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편돌이-178화 (179/201)

178화. 싸우지 말고 공부해, 공부 (3)

* * *

이후에도 몇 마디 질답이 오고 가긴 했으나, 의미를 부여할만한 건 없었다. 그 지령을 전달한 놈이 어디의 누군지 아느냐, 모른다. 연락처를 아느냐, 모른다.

[ 아까도 말했지만, 난 아무것도 안 묻고 시키는 대로만 했다고. 그랬다간 내 몸뚱아리가 다음 날 아침 바닷속 드럼통 안에서 발견될 테니까. 당신이 더 잘 알 거 아냐? ]

[ 외에 달리 말씀하실 건 없습니까. ]

[ 느낀 바는 있지. 이 쌍놈의 인생이 쉽게 돈 벌려고 헛짓거릴 할수록 어렵게 헛바퀴를 돌게 된다는 거. 나 이제 자도 되나? ]

[ 고생하셨습니다. ]

[ 좋아.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귀쟁이를 만났구만. ]

이러고는 뚝. 재생이 끝난 MP3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점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분이 세뇌나 최면 마법이 걸려있지는 않을 것 같아요, 경관님.”

“그렇습니까.”

“네. 대화 내용으로만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라, 확신보단 짐작 쪽에 가깝기는 한데….”

운을 떼고는 마저 설명하길, 정신에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마법은 사용하기도 어렵고, 시전자가 원하는 결과물을 내기도 힘들다고 한다.

마법이 제대로 걸렸는지를 판단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원 화장실에 돈가방이 있다는 말을 못 하게 된다’라는 내용의 세뇌 마법을 건다고 치자.

이러면 저 문장 자체를 입에 담는 건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산책 많이 다니는 곳의 손 씻는 곳에 뭔가가 있음’ 같은 식으로 우회해 말한다면?

“산책은 산으로도 갈 수 있으니까요. 손 씻는 건 싱크대에서도 할 수 있구, ‘뭔가’는 범주가 무궁무진하구.”

이것만으로도 탐색 범위가 훨씬 좁아지고, 세뇌 마법을 거는 시전자에겐 달갑지 않을 상황이다. 때문에 세뇌 마법을 주로 어떤 식으로 거느냐.

“보통은 어딘가에 뭔가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라구 아예 크게 제한을 걸어버려요. 찬이가 비슷한 질문 한번 해볼래?”

“…점장님 댁에 커피머신 있습니까?”

“옛날에 산 거 하나 있어. 그런데 만약에 내가 세뇌 마법이 걸려있었잖아? 그럼 난 방금 그 질문에 대답을 못 했을 거란 거지.”

이걸 일상적인 대화로 파악을 한단다. 이 고블린은 병원에 입원한 상황이니, ‘아까 먹은 약은 어디에 버렸냐’라는 단순한 질문조차도 대답을 못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분이 그러셨잖아. ‘시키는 거 외에 딴 걸 물었다간, 내 몸이 다음 날 아침 바닷속 드럼통 안에서 발견될 거다―’라구 말야.”

어딘가에 무언가가 있다, 바닷속 드럼통 안에서 내 몸이 발견될 거다. 이렇게 들으니 말이 되는 것도 같고, 애매한 것도 같고….

이 세상 마법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MP3 레코더를 뚫어져라 내려다보고만 있자니, 점장이 내 의견을 물었다.

“아무튼 난 이런데, 찬이는 어떻게 생각해?”

내 의견을 묻는다면, 나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다. 말 한마디가 귀에 밟혀서였다. 쌍놈의 인생이 쉽게 돈 벌려 할수록 어렵게 헛바퀴를 돌게 된다.

이 말이 주저 없이 바로 튀어나온 걸 보면, 이 고블린이 평소에도 자주 했던 생각이 튀어나온 게 아닐까. 속으로 좀 더 곱씹어 보다, POS기를 슬쩍 바라본 뒤 말해봤다.

