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편돌이-176화 (177/201)

176화. 싸우지 말고 공부해, 공부 (1)

* * *

9시 즈음 일어나 집 내부를 한번 둘러본 뒤, 바로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던 건지, 신호음 없이 받아서는 용건부터 말해 오더라.

[ 어떻게 되어가고 있소. 그 마귀 놈은 잡을 수 있는 거요? ]

잡는 거야 어렵지 않다. 둘러보면서는 고양이 녀석이 어디 있는지부터 찾았는데, 털 달린 막대가 10cm 높이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저 막대에 꽂힌 모양이다.

몰래 목덜미를 잡으려 했는데, 내가 몸을 일으키자마자 이 녀석이 털 막대를 문 채로 구석으로 후다닥 도망가 버렸다. 바라보며 대답했다.

“잡는 건 어렵지 않은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 대략 얼마나 걸리겠소. 해결할 수는 있는 거요? ]

“음….”

간식으로 꾀어낸다면 붙잡는 건 오래 안 걸리겠지만, 이게 단순히 잡는 걸로 끝날 일은 아니다. 잠깐 고민하다 대답했다.

“기간은 확답을 못 드리겠고, 해결은 할 수 있습니다.”

저 녀석 정체를 곧이곧대로 말할 순 없다. ‘고작 마법고양이 한 마리로 이 호들갑이었소?’란 반응이 나올 게 뻔한데, 저놈이 보통 털뭉치가 아니잖은가?

마력에 반응해 하악질을 하는 놈이고, 자길 잡겠다고 마법을 쓰는 걸 얌전히 당해 주지만은 않을 터다. 여태까지야 자기 영역에서 나가라고 농성만 해댔지만, 자기가 붙잡힌다 싶으면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일 테고….

그때면 샤워기 호스 끊어지는 걸론 안 끝난다. 빠르게 해결한답시고 사람 여럿 실려 가는 것보단, 내가 전담마크해서 온건하게 해결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걸 최대한 있어 보이게, 고양이란 단어 언급 없이 설명했다. 말을 마치자, 집주인이 긍정 반 아쉬움 반의 어조로 소감을 말해왔다.

[ 언제가 될진 몰라도, 해결은 할 수 있다니 다행이구만. 전문가래서 부른 작자들은 죄다 못 하겠다며 의뢰비 뱉고 내빼기 바빴는데 말이오. ]

“아하….”

[ 해결하는 동안은 거기서 계속 묵을 거요? ]

“네. 집 안에 묵으면서 해볼 생각입니다.”

[ 그럼 그렇게 하고, 이번 일 의뢰비 말이오. ]

의뢰비. 의뢰비… 맞다. 이거 원래 돈 받고 하는 일이지.

[ 거기서 묵을 생각이면, 집세 두 달 치를 아예 받은 셈 치려고 하는데. 괜찮겠소? ]

“어… 네. 그렇게 해 주시면 저도 좋죠.”

일단 대답은 했는데, 이게 정말 좋다고 대답할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 말고 다른 반마법사 양반들은 계약금을 얼마씩 받았던 거야?

[ 그럼 그런 걸로 하고, 조만간 입주계약서 가지고 가겠소. 수고하시오. ]

이러고는 뚝. 꺼진 폰 화면을 바라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 일이 사실상 처음으로 외주받은 일인데 건당 40만 원이면 많이 받은 거 맞겠지.

현금이 오고 간 게 아닌 만큼 실감은 안 나지만 말이다. 꺼진 폰 화면을 잠깐 바라보다, 시간을 확인했다. 9시 30분이었다.

슬슬 출근 준비를 해야할 것 같은데, 집 안에 있는 게 없다 보니 준비를 하려야 할 수 있는 게 없다. 갈아입을 옷, 칫솔, 수건. 심지어는 호스기마저 끊어져서 샤워도 못 해.

이걸 어째야 하나 고민하다, 일단 출근부터 하기로 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은 뒤, 아직도 구석에 둥둥 떠 있는 털 막대에 대고 말했다.

“네가 만약에 40만 원어치 이상 사고를 친다, 그땐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알았냐?”

“…….”

“너 해결하라고 받은 돈이니까. 그 정도는 봐준다.”

말했으나, 저 녀석이 털 뜯느라 바쁜지 대답조차 안 했다.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할 텐데 말은 왜 자꾸 걸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 * *

매장에 도착한 게 9시 40분. 카운터 앞에 손님 한 명이 계산 중이었고, 유리 녀석은 집에 돌아갔는지 점장 한 명뿐이었다.

씻질 못하고 나온 탓에 유니폼을 가져오면서 점장 눈치를 슬슬 봤는데, 점장이 오늘따라 묘하게 피곤해 뵌다. 먼저 인사해도 반응이 없는 게 특히.

“점장님. 안녕하십니까.”

“…….”

“점장님?”

“…아. 응, 안녕. 찬아.”

