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편돌이-163화 (164/201)

163화. 예상과는 정반대로 (1)

* * *

새벽에 해 뜰 즈음부터 걱정을 좀 많이 했다. 초중고 대학교가 다 몰려 있다는 말이 그 뜻이잖은가. 등교 시간이 제각기 다르다는 거.

심지어 유치원까지 존재하는 곳이니, 아침 7시부터는 매장이 무조건 미어터질 거라고 생각했었다. 사거리의 직장인들처럼 퇴근한 게 아니라 등교를 하는 중에 잠깐 들르는 거니, 한가하게 진상을 부리지는 않겠지만….

사람이 몰리는 곳은 어떤 식으로든 필시 일이 일어난다. 마음을 반쯤 비운 채로 손님들이 찾아오길 기다렸는데, 상황이 내 생각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우선 7시 40분, 고등학생들.

“아저씨. 혹시 샤프심 있나요?”

“학용품류는 저쪽 두 번째 코너 한번 살펴보십쇼.”

“네.”

첫 손님이 옆머리 양쪽에 날개깃이 달린 여학생 코볼트. 명칭이 떠오르는 게 없어 코볼트라 부르기는 하는데, 외견만 보면 코볼트보다는 인간에 가깝게 생겼다.

머리 색이 하늘색인 건 학교가 두발 제한이 없어서가 아니라 원래 털 색이 저래서인 듯한데, 이건 이것대로 색다른 광경이었다. 고등학교 다닐 적에 염색한 놈들이 당구채로 두들겨 맞는 것만 봐 와서 그런가….

외에 교복 디자인도 제각각이었다. 학교가 여러 개 뭉쳐 있다 했으니 교복도 학교 개수만큼 존재하기야 하겠지만, 단순히 이 이유뿐만은 아닌 듯했다.

예를 들면, 두 번째로 들어온 학생들. 처음엔 학생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고, 둘이 하는 대화를 듣고 나서야 알았다. 이 학생들 종족이 요정이었기 때문이다.

“여기 편의점이 언제 생겼대?”

“그게 궁금해서 힘들게 문 열고 들어온 거야…?”

“아니? 그냥 배고파서. 너 아침 뭐 먹었어?”

남녀 요정 한 쌍이었는데, 여자 요정 쪽은 쾌활해 뵈는 반면 남자 요정 쪽은 기운이 없다는 게 빤히 보였다. 아침잠 때문인지, 원래 성격이 저런 건진 잘 모르겠고.

“오늘은 안 먹으려고. 적성검사 하는 도중에 식곤증 올 게 분명해….”

“에이, 그래도 먹는 게 낫지. 안 먹으면 뇌 안 돌아가서 망칠 텐데?”

“그래도 도중에 잠드는 것보단 나아….”

“졸린 게 싫은 거면, 목캔디라도 하나 먹자. 내가 살게.”

정문 앞에서 나풀거리며 이런 대화를 나누고는 계산대로 날아오는데, 신장이 10cm가 채 안 되는 종족인지라 코앞까지 다가오고 나서야 교복 생긴 게 보였다.

근데, 이 둘이 입은 교복이 전혀 다르게 생겼다. 한쪽은 나 사는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가디건에 스커트인 반면, 한쪽은 로브에 가깝다. 서로 다른 학교를 다니기라도 하는 건가?

“우리 먹을 건 안 파는 것 같은데….”

“그냥 이거 하나 사서 이번 달 내내 먹으면 되지, 뭘. 레몬 맛 산다?”

목캔디 곽을 머리에 이고 날아와서는 계산대에 툭 내려놓는데, 곽 사이즈가 얘네들 몸통만 했다. 얘네들 사탕은 도대체 어떻게 먹는 거야. 앞니로 갉아 먹는 것도 아닐 테고….

“아저씨, 계산해 주세요.”

“예.”

생각하다, 내가 신경 쓸 일도 아닌 것 같아 그냥 계산해줬다.

계산하는 방식도 체감상 특이했는데, 자기 가방에서 내 손톱만 한 크기의 칩 같은 걸 꺼내서는 카드 리더기 위에 발을 딛고 서더라. 도중에 물었다.

“그, 카드결제 하시는 겁니까?”