“이놈이 말한 대로 해보면 명확해지지 않을까요? 내일모레 밤 12시, 공원 화장실.”

오늘이 목요일이다. 근래 하도 사건 사고가 터지다 보니,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보다는 오늘은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지만 궁금해하며 살았던 것 같어.

그래도 낼모레 내가 뭘 하고 있을지만은 알겠다. 내 말에, 경관이 레코더를 집어넣고는 살짝 난감하다는 어조로 말해왔다.

“진위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하려고는 했습니다. 헌데, 대동하실 생각이십니까.”

“예. 그… 돈가방 가져온 놈 잡으려고 하시는 거잖아요.”

이 고블린이 입원하지 않았다면 상황이 대충 이런 식으로 흘러갔을 거다. 밤 12시에 공원 화장실에 있을 고블린을 누군가가 찾아와 돈가방을 건네줬겠지.

그 돈가방에는 전처럼 똑같이 위장 마법이 걸려있을 테고 말이다. 이러면 어떻게 되느냐. 현장에서 돈가방 가져온 놈을 붙잡는다 한들 시치미를 떼면 그만이란 거다.

“그놈이 이거 돈가방 아니다, 그냥 쓰레기봉투다. 이래도 그 자리에서 경찰서 끌고 갈 수 있는 거예요? 경관님?”

“불가능하진 않지만, 어렵습니다.”

나도 그럴 것 같다. 지금 근거래 봐야 응급실 실려 갔던 고블린 말 몇 마디가 전부잖은가. 이 세상 치안이 아무리 기묘하다 해도 이 정도로 영장을 발부해주진 않을 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 현장에서 내가 돈가방에 걸린 마법을 풀어버리면 끝이다. 대놓고 돈가방 보여주면 지가 뭐라고 하겠어?

“제 생각은 이런데… 어떠십니까.”

물론 내 직장상사, 사건 담당자 둘 허가를 다 받아야 가능한 일이긴 하다. 슬쩍 둘의 반응을 살폈는데, 경관이 경광봉으로 자기 이마를 툭툭 두드리고 있더라고.

점장을 물끄러미 날 올려다볼 뿐 말이 없었고 말이다. 깊게 생각하는 듯하던 경관이, 경광봉을 허리춤에 다시 집어넣고는 말을 이었다.

“대동하신다면 안전은 보장하겠습니다.”

만류를 안 한다. 경관도 내가 같이 안 가면 일이 복잡해질 거라 판단한 모양이다. 한편 말이 없던 점장이 대뜸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저도 같이 가도 되나요? 경관님?”

진짜 생각도 못 했다. 아니, 우리 둘이 다 나가면 매장은 누가 봐?

“업주님께서도 말씀이십니까.”

“네. 저도 일이 어떻게 될지 보고 싶어서요.”

뭔 생각인지를 묻고 싶었는데, 점장 표정이 농담 같지가 않아서 잠자코 있었다. 서로 마주 보던 중, 경관이 자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놓고는 대답했다.

“나중에 따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셔두 돼요. 마음은 안 바뀔 것 같지만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전 서에 바로 전달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원래라면 무전으로 담당 부서에 전달하면 될 내용이지만, 근무지가 변경된 참이라 이번엔 그게 안 된단다. 대화 내용도 길어질 것 같고.

“하여, 지금 돌아가야 할 듯합니다만….”

말을 늘이고는 경례를 하려는 듯 손을 들어 올리다, 내리고는 고개를 꾸벅 숙여온다. 이것도 전혀 생각 못 했다.

“매번 수고를 끼치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수고는 뭘요. 전에 물난리 났을 때 매장 안 잠기게 해주셨잖아요.”

“그거라면 원래 제―”

“정 찝찝하시면, 나중에는 앉아서 커피라도 한잔하고 가십쇼. 매번 담배 사 가시는 것만 보는 것 같어.”

