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집 구하러 왔는데요 (4)
* * *
이후 마귀 들린 집에서 뭘 했느냐. 일단 거실에 누워서 잤다.
자고 일어난 후에야 내가 정신 나간 짓을 했단 걸 깨닫긴 했지만, 잠들기 직전까지는 이게 꽤 괜찮은 아이디어인 줄 알았다. 어차피 언젠가 여기서 잠을 자긴 자야 할 거 아닌가.
깨어 있는 동안 겪었던 현상 중에 무섭거나 위험한 것들도 없었고, 저녁까지만 있겠다는 말 뒤에 마귀 놈이 현관문을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도 봤었고.
다 떠나서, 바닥이 뜨셔서인지 졸음을 못 참겠더라. 그나마 문제라 부를 수 있는 일이 자고 일어난 밤에 발생했는데, 시간을 확인해 보니 8시 반.
샴푸고 비누고 아무것도 없으니 딱 세수만 하고 가자는 생각에 화장실 세면대 물을 틀었는데, 물 상태가 제멋대로였다. 물 온도를 손으로 체크할 때는 따듯했거든?
헌데 세수를 하려고 얼굴을 가져다 대기만 하면 물이 얼음장이 되어버리더라.
“아니, 씨.”
얼굴을 떼고 수도꼭지로 온도를 조절하면 물이 따듯해졌고, 다시 씻으려고 얼굴을 가져다 대면 또 물이 차가워진다. 몇 번 이 짓을 반복하다,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뒤 허공에 대고 물었다.
“이건 니가 날 싫어해서 하는 짓이냐, 아니면 여기 보일러가 원래 개판인 거냐?”
당연히 대답을 해 줄 리가 없었고, 욕지거리 몇 번 하고 그냥 밖으로 나왔다. 지하철 타고 매장으로 돌아가는 내내 폰만 들여다봤는데, 자는 사이에 답장톡이 몇 개 더 와있었다.
하나는 찰리 양반. 거지 같은 곳이니 살지 말라는 답장 뒤에 톡 몇 줄이 추가된 채였다.
[ 근처에 헬스장 있는 곳에서 살지도 마라 씹새야 ]
[ 아침저녁으로 개 짖는 소리 듣기 싫으면 ]
[ 학교 근처도 피하고 ]
[ 점심시간에 개 짖는 소리 듣기 싫으면 ]
[ 시발 ]
보고 나선 이 양반은 집 구하는 데에 개 짖는 소리 말고는 기준이 없나― 싶었으나, 내용 자체는 이해가 됐다.
코볼트들 목청이 나 사는 곳 인간들에 비해 훨씬 빵빵한 편이니, 염두에 두는 수준으로 그치지 말고 아예 피하라는 얘기겠지.
내가 구한 방 근처는 언급한 두 곳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이라 따로 대답은 안 했고, ‘혹시라도 매장 찾으시려면 학원지구 지하철역으로 오십쇼’라 적어 보내고 말았다.
읽었다는 표시는 떴는데, 이 양반이 답장을 안 하더라. 매장에 가는 마지막 노선으로 환승할 즈음, 경관으로부터 톡이 왔다. 이게 마지막이다.
[ 지금 확인했습니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
[ 전의 돈가방 건으로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위치를 알려 주신다면 나중에 찾아가겠습니다. ]
점장과 내가 각각 마법사와 반마법사 자격으로 협조하겠다 했으니, 그 일 때문에라도 계속 찾아오겠다는 얘기 같다. 근데, 경찰은 관할구역 같은 게 따로 있지 않나?
잠깐 생각하다, 경관에게도 학원지구 쪽 집 구하는 팁을 물어봤다. 관할구역이야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바로 답장이 왔다.
[ 치안을 걱정하시는 거라면 ]
[ 거주하시려는 곳 근방의 지구대. 혹은 파출소 내부를 한번 들어가 보십시오. ]
[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은 마법 관련해 급히 출동할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접수대 근처 가까운 곳에 마법 대응 보호복과 장비들이 걸려 있습니다 ]
뚫어져라 바라보다, ‘나중에 시도는 해 보겠습니다’라 보내고 말았다. 내가 그래도 애들 다니는 동네에 이사 오는 건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돼…?
답장을 마친 후엔 몇 안 되는 이종족 탑승객들 구경하기도 하고, 두어 번 노선 확인하고.
도착할 즈음 시간을 확인하니 9시 40분이었다. 편의점 쪽 출입구로 나와 쇼윈도 내부를 들여다봤는데, 매장 내부에 있는 게 단둘뿐이다. 점장과 멍멍이.
점장은 인수인계 준비를 하려는 건지 현금을 세는 중이었고, 멍멍이는 계산대 위의 쿠션 안에서 몸을 웅크린 채로 미동도 안 하고 있더라.
안으로 들어서자, 점장이 날 바라보고는 돈을 쥔 손을 그대로 흔들어왔다.
“찬아, 하이.”
“예, 점장님. 근데 멍멍이 이놈은 지금까지 계속 자고 있는 거예요?”
“응. 아까는 코도 골더라구.”
