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편돌이-165화 (166/201)

165화. 예상과는 정반대로 (3)

* * *

9시 50분 즈음에 멍멍이가 잠에서 깼다. 입가에 침이 흥건하고 동공이 풀려 있는 게, 공원에서 있었던 일로 몸에 이상이라도 생긴 게 아닌가 싶었으나….

“…낯선 천장이구려.”

이상이 생긴 게 아니라, 그냥 졸려서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다. 몸만 숙여 대꾸해 줬다.

“거기 천장 아니다, 멍멍아. 계산대 밑바닥이지.”

“아하. 그래서 천장이 가깝… 아니, 사장님?”

“왜.”

“사장님이 어째서 여기에 계시는 것이오?”

“왜긴 왜야? 근무 안 끝났으니까 그렇지.”

“근무? 그럼 본견이 지금 매장에 있다는 말이오?”

계산대 밑이라 보이는 게 없어서인지, 쿠션에서 어기적어기적 기어 나오며 코를 킁킁대는 멍멍이.

“평소의 매장과는 냄새가 좀 다른데….”

계산대 밖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어 쇼윈도 밖을 확인하고는 황당하다는 어조로 중얼거린다.

“매장 밖 거리도 평소와는 다른 것 같고 말이오.”

“평소랑 다른 게 맞다. 이사 온 거거든.”

“뭣이?”

간략하게 설명해 줬다. 거리가 엉망이 된 탓에 손님이 오질 않아서 이사를 가려 했는데, 연락이 안 되는 손님이 한 명 있었다. 너.

공원에 산단 걸 알고 있으니 내친김에 찾아가 봤는데, 공원에서 일이 터진 후에 니가 픽 쓰러져 버렸다. 깰 때까지 계속 기다리고 있기도 좀 그래서, 아예 너랑 같이 이사를 온 거다―

이 시점에서 멍멍이가 끼어들었다.

“일? 어떤 일을 말씀하시는 것이오?”

“그야 당연히, 야. 너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냐?”

“모르겠소이다. 흑풍파 놈들로부터 도망치거나, 화장실에서 공원 동료분들께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던 것만은 기억이 나는데….”

정황을 보니, 자기 재주를 부리기 10분 전의 기억마저 죄다 날아가 버린 것 같다. 이 녀석은 왜 지가 활약한 걸 기억을 못 하고 고생한 것만 기억하냐.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이오, 사장님?”

“그게….”

이 얘기를 하게 되거든, 가능한 한 말을 돌리려고 했었다. 있었던 일을 죄다 말해 줬다간 한창 질풍노도의 나이인 이 녀석이 뭔 짓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헌데, 이렇게까지 기억이 안 날 정도면 둘러대는 게 어렵진 않을 것 같다. 한 줄로 요약해서 말해줬다.

“네가 흑풍파 애들한테 뭐라고 부탁을 했었다. 걔네들이 그걸 들어준 것 같고.”

“부탁? 그 난폭한 작자들이 본견 부탁을 들어주었다는 말이오? 무어라고 하면서 말이외까?”

“들어준 것 같다니까. 애초에 걔네들 죄다 개 짖는 소리만 내는데, 걔네들이 뭐라고 했는지를 내가 어떻게 알어?”

“그…건 그렇소만….”

“내 눈에 보인 것만 얘기해 주는 거야. 걔네들 떠나는 거 보면, 나중에 또 행패를 부리거나 하진 않을 것 같다.”

지레짐작이긴 하다. 패악질에 시동을 걸려던 걸 내가 폭죽 소리로 쫓아냈을 뿐이니, 그게 오래가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그때면 이미 상황 다 끝이다. 공원 유지보수 끝나고 나면 다시 사람들 몰려들 거고, 그때면 먹을 것도 넘쳐날 거 아냐? 서로 쫓아낼 이유도 사라질 거고.

어차피 결과가 똑같을 거, 일일이 과정을 설명할 필요가 있나. 내 말에 입을 다문 채로 쇼윈도 밖을 바라보는 멍멍이.

“그럼… 공원의 동료분들께서 더 이상 고통받을 일은 없겠구려.”

