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잘 모르면 그냥 배워 (5)
* * *
난 고양이를 떠나, 반려동물을 길러 본 경험 자체가 없다.
여유도 돈도 없었기 때문이다. 개 한 마리 정도는 길러 보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사룟값에 마음이 꺾였었다. 동물 사료 한 통이 왜 라면 한 박스 값인 거야?
헌데 이 투명고양이 놈은 어쩔 수 없이 내가 담당해야 할 것 같다. 이놈을 데리고 밖에 나가 보려 했는데, 현관 밖으로 한 발을 내딛자마자 이놈이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냐하아앙! 냐앙, 냐아아옹!!”
동시에 현관문이 꺾이기 직전까지 열려서는 삐그덕거렸으며, 호스 끊어진 샤워기가 쏜살같이 날아와서는 현관 앞에 우뚝 멈췄다. 그러고 보니 나 오늘 샤워는 어떻게 하냐?
“우야아아옹… 하아악!”
“나가기 싫으면 나가기 싫다고 말을 해, 인마. 울지 말고.”
다시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샤워기가 힘없이 툭 떨어졌고, 열렸던 현관문도 슬금슬금 움직이다 닫혔다. 발버둥 치던 것도 잠잠해졌고.
이런 놈을 어떻게 밖으로 내보내란 말인가. 억지로 내보내고 문을 잠근다 해도 어떻게든 다시 들어올 게 뻔하다. 쓰레기통으로 내 유리창을 때려 부수든, 심플하게 현관문을 부수든….
“너 씨, 여기 꿀단지라도 숨겨 놨어?”
“냐아옹….”
자기 좀 그만 귀찮게 하고 놔 달라는 듯한 울음소리다. 이놈을 내보낼 수 없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어떻게든 공생 관계를 유지하는 것.
잘만 구슬린다면 써먹을 여지가 충분한 놈이기도 하고 말이다. 잠깐 생각하다, 바닥에 엎어져 있던 밥그릇을 뒤집어 내려놨다.
이후엔 이놈을 밥그릇 앞에 앉힌 뒤 가만히 기다렸다. 이놈이 자다 깬 참이라 출출해서인지, 바로 밥그릇에 관심을 가지더라.
이것도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밥그릇이 살짝씩 움직이고 있다. 앞발로 툭툭 치고 있는 거겠지. 좀 더 뒤에 울음소리 한 번.
“냐앙.”
이 울음소리와 동시에 사료 알갱이들이 일제히 한 점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일개미가 일렬로 걷듯 스르륵 소리를 내며 다가와서는 밥그릇 안으로 들어간다.
수 초 뒤, 사료 그릇에 사료가 제법 차올랐다. 자기 결과물이 만족스러운지 울음소리를 내는 투명고양이. 어딜 감히.
“냐아앙―”
“야. 먹고 싶으면 니 엎지른 것부터 다 치워라.”
반쯤 찬 사료 그릇을 들어 베란다로 갔다. 세숫대야가 놓여 있던 걸 봐 뒀기 때문이다. 세숫대야에 사료 그릇 내용물을 전부 쏟은 뒤,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밥그릇이 다시 비었다, 이놈아. 그럼 이제 뭘 해야 되겠어?”
“냥?”
이번엔 의아하다는 울음소리다. 내가 고양이어를 전공한 건 아니지만, 얘 하는 짓이 지금 상황을 의아해한다는 것만은 바로 알 수 있었다.
텅 비어버린 밥그릇이 또다시 툭툭 움직이고는, 알갱이들이 모여들어 또다시 내용물이 가득 채워졌다. 곧바로 세숫대야에 옮겨 담았다.
이 짓을 30번가량 반복. 내가 지겨운 만큼 이놈도 똑같이 지루해했다.
“냐앙! 냐아앙!”
이놈이 사료봉지를 찢어발기긴 했어도 밥그릇만은 싹싹 비워놨었다. 바닥에 엎질러진 것보단 밥그릇에 든 게 우선순위가 더 높다는 거겠지.
사료봉지를 찢어놓은 거야, 이 녀석이 지퍼 개념을 알 리가 없으니 찢어먹은 것일 테고. 이러는 도중에 약이 올랐는지, 내 손등에 손톱자국을 냈다.
