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편돌이-189화 (190/201)

189화. 분실물 찾아가세요 (2)

* * *

이렇게 1번 타자는 내가 맡게 됐고, 역할을 마저 나누기에 앞서 화장실부터 찾았다. 근처에 공원 지도가 있길래 봤는데, 공원에 화장실이 두 개더라고.

입구 쪽에 한 개, 정반대편에 한 개. 드나들기 쉬운 입구 쪽에서 범죄행각을 벌일 리는 없다는 판단에 반대편 화장실로 향했고, 도착하자마자 경관이 주변 지형지물부터 확인했다.

그러다, 멀찍이 떨어진 곳을 가리키며 말해왔다.

“저 안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가리킨 쪽이 놀이터였고, 손가락 끝이 이글루를 본떠 만든 듯한 놀이기구를 향해 있더라. 마침 창문이 화장실을 볼 수 있게 나 있다.

“저두 같이 있을게요, 경관님.”

“그럼 두 분은 그렇게 하시고, 이 이어폰 송수신 다 되는 거죠?”

“예. 제 무전기와 코드를 공유하고 있고, 말씀하실 때는 이어폰 면에 손가락을 얹으시면 됩니다.”

말하고는 자기 무전기에 대고 훅훅 바람을 불어댔고, 잘 들렸다. 손가락을 얹어 말을 송신해보려 했는데, 경관이 다소 뜬금없게 느껴지는 말을 해왔다.

“마지막으로, 두 분께서 코드네임을 정해주셔야 합니다.”

“웬 코드네임이요…?”

“신분이 노출되는 걸 막기 위해서입니다.”

붙잡아서 수갑 채운 이후라면 몰라, 붙잡기 이전에 서로 이름을 불러대다 놓쳤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유는 납득이 잘 됐는데, 말해오는 경관 목소리가 아주 약간 들떠 있는 게 이 이유에서만은 아닌 것 같다. 코드네임, 씨. 꼬꼬마 시절 레슬링 놀이 할 때 링네임은 직접 지어 봤었는데 말야….

“저는 펭귄 할래요, 경관님. 마침 이글루에 숨을 거니까.”

“그럼 조류명으로 통일하고, 저는 참새로 하겠습니다.”

그냥 편돌이면 안 되겠냐 물어보려 했는데, 흐름이 이러니 나도 적당한 새 한 마리 생각해다가 이름 붙여야 될 것 같다. 당장은 떠오르는 게 없어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안에 있다가, 떠오르는 거 있으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미리 들어가 있게?”

“예. 이놈들이 12시 딱 맞춰 안 올 수도 있잖아요. 더러운 짓 하는 놈들인데.”

그리고, 어차피 전달책 놈 만날 때는 혼자 만나야 되니까. 둘 옆에 붙어있다간 기껏 잡은 마음이 약해질 것 같다. 이건 따로 말 안 했다.

이렇게 둘과 헤어져 화장실로 들어갔고, 들어가서는 내부를 슥 둘러봤다. 좌변기 칸이 딱 두 개일 정도로 내부가 좁다. 창문은 머리 높이에 자그마한 게 한 개, 출입구는 방금 들어온 곳 하나.

일이 터졌을 때 자력으로 빠져나가기는 힘들어 보인다. 좌변기 칸 두 군데 중 한 곳에 들어가 앉아, 화장실 천장과 폰 화면을 번갈아 바라보기만 했다.

30분이 족히 넘도록 말이다. 최대한 마음을 비우려 해도 잡생각이 자꾸 떠오른다. 내가 하는 일인데, 일이 정말 잘 풀릴까.

원래 돈 나르기로 한 놈이 내가 아니라 고블린이잖은가. 전달책 놈이 ‘왜 그놈이 안 오고 네가 왔냐?’ 물으면, 그땐 뭐라고 해야 하지….

아니다. 그놈이 이미 실패한 걸 알고 있으니, 암구호 외에 추가로 뭔가를 더 물어볼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아까 생각한 대로 마법으로 날 어떻게 해보려고 하든가.

마법이면 괜찮다. 버틸 자신 있으니까. 다만 외적인 것들에 대해선 솔직히 자신이 없다. 내가 이러는 걸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봐 왔지, 직접 겪어 본 것도 아니고….

[ 아, 아. ]

“?”

[ 여기는 펭귄. 떠오르는 거 나와라, 오바. ]

귀에서 느닷없이 점장 목소리가 들려오길래, 바로 시간을 확인했다. 10시 50분. 아직 대화할 시간은 있을 거다. 이어폰에 손가락을 얹고 말해봤다.

“점… 펭귄. 들리세요?”

[ 잘 들려. 그런데, 떠오르는 거는 펭귄한테 존댓말 써? ]

“때에 따라 다릅니다. 그런데 떠오르는 거가 뭐예요?”