“그건 그 지역 구청 직원들이 떠돌이견 단속에 얼마나 진심인지에 따라 다르겠지. 왜, 거기서 계속 지내고 싶어?”

“아니오. 사장님 말대로면, 거기서 지낼 경우엔 사장님을 못 뵈게 된다는 말이잖소이까. 몇 주 정도 말이오.”

그럴 바엔 차라리 여기서 지내는 게 낫단다. 말하며 몸의 털을 부르르 털고는 아련한 눈으로 밖을 바라보며 덧붙인다.

“그저… 식사 약속이 있었을 뿐이오.”

“식사 약속은 뭔, 거기에 먹을 게 있긴 했냐?”

“다 방법이 있소이다, 사장님. 좀 떨어진 곳에 뼈다귀를 맛있게 하는 집이 있는데….”

“영업 중인 식당 쓰레기통 좀 그만 뒤지고, 약속을 한 거면 나중에 돌아갈 때 제대로 된 걸 좀 가져가 봐라. 걔네 햄버거 포장지 뜯어본 적은 있대냐?”

당당하게 고개를 젓는 멍멍이. 나중에 다시 그 동네에서 장사하게 되거든, 찝찝해서라도 봉투에 햄버거 몇 개 담아서 돌려보내든 해야겠다.

“하지만 그러면 본견이 무전취식을 하는 게 되어 버리지 않소?”

“니 몫으로 달아놓은 햄버거 몇 개 있잖냐. 그거 가져가면 되지.”

“그럼… 그렇게 하겠소이다, 사장님. 헌데 말이오.”

“어.”

“사장님 표정이 썩 좋지 않소. 안 좋은 일이라도 겪은 것이오?”

안 좋은 일이야 있긴 하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도 전혀 모르지만, 어떻게든 확인을 하긴 해야 할 일.

동시에, 이 세상에서 상담할 사람이라고는 점장 한 명뿐인 일이기도 하고. 이 얘기를 곧이곧대로 했다간 어떤 소릴 들을지 머릿속에 빤히 그려진다. 아니라고 하면 될 걸 뭘 그리 끙끙 싸매냐. 아니면 너 혹시?

“별일 없었어, 인마. 그냥….”

그냥 뭐라고 말을 해야 되냐. 머릿속으로 말을 고르던 중, 정문 벨 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바라봤다. 앞장서서 점장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 뒤로는 윤하 누나.

점장 눈에도 내 표정이 썩 좋진 않았는지 오자마자 이 얘기부터 해오더라.

“찬이, 표정이 좋지는 않네.”

“퇴근해서 좀 피고 오겠습니다, 점장님. 근데 누나는 웬일임?”

“휴가 받았다, 무려 이틀이나!”

말하며 기지개를 켜고는 덧붙이길, 요번에 게이트 건을 처리한 뒤에 누나가 사무소에 어필을 좀 했단다. 휴가라도 좀 달라고.

꽤 큰 건을 처리했단 걸 사무소에서도 간과하긴 힘들었는지, ‘오늘 내일 일 없으니까 쉬든가’ 하며 아침에 출근카드 찍는 순간 바로 휴가를 내줬다고.

그 말 듣자마자 출근카드 뽑아서 다시 찍고 빠져나왔고, 지금은 할 짓이 없어서 놀러 온 거란다. 듣고 난 소감은 휴가를 뭐 이런 주먹구구식으로 주냐는 생각이었지만….

본인이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아 따로 언급은 안 했고, 대신 다른 걸 물었다.

“편의점에서 뭘 하고 놀겠다는 거야. 물총 꺼내 줘?”

“내 나이가 몇인데 물총을 갖고 놀아, 짜샤. 당장은 난 휴가인데 넌 일이나 하고 있냐― 하며 놀리러 온 건데 말야….”

“나 근무 끝났는데?”

“그게 방금 떠올랐단 말이지. 이찬 너 그냥 몇 시간 더 일하면 안 되냐?”

말없이 유니폼 벗는 걸로 대답했다. 아까 있었던 일 때문에라도 오늘은 좀 일찍 들어가고 싶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윤하야, 그럼 내가 할 게 없어지는데?”