“야, 두 번만 더 하면 돼. 두 번만!”
“냐아으아앙!”
싫다고 한다. 하도 발버둥을 쳐서 내려놨더니, 이 녀석이 냅다 베란다 방향으로 달려가서는 세숫대야에 머리를 박아버렸다.
이것도 가까이 가서 사료 먹는 소릴 듣고 나서 알았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들어 올려, 반쯤 찬 사료 그릇 앞에 내려놨다.
“나머진 내가 할게, 인마. 밥이나 먹어라.”
“냐릉. 냥.”
비합리적이기 짝이 없다. 지가 엎질렀으면 지가 치워야지, 왜 나더러 치우게 만들고는 지가 성질을 내?
그래도 바닥이 깔끔해진 게 나중에 빗자루질만 잠깐 하면 끝날 것 같다. 사료 그릇의 사료가 줄어드는 걸 가만히 바라보다, 몸을 일으켰다.
“야. 뭐 좀 사 올 테니까 얌전히 있어. 알았냐.”
“냥, 냥. 냥….”
알았다는 대답으로 받아들였다.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와 폰의 지도 어플을 켰다. 검색해 보니, 멀지 않은 곳에 반려동물용품 전문점이 한 곳 있었다.
바로 안내를 따라 그 방향으로 향했고, 걷는 도중 뜬금없이 이런 감상이 떠올랐다.
“…해외여행을 나오면 이런 느낌인가?”
엄밀히 말해 해외여행과는 거리가 멀다. 죄다 말이 통하잖아.
그래도 이 점을 빼면 해외여행과 공통점이 꽤 많다. 길을 걷는 이종족들은 현지인들이라 치고, 건물 배치나 구조가 다른 건 이 나라 건축양식이라고 치고….
지금 지나치고 있는 공원도 그렇다. 전에 멍멍이를 데리러 갔던 시민공원과 비슷하게 생기긴 했는데, 저걸 사람이 쓰라고 만든 건가― 싶은 구조물들이 두어 개 있더라고?
예를 들면, 큼지막한 나무들 몇몇의 중간에 박힌 횟대. 보이길래 잠깐 멈춰 서서는 살펴봤는데, 횟대 중 하나에 한 여성이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정확히는 책을 손에 쥔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오늘 날씨가 낮잠 자기 딱 좋은 날씨기는 했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었으니까.
저 졸던 여성 손에서 책이 서서히 미끄러지더니, 기어코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책이 탁 떨어지는 소리에 몸을 움찔하며 깨서는 주변을 둘러보는 여성.
그러다 밑에 떨어진 책을 발견하고는, 4m 높이는 될 횟대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동시에 양팔이 갈색 날개로 변해서는 푸드덕거렸다.
날개를 펄럭이며 바닥에 사뿐 착지하고는 책을 집어 든 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횟대 위로 날아올라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책을 펼치려다, 자기 발목을 확인했다.
발목에 시계가 달려 있더라. 팔은 날개 겸용이라 시계를 안 차나 보다. 시계를 바라보다, 횟대에 걸린 자기 가방을 들고는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다.
보면서는 해외여행 기분이었던 게 살짝 바뀌었다. 나 살던 세상 어느 나라를 가도 저런 광경은 볼 수 없겠지.
이후엔 작은 공원에서 좀 더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 세상이면 반려동물용품점도 일정한 컨셉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여긴 아니더라.
“음….”
하긴, 나 일하는 매장도 첫 근무할 때는 이세계 편의점인 줄도 전혀 몰랐다. 물건은 편히 고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들어갔다가, 맞이해 주는 직원을 마주치자마자 살짝 움찔했다.
“어서 오세요, 손님.”
“…어. 예.”
직원이 생긴 게 여성 인간에 가깝게 생겼는데, 등에 나비 날개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앞머리와 이마의 경계 부근에는 더듬이 같은 게 두 가닥 나 있었고. 더듬이가 시야를 방해하는 걸 막기 위함인지 머리핀 같은 것으로 더듬이 두 가닥을 뒤로 젖혀 고정시킨 상태다.
나비과에 속한 이종족 중 하나인 듯한데, 동물용품 전문점을 곤충과 이종족이 운영하는 게 앞뒤가 맞나? 이것도 내가 레이시스트 기질을 못 버려서 이러는 건가?
