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싸우지 말고 공부해, 공부 (2)
* * *
담배는 점장이 계산해 건네줬다. 나 아직 인수인계도 못 받았다. 리더기에 꽂은 카드를 건네주며 경관에게 태연하게 말을 거는 점장.
“오랜만이에요, 경관님. 이제 이 근방에서 근무하시는 거예요?”
“임시입니다. 기간은 한 달 정도.”
“저희도 딱 그만큼 있을 것 같아요. 오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이전한 지 30분 됐습니다.”
“엇. 에구….”
경관 대답을 들은 뒤, 다시 한번 학생들이 줄지어 늘어선 밖을 바라보았다. 당장 쇼윈도 밖으로 보이는 숫자가 2열 종대로 10명. 안 보이는 숫자까지 합치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이 엘프 경관이 사거리에서 근무할 때, 억까란 억까는 전부 당하며 지냈었다. 승진을 명목으로 떠맡게 된 과 개수가 8개였나, 9개였나….
그 억까의 기운이 여기까지 따라온 모양이다. 근무지 이전한 지 30분 만에 저 머릿수를 연행하고 있는 걸 보면 말야.
내 시선을 따라 밖을 바라보던 경관이, 방금 산 담배의 포장을 뜯으며 읊조리듯 말해왔다.
“저 학생들만 마저 이송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직후 뜯은 포장지를 뒷주머니에 욱여넣고는 밖으로 나가는 경관. 뒷모습을 바라보다, 확인해야 할 사항이 생긴 것 같아 점장에게 물었다.
“점장님. 밖에 저놈들 쌈박질하다 끌려왔다는데, 혹시 이유 짐작 가는 것 있으세요?”
“음… 아. 매장에서 싸움 날까 봐 그래?”
“네. 아무래도요.”
줄 서 있던 녀석들을 보던 중 의심 가는 점이 하나 있었다. 2열 종대로 선 녀석들이 두 종류 교복을 입고 있었다. 타 학교 학생들끼리 시비가 붙기라도 한 거겠지.
이런 이유에서라면 이 매장도 얼마든지 난투 맵 중 하나로 선정될 수 있지 않나. 내 질문에 잠깐 생각하는 듯하던 점장이, 아예 매장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가서 보면 대충은 알 수 있을 거야. 쟤네 멀리 안 갔을 테니까.”
“경찰이 끌고 갔는데도요?”
“저 애들 경찰서 가는 거 아니야. 진짜루 보면 알아.”
두 번이나 강조하길래, 반신반의하면서도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봤다. 점장 말대로 이 녀석들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게 바로 보였는데, 상황이 꽤 심상치 않았다.
“학도들, 정신이 나갔습니까!!”
“새끼들… 기열!!”
학원지구 정문 안쪽으로 몇 걸음 거리에 저놈들이 죄다 엎드려뻗쳐 있었던 것이다. 그 앞에는 웬 시뻘건 모자를 쓴 도베르만 코볼트 둘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고….
어이가 없어서 마저 지켜봤는데, 말하는 내용이나 하는 짓이나 하나같이 여간 기합이 아니었다.
“훈련장에서 있었던 일을 왜 밖에까지 끌고 나갑니까, 그러려고 마법 배우고 있습니까!!”
“아쎄이!! 타 학교 학도들과의 교외 분쟁에 관해 분명 경고했을 텐데!! 싸워서 지고, 이기면 죽어라!!”
“지금부터 복창합니다!! 우리는!!”
“우리는!!”
“헌터지, 깡패가 아니다!!”
“헌터지, 깡패가 아니다!!”
이러고는 기합에 맞춰 모은 손으로 팔을 굽혔다 펴 대기 시작했고, 여기까지 보고 나서야 정황이 대충 짐작이 됐다.
저놈들이 매―직 사관생도였던 거다. 아니면 그 비스무리한 거든가. 하긴, 학교가 잔뜩 몰린 곳이니 사관학교도 있으려면 있을 수야 있겠지.
기합 주는 걸 왜 하필이면 오밤중에, 불 켜진 상가를 앞에 두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바라보던 도중, 등 뒤에서 정문 벨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악!! 악!!”
“기합이 왜 이럽니까, 5회 추가!!”
점장이 심심했는지 손에 캔커피 두 개를 든 채로 따라 나왔다. 말없이 내게 건네오길래, 받아 마시며 떠오르는 걸 물었다.
“쟤네 학교 안에 PX 따로 있죠?”
“피엑스? 주문 같은 건가?”
“주문은 아니고, 저 사는 세상에는 군부대에 편의점이 따로 있었거든요. 그걸 PX라 불렀습니다.”
“아하. 있을 거야. 쟤네 기숙사 생활하니까.”