“농담이야, 언니. 오늘 낮에 손님 많을 것 같아?”

“글쎄. 고등학생 애들 오늘 적성검사 하는 날이니까, 오후에 몰리지 않을까?”

“그럼 안 되겠네. 그냥 집에서 잠이라도 잘까….”

“할 짓 없으면 나 집들이나 좀 도와줘, 누나.”

슬쩍 끼어들었다. 휴가 쓴 사람한테 뭔 소리냐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다, 곧바로 표정을 푸는 누나.

“아, 맞네. 그게 있지. 근데 너 그거 많이 급해?”

“어. 나 오늘 거기서 잘 거임. 어제도 거기서 잤고.”

“아니, 넌 원래 살던 집 두고 왜 마귀 들린 집에서 잠을 자?”

내가 거길 갈 상황이 못 돼서 그렇다. 매장에 찾아오는 손님만 없을 뿐이지, 밖에는 행인이 꽤 된다. 저 행인들 상대로 대낮에 보란 듯이 내 세상으로 날라버릴 수는 없잖아.

집 문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고 말이다. 어제오늘 일로 보건대 질질 끌었다간 신경 쓸 일이 하루 한 개 단위로 꼬박꼬박 늘어날 것 같다.

“집 돌아가기 귀찮아서 그러니까 좀 도와달라고, 누나. 집들이 끝나고 나면 짜장면 쏠 테니까.”

집들이 하면 당연히 짜장면이지. 별생각 없이 말했던 건데, 이걸 들은 누나가 씨익 웃고는 말해왔다.

“이야. 이제야 같이 밥 한 끼 먹어 보겠네.”

“아니, 그게 뭐라고….”

“니가 매번 내뺐잖아, 짜샤. 짜장면은 내가 싫으니까, 사 주는 거 알아서 먹는 거다. 콜?”

“아니….”

“콜??”

“알았어. 알았다고.”

이번만은 둘러댈 말이 없다. 젠장, 내가 기어코 이 동네 대게랑 포크로 앞다리 싸움을 하는 날이 오네….

“근데 이찬, 너 누구랑 얘기하고 있던 거냐?”

“멍멍이. 지금 내 발밑에 숨어 있어.”

“진짜? 멍멍아, 지금 손님 우리밖에 없으니까 나와도 돼.”

나한테 말하는 투랑 어조가 딴판이다. 누나 말을 듣고 나서야 눈가만 계산대 밖으로 빼꼼 내밀었다가, 곧바로 고개를 다시 집어넣는 멍멍이.

손님이 와서였다. 평상복 차림의 인간에 가까운 코볼트 남성 둘이었는데 한 명은 호랑이 꼬리, 다른 한 명은 사자 꼬리가 달려있었다. 민족 대화합이구만.

목에 걸린 명찰에 중학교 교직원이라 적혀 있는 게, 학교 당직이라도 서다 잠깐 나왔나 보다. 이 둘이 바로 들어오지는 않고, 정문 앞에 선 점장과 누나를 흘겨보고 있다.

뒤를 힐끗 바라본 점장이 내 유니폼을 바라보며 대화를 정리했다.

“슬슬 근무교대 하자, 찬아. 인수인계 사항은?”

“아까 그 일 제외하면 없고, 괜찮습니다. 나중에 따로 말씀드릴게요.”

“어… 응.”

점장도 할 말이 있기야 하겠지만, 평소처럼 대화하다 보니 마음을 좀 편히 먹을 수 있게 됐다. 그 녀석 생각은 당장은 접어둔다. 나도 잠은 자야 할 거 아냐.

행여라도 의심을 살까 봐 물어본 게 전혀 없는 탓에, 대학생인 걸 빼면 그 녀석 신상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다. 찾아갈 수도 부를 수도 없으니 일단은 기다릴 수밖에.

나도 명확히 대답한 게 아니니 대답을 듣고 싶거든 지가 알아서 찾아오겠지. 생각하며 거울을 바라보니 이제야 얼굴 인상이 좀 풀렸다.

점장도 똑같이 표정을 풀고는 내 등을 토닥이며 유니폼을 건네받았다.

