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우연보다 인연 (3)
“…야. 너는 책밖에 안 읽냐?”
정희성이 조금 질린 기색으로 도현을 쳐다보았다.
도현이 그를 찾아온다고 했을 때, 정희성은 솔직히 조금, 사실 조금 많이 기대했었다. 어린아이랑 놀아주는 것은 처음이라 무엇을 해야 할지 밤새 뒤척이며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 날 정희성을 찾아온 도현은 의자에 앉더니 두꺼운 책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 그 후로 며칠이나 같은 광경이 계속되었다.
“책 읽는 거 재미없어요?”
정희성은 제 손에 쥐인 책으로 고개를 떨어트렸다.
재미없다.
무척이나 재미없다.
그런데 저런 표정으로 말하는데 진실을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야…. 재밌어. 와, 재밌다. 와아….”
영혼 없는 대답에 도현이 싱긋 웃었다. 지루해하면 케일리와 하는 놀이라도 같이 하자고 하려 했는데 재미있다니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다른 사람과 놀아본 적이 없는 도현은 노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책은 도현이 아는 유일한 ‘재미있는 일’이었다.
“너는 책을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거야?”
“재미있잖아요.”
정희성은 도현이 조금 신기했다. 정희성의 동생은 도현과 동갑이었는데, 얌전히 앉아서 책을 읽기보다는 나가서 놀기를 좋아했다.
정희운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그렇지 않을까?
“내 동생은 책 싫어하던데.”
“동생이 있어요?”
정희성의 말에 도현이 조금 호기심을 보였다.
도현이 관심을 보이자 정희성의 얼굴에 화색이 일었다.
“응. 너랑 동갑이야. 8살. 이름은 정희운.”
“형한테 동생이 있을 줄 몰랐어요.”
형의 동생이라니.
형의 어린 시절을 끙끙거리며 상상해보던 도현은 금방 포기했다.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진짜 귀여워.”
“형 닮았으면 별로 안 귀여울 것 같은데요.”
“…너 너무한 거 아니냐.”
그 말에 도현이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나 웃음도 잠시.
지금까지 대체 어떻게 참고 있었던 건지, 물꼬를 튼 듯 끊임없이 쏟아지는 동생 자랑에 처음에는 맞장구를 열심히 치던 도현이 점점 해쓱해졌다.
삼십 분이 넘어가자 안 그래도 하얗던 도현의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려 있었다.
“형…. 알겠으니까, 이제 그만….”
좀 전과 달리 완전히 지친 듯한 도현의 낯에 정희성이 조금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했나?”
도현이 지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 동생 얘기만 나오면 참기가 어려워서.”
도현이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애써 정신을 차린 도현이 대답했다.
“아니에요. 동생이랑 사이가 많이 좋나 봐요.”
그 말에 정희성이 멈칫했다. 이상한 반응에 도현이 의아한 듯 그를 쳐다보았다.
동생을 상대로 온갖 주접을 떨며 반짝반짝 빛났던 얼굴이 순식간에 시무룩하게 변했다. 그 극적인 변화에 도현이 당황해서 물었다.
“왜 그래요?”
“동생이 날 싫어하거든.”
도현은 그의 말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조금 애 같은 면이 있긴 하지만, 정희성은 좋은 사람이었다.
도현이 몇 번이고 정희성이 자신의 형이었다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정희성이 신이 나서 동생의 얘기를 풀어놓을 때 은근슬쩍 질투를 하기도 했던 도현은 정희성의 동생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대체 왜요?”
“그… 아냐. 그런 게 있어.”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 것이 조금 거슬렸지만,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데 집안 사정을 자세히 캐묻기도 그랬다.
대신에 도현은 궁금한 것을 묻기로 했다.
“그런데 왜 형은 동생을 그렇게 좋아하는 거예요?”
그 말에 희성이 웃었다. 평소의 장난기 어린 웃음이 아닌, 도현마저 간지러울 만큼 따뜻하고 애정 어린 미소였다.
“너 갓 태어난 아기를 본 적 있어?”
“아니요.”
“나는 원래 아기 안 좋아했어. 빽빽 울고 시끄럽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동생이 태어났다길래 아무런 생각 없이 동생을 보러 갔는데.”