저놈들 손님으로 받을 일은 없을 것 같아 다행이다. 헌데 이놈들이 멀리 가지 않았을 거란 점, 기숙사 생활을 한단 점을 점장은 왜 알고 있는 것인가.
“점장님 왕년에 빨간 모자도 쓰셨었습니까?”
“내가 써보진 않았구, 윤하한테 얘기는 자주 들었거든.”
“누나가 저러고 있었다고요? 팔목에 케이블 타이 매고?”
“아니. 윤하가 모자를 쓴 쪽이었지.”
“헌터지, 깡패가 아니다!!”
“헌터지, 깡패가 아니다!!”
말하는 내용으로 보면 헌터 관련 교육을 받는 놈들일 테니, 누나도 비슷한 과정을 겪기는 했겠다. 과정을 상상해 보려던 찰나, 현장 옆으로 경관이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걸어오는 도중에 뒤를 힐끗 바라보고는, 내가 궁금해하던 내용을 풀어서 설명해줬다.
“6월에는 저런 졸업반에 접어든 학생들 간의 분쟁이 자주 발생하곤 합니다. 시험을 앞둔 기간이니까요.”
안으로 들어오면서는 부가 설명. 이 세상에는 매달 초에 치르는 적성검사 외에도 7월 초중순에 연 단위로 치르는 시험이 하나 있다고 한다.
그게 꽤 중요한 시험이라 졸업반, 취업반 학생들이 한창 예민할 시기이고, 이 시기에는 같은 학교 학생, 타 학교 학생 가릴 것 없이 눈만 마주치면 싸워댄다나 뭐라나.
여기까지 듣고 나서는 약간 안심했다. 싸워대는 게 이 지역 학풍이 청춘학원배틀물이라서는 아니라잖은가. 졸업반 녀석들끼리 잠깐 싸워대는 거라면, 뭐….
“때문에 이 기간에는 관할 서에서 타 관할에 정기적으로 인력지원 요청을 하는 편입니다. 주로 교외에서 벌어진 사건 관련 학생들을 교내로 이송하는 업무를 맡게 되고요.”
그걸 처리해야 하는 당사자에겐 좋은 일이 아니겠지만 말이다. 말을 맺고는 담배가 땡기는지 바깥을 힐끗 바라보는 경관. 얼른 말해봤다.
“담배 피우실 곳 찾으시는 거면, 저 안쪽에 흡연구역 있을 거예요. 정문 안쪽에―”
“방금 다녀왔습니다. 전에 봐둔 기억이 있어서.”
“아, 네.”
“이 구역이 이 점만은 좋더군요. 굳이 흡연구역을 찾을 필요가 없으니까.”
이루엘 경관은 자신이 상대하는 민원 대상들, 심지어는 경찰 동료들한테도 은연중에 차별을 받고 있다. 엘프라서.
그걸 생각해 보면, 이번에 근무지가 변경된 것도 자의보다는 타의가 더 컸겠지. 머리카락 절반이 스트레스로 시커메진 것만 봐도 그렇고….
“경관님.”
바라보고 있자니, 옆에서 점장이 불쑥 말을 걸었다.
“예. 말씀하십시오.”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어요? 머리 색이 밝아지셨어요.”
나도 따라서 바라봤다. 애매하긴 했지만, 지난주에 매장에 물난리가 났을 때보다는 머리카락 색이 더 밝아진 것도 같다.
며칠 새에 근무지가 바뀐 판에 좋을 일이 뭐가 있나― 추측하고 있는데, 잠깐 말이 없던 경관이 허리춤의 경광봉을 꺼내 들었다.
그 경광봉으로 자기 머리를 두드리며, 느릿느릿 대답해왔다.
“이사를 가시거든… 담배 살 곳이 사라지겠거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담배 살 곳이요?”
“예. 근무지가 이 관할로 변경된다 했을 때, 최소한 마음은 편해지더군요.”
글쎄였다. 이 세상에 담배 살 곳이 여기 한 군데만 있는 건 아닐 테고.
“…농담이었습니다.”
말하고는 머리에 쓴 경관모를 눌러쓰는 경관. 제 딴엔 농담이라고 하니 문맥 그대로 이해해 보기로 했다. 앞으로도 여기 올 수 있게 된 덕에 마음이 편해졌다. 흠….
“경관님. 오늘은 이제 퇴근하시는 겁니까?”
“…일 말씀이십니까.”
“네. 평소엔 많이 바쁘셨던 것 같아서요.”
일부러 대화 주제를 바꿨다. 이 경관이 지금 부끄러워하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원체 무뚝뚝한 엘프라 확신은 전혀 없긴 하지만….
부끄러워하던 게 아니면 자기가 알아서 반응하겠지. 아님 말고라는 생각에 말을 꺼냈는데, 경관이 내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해왔다.