“예. 유리 그 녀석은 돌아간 거예요?”

“응. 오후 1시까지 일 배우고 집에 돌아갔… 돌아… 하아암.”

심지어는 말하다 말고 하품까지 한다. 점장이 30시간 연속근무를 뛰고도 쌩쌩했던 사람이다. 피곤할 이유라면, 내가 퇴근할 때부터 점장이 대신 걔 일을 가르쳤을 테니….

“유리 그 녀석이 괴상한 거라도 막 물어보고 그랬어요? ‘편의점은 왜 존재하는 걸까요?’라든가.”

“아냐. 중간에 그걸 물어보긴 했는데, 도중에 알아서 납득했어.”

납득한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장사가 무진장 잘돼서였단다. 그냥 잘된 수준이 아니라 매장이 미어터질 정도로 말이다.

그럼 좋은 거 아닌가― 싶었으나, 어떤 식으로 바빴을지를 생각하니 차마 잘됐다는 얘기를 못 하겠더란다. 여긴 애들이 온다. 어른이 아니라.

“요새 애들이 말야, 엄청 팔팔해.”

“예….”

“실내화 가방도 엄청 높이 던질 수 있구 말야.”

자세한 정황이 이러했다. 오후 1시부터 오후 7시까지,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등학생들까지가 골고루 찾아와 깽판을 부렸다고 한다.

그중에 초등학교 5~6학년으로 추정되는 애들이 와서는 매장 앞에서 실내화 가방을 던지고 놀았다는데, 그 가방 중 하나가 편의점 차양 위로 올라가 버렸다.

이걸 점장이 바로 확인을 못 했단다. 매장 절반이 애들로 꽉 차버린 탓에 정신이 없어서. 그렇게 계산하던 와중, 느닷없이 뭐가 부욱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단다.

“애들이 글쎄, 어디서 막대기 같은 걸 집어 온 거야. 엄청 길고 뾰족한 걸루.”

그걸로 차양을 밑에서 쿡쿡 찔러 올리다가 차양을 찢어먹었고, 툭 떨어진 실내화 가방을 집어서는 나 몰라라 도망가 버렸다고. 이게 오후 1시의 일이었다.

“그…럼 오후 2시에는요.”

“한 애가 교통카드를 충전하고 나갔는데, 바로 들어와서는 나한테 말하더라구. 누가 자기 자전거를 가져갔는데 어떻게 해야 하냬.”

그걸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면 우리가 알아?

점장은 정석적으로 ‘애석하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라는 대답을 했는데, 그 순간부터 애가 엄마한테 혼난다며 매장 로비에서 서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단다.

문제는 그 애가 세이렌, 혹은 세이렌 피가 섞인 종족이었다는 것. 어린애가 우는 거라 애들 고막이 찢어지거나 하진 않았으나, 소리가 작지는 않았다고.

“대충, 근처에서 비행기 날아가는 소리쯤 됐던 것 같아.”

“그럼 작지 않은 게 아니라, 유리창 다 깨지는 거 아니에요?”

“비유적인 표현이지. 그래두, 애들은 귀가 아파서 그런지 다 따라서 울더라구. 울음바다 됐어.”

이 애를 어떻게든 달래서 내보내고, 매장 애들도 진정시킨 게 오후 2시의 일.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나도 똑같이 울어 버렸을 게 분명하다.

이후에도 오후 3시, 4시, 5시, 계속 사건이 터졌다 하는데….

“…아무튼, 바쁜 거 본 유리가 편의점은 없으면 안 되는 곳이네요~ 하고는 납득했어.”

“오후 3시에 뭔 일 있었는데요?”

“생각하면 우울해지니까 말 안 할래.”

“예.”

그래도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잘 전달이 됐다. 학원지구 낮 타임 난이도가 전에 있던 곳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하드하다는 것.

사거리에선 낮만큼은 일이 안 터졌을 테니까. 진상이 찾아오더라도 오후 7~8시, 퇴근한 직후에 술 잡순 직장인들이나 몇 찾아온 게 끝이었겠지.

“시간대 바꾸실래요? 점장님?”

유리 녀석 교육이 끝난 후에 점장이 맡게 될 시간대가 오후 2시부터 10시. 방금 말대로면 사람 하나 죽기 딱 좋겠다 싶어 물었는데, 점장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냐. 찬이가 이 시간대에 근무했다간 죽어 버릴 게 분명해.”

“그럼 점장님 돌아가실 것 같으실 때 말씀해 주십쇼.”

“응. 그래두, 찬이한테 하소연하고 나니까 마음은 좀 편해졌다.”

“그럼 다행이고요.”

난 역으로 불편해졌지만 말이다. 야간은 새벽 1시 전후까지만 버티고 나면 그 이후로는 한가하다. 찾아오는 거래봐야 무료함, 지루함 정도.