“밤에라도 생각나면 전화 줘. 고생했어, 찬아.”

“네. 저녁에 봬요.”

* * *

셋이서 밖으로 나와서는 바로 집으로 향했다. 아지랑이마저 피어오르는 햇살 탓에 난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했고, 누나는 휴가 버프 덕분인지 그 햇살을 만끽하고 있고….

“헥헥헥.”

멍멍이는 다른 의미로 기분이 좋아 보였는데, 길에 사람이 있어서인지 말은 못 하더라. 우리 집에 와 보는 게 처음이다, 어떤 곳이냐, 이런 내용이겠지.

횡단보도를 건너 골목길로 접어든 뒤, 주변이 한적해질 즈음 자체 해석한 질문에 대답해 줬다. 정답이었다.

“좋은 곳은 못 된다, 멍멍아.”

“아니, 사장님. 본견 말은 어찌 알아들으신 것이오?”

“알아들었겠냐? 그냥 감으로 때려 맞춘 거지. 투룸이고, 귀신 나오는 곳이야.”

“아. 방이 두 개라면 참 훌륭한… 뭣이? 귀신 말이외까?”

“그거 말인데, 이찬 너, 마귀 눈으로 직접 보긴 했냐?”

“못 봤음. 만져보지도 못했고.”

손으로 건드릴 수만 있다면 그 마귀도 내 체질로 어떻게든 해결이야 되겠지만, 눈에 집중을 해 봐도 보이는 게 없으니 당연히 건드릴 수조차 없다.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에 누나에게 겪었던 일들, 점장에게 들었던 조언까지 죄다 말했는데, 누나는 별 반응이 없었던 반면 멍멍이 꼬리가 바닥으로 아예 낮게 깔려 버렸다.

“그… 본견, 잠깐 볼일을 좀 보고 와도 되겠소이까?”

“여기 전봇대에서 잠깐 일 보든가. 망봐 줄 테니까.”

“영역표시도 중요한 일이긴 한데, 그게 급한 게 아니고 말이오. 그….”

“와, 얘 발발 떠는 것 좀 봐.”

말려들어 간 꼬리째로 멍멍이를 안아 들더니, 녀석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내게 말해온다. 멍멍이한테 들으라는 듯이 말이다.

“언니가 그래? 그 마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다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됐단 말은 안 하셨어. 하는 짓이 유치하니까 나이가 어리지 않을까― 라고 하셨지. 들은 그대로 말한 거야.”

“그렇대, 멍멍아.”

귀신이면 다 똑같은 귀신이지 나이가 뭔 상관인가 싶었으나, 누나 말을 들은 멍멍이가 긴장이 좀 풀렸는지 꼬랑지를 서서히 펴기 시작했다. 기준이 뭔질 모르겠다.

“그…건 다행이구려. 헌데, 윤하 아씨나 사장님께서는 귀신이 무섭지 않으시오?”

“나야 뭐, 귀신 비슷한 거 잡는 게 일인데 뭘.”

“더럽게 무섭다, 인마. 내 통장 잔고 털리는 게 더 무서워서 그렇지.”

이 동네에서 같은 값에 투룸 구하려면 골판지 박스 두 개 붙여 사는 것 말곤 방도가 없을 게 분명하다. 드럼 세탁기도, 온수 잘 나오는 보일러도 마찬가지고.

그 방을 이미 봐 버렸으니 다른 원룸을 알아본다 한들 눈에 차지도 않을 것 같다. 딱 이만큼을 대화하는 사이, 알아봐 둔 집이 있는 건물 앞에 도착했다.

헌데, 근무하고 온 12시간 사이에 상태가 좀 심각해졌다. 건물을 올려다보거나 코를 킁킁대거나 하던 누나와 멍멍이가 동시에 물었다.

“사장님, 웬 이상한 냄새가 나는데 말이오….”

“이찬 너, 물 틀어놓고 나왔냐?”

한 번에 좀 물어봐 줬으면 좋겠다, 나도 황당하니까. 건물에서 가스 새는 냄새는 왜 나는 거며, 계단에 물은 또 왜 질질 새고 있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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