“네. 카드 여기 꽂으면 되나요?”

내가 사거리에서 요정을 손님으로 받아본 적이 없다. 근무 첫 주에 장난치러 온 담배의 요정 한 마리 잡았던 게 끝.

그래서 요정들 쓰는 카드를 어디에 꽂는 건지도 잘 모른다. 여기에 꽂으면 되냐며 가리킨 곳을 바라봤는데, 옆면에 작은 홈 같은 게 나 있더라고?

“어… 예. 거기 꽂으시면 됩니다.”

꽂아도 안 되면 그때 가서 생각하자는 마인드로 대답했더니, 리더기에 아예 걸터앉아서는 양손으로 카드를 밀어 넣는다. 계산 버튼을 눌렀더니 결제가 됐다.

“결제되셨어요. 감사합니다, 손님.”

“네. 야, 이거 아저씨한테 뜯어달라고 부탁할까?”

“그냥 학교 들어가서 마법으로 뜯자. 우리 지각하겠어….”

“그럼 그러지, 뭐. 안녕히 계세요, 아저씨.”

이러고는 나란히 목캔디를 머리에 인 채로 날아갔고, 정문을 열 때는 날개 파닥이는 속도가 네 배가 됐다.

힘겹게 문 열어 나가는 걸 보고 나니, 그간 요정들이 왜 매장에 안 찾아왔던 건지 얼추 짐작이 되더라. 요정들 신장에 맞는 생필품 매장이 따로 있는 게 아닐까.

여하튼, 이 손님들 셋을 보내고 나서 1시간. 9시 즈음 잠깐 매장을 둘러봤다. 일단 발치의 멍멍이 녀석은 세상모르고 곯아떨어져 있고….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매장이 텅텅 비었다.

내 예상과는 상황이 거의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아니, 장사가 안돼서 이사 온 건데 왜 똑같이 손님이 한 명도 없어?

지금 시각이 8시 40분. 밖에 행인이 없는 건 아니다. 교복 입고 다니는 학생들도 아주 없지는 않고. 헌데, 학생들이 한결같이 학교 안으로 허겁지겁 뛰어가거나 날아가거나 하고 있단 말이다.

이건 추측이긴 하지만, 대부분이 고등학생들 같고. 교복 입은 학생들 키가 하나같이 컸고, 중학생 특유의 앳된 느낌이 안 난다. 뭔가 이유라도 있는 건지….

― 딸랑.

생각하는 도중, 손님 한 명이 들어왔다.

이번에 들어온 손님은 인간에 가깝게 보이는 종족 불문의 여성. 가방을 메고 있는 걸 보면 학생 같기는 한데, 교복은 안 입고 있다. 대학생인가보다.

종족을 짐작할 수가 없는 게 두 가지 이유에서였는데, 하나는 이 손님의 머리와 눈동자가 온통 은색이었다는 것.

굳이 특정한다면 엘프에 가깝게 보였는데, 귀를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있어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여자 언행이 멀쩡한 인간이라기엔 나사가 몇 개쯤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내 코앞으로 와서는 대뜸 이런 걸 묻더라.

“저기요.”

“…네. 손님.”

“혹시 몇 살이세요.”

높낮이 변화가 일절 없는, 평탄한 어조의 신박한 질문이었다. 이게 질문인지도, 궁금해서 묻는 건지도 짐작이 안 될 정도다.

어이가 없어서 얼굴을 바라봤는데, 얼굴 생긴 게 엘프와 인간 사이의 어딘가에 걸쳐있다는 느낌이다. 나이를 묻는 건 대체 어느 종족 특성인지….

“혹시 본인 나이를 모르시나요?”

의도가 뭔지는 몰라도, 대화를 길게 끌면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 복장이 터져 버리겠단 건 잘 알겠다.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주고, 아무것도 안 묻고 보내는 게 속 편할 것 같다.

“스물아홉입니다.”

“그럼 오빠네. 저기요, 오빠.”

“…예, 손님.”

“테이블에 앉아 있다가 가도 돼요? 2시간 정도.”

아니, 이거 물어볼 거면 내 나이는 대체 왜 물어본 거냐?

