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분실물 찾아가세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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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풀린 일이 하나도 없긴 했지만, 일단 우리 할 일은 다 했다. 이 상황을 주도했을 놈 연락처도 알아냈고, 잡아서 감옥에 처넣을 증거도 고이 접어 잘 챙겼고….
“드르렁… 커어억.”
쌍방폭행으로 시비가 붙을 일도 없을 것 같으니까. 벽에 데코레이션당했던 개미인간 놈이 육지를 붙잡고 신음하는 대신 화장실이 떠나가라 코를 골아대기 시작해서다. 바라보며 물었다.
“두 시간 잠들어 있을 거라 말씀하신 게 비유가 아니었어요?”
“아니었지. 왜, 다치셨을까 봐?”
“아무래도 시청각적으로 좀… 아니. 아닙니다.”
마법으로 사람 다치게 하는 걸 싫어하는 점장이 똑같은 짓을 할 리가 없지. 괜한 걸 물었단 생각이었는데, 점장이 내 얼굴을 힐끗 보고는 마저 덧붙였다.
“이거 수면 마법이야, 찬아. 부수적인 효과들은 폭탄 터지는 것처럼 흉내만 낸 거구―”
그건 왜 흉내 낸 거냐 물었더니, 이 마법의 전제가 최소 2인 이상으로 이루어진 집단과 시비가 붙을 걸 상정해 디자인된 마법이어서란다. 하긴, 오크 둘이 보도에서 뻗어버리면 치우는 것부터 고역이긴 하겠다.
이 다른 한 명과 대화하는 과정이 좀 더 원활해진다고. 여기까지 설명한 점장이 개미인간을 힐끗 바라보고는 잊고 있던 걸 상기시켜 줬다.
“저분 처벌하는 게 우리 일은 아니잖아.”
저놈도 그럴싸한 계획이 있었을 거다. 보호마법에 처맞기 전까지는 말이다. 마법이 없었을 경우를 상상하면, 당장이라도 저놈 더듬이를 꺾어 버리고 싶긴 하지만….
점장 말대로 우리가 할 일은 아니었다. 이 세상 매―직 법치주의가 알아서 꺾어 주겠지. 이왕이면 방금 일도 참작해, 저놈에게 좀 더 텁텁한 콩밥을 배식해주길 바란다.
그 전에 지문만 좀 빌리고. 점장이 켠 폰 화면을 보니 지문인식이 걸려 있더라.
점장이 축 늘어진 놈의 손가락에 화면을 가져다 대는 동안, 바깥 상황을 확인할 요량으로 출입구 쪽으로 나왔다. 보이는 것들이 출입구를 등진 경관 뒷모습, 그리고.
“끄윽… 아으윽. 내, 내 다리….”
“이, 이 짭새 귀쟁이 년이.”
입구컷을 당한 수많은 오크 무리였는데, 그중 태반은 무릎이나 정강이를 부여잡은 채 쓰러져 옴짝달싹을 못 하고 있다. 서 있는 오크라고는 단 한 놈뿐이었다.
“일하시는 데에 소음이 방해되진 않으십니까.”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경관이 물었는데, 무덤덤한 목소리에 일말의 지친 기색조차 없다. 바로 대답했다.
“저희 거의 다 끝났습니다.”
“이쪽 진행 상황도 비슷합니다.”
내 말에 대답하고는 손에 쥔 진압봉을 한 바퀴 돌려 잡는다. 경관의 이 동작에 남아있던 전의마저 증발했는지, 서 있던 오크 놈이 두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이런 썅. 귀쟁이 년이 숲에서 풀이나 뜯어 먹을 것이지, 왜 사람을 처패고 지랄….”
“범죄를 저질렀을 것으로 강력히 의심되는 자의 소재를 알고 방치하는 행위, 범죄자가 도주하거나 추가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을 묵과하는 행위.”
“뭐?”
“이는 현행법상 직무유기에 해당합니다.”
말하며 발치에 쓰러진 오크를 건너, 역으로 세 발자국 다가가며 결론을 마저 읊는다. 이번 건 잔뜩 날이 선 목소리였다.
“처맞을 짓을 하질 말라는 뜻입니다.”
“…씨발, 니가 남 말 할 처지야!!”
외치며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각목을 집어 던지고는 냅다 도망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각목을 진압봉으로 후려쳐 떨군 뒤, 반대 손으로 수갑을 꺼내는 경관.
수갑을 손에 쥔 채 내 쪽으로 진압봉을 까딱거리는데, 순간 나도 처맞을 짓을 했냐는 생각에 멍해졌다. 몇 번을 더 까딱거리다, 미안하다는 어투로 설명해온다.