정희성이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
“세상에서 그렇게 예쁜 건 처음 봤어. 물론 애는 방금 태어나서 빨갛고 조그맣고 쭈글거리고 그냥 못난이였는데 그 애의 영혼이 너무 예뻤어.”
뜬금없는 단어에 도현이 얼굴을 조금 찌푸렸다.
영혼이라니?
자신과 처음으로 친해진 형이 사이비였나 싶어 도현의 표정이 조금 흐려질 때쯤 정희성이 말을 계속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진짜야! 근데 그 순간에는 정말 영혼이 보였거든? 개나리빛에 작고 반짝이는 게 일렁이는데, 영혼이 아니면 뭐라고 설명할 수 있겠어.”
도현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비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나쁘진 않을 터다.
도현은 그가 사이비라고 해도 받아들이기로 하고 마음을 편하게 내려놓았다.
도현의 생각을 모르는 정희성은 자신의 말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고 경청하는 도현의 모습에 조금 감동했다.
“그걸 마주한 순간 깨달았어. 얘를 사랑할 수밖에 없겠다고.”
그 말에 담긴 절절한 애정에 도현은 하던 생각도 잊고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 후로는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사실 그걸 보지 않았더라도 그 애를 사랑하게 되었을 것 같아.”
그 선명하기까지 한 감정에 도현의 입술이 조금 튀어나왔다. 그의 말을 듣는 내내 꾹꾹 눌렀던 서운한 감정이 제멋대로 튀어나왔다.
“그렇지만 걔가 형을 싫어한다면서요.”
자신이 뱉은 말에 제가 놀라 도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모습을 본 정희성이 활짝 웃었다.
“괜찮아. 여기 날 좋아하는 동생도 있으니까.”
“네?”
“너도 내 동생이잖아. 그치?”
도현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혹시 아까 내가 질투했던 걸 알아챈 걸까 싶어서 부끄럽기도 했고,
“…네.”
기뻤다.
이상하게도 처음 본 순간부터 끌렸던 사람이었다.
만난 지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깊은 유대감과 친밀감이 둘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도현은 마음이 벅차올랐다.
이런 게 혹시 ‘가족’이란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현이 주변이 환해지도록 활짝 웃었다.
* * *
그리고 잠시 후.
둘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훈훈한 대화까지는 좋았는데, 조금 지나고 나니 가족 영화라도 한 편 찍은 기분에 어색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어, 음. 그래서 독서 말고 다른 거 하고 싶은 건 없어?”
애써 공기를 환기해 보려는 정희성의 시도에 도현은 어울려 주었다.
“다른 거 뭐요?”
“그냥 평소에 놀던 거….”
“아. 하나 있어요.”
그 말에 정희성의 눈이 반짝였다.
“케일리랑 책에 있는…”
“아니 책 관련된 거 말고!”
정희성은 또 책 읽기가 나올까 두려워 도현의 말을 막았다. 도현은 입을 다시 다물었다.
“그러면 없어요.”
“아니, 왜? 다른 놀이도 많잖아?”
그 말에 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으음. 그럼 입원하기 전에는 뭐 하고 놀았는데?”
도현이 머뭇거렸다. 그게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 정희성이 도현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도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전 지금까지 병원에서 살았어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정희성이 말뜻을 뒤늦게 깨닫고 굳은 얼굴로 도현을 보았다.
“뭐…?”
“두 살 때, 한 달 정도 집에 있었다고 듣긴 했는데 기억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그때 말고는 항상 병원에 있었어요.”
그렇게 말하는 도현은 평온해 보였다.
긴 속눈썹 아래 그늘진 눈동자는 너무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정희성은 말문이 막혔다.
“…그러니까, 평생 병원에서 살았다고.”
정희성은 도현의 말을 천천히 되짚었다.
입 밖으로 나간 말이 폐 위에 돌덩이처럼 얹혔다.
정희성의 모습을 살피는 도현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었다.
저 나이에, 저런 표정으로 말하기까지 어떤 시간을 견뎠을까.
정희성이 도현을 보았다.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표정.
무엇이 잘못됐는지, 무엇을 박탈당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
아이를 대할 때마다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다.
정희성은 그 원인을 깨달았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도현의 얼굴 위로 익숙한 형상이 겹쳐졌다.
거부감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아이의 작은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정희성의 눈이 복잡한 빛을 띠었다. 몇 번 입술을 달싹여 보았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불편해하는 것이라고 오해한 도현의 얼굴에 후회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괜히 말을 해서 불편하게 해버렸어.’