“찾는 물건 있으신가요?”
“…아, 네. 제가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려고 하는데요.”
그냥 그려러니 했다. 이럴 수도 있는 거지.
구매하는 과정은 한 번 막힌 걸 제외하면 깔끔하게 진행됐다. 얘가 생후 3개월 정도 됐고, 당장 뭘 사야 될지 모르겠다.
이 말을 건네자마자 직원이 날개를 반쯤 펼치고는 신이 났는지 이것저것을 추천해 줬다. 고양이 화장실부터 시작해 발톱깎이, 스크래치, 반려묘 장난감 등등.
“고양이 화장실은 애 크기의 1.5배 정도 되는 걸 사면 좋아요, 손님. 혹시 고양이 크기가 어느 정도만 한가요?”
“…그.”
막힌 게 여기였다. 투명한 놈 크기가 얼마만 한지를 어떻게 설명을 해야 되냐… 모르겠다.
“화장실은 제가 직접 보고 골라도 될까요?”
“물론이죠, 손님. 그래도 너무 턱이 높은 건 지양하시는 게 좋아요. 어린 애들이 오르내리다 자주 넘어지거든요.”
외에도 고양이 발톱깎기. 생후 3개월이면 한창 발톱이 날카로울 테니, 지금 사서 바로 깎아 주는 게 좋단다. 스크래치는 깎은 발톱을 스스로 다듬게 하는 용도.
“손님께서 밖에 나가 계시는 동안은 외로움을 많이 탈 테니까요. 반려묘 장난감은 이것저것 챙겨 주시면 좋아요.”
“어… 고양이가 외로움을 탑니까?”
고양이가 독립적인 성향이라 외로움을 거의 안 탄다, 이런 얘길 어디서 본 기억이 나서 물어봤다. 헌데 내 말에 직원이 날개를 축 늘어뜨리고는 반박해 왔다.
“그렇게 알고 계시는 분들 많죠. 그런데, 고양이도 사회적 동물이거든요. 반려묘가 아니라면 밖에서 지내고, 다른 고양이들도 만나면서 놀고 그러겠지만….”
“이해했어요. 집에만 있으면 못 그러니까.”
“네. 오셔서는 그걸 동물용품으로 해결하시려는 분들도 계세요. ‘우리 애가 기운이 없는데, 혼자 재밌게 가지고 놀 만한 장난감 없을까요?’라든지.”
혼자 갖고 놀 장난감이 아니라, 같이 놀아 줄 주인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세상에 돈으로도 안 되는 게 있기는 분명 있다.
“그래도 밖에서 일하는 건 어쩔 수 없으니, 장난감으로 조금이라도 달래주는 거고요.”
“어우. 설명 잘하시네요.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모르면 일단 배우는 게 맞다. 배운 값을 치를 겸 아까 보여준 발톱깎이를 포함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전부 샀다. 싼 것부터.
마지막으로 제일 비쌌던 게 고양이 전용 사료 공급기. 가격이 무려 8만 원이었다. 확인하는 순간 사료 공급기 뒤로 라면 네 박스가 날아가는 환상이 언뜻 보이긴 했지만….
“…이것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매일 찢어진 사료봉투 들고 씨름하는 것보단 낫다. 이렇게 필요하다 싶은 걸 싸그리 긁어모아 계산하고 나니, 총가격이 18만 원이었다.
봉투는 세 개가 나왔고. 아직 내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 못 샀는데 18만 원이 빠졌다. 계좌이체로 계산을 마친 뒤, 직원이 봉투를 내밀며 밝게 물었다.
“애를 많이 아끼시나 봐요, 손님.”
“예. 애가 길고양이 같은 애인데, 어쩌다 제 집 몰래 들어와서 살게 된 애라서.”
“어머나.”
실제로는 역순이지만,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했다간 내가 고양이 영역에 쳐들어가 불법점거를 한 놈이 되어 버린다. 그건 싫어서 살짝 왜곡해봤다.
“그럼 예방접종도 받으셔야 되지 않을까요?”
“어… 네. 받아야죠. 그것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만 가볼게요.”
“앗, 네. 살펴 가세요, 손님.”