점장이 말하는 동시에, 쿠션 위에서 몸을 꼼지락대다 아예 배를 까고 발라당 누워버리는 멍멍이. 피곤하기만 할 뿐이지 몸 상태는 괜찮은가보다.
“쿠션은 원래 점장님 거고요?”
“아니? 매장에 있던 거 포장 뜯었지. 6천 원짜리.”
“이 녀석 햄버거 2.3개 값 정도 되네요.”
“그렇지. 애가 최근에 고생했으니까, 이번엔 특별히 반올림해 주려구.”
말에 웃음기가 섞인 게, 농담으로 하는 말이란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멍멍이 꼬리가 살랑거리는 걸 바라보던 점장이 내게 물었다.
“집은 잘 보구 왔어? 찬아?”
“예. 마음에 드는 집 한 군데 찾았는데, 문제가 하나 있어요. 사소한 거긴 한데….”
“어떤 문제?”
“그 집이 절 마음에 안 들어 해요.”
“?”
좀 더 자세히 말해 줬다. 말씀하신 대로 누나에게 집 구하는 걸 물어봤고, 투룸에 보증금 안 받는 월세 25만 원짜리를 한 곳 추천해 줘서 냉큼 둘러보러 갔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도 있는 만큼 당연히 문제가 있었는데, 그 집에 마귀가 들려 있더라. 그 마귀 놈이 천장 등 커버도 떨어트리고, 나 씻지도 못하게 하고 그랬다.
내 말을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점장이, 씻지도 못하게 했다는 대목에서는 잠깐 말을 끊고 내게 물었다.
“찬이가 씻으려고 하면 차가워지구, 안 씻으려 하면 물이 다시 따듯해졌다구?”
“그렇더라고요. 집 조건에 비하면 사소한 문제가 맞다는 생각이라, 나중에 원만하게 대화로 풀어보려고 생각 중입니다.”
반농담조로 해 본 말이었는데, 점장이 오히려 내 말에 동의를 해왔다.
“그럼 그렇게 해 봐, 찬아. 괜찮은 아이디어 같아.”
“예? 마귀랑 대화를 해 본다는 게요?”
“내 생각인데, 그거 마귀 아닐걸?”
이렇게 운을 떼고는 바로 설명하길, 마귀에게는 청각이나 시각을 담당하는 기관이 따로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집에 들린 놈은 내가 물 트는 것에 맞춰 물 온도를 바꾸기도 했고, 내 말을 듣고 현관문 움직이는 걸 멈추기도 했다.
“카메라나 마이크 같은 가전기기에 빙의해서 감각을 대체하는 경우가 있긴 한데, 화장실에 카메라가 있지는 않을 거잖아.”
“그건 제가 따로 확인해 보진 않았지만… 없겠죠. 아무래도.”
“그럼 마귀 아닌 거지, 뭐. 찬이 자고 나갈 때까지 아무 짓 안 한 거면, 정체는 몰라도 나름 상식이 있는 존재일 거구.”
“예를 들면요?”
“찬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구, 집주인에게 들키지 않을 만큼 은밀하게 행동할 수 있구, 염동력 계통의 마법을 쓸 수 있구, 나이는 꽤 어린 무언가.”
일어난 일만 놓고 보면 전부 말이 되는 얘기들이긴 했다. 딱 하나만 빼고.
“나이가 어린 건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야, 하는 짓이 애 같으니까. 집에서 누굴 쫓아내려면, 물 온도 조절하는 것보단 좀 더 과격한 방식이 있지 않아?”
“허어….”
그 집에서 살아야 하는 내 입장에선 공감하기 힘들 내용이긴 했지만, 다른 시선에서 보면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긴 하겠다. 나도 내 집에서 누굴 쫓아낸다면 경찰에 신고한다고 엄포부터 놓을 테니까….
“그래두 혹시 모르니까, 찬이 얘기할 때는 내가 중재인으로 같이 가봐야겠다.”
“안 그래도 그거 부탁드리려고 했습니다. 이게 대화로 해결 안 될 경우엔,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응. 마법은 못 써주더라도, 있어 보이는 말은 잔뜩 해 줄게.”
‘같이 간다’라는 전제가 우리 둘이 매장을 동시에 비울 수 있다는 전제가 깔린 말이긴 하다. 한 달 동안 코빼기도 안 보이는 편의점 알바 구직자 말이다.
이걸 얘기했다간 점장이 시무룩해질 게 뻔한지라 따로 말은 안 했다. 쉴 새 없이 살랑이는 멍멍이 꼬리를 바라보다, 주제를 돌렸다.
“아무튼 사는 건 거기서 살게 될 것 같고, 매장 이사 가는 거 말인데요. 점장님.”
“응. 손님들한테 말해 봤어?”
“알아서들 오고 가실 것 같아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사회인이라서 그런가, 이사 가는 게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진 않다. 경관이나 엘레나 양은 일이 있어서라도 알아서 찾아올 것 같고, 어르신께서는 일터 구분이 따로 없으셔서인지 자유로우시다.