질문 참기 난이도가 Lv.99쯤 되는 것 같다. 다른 손님이 ‘본인 나이를 모르냐’라고 물을 경우, 평소라면 대답 안 하는 걸 비꼬려는 거구나― 하고 흘려넘기고 말았을 거다.

나름 사회생활을 해온 짬밥이 있고, 어조나 표정만 봐도 대충 유추할 수 있으니까. 헌데 눈앞의 이 여자만큼은 뭘 어쩌고 싶은 건지, 어쩌겠다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일말의 표정 변화 없이, 은색 눈동자로 날 뚫어져라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다. 내가 대답을 안 하고 있는 데에 화가 난 게 아니란 것만은 알겠는데….

“아니면 다른 분한테 허락받아야 되나요?”

“아뇨. 그냥 앉아 있다 가십쇼. 그런데, 손님.”

“저기요, 오빠.”

내 나이를 왜 물었는가. 질문을 못 참겠어서 물어보려 했는데,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을 해온다. 지금 내 말을 듣기는 한 건가?

“예?”

“스물아홉이시면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거잖아요.”

나야 나이를 묻지도 듣지도 않았으니 모르지만, 그렇기야 할 거다. 지금도 날 꼬박꼬박 오빠라고 부르고 있으니까.

“그…렇다 치고, 왜요.”

“나이도 많으신데, 왜 계속 존댓말을 하세요?”

“그냥 하는 겁니다. 앉아 있다가 가셔도 되니까, 편하신 대로 하셔요.”

“…음악 들어도 되나요?”

“이어폰 꽂고 들으시면 됩니다.”

뭘 물어보는 건 아예 포기하련다. 여기까지 말한 뒤에 다시 눈을 바라봤는데, 방금 대화로 또 궁금한 게 생겼다는 듯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할 말 있으면 마저 해 봐라. 시선 피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자, 잠시 후에 말없이 등을 돌려서는 테이블로 걸어가 가방을 올려놓고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더라.

그러고는 공책 하나를 꺼내, 뭔가를 사각사각 적기 시작했다. 멍한 정신으로 바라보고 있다가, 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러모로 할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전화하자, 신호음 한번 없이 점장이 바로 받았다.

[ 응, 찬아. 근무는 어때? ]

“손님이 많지는 않네요. 아침 동안 세 분 받았습니다.”

[ 엥? 진짜루? ]

“예. 고등학생 애들만 간간이 보이는데, 얘네도 거의 안 왔고요. 엄청 바빠 뵙니다.”

아까 요정 꼬꼬마들이 목캔디 사가면서 이런 얘기가 나왔었다. 적성검사 할 때 식곤증 오는 게 싫어서 뭐 먹고 싶지가 않다고.

그럼 그거 하러 가는 거겠지, 뭐겠어. 내 말을 듣자마자 폰 너머에서 손뼉 소리가 짝 들려왔다.

[ 아, 오늘 월초였지. 오랜만이라 잊구 있었네. ]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 적성검사. 고등학생 애들 매달 하는 거 있거든. ]

이 세상 고등학생들 중 마법계 학과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매달 초에 꽤나 복잡한 적성검사를 해야 한단다. 비마법계 학과는 과정이 훨씬 간단하고.

[ 고등학생 애들은 말이 학생이지, 신체적으로는 성인에 가깝잖아. 성장기인 애들도 있구. ]

“뭐… 이 나이대 애들이 한 달에 몇 cm씩 크고 그러기는 하죠.”

[ 그치. 그걸 매달 초에 어떤 마법으로 어느 정도의 적성이 나오는지 학교에서 검사를 하거든. 이걸로 진로도 결정되구 그래서, 엄청 중요해.”

내 귀엔 모의고사와 비슷한 개념으로 들린다. 이 동네 애들 바쁘게 사는 것도 나 사는 동네랑 비슷한 것 같다.

“뭐… 초등학생 중학생 애들은 왜 안 보이는 건지 모르겠지만요.”

[ 초등학교, 중학교는 게이트 건 때문에 오늘까지 휴교야, 찬아. ]

“아하.”