말하며 내게 고개를 꾸벅여왔고, 나도 고개 꾸벅인 뒤 건물 밖으로 나왔다.
나와서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며 드는 생각이, 예방접종 비용은 또 얼마를 내야 되는 거야. 그것까지 하고 나면 이불 살 돈은 남나?
* * *
집에 돌아오자마자 예방접종 비용부터 알아봤다. 3차까지 받는 게 추세인데 회차당 4만 원이다. 도합 12만 원.
고양이 한 마리를 기르겠다고 결심을 하자마자 계좌에서 30만 원이 빠져나갔다. 동물 하나 책임지는 데에 뭔 돈을 그렇게 따지냐 해도 할 말이 없긴 하다. 하지만.
저놈은 졸라 짱쎈 투명고양이잖은가. 영물이고. 멍멍이 녀석도 재생능력이 있는데, 저 녀석도 비슷하지 않을까? 기생충들도 저놈 똑같이 못 볼 거 아냐.
헌데 생각해보면, 멍멍이 놈도 예방접종은 받았을 것 같다. 2살까지 집에서 길러졌으니까. 내 머릿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놈이 베란다 근처에서 쉴 새 없이 골골대고 있었다.
“그르릉….”
햇볕이 따듯한 게 기분이 좋아서 저러나 보다. 아까 그 직원이 지나가듯 이야기한 게, 새끼고양이는 잠이 무진장 많다고 했었는데 말야.
“…야. 장난감 가져왔으니까 이거나 가지고 놀아봐.”
그 직원이 특히 강력히 추천해준 장난감이다. 짐승 털 달린 막대기.
길고양이 출신이면 아무래도 야생성이 남아있을 테니, 순수 고무 재질보다는 짐승 털 같은 게 달린 것이 더 관심이 끌릴 거라고 하더라.
바로 포장을 뜯어서 골골송이 들리는 방향으로 휙 던져 봤는데,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위에 툭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동시에 하악질 한 번.
“하아악!”
“어, 미안하다.”
말로 사과한 뒤에 반응을 지켜봤다. 뭔가가 자기 몸을 덮쳤다는 사실에 분개했는지, 털 달린 장난감을 들어 올려서는 바닥에 패대기쳤다.
무려 2m 높이까지 말이다. 저놈이 장난감 가지고 노는 데에 마법을 쓰고 있다. 그렇게 두어 번을 패대기치다,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란 걸 깨달았는지 가지고 노는 게 약간 얌전해졌다.
털 달린 막대를 두둥실 띄워서는 꼬리마냥 좌우로 살살 흔드는 고양이. 그러다 손으로 덥석 붙잡은 건지 막대가 기우뚱했고, 잠시 후엔 막대 끝의 털이 뭉치기 시작했다.
입으로 물고 있나 보다. 가만히 내버려 뒀다간 털이 다 뜯길 것 같아, 가까이 가서 막대를 손으로 집어 올렸다.
“야. 여기 있다.”
“우릉.”
입을 다문 채 내는 울음소리. 이 소리도 직원이 말해줬었다. 놀고 싶을 때면 입을 다문 채로 불만족스럽게 들리는 소릴 낸다나 뭐라나.
막대를 옆으로 휙 휘젓자, 타닷 소리와 동시에 바닥에 발톱 자국이 살짝 남았다. 반대로 휘저으니 이번엔 반대쪽에 발톱 자국이 났고.
“많이 심심했나 보네. 어?”
“우릉….”
그리고 난 많이 졸렸다. 더 놀아주려 했는데, 햇살이 뜨셔서인지 눈이 꾸벅꾸벅 감기더라고.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장난감을 죄다 뜯어 널브러뜨린 뒤, 장난감 한가운데에 드러누웠다. 방 구석구석에 사료 알갱이들 있을 텐데, 그건 또 언제 치우나.
“…그것도 나중에 니가 치워라. 내가 니 어지른 걸 왜 치워?”
“그르릉.”
“그거 치우면 오늘 물건값 쌤쌤이 칠 테니까, 이제 얌전히 좀 지내라. 알았냐.”
잠이나 잘란다. 이 정도 뇌물을 바쳤으니, 하루 잠자는 것 정도는 좀 봐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