ]
[ 제 아들이 원룸을 구할 때 그런 곳에 들어갔다가, 호되게 당했다며 제게 하소연을 했던 게 떠올라 말씀드려 봤습니다 ]
읽은 뒤에는 달팽이나 복어, 두꺼비 같은 코볼트가 지내던 원룸을 잠깐 상상해봤다. 곰팡이 문제를 떠나, 바닷물 짠내가 진동할 것 같다.
[ 아. 사장님. 반려가 부르는군요,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 예. 조언 감사합니다, 어르신 ]
톡 창을 닫은 뒤, 어플의 찜 목록에서 수도시설을 장점으로 내세운 항목들을 삭제했다. 왜 이걸 강조해뒀나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구만….
찜 목록을 다 지운 직후, 다음 답장 알림이 왔다. 엘레나 양이었다.
[ 어…. ]
[ 어, 어디로요? ]
[ 학원지구 어디? ]
굳이 톡으로까지 말 더듬을 필요가 있나?
싶었으나, 이것도 바로 납득했다. 묘약 만드는 일을 같이 하는 중인데, 협업 도중에 대뜸 이사를 가 버린다 한 셈이니 충분히 당황할 만도 해.
[ 지하철역 바로 앞으로요. 멀진 않을걸요? ]
문자를 보내자, 읽는 것만으로 머릿속에 안도의 한숨 소리가 재생되게 만드는 답장이 왔다. 곧바로 세 줄 추가.
[ 휴…. ]
[ 다행이네요, 걸어서도 금방인 곳이에요. ]
[ 그런데, 이사는 갑자기 왜…? ]
[ 장사가 안 돼요, 장사가 ]
매장 내부상황을 고백하는 꼴이 되어 버리긴 했지만, 그냥 말했다. 편의점 앞 거리에 5분만 서 있어 보면 제대로 장사할 상황이 못 된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을 테니까.
[ 아으… 그럼 찬이 씨는 지금 쉬시는 거예요? ]
[ 저야 일은 안 하고 있죠. 야간근무인데 ]
[ 지금 집 구하는 중입니다 ]
엘레나 양이 2, 3년 전까지만 해도 대학생이었고 이 근방에서 대학을 다녔을 테니, 방을 구할 때의 팁 같은 것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말해오거든 진지하게 들을 생각으로 물었는데, 첫 문자로 이런 게 왔다.
[ 일단, 복층은 절대 안 돼요! ]
아니, 아까부터 묻지도 않은 걸 먼저들 말해오고 있다. 이 세상 이종족들한텐 복층 원룸이 거주해서는 안 되는 불가침 영역 같은 거라도 돼?
[ 너무 높은 건물도 비추. 딱 4층 이하 건물의 2, 3층에 있는 원룸을 추천드려요. ]
[ 하피나 조류 코볼트 애들이 고층 원룸을 좋아하거든요. ]
[ 걔네들이 학원지구 근처에서는 날아다니는 제한이 따로 없으니까, 문으로 안 다니고 창문으로 등하교를 하는데…. ]
[ 시끄럽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깃털이 엄청 날려요. 6월, 12월에는 털갈이 시즌이라 특히! ]
굳이 2, 3층을 추천해준 이유는, 혹시라도 그 건물에 하피가 거주할 경우엔 건물 앞에 깔린 깃털 치우는 일을 1층 거주민이 짬처리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란다.
전망이 어떠한지도 방 구하는 기준에 포함해 놨었는데, 이 얘기를 들으니 그럴 마음이 싹 사라졌다. 뭔 놈의 세상이 집 구하는 데 이렇게 고려할 게 많냐….
[ 나중에 참고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
[ 네! 찬이 씨, 집 구하시면 혹시 집들이 가도 되나요? ]
[ 어…. ]
이건 당장 대답하기가 좀 그랬다. 아니, 집에 의자고 테이블이고 생각해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집들이는 뭔 놈의 집들이야.
[ ㅠㅠ ]
[ …나중에 얘기하죠 ]
그래도 전에 나눴던 대화가 있는 만큼, 여지는 남겨놨다. 마침 다른 톡의 답장이 오기도 했고. 드디어 누나한테서 답장이 왔다.