찰리 그 양반 경우에는, 답장을 아직도 안 한 걸 보면 지가 알아서 하겠다는 것 같고. 걱정되는 게 멍멍이 하나였는데, 이 녀석이 마침 여기에 있다.
“그래서 말인데, 이사 가는 거 언제라도 상관없다고 하셨었죠. 점장님.”
“응. 찬이는 언제가 좋을 것 같아?”
“저는… 지금 바로 이사 가면 베스트이긴 합니다.”
말하며 POS기 매출을 슬쩍 확인해봤다. 내가 집 구하러 나가기 전에 비해 매출이 딱 5만 원 올라가 있다. 직장인들 퇴근 시간을 거친 후인데도 말이다.
여기서 계속 영업했다간 다음 달 내 월급도 안 나올 게 분명하다.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 멍멍이한테 이사 갈 곳 지리를 어떻게 소개해 줄지가 막막했다는 점.
“이 녀석 지금 자고 있으니, 깨기 전에 이사 가두면 좋을 것 같아서요. 점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음… 진열대 상품들을 좀 바꿔야 하기는 하지만….”
손님 대부분이 미성년자일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니, 치워야 될 것도 많고 진열해야 할 것도 많단다. 말하고는 점장이 예시로 든 게, TCG 카드.
“저희 이제 TCG 카드도 팔아야 되는 겁니까? 점장님?”
“카드가 초등학생 애들한테 엄청 인기야, 찬아. 물론 진열대 꽉꽉 채울 생각은 없구, 장난감 코너에 있는 것들 치우는 정도.”
“아하….”
전에 그쪽에 가봤을 때는 꼬꼬마 애들이 제법 많다는 인상이었으니, 카드 게임도 인지도가 있긴 할 것 같다. 나한테 신상품 팩 언제 나오냐고 묻지만 않는다면 말야.
“발주 넣으면 하루 이틀 걸리긴 하지만… 여기 있는 것만 팔더라도, 장사는 더 잘될 것 같아. 그치.”
“저야 모르죠. 거기서 손님 받아본 적이 없으니.”
“그럼 바로 가자, 찬아. 커튼 좀 쳐 줄래?”
“어… 예.”
지금 바로라는 게 말 꺼내고 10초 뒤를 얘기한 건 아니었지만, 상사 명령대로 했다. 문 걸어 잠그고, 커튼도 치고.
이후엔 멍멍이를 쿠션째로 들어 올려, 쇼윈도 쪽을 등지고 서 있었다. 잠깐 매장이 흔들리는 듯싶다가 잠잠해졌고, 돌아보자 사거리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여태 장사해 오던 사거리보다는 훨씬 밝았다. 가로등 개수부터가 배는 차이가 날뿐더러, 불 켜진 상가 건물도 많다.
학원지구 쪽은 아니었지만. 밤 9시 40분이라 그런지 학교 건물들 태반이 불이 꺼져있어, 출입구 너머로는 아무것도 안 보인다. 밖을 바라보고 있자니, 점장이 내게 넌지시 말해왔다.
“이제 찬이네 다녀오려면 밤에 가야겠다.”
“많이 갈 필요 없어요, 점장님. 살던 곳에서 짐 챙기고, 보증금 빼 오면 그걸로 끝이라서.”
“짐 챙기는 건 미리 준비 끝내 둔 거야?”
“예. 캐리어 하나에 다 들어갈 거예요. 아마도.”
집에 몇 권 있는 책은 버리면 그만이고, 내가 신발이나 옷이 많은 것도 아니다. 이불까지 넣으려면 캐리어 하나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겠지만, 버리면 그만이다. 이불 하나를 10년 가까이 오래도 썼다.
“저는 그런데, 점장님께서는요. 여기서 퇴근하시는 데 얼마나 걸리십니까?”
“사거리 쪽보다 덜 걸려, 찬아. 걱정 안 해두 돼.”
“예. 그럼… 근무교대 하실래요? 10시 다 됐습니다.”
“그러자. 인수인계 항목은 따로 없어, 찬아.”
대신 내일부터는 인수인계 항목이 좀 많을 테니 잘 부탁한단다. 알았다고 대답한 뒤, 점장이 짐을 챙겨 정문으로 나가려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정문에서 몸을 홱 돌려 날 바라보고는, 까먹을 뻔했다는 듯이 마저 말해온다.
“아침에 등교하는 애들로 좀 붐빌 테니까 마음의 준비 하구, 궁금한 거 있으면 바로 연락하구. 오늘 좀 일찍 일어날게.”
“그렇게 할게요. 고생하셨습니다, 점장님.”
“응. 내일 봐, 찬아.”
이러고는 퇴근. 평소처럼 왼쪽이 아닌 오른쪽 쇼윈도로 사라지는 걸 멍하니 바라보다, 쿠션 위의 멍멍이를 바라보며 말해 봤다.
“어떻게든 되지 않겠냐? 멍멍아?”
“Zzz….”
그렇댄다. 멍멍이를 쿠션째로 계산대 밑에 내려놓은 뒤, 가만히 앉아 창밖만 바라봤다. 새벽까지는 딱히 손님이 없었고, 아침부터 좀 붐비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