점장이 힘든 걸 아예 말을 안 하진 않으니, 나중에 먼저 말 꺼내면 그때 대화를 하든 해봐야겠다. POS기에 찍힌 매출을 확인하는 사이, 점장이 내게 물었다.

“그런데 찬이, 옷은 갈아입구 나왔어?”

“아…뇨.”

씻기는 했냐는 질문이 생략된 질문 같다. 하기사, 29살 먹은 놈이 밤새워서 근무하고 안 씻으면 티가 나겠어, 안 나겠어.

고양이 밥을 챙길 게 아니라, 내 몸뚱어리부터 챙길 걸 그랬다. 할 말이 없어 고개만 숙이고 있었더니, 점장이 손에 분무기를 꺼내 든 채였다. 매장에서 파는 종류는 아니다.

“그럴 줄 알고 준비해 뒀지. 등 돌려 봐, 찬아.”

시키는 대로 등을 돌리자, 칙칙 소리에 뒤이어 꽃향기가 주변에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몇 번을 더 뿌린 뒤, 카우보이마냥 분무기 분출구를 훅 불고는 말을 잇는 점장.

“마법 좀 섞은 거니까, 체질 풀지는 말구.”

“아하. 이건 언제 허가받으신 거예요?”

“옛―날에 매장에 방향제 뿌려 보려구 허가받았었지. 이 냄새를 싫어하는 분들도 계셔서 그만뒀지만 말야.”

주로 미노타우로스나 오크 등, 육식을 선호하는 손님들한테 클레임이 많이 들어왔었단다. 고기 냄새 나는 방향제라도 뿌려 달라는 건지, 뭔지.

“그래두 효과 사라지면 나중에 냄새 두 배로 늘어나니까, 들어가면 꼭 씻구, 옷도 사구.”

“…죄송합니다, 점장님.”

“뭘. 급하게 이사 왔으니까 정신없는 게 당연하지. 그런데 찬아, 나 궁금한 거 있어.”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아까 유리 돌아갈 때, 손님 받는 건 오늘 못 가르쳐줄 것 같다구 했거든?”

그 말에 날 통해서 직접 한번 해봤다고 대답했단다. 처음 해보는 경험이어서인지 자기가 한 일을 구구절절 늘어놓았다는데, 그중 지분을 많이 차지한 게 손님 인상착의.

“치와와 코볼트 손님을 받았다 하더라구. 찬이 단골손님이시잖아. 찬이 보러 오신 거지?”

그 양반이 날 보려고 찾아온다, 이건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집에서 3, 40분 떨어진 곳으로 이사 간 편의점에까지 기어코 쫓아와 쌍욕을 박고, 직장상사 암살모의를 하는 손님이 있다? 오우….

“아마 그럴 겁니다. 그런데 그 양반은 왜요?”

“그분이 뭐라기보다는, 많이 신기해서. 혹시 그분 말고 찾아오신 다른 분들도 계셔?”

나도 신기하긴 하다. 나이 먹을 만큼 먹을 양반들이 설마 오란다고 진짜 오겠어― 생각했는데, 진짜 오던데?

그래도 아직은 저 치와와가 처음이다. 유니폼부터 갈아입고 대답하려 했는데, 쇼윈도 왼편에서 대뜸 사람 무리가 나타났다.

손목을 바싹 붙이고, 죄인마냥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말이다. 한눈이 팔려 잠깐 바라보는 사이에 정문이 불쑥 열렸고, 무리를 인도하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아니….

“안녕하십니까.”

엘프 경관이 왔다. 정문 앞에 멈춰서서는 내게 경례해 오길래, 일단 대답부터 했다. 대답을 하긴 하는데….

“예. 안녕하십니까, 이루엘 경관님. 그런데 저 뒤에 서 있는 애들 말인데요.”

“말씀하십시오.”

“쟤네들 왜 저러고 있습니까?”

정문 밖으로 줄을 선 사람들 몇몇 모습이 고스란히 보이게 됐는데, 죄다 교복을 입고 있었다. 손목이 바싹 붙은 건 손목이 케이블 타이로 묶여 있어서였고.

이것 말고도 기이한 점이 한 가지 더 있었는데, 눈가에 멍이 들었거나 교복이 찢어졌다거나 한 군데씩이 정상이 아니었다. 어째 싸우기라도 한 듯한….

“교외 집단 난투극에 연루된 학생들을 연행 중입니다. 손목은 도주 우려가 있어 부득이하게.”

“난투라니 그건 또 무슨, 그것보다 경관님 여기가 관할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사거리에서 근무하던 경찰이 왜 여기에서까지 경찰복을 입고 있냐. 묻자, 경관이 무미건조한 어투로 대답해왔다.

“근무 인원이 모자라졌다 하더군요.”

“인원이요?”

“예. 인력충원차 들렀습니다.”

말하면서는 담배가 땡기는지,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열어보는 경관. 열린 담뱃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내게 말해왔다.

“레드 한 갑만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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