[ 아까 떠오르는 거 있으면 말하겠다구 했었잖아. 그래서 이렇게 부르구 있지. ]

농담이랍시고 하는 거였나 보다. 듣고 나서도 여전히 떠오르는 게 없어서, 점장에게 다른 것부터 물었다.

“무전기 따로 받으신 겁니까?”

[ 응. 다리 저려서 잠깐 걷겠다구 말씀드렸더니, 두 개 있던 것 중 하나 빌려주셨어. 무전기는 잠깐 꺼두셨구. ]

“허. 밖에 그냥 걸으셔도 되는 거예요?”

[ 괜찮지 않을까? 나 겉으로만 보면 무해하잖아. ]

하긴, 점장이 속은 왕년의 대마법사여도 겉모습은 영락없는 여고생이다. 지금 시간이 11시가 다 됐으니, 기껏해야 11시에 불 다 꺼진 공원 산책하는 신기한 여고생 정도로 보이는 게 끝이겠지….

“안 괜찮을 것 같은데요.”

[ 그럼 얼른 할 말만 하구 끝내야겠다. 많이 긴장돼? ]

“예.”

이 이유에서 무전 쳤을 것 같았다. 점장이 장난기가 다소 있긴 해도 이런 상황에서까지 장난을 칠 사람은 아니다.

긴장 안 한다고 해봐야 믿지도 않을 게 뻔하고. 내 사정 다 아는 사람이니까. 자세를 고쳐 앉아, 가능한 한 정보를 생략하며 말을 이어봤다.

“처음 여기 올 때만 해도 제가 이런 일 하고 있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 안 했습니다. 그냥 일하다 퇴근하고, 일하다 퇴근하고. 그러다 퇴직할 줄 알았는데.”

[ 생각한 거랑은 많이 다르지? 아무래두. ]

“예. 이런 일이 자주 있습니까?”

[ 종사하는 업종에 따라 다르지. 지금 우리들 경우엔 주로 하는 일이 이런 게 맞구. ]

게이트. 마수. 마법을 사용한 범죄. 등등. 이 세상 사람들은 내겐 일상이 아니었던 것들을 일상으로 여기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럴 수 있는 건 그것들이 위험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위험한 일들을 누군가가 해결해 왔기 때문이다. 반마법사와 마법사, 매―직 경찰, 헌터, 외에 내가 아직 모를 직종들. 나도 한 번은 목숨 걸고 매달리기도 했었고….

“전에 하수도 내려갔다 왔을 때 있잖습니까. 점장님.”

[ 응. ]

“그런 수준의 일이 자주 있으셨어요? 아니면 지금 일이라거나.”

있었겠지. 모르고 묻는 건 아니었다.

[ 자주 있었지. 한 번 하고 나면 녹초가 돼서, 오늘은 정말 힘들었어~ 하면서 침대에 드러누워서 자구. ]

“아하.”

[ 그런 다음 날에는 거울 보면서 양치질 하구, 머리 감구. TV 보다가 전화 와서 받으면 ‘해주신 일이 이렇게 이렇게 진행될 듯하고, 펭귄께서는~’ 이러구. 그럼 나는 네, 네 대답 다 하고 끊구, TV 음소거 풀구. ]

“일상적이셨네요.”

[ 그치. 나 현역일 때는 그게 일상이었어. ]

내가 아주 바란 상황은 아니지만, 난 이제 80%가 편돌이. 20%가 반마법사다. 내가 이 업계에 발 담근 이상 이런 일을 자주 하게 될 테고, 이것도 내 일상 중 하나가 되겠지.

이에 대해 비슷한 업계 선배인 점장한테 조언을 좀 들어보고 싶었다. 마음가짐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 점장 말을 들으니 대충 감이 왔다. 하던 대로만 하면 된다.

[ 똑같이 하면 돼. 아니면, 오늘 일 끝나고 맥주라도 한잔할까? ]

“맥주요?”

[ 응. 나두 일하다 힘들 때면 살짝 변화를 줬었거든. 떠오르는 거두 그렇게 하면 돼. ]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근데, 떠오르는 거라고 자꾸 얘기하시니까 영 어색해서….”

[ 그럼 적당한 거 말해주면 되지. ]

더 놀림 안 받기 위해서라도 그래야 될 것 같다. 점장은 펭귄, 이루엘 경관은 참새. 점장은 이글루에서 연상한 거고, 경관은 내가 아는 그 이미지에서 연상한 것일 테니….

“…까치요.”

[ 까치? ]

“예. 그놈들이 아무래도 제 처지랑 딱 맞는 것 같―”

말하다 말았다.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어서였다. 이제 겨우 11시밖에 안 됐는데?