“잠금쇠는 풀어놨습니다. 한쪽은 제 손목에, 한쪽은 펼쳤다 잠가 주십시오.”
그렇다길래 일단 부탁받은 대로 해봤다. 한쪽은 경관 손목에, 한쪽은 허공에 아무렇게나 펼친 뒤 잠그는 순간, 저 멀리 달려가던 오크 놈이 대뜸 바닥에 나자빠져 버렸다.
“아아악! 뭐야!!”
자빠진 채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데, 한쪽 손목이 허공에 박힌 듯 고정되어 있다. 이 수갑도 마법이 걸려 있던 건가 보다.
“손목 굵기나 위치가 다른 범죄자들을 구속하기 위한 특수 수갑입니다. 미리 설명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뇨. 저놈 잡았으면 됐지 뭐….”
“이런 시팔, 당장 풀어!! 이 망할 년아!!”
발악하는 몸동작이 유려한 게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수갑에 끌고 오는 기능까지는 없는지 경관이 몸소 오크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저놈이 분에 겨워 지껄이는 내용들이 가관이었다.
“귀쟁이가 뭔 짭새질이야, 주접떨지 말고 당장 풀라고! 구정물 년아!!”
“?”
“깨끗한 거 하나 없는 년이 뭐가 잘났다고 나대, 너나 처들어가. 니 가족, 니 조상 뒤따라 처박혀서!! 늬들 좋아하는 곰팡이 처먹고, 대가리에 말라비틀어진 세계수 잎이나 뒤집어쓰라고. 어?!”
악에 받치다 못해 어순마저 꼬인 외침이 온 사방에 울려 퍼지는데, 듣는 내가 어이없는 걸 넘어서 질렸다. 사람 패러 온 놈이 뭐 잘났다고 저런 말을 해대고 있냐?
반면 경관은 다가가면서도 아무 말이 없었고, 가까이 다가가서는 오크 놈 팔을 뒤로 꺾어 제압한 뒤 한쪽 무릎을 꿇어앉았다.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려는 모양새다.
그러고는 몸을 일으켜 돌아오는데, 어느새 점장이 내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방금 들은 말 때문에 얼이 빠져서 온 줄도 모르고 있었….
“방금 구정물이라는 말 말야.”
“예?”
“엘프분들이 고향에서는 세계수 안에서 거주하시고, 그 세계수 수액을 수원 삼으시거든. 그 멸칭이야.”
“…네. 이해했습니다.”
혹시라도 따로 묻지는 말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잠시 후 경관이 우리 앞까지 다가왔고, 우리 둘을 바라보며 물었다.
“일은 다 끝나셨습니까.”
“저흰 잘 끝났어요. 참새는요?”
“잘 끝났고, 보고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무덤덤한 대답이었으나, 내 귀엔 이 대답이 참 씁쓸하게 들리더란다.
통신보안 및 안전 이슈로 인해 경관이 혼자 무전을 쳤고, 그동안은 화장실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떡대 놈들 뭉친 곳에서 벗어나니 이제야 좀 숨이 쉬어졌다.
점장과 나란히 벤치에 앉아 기다리길 3분. 점장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긴 했는데, 머릿속이 복잡했던지라 기억나는 대화가 딱 한 가지뿐이었다.
“이 동네 엘프 분들은 경찰일 하기 힘드실 것 같습니다.”
“…….”
“붙잡힌 놈들마다 저런 소리 해댈 거 아냐.”
“그치.”
이거. 무전을 마친 경관이 다가와서는 짧게 설명하길, 저놈들을 연행하는 건 이 지역 관할서가 아닌 청에서 맡게 될 거란다. 머릿수가 서에서 감당할 수준이 아니라고.
“10분 안에 출동까지 마친다 하니, 그 전까지만 대기하고 있으면 될 듯합니다. 두 분께서는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은 경관님께서 다 하셨지. 전 사람 재운 게 전부인걸요.”
점장이 모범답안을 내놓은 반면, 난 여기서만큼은 능청을 못 부리겠더라. 당분간은 공중화장실 들어가면 벽 부수는 환청만 들릴 것 같어.
그래도 뭐라 말은 해야 될 분위기라 냉큼 주제를 돌렸다. 처세술의 알파, 남을 띄우고 보면 어지간해선 반타작은 칠 수 있다.
“아까 저 오크들 상대하실 때 대단하시더라고요. 잘 피하고 잘 때리시고.”
영화사에 오래토록 회자될 그 장도리 씬에 비견될 만하다. 진심을 담아 운을 떼자, 날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경관이 툭 내뱉더라.