도현은 그의 관심을 조금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병원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밝힌 김에 그와 같은 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까지 말할 생각이었다.
“저기, 형….”
도현이 말을 꺼내려는데 갑작스럽게 병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아주 익숙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도현?”
“벤자민 선생님?”
벤자민은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도현을 보고 시선을 돌려 그 앞에 있는 정희성을 보았다. 곧 벤자민의 얼굴에 미소가 올라왔다.
“도현도 만나보고 싶었군요?”
벤자민의 말에 정희성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잘 생각했어요. 같은 고통을 겪어본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건 생각보다 힘이 되는 일이거든요.”
같은 고통?
벤자민의 말을 따라 작게 중얼거린 정희성이 경악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휙- 돌려 도현을 쳐다보았다.
“너!”
도현은 조금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말하려고 했는데 타이밍이 너무 안 좋았다. 누가 봐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태도에 정희성이 입을 떡 벌렸다.
벤자민은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고개를 기울였다.
“음? 혹시 몰랐나요?”
그 말에 정희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도현을 노려보았다.
“도현은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런. 제가 눈치가 없었군요. 미안해요, 도현.”
정희성도 자신과 같은 병을 가진 환자가 이 병원에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 있을 때 그를 담당했던 의사가 그와 같은 한국인에, 어린 소년이라고 말했던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도현이었다니!
심상치 않은 정희성의 기색에 도현이 변명하듯 말했다.
“일부러 속인 건 아니었어요.”
“그걸 말이라고!”
“그냥 말할 타이밍이 없었을 뿐이에요. 그리고 방금 말하려고 했는데….”
도현의 원망 어린 눈이 벤자민을 향했다. 벤자민이 어색하게 웃었다.
도현이 다시 정희성을 바라봤다.
그의 모습을 슬쩍 살핀 도현은 그가 진정했다는 것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제 본심을 말했다.
“사실 별일 아니잖아요. 몰라도 되는 사실이라고 생각했어요.”
도현은 진심이었다.
같은 병을 가진 게 무어라고 떠들고 다니겠는가.
“허어.”
정희성은 진실함을 담아 빛나는 도현의 눈동자를 보니 더욱 어이가 없어졌다. 무어라 말하려던 그는 몇 년은 늙은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쓸어 내렸다.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모르는 것 같은 어린아이한테 지적하는 것도 웃긴 일이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애써 진정했다.
“음, 두 분 그러면 정리된 건가요?”
“네.”
“…네.”
벤자민의 말에 도현이 착한 아이처럼, 정희성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벤자민이 싱긋 웃었다.
“담당 의사로서 정희성 씨가 이곳에서 생활하는 데 어디 불편한 곳은 없는지 살피러 왔는데 괜찮은 것 같네요.”
그 외에도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없는지 이것저것 물어본 벤자민이 다른 문제가 생기면 호출하라는 말을 친절하게 남긴 후 병실을 나갔다.
벤자민이 나가자마자 정희성이 도현을 돌아보았다.
“너 더 뭐 숨기는 건 없지?”
“없어요.”
“정말이야?”
“네. 병원에만 있는데 무슨 비밀이 더 있겠어요.”
그 말에 할 말이 없어진 정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은요?”
그 물음에 정희성이 자신은 당당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당당해서 오히려 의심스러웠다. 도현이 가자미눈을 하고 그를 바라봤다.
“정말 하나도 없어요?”
“없어!”
“정말로?”
“정말로!”
“진짜로?”
“진짜… 아니, 왜 날 취조하는 분위기가 된 거야?”
정희성은 어이가 없었다. 분명 방금까지 도현이 자신을 속여서 추궁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주객전도가 되어 있었다.
그 말에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도현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물러났다.
벌컥-
갈색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묶은 간호사가 들어오면서 소란이 소강되었다.
정희성에게 다가와 상태를 체크하며 이것저것 물어본 간호사는 연결된 링거액을 교체했다.
도현이 바닥에 닿지 않는 발을 동당거리며 그 모습을 구경했다.
차트를 기록하던 간호사가 마침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들어 정희성을 바라보았다.
“정. 정이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라면서요?”
도현의 발이 딱 멈췄다.
빤히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에 정희성이 어색한 목소리로 하하- 웃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