[ 첫날부터 엄청 바쁠까 봐 걱정했는데, 오늘 아침은 많이 한가하겠네. 다행이다. ]

난 이사 오면서 우리 매장 지하수맥도 같이 딸려온 줄 알았다. 매장이 한가한 건, 내게는 호재여도 점장한테는 악재가 아닌가 싶긴 하지만….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아 조용히 있었다. 기다리고 있자니, 다른 걸 물어오는 점장.

[ 여튼 손님 많이 없었으면, 아직 별일 없는 거겠네. 멍멍이는? ]

“얘 아직도 잡니다. 오늘 안에 일어나기나 할지 모르겠네….”

[ 전에 하수도에서도 그만큼 잤으니까, 문제없을 거야. 찬아. ]

“걱정은 안 해요. 얘 발라당 누워서 계속 뒤척이고 있거든요. 그나저나, 점장님.”

[ 응. ]

“저 궁금한 거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속삭이듯 말하며 테이블 쪽을 바라봤다. 점장과 짧게 대화하는 사이에 테이블 위에 종이 뭉치 같은 게 늘어나 있었는데, 공책을 찢어 구겨버린 듯했다. 뭔진 몰라도 일이 잘 안 풀리나 보다.

[ 어떤 거? ]

“지금 손님이 한 분 앉아계시는데, 좀 특이합니다.”

이런 질문을 하는 것도 오랜만이다. 매장에 찾아온 손님 종족 물어보는 거. 오크들은 젊을수록 난폭하고, 고블린들은 대체로 영악하며, 중인족은 답이 없다.

하여 간혹 열거한 종족의 손님들이 찾아오거든, 가능한 그 종족들 특성에 맞춰서 응대를 해왔다. 레이시스트라고 까여도 할 말 없기는 하지만, 누가 내 멘탈을 케어해 주는 게 아니잖은가. 내 정신건강 내가 알아서 챙겨야지.

그리고 내가 받아온 손님들 중, 방금 찾아온 여자가 원탑은 아니어도 순위권에 속할 정도의 마이페이스는 된다. 1위는 욕을 입에 달고 사는 그 양반이고.

근무하며 거의 본 적이 없는 유형의 손님이다 보니, 아무래도 점장에게 의견을 묻게 된다. 아까 일을 언급하며 설명하자, 점장이 역으로 물어왔다.

[ 머리 색이랑 눈동자가 은색이구, 다른 점은 없구? ]

“예. 그런데, 제가 이번엔 이상한 걸 여쭙는 건 아니죠?”

[ 아냐. 어떤 종족이냐고 묻는 게 자주 있지는 않아도, 아주 특이한 일은 아니거든. 코볼트분들끼리는 아예 빈번하구. 근데, 찬이 말대로면 아마 마력이랑― ]

“잠깐만요, 점장님.”

대화하는 사이, 테이블의 여자가 날 홱 쳐다봐서였다. 폰을 내려놓은 뒤 뭔 짓을 할지를 지켜보고 있는데, 이 여자가 뚜벅뚜벅 걸어와서는 내 앞에 서더라.

그러고는 말없이 날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유는 몰라도 눈썹을 찌푸린 채였고, 말이 없는 것도 내가 말하길 기다리는 걸로는 안 보였다. 자기가 뭔가 할 말이 있긴 한데, 그걸 어떻게 꺼낼지를 고민하는 듯한….

“그,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라도 대화 소리가 방해된다 그러거든 적당히 둘러대고 말 생각이었다. 종족 물어보는 게 특이한 일이 아니라고는 했지만, 첫마디를 ‘특이한 손님이 있다―’라고 말해 버렸으니까.

둘러댈 말을 떠올리는 도중, 여자가 내게 말해왔다.

“제가 매장에서 뭔가를 하려고 했거든요.”

“어떤 걸요?”

“그건 말하기가 좀 곤란하고….”

운을 떼고는 한참 동안 뜸을 들인다. 답답해서 내가 먼저 입을 열려던 찰나, 여자가 다시 한번 말해왔다.

“…여하튼, 그게 잘 안 돼요. 그게 아무래도 오빠 때문인 것 같아요.”

“아니, 뭐 전후 사정을 알아야 공감을 해주든 말든―”

“오빠, 정체가 뭐예요. 혹시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라도 한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