“혹시라도 호신술이 필요하시거든, 근처 체육관에 자리를 한번 만들어보겠습니다.”
“어… 경찰학교가 아니고요?”
“학교에선 이렇게까진 안 알려줍니다.”
이러고는 덧붙인 게, 경찰학교 교육생 시절 실전체포술 교육 때마다 마음에 안 드는 교관을 자기가 역으로 체포해버리곤 했었다고. 이 경관이 자기 교육생 시절 얘길 해오는 건 오늘 처음 듣는 것 같다.
“그럼 어디서 그런 걸 배우신 겁니까?”
“고향에서, 어머님께 배웠습니다.”
개인적인 얘기를 해오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고. 짧기 그지없긴 했으나, 아무튼 말문이 한번 트였다는 데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말하며 희미하게 웃던 경관이, 웃음기를 쏙 빼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건 미안해서 하는 말 같다.
“이찬 님께서는, 잘 대처해주셨습니다. 이건 몇 번이고 감사드려도 모자라겠군요.”
“예? 저야 뭐….”
“찬이가 실전파거든요. 저도 덕을 많이 봤구.”
이건 옆에서 점장이 거들어줬는데, 나이 29살 먹은 놈을 이런 일로 띄워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 아니지. 오늘 일이면 29살이어도 충분히 뿌듯해해도 될 일 맞겠지.
두 달 전에 비슷한 일을 겪었다면, 나는 어디고 여긴 누구인가만 속으로 죽어라고 되뇌었을 텐데 말이다. 하수도 내려가서 죽을 고생을 했던 게 간 부피 3배 이벤트라도 됐던 건지, 뭔지.
최소한 그때 하수도 냄새가 여기 화장실 냄새보다 훨씬 독하긴 했었다. 그래도 간이 부풀었지 낯짝까지 두꺼워진 건 아니라 한 번 더 화제를 돌렸다.
“고맙긴 뭘요, 이런 일 하러 온 건데. 그나저나 경관님.”
“말씀하십시오.”
“더 도와드릴 일은 이제 없는 겁니까?”
전달책 잡았고, 일 시킨 놈 연락처도 알아냈고, 그놈을 철창 애호가로 만들 증거도 확보했다. 당장 부탁받은 일은 다 끝낸 셈이다.
허나 찝찝한 점이 하나 있다면, 아직 이 일 계획한 놈 얼굴을 못 봤다는 것. 점장은 이 일 도우러 온 목적 중 하나가 그놈 얼굴 보는 거였고, 이젠 나도….
“어떤 일 말씀이십니까.”
“이 일 계획한 놈 잡는 거요. 저도 그놈 얼굴 한번 보고 싶어서.”
마찬가지로 그놈 쌍판이 궁금해졌다. 이게 어딜 어떻게 봐도 묻지마 범죄 같아서였다.
이놈이 약속 시각 1시간 전부터 미리 찾아와 일방통행 봉쇄 마법을 준비했었다. 그 사이에 누가 들어오거든 순순히 내보낼 생각이 없었단 뜻이다. 아니면 사람이 들어올 가능성이 희박하다 생각한 걸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손 씻으러 들어온 사람이 얌전히 손만 씻게 해주지는 않았겠지. 지 마법이 풀린 놈을 잡겠다고 눈이 헤까닥 돌아버린 놈인데, 한 번 실패했다고 순순하게 포기를 할까?
“이놈이 포기를 안 할 것 같아서요. 그리고 솔직히, 이놈 때문에 제가 뒈질 뻔했는데 제가 열이 뻗쳐서라도 쌍판을 한번 봐야겠고….”
“그거 말인데, 찬아. 경관님.”
“예.”
“예, 업주님.”
“어차피 경찰청 분들 오시기까지 시간 좀 남았는데, 잠깐 제 의견 말해 봐두 될까요?”
운을 떼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잇는 점장. 물 흐르듯 이어지는 설명을 다 듣기는 했는데, 다 듣고 나선 점장이 한술 더 뜬다는 생각밖에 들었다.
“그러니까… 찾아가자고요? 지금?”
“응. 아까 폰 만져보면서 내비게이션 슬쩍 봤는데, 이분이 어디서 출발하셨는지까지 다 찍혀 있더라구.”
“어디였는데요?”
“여기서 20분 거리 술집.”
읊조린 뒤, 씨익 웃으며 덧붙여온다.
“종이로 마법 발동을 못 했으니까, 사실상 분실물이라고 봐두 되잖아. 그치.”
“뭐… 돌려주러 갔다 하면 좋아는 하겠네요.”
“우리도 얼굴 볼 수 있으니까 좋구 말야. 서로 상부상조하는 거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