고개를 들 기미가 안 보여서 나도 거들었다. 이걸 듣고 나서야 고개를 들고 날 물끄러미 바라보다, 희미하게 웃고는 대답해왔다.

“네. 나중에, 커피라도 한잔.”

그러고는 나갔다. 정문 벨 소리가 잠잠해진 뒤에 POS기 시간을 확인해봤는데, 오후 10시 10분이었다. 근무교대 할 시간은 이미 한참 지났다.

그래도 점장이 나갈 기미가 없다.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제 저 어쩝니까, 점장님.”

“어쩐지. 같이 가겠다는 거, 흐름 타서 한 말처럼 보이긴 했어.”

“그…래도 제가 아주 이상한 말 한 건 아니잖습니까.”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반마법사 한 명이 같이 가야 하는 건 맞다는 생각이다. 내가 마법 해제 원툴이긴 해도 제법 잘하는 편이니 적임인 것도 맞을 테고.

“그치만, 찬이 이런 일 해본 적 없다며?”

“그게 문제죠….”

하수도 심해 잠수하고, 짐볼만 한 홍채에 주먹 날리는 것도 모자라 이젠 범죄 수사 현장까지 직접 찾아가게 생겼다.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이렇게 사는 건 아닐 텐데 말야….

그래도 그때처럼 불만이 있지는 않다. 점장 말대로 전에 게이트 터졌을 때 도움을 받은 게 있으니까. 못 돌려주면 그게 더 찝찝하다.

“내가 봤을 땐 말야. 찬이가 게이트 일 겪으면서 간이 좀 부었어.”

“붓긴 했어도 아직은 괜찮습니다. 것보다 궁금한 게요.”

“어떤 거. 나 따라간다는 거?”

“네. 왜 오신다는 거예요?”

“찬이 초짜인 거 세상이 빤히 알구 나도 빤히 아는데, 걱정돼서라도 따라가야지. 그럼 안 가?”

이 이유에서일 것 같긴 했다. 점장이 범상치 않은 사람이란 건 이제 알 만큼 알았으니, 오는 것도 당연히 근거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한다. 그래도 말이다.

“저희 둘이 다 나가면 매장은 진짜 누가 봅니까. 유리 시키게요?”

“아무래도?”

순간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걔가 일 배운 게 오늘로 하루고, 내일모레면 3일… 아.

“3일이면 혼자 볼 때 되긴 했네요. 그런데, 걔가 그때 근무 못 한다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거 나도 똑같이 물어볼래. 밤 12시면 찬이 근무시간인데, 찬이는 어떻게 하려구 했어?”

“전 연차 쓰려고 했죠. 일 끝나면 바로 돌아와서 카운터 보고. 6월 됐잖습니까.”

연차랍시고 점장을 24시간 근무시키기도 그러니, 일만 끝내고 바로 돌아와서 카운터 볼 생각이었다. 말하자, 점장이 피식 웃고는 손가락으로 허리를 쿡 찔러오더라.

“이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하네.”

“진짜 마음에도 없는 소리처럼 들리세요?”

“아닌 거 알지. 유리한테 물어보구, 힘들다구 하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는 걸로.”

“예.”

이후엔 인수인계를 마친 뒤, 점장은 퇴근. 새벽 근무하는 동안은 별일 없었다.

* * *

숙련된 편돌이 기준, 몸담게 된 매장의 근무 패턴을 파악하는 데에 3일 정도가 소요된다. 주로 어떤 시간대에 어떤 손님이 오는가, 어떤 놈이 진상을 부릴까, 등등.

여기로 이사 온 게 3일이 좀 넘었고, 나도 이젠 이곳 패턴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참이다. 새벽 3시경에 재수학원 다니는 이종족들, 7시경에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 그리고….

“야! 이 안에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 몇 개 있는지 내기하자. 콜?”

“야! 그 샌드위치를 니가 왜 먹어, 내 돈 주고 산 건데!”