[ 뭐야. 이찬 너도 이사 가? ]
[ 너도 이사 가냐는 건 뭐야. 우리 매장 이사 가는 거 누나도 알았어? ]
[ 그럼 모르겠냐? 난 물류 날라야 하는데 ]
[ 아하 ]
점장이 이사 결정한 걸 자기한테 제일 먼저 말해줬다고. 물류를 내가 직접 받는 게 아니다 보니, 가끔은 누나가 겸업이 아닌 평범한 A급 헌터라는 생각만 자꾸 하게 된다.
[ 아무튼 누나. 혹시 원룸 관해서 추천해 줄 만한 거 있음? ]
누나한테도 조언이나 들으려고 물어봤던 건데, 잠시 후에 누나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꺼내왔다.
[ 원룸은 모르겠고, 투룸은 막 매물로 나온 곳 하나 아는데 ]
[ 위치 알려줘? ]
* * *
처음엔 부정적이었다. 방이 따블이면 보증금도, 집세도 똑같이 따블일 거잖은가. 전 재산 올인하고 나면 밥은 뭔 돈으로 먹어?
[ 거긴 보증금 안 내도 돼 ]
[ 월세 25 ]
[ 뭔 놈의 투룸이 그래. 골판지 박스 붙여놓은 곳이야? ]
라고 답장하면서도 내 몸은 솔직했고, 정신 차리고 보니 다 먹은 커피컵을 정리한 뒤 카페를 나서고 있었다. 누나가 내게 허위매물을 알려줄 사람은 아니잖은가.
그래도 의심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어서, 누나가 일러준 주소로 향하는 동안 떠오르는 것들을 죄다 물어봤다.
[ 거기 복층이야? ]
[ 단층 투룸인데. 왜, 니 복층 살고 싶냐? ]
[ 아니. 그럼 거기 몇 층인데? ]
[ 2층 ]
[ 수도시설이 막 지나치게 좋다거나 그러진 않고? ]
[ 돌아갈 것만 딱 돌아가는 정도. 야, 이찬. 내가 의심 가게 말을 하긴 했는데, 거기 위치도 괜찮고 주변 시끄럽지도 않아 ]
[ 그럼 그렇게 좋은 곳이 왜 갑자기 매물로 나온 거야? ]
누나 말대로 위치가 괜찮긴 했다. 역 근처 카페에서 목적지까지 딱 6분 걸리는 곳이었으니까. 내 물음에, 누나가 잠깐 동안 대답이 없었다.
[ 몰라 ]
그러고는 대뜸 이 답장을 보내왔는데, 도중에 걸음을 멈췄다. 매물로 나왔다는 건 아는데 왜 매물로 나왔는지는 몰라?
[ 그걸 집주인이 말을 안 해줬으니까 그렇지 ]
[ 아니, 왜? ]
[ 와 보면 안다나 뭐라나. 너 근처에 있다고 해서 말해 본 거니까, 가서 이상하다 싶으면 그냥 빠지든지 해 ]
[ 집주인한테 연락해 둔다. 근처 살고 있다 하니까 금방 갈 거야 ]
[ 어… 알았음 ]
벌써부터 수상한 냄새가 나긴 하지만, 어차피 근처니까 뭐….
일단은 알았다고 대답한 뒤, 마저 걸어 누나가 찍어준 위치의 건물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봤다. 일단 외벽은 깔끔하고, 차 빵빵대는 도로에서도 떨어져 있기도 하다. 조용하다.
“저기 말인데, 이번에 집 구하러 온 청년이오?”
건물을 아예 한 바퀴 빙 둘러보고 돌아오니, 건물 출입구 앞에 아까는 없던 원숭이 코볼트 한 명이 서 있더라고. 외견이며 말투며 나이가 꽤 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네. 제가 서윤하라는 이름의 인간 종족에게 추천을 받고 온 건데….”
“아. 헌터 사무소에서 왔나 보구먼.”
“예?”
“일단 들어가서 둘러보자고. 설명은 나중에 차근차근 해 줄텡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