“바쁘지는 않습니다. 막 발령받은 참이라, 윗선에서 주변 지형을 확인하는 정도로만 지시하더군요.”
지금 해온 말이 묘하게 빨랐다. 부끄러워하던 게 맞나 보다.
“말이 나온 김에, 두 분께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다음 말은 다시 무뚝뚝한 어조로 돌아왔고, 표정도 진지해졌다. 뭐든 물어보라고 대답하자마자 경관이 자기 앞주머니에서 기계 하나를 꺼내 내려놓았다.
생긴 게 영락없이 MP3다. 내 세상에서 코흘리개 시절에나 보던 걸 이세계까지 와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근데 이건 왜?
“전에 돈가방 건. 운반을 담당했던 고블린을 찾아가 만났습니다.”
잠깐 들떴던 기분이 싹 가셨다. 게이트가 터지고 하수도에 다녀오기 전, 매장에 고블린 한 놈이 추정 억 단위의 돈이 든 가방을 투척하고 도망갔던 적이 있다.
그 고블린 놈 정체와 위치를 점장이 알아냈었고, 점장 추측으로는 그놈이 병원에 입원해 있을 거라고 했었다. 그놈에게 걸려있던 마법을 내가 풀어버렸기 때문이다.
“정말요?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병원에서?”
“예. 업주님 말대로 병원 몇 곳을 수소문했었는데, 의식불명의 고블린 한 명을 입원시켰다는 곳이 한 군데 있었습니다.”
“의식불명이면, 지금은 그… 괜찮답니까?”
“아직 입원해 있기는 하나, 의식은 어느 정도 돌아온 상태였습니다.”
의식이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얼굴도 모르는 데에 더해 일거리만 던지고 간 놈이긴 해도, 내가 골로 보낼 뻔했단 생각을 하니 마음이 착잡해지더라고.
지금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지금 보인 이 MP3 레코더도 꺼낸 이유가 딴 게 아니라―
“하여, 그 건에 대한 걸 녹음했습니다. 제가 직접 들었을 때는 이 고블린이 위증하는 것 같진 않았습니다만….”
혼자서 판단하기 힘든 부분이 꽤 많아서, 우리 둘에게 확언을 받고 싶단다. 이건 실전 말고 이론에도 빠삭한 사람이 맡아야 할 분야다.
말없이 점장을 내려다봤더니, 점장이 딱 한 가지를 물었다.
“혹시 민감한 내용도 녹음되어 있나요? 누가 심하게 다쳤다든가, 정확한 액수라든가.”
“그런 건 없습니다. 지금 바로라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전 괜찮아요. 어차피 근무 끝나고 좀 더 있다 가려고 했거든요. 찬이는?”
“저는, 예. 들려 주십쇼.”
아주 잠깐 망설였다가, 바로 털어냈다. 내가 이런 것과는 일절 인연 없이 산 놈이긴 하지만….
그건 전에 살던 세상에서의 얘기다. 이상한 체질을 달고 와 버린 이상, 이상한 일에도 이젠 익숙해져야겠지.
우리 말에 경관이 바로 레코더를 재생했고, 살짝 노이즈 낀 대화가 흘러나왔다. 우리에게 말할 때보다 배는 더 무뚝뚝한 목소리와, 째진 목소리.
[ …신변이 추적될 정보를 언급하지 않는 조건으로 녹음 및 질의응답에 동의하신 걸로 알고, 질문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
[ 해. ]
[ 어떤 거래를 통해 발생한 돈입니까. ]
[ 몰라. 취급하는 게 엄청 많거든. ]
[ 누가 시켰습니까. ]
[ 몰라. 난 시키는 대로만 할 뿐이야. ]
점장이나 경관이 ‘조직의 말단일 거다―’라고 추측했었는데, 문외한인 내 귀에도 이 고블린이 말단스러운 소리만 해댔다. 중간중간에 내뱉는 말이 특히.
[ 이렇게 병신 될 뻔할 줄 알았으면 진즉에 때려칠 걸 그랬어. 보험도 안 들어놨는데 말야. 의사가 병원비를 부른 게― ]
[ 묻는 말에만 대답해 주십시오. 대화가 길어집니다. ]
[ 알았어. 또 뭐. ]
[ 혹시 다음 지령을 전달받으신 게 있습니까? ]
[ 6월 첫째 주 토요일, 밤 12시. ]
이 부분은 특히 주의 깊게 들었다. 학원지구 6블록 공원 화장실에서 가방과 쪽지를 건네받은 뒤, 쪽지에 적힌 주소에 가방을 운반해라.
쪽지는 불태워라. 잠깐 정적이 흐른 뒤, 고블린이 말을 맺었다.
[ 이번 주 얘기야, 경찰 아가씨. 이번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