“야! 어제 서버에 내 집 터트린 거 너지. 폭탄 설치하는 거 다 봤어!”

서로를 부르는 호칭을 ‘야’로 통일한 탓에, 어디서 누가 누굴 부르는 건지조차 알 수가 없게 된 초등학생들. 우와, 이게 초딩이야 진상이야?

오전 8시 30분, 초등학생들 등교 시간. 이즈음부터 지하철, 버스, 도보 등으로 쉴 새 없이 몰려오기 시작해서는 온갖 신묘한 방법으로 내 주름을 늘려가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아이스크림 고른다고 냉동고 문을 활짝 열고는 그대로 나가버린다든가, 다른 녀석이 산 게 더 맛있어 보인다며 한 입만 달라고 다투다가 바닥에 질질 흘린다든가, 테이블을 상품 하나 안 사고 점거해서는 게임 얘기를 해댄다든가….

외에도 이 세상에서만 겪을 수 있는 바리에이션이 하나 더 있었는데, 이 녀석들이 마법 시전을 시도한다는 점이었다. 매장에서 말이다.

“야! 내가 지금 이 컴싸로 마법 한번 써 볼게.”

소음이며 애들이며 고루 미어터지는 와중에 이런 말이 들려왔는데, 바로 바라보니 늑대인간 종족으로 보이는 꼬맹이 녀석이 손에 포장도 안 뜯은 컴퓨터용 사인펜을 쥐고 있더란다.

“봐봐. 어제 4교시에 배운 건데―”

사인펜 한쪽 손으로 꽉 붙잡은 채, 반대쪽 손으로 별 가루를 뿌리는 동작과 함께 폼을 잡는 꼬맹이. 저게 또 뭐가 멋지다는 건지 다른 녀석들은 그걸 구경만 하고 있다.

“손님. 파는 상품 갖고 장난치시면 안 됩니다.”

“아, 왜요! 한창 집중하고 있는데!”

“그러다 포장 뜯어지면 직접 사야 되니까요. 한 자루 400원.”

통상적으로는 돈 얘길 하는 게 즉효약이라서 꺼내 봤다. 헌데 돈 얘길 하자마자 이 녀석이 오만상을 찌푸리고는, 손에 든 사인펜를 휙휙 흔들며 외쳐댔다.

“고작 400원 가지고 쩨쩨하게, 이상한 마법 쓰려는 것도 아닌데!”

“그럼 뭘 어쩌려는 건데요?”

“잠깐 사라지게 만들 뿐이라고요, 이 세상에서!”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든댄다. 이건 나도 살짝 궁금한데?

그래도 궁금한 것보단 손괴 걱정이 훨씬 컸기 때문에, 늑대인간 꼬마 앞에 한쪽 손바닥을 내밀었다. 뺏진 않을 테니 니가 알아서 내려놓으라는 제스쳐다.

그런데 이 녀석이 내려놓진 않고, 오히려 가져갈 테면 가져가 보라는 듯이 위로 홱 치켜들었다. 해보자는 심정으로 사인펜을 바라보다, 등 뒤에 선 누군가와 눈을 마주쳤다.

그 누군가가 미처 말 걸기도 전에 사인펜을 홱 뺏어서는, 늑대인간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내게 말해왔다.

“어제 언니가 말해줬어요, 오빠. 누가 상품 가지고 문제 일으키면 어지간해선 경찰부터 부르라고.”

“겨, 경찰?!”

이 말에 지레 겁먹었는지, 허겁지겁 로비의 인파를 헤집어 밖으로 뛰쳐나가는 꼬맹이. 나가는 꼬맹이에게 눈길 하나 안 준 채 태연하게 사인펜을 건네오며 묻는다.

“경찰 부를까요?”

“아니. 이런 일로 경찰 부르면 우리가 더 귀찮아져.”

“왜요?”

“그런 게 있어. 여튼 반갑다, 유리야.”

“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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