“…습니다. 어떻게 진행하면 되겠습니까?”

남자 목소리. 사무적인 데에 더해 지적인 느낌마저 드는 어조다. 전달책이면 중간 관리한테 심부름 받는 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텐데, 말하는 게 왜….

“예. 그럼 바로 작업 시작하겠습니다.”

작업은 또 뭔 작업이야. 불길한 느낌에 바로 점장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누가 왔고, 뭐 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쪽 잘 봐주세요.”

말한 뒤에 바로 귀에서 손 뗐고, 화장실 문 잠금장치를 풀었다. 문이 잠겨있으면 안에 사람 있다고 광고하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다음엔 문 밑 틈새로 발이 안 보이게 들어 올린 뒤,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화장실 타일을 또각또각 걷는 소리, 바닥에 뭔가를 내려놓는 소리가 한 번, 두 번. 세 번.

내려놓는 소리마저 제각각이다. 딱딱한 것, 무거운 것, 가벼운 것. 돈을 여러 가방에 담아온 건가? 아니, 애초에 돈가방이 맞긴 해?

“순서는 어떻게 하면 되겠… 마력 탐지 마법부터. 예. 확인했습니다.”

탐지. 이런 씨, 이놈 돈가방 전달하러 온 게 아니다.

돈가방 받으러 올 놈을 잡으러 온 거다. 돈가방을 운반하는 데에 실패했고, 회수가 안 됐고, 고블린 놈은 마법이 풀린 채 보호 감찰을 받고 있다. 이놈들이 입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거다.

그놈이 술술 불었다 가정한다면, 그걸 들은 누군가가 이 시각에 여기 찾아올 거라고도 쉽게 판단할 수 있었을 거다. 그게 아니면 저러는 게 말이 안 된다. 단순히 돈가방 나르는 데에 탐지 마법을 왜 써?

생각하는 사이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어서는 푸르스름한 빛이 옅게 번쩍였다. 다음에는 피부를 효자손으로 긁는 듯한 감각. 더럽게 따끔거린다.

그래도 차라리 이게 낫다. 난 몸에 마력이라고는 한 방울 없는 놈이니까. 번쩍이던 빛이 사라지고, 다음엔 몸 일으키는 소리.

“아무 이상 없습니다. 다음은… 봉쇄 마법. 예.”

갈수록 가관이다. 하루종일 변기에 앉아있게 생겼네.

자물쇠가 찰칵거리는 소릴 들으며 마저 생각했다. 탐지 마법.

탐지 마법은 이곳에 다른 누군가가 먼저 수작을 부렸는지를 확인하려 했단 걸로 치면 될 것 같다. 단순히 사람만 찾을 게 아니라, 눈에 안 보이는 마법 같은 게 걸려있는지 확인하려면 이쪽이 더 편할 테니까.

그럼 봉쇄 마법은 무엇인가. 서로 정체를 모르기는 저쪽도 마찬가지니, 내가 근육질 오크에게 처맞는 상상을 저쪽도 똑같이 했을 수도 있겠다. 힘으로 못 빠져나갈 상황을 만들겠다는 거지.

여기까지 생각한 거라면, 이 근처에 저놈 혼자만 온 게 아닐 수도 있다. 지금 지시하는 놈이 꽤 신중한 놈인 것 같으니까. 그리고, 이 상황이라면….

…돈가방은 안 들고 왔겠지. 애초에 그러려고 온 게 아니니까.

이러면 돈가방을 훼손시키기 전에 먼저 회수한다는 내 목적이 사라진 셈이다. 그럼 뭘 해야 하느냐. 생각하려던 찰나, 이놈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말을 해왔다.

“지금 진행하고 있… 내부를 한번 확인하라는 말씀이십니까? 탐지 마법과는 별개로?”

야, 그냥 안 한다고 해. 아까 탐지 마법 썼잖아….

“…아닙니다.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이 줏대 없는 새끼. 여기 화장실 칸이 두 칸밖에 없고, 내가 안쪽에 앉아있다. 발걸음 소리 세 번에 뒤이어 옆 화장실 문이 벌컥 열리고, 닫혔다.

이젠 생각할 시간도 없다. 변비 걸려서 앉아있었다고 둘러대 봐야 믿지도 않을 테고. 이어폰에 손가락을 얹은 뒤, 반대 손으로는 아까 풀었던 화장실 잠금쇠를 다시 잠갔다.

“…뭐야?”

눈앞에서 대뜸 문이 잠겼으니 어리둥절하겠지. 바로 무전을 때렸다.

“어, 여기는 까치. 여기는 까치.”

[ 참새 대기 중입니다. 무슨 상황입니까? ]

“빨리 안 오시면 저 엿될 것 같습니다.”

직후, 잠금쇠를 다시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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