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우연보다 인연 (4)
간호사가 병실을 나가고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하하-
정희성이 어색하게 웃었다.
“도현아, 들어봐. 내가 속이려던 게 아니야.”
“…….”
“도현아? 동생아? 저기요…?”
팔락팔락-
도현은 정희성의 부름을 무시하며 책장을 넘겼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정희성은 순간 도현의 눈에 자신이 정말 보이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음, 너도 병명을 숨기고 있었으니까 우리 퉁치는 건 어때?”
그 말에 도현이 고개를 들었다.
“저는 거짓말은 안 했어요.”
그 말에 찔린 정희성이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 도현을 보던 정희성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속이려던 생각은 아니었는데.’
정희성은 자신이 조금 전의 도현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정희성의 눈이 과거 어딘가를 짚었다.
‘정말 별 볼 일 없는 이야기네.’
냉소적인 표정으로 자신의 과거를 그렇게 평가했다.
정희성이 도현을 보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책을 읽고 있으나, 평소보다 조금 튀어나온 입술이 기분이 상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아이답게 토라졌지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불행을 담담히 말하던 아이였다.
정희성은 묘한 궁금증이 일었다.
저 꼬맹이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내가 정말로 별것 없는 인간임을 알게 된다면, 그러면.
내게 실망할까?
그가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바이올린을 손에서 놓은 지 일 년째야.”
이게 유치한 행동이라는 걸 안다.
어린아이를 상대로 한심하게 굴고 있다는 것도 안다.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 바이올린을 켜면 켤수록 몸이 안 좋아졌거든. 처음엔 착각인가 싶었는데 나중엔 의사도 연주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어두운 이야기가 나올 줄 몰랐던 도현이 당황해서 정희성을 쳐다보았다.
‘…웃고 있어?’
이해할 수 없는 표정에 도현은 눈만 깜빡였다.
“근데 사실 이런 거 다 핑계야.”
정희성이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그냥 연주하지 않을 계기가 생긴 거야.”
“바이올린을 좋아하지 않아요?”
“뭐, 좋아서 시작한 게 아니었거든. 해야 해서 했을 뿐이지. 그렇게 하다 보니까 나중엔 그냥 습관이 되더라.”
정희성의 목소리는 도현도 순간적으로 속아 넘어갈 만큼 태연했다. 정희성이 타인의 일을 말하는 것처럼 자신의 과거를 풀었다.
“내가 입원을 한 게 4년 전이었어. 그때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온몸이 터질 것같이 괴로운 거야. 그대로 공연이 끝나자마자 쓰러졌지.”
정희성이 도현을 보며 슬쩍 웃었다.
“근데 그게 바이올린 연주 때문일 수도 있대. 하하, 믿기 어렵지? 의사는 스트레스성일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고. 내가 이렇게 된 게 바이올린 때문이란 걸 아니까, 계속하기가 어렵더라. 오만 정이 다 떨어졌지.”
도현은 조용히 그의 말을 들었다.
“일부러 속인 게 아니야. 그냥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서 그랬어. 애초에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한 지도 4년이나 지났고 연주조차 하지 않은 지 일 년이 넘었으니까. 과거의 일이라서 굳이 말하지 않은 건데 네가 섭섭해할 줄은 몰랐네. 미안하다.”
정희성의 사과에도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길어지는 침묵에 정희성은 이유도 없이 조금 초조해졌다.
내가 진짜 왜 이러지.
한심해 죽을 것 같았다.
정희성이 자책에 빠져드는데, 도현이 입을 열었다.
“미안해야 할 상대를 잘못 짚었네요.”
뜬금없는 말에 정희성이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그럼 내가 누구한테 미안해야 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조금 공격적으로 말이 나간 것 같아 정희성이 급하게 도현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나 도현의 얼굴에는 불쾌함이나 두려움과 같은 기색은 없었다.
대신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로 정희성을 똑바로 직시하고 있어서 속이 낱낱이 꿰뚫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미쳤지.’
아무리 애늙은이 같다고 해도 고작 8살 된 어린아이였다.
너무 나갔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자기반성을 하려는데 도현의 말에 사고가 멈췄다.
“형이요.”
고저 없는 목소리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말하듯이 담담했다.
“…뭐?”
“형이 미안해야 할 건 형이라고요.”
선언하듯이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도현은 사실 눈치채고 있었다.
유쾌한 척 굴지만, 그가 겉모습만큼 밝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건 도현이 타인의 기색을 읽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야기를 하다가도 문득문득 가라앉는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다만, 형이 원하지 않는 것 같아서 모른 척 굴고 있었을 뿐이었다.
“형은 연기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아요.”
정희성의 얼굴이 와그작- 구겨졌다.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한 번도 들어본 적 없거든?!”
부들부들 떠는 정희성을 본 도현이 진심으로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솔직히 말했을 뿐인데, 정희성은 상당히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도현은 변명보다는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설명해 주기로 했다.
“표정은 완벽했어요. 솔직히 저도 형한테 속아 넘어갈 뻔했거든요. 근데, 눈빛이요. 눈빛을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도현이 정희성을 똑바로 응시하며 또렷하게 말했다.
“형, 바이올린 좋아하잖아요.”
“싫어한다고 했잖아.”
“그런 말 할 거면 얼굴이라도 가리고 해요.”
단호한 도현의 말에 정희성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형. 거짓말을 해도 좋아요. 그렇게 해서 형이 행복하다면요. 그런데 아니잖아요.”
도현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이렇게 말해서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해요. 그런데….”
말끝을 흐리던 도현이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형이 힘들어 보였어요.”
그 말에 정희성이 멈칫했다. 도현이 순수한 애정과 걱정이 담긴 눈으로 그를 보았다.
“저는 형이 힘든 건 싫어요.”
가식과 거짓 한 점 없는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한 진심.
포장조차 하지 않은 채 정면으로 부딪쳐 오는 선명한 애정에 정희성이 느릿하게 숨을 쉬었다.
그래.
생각해 보면 이 작은 소년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에게 애정을 보였다.
그게 우습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음 날 오겠다는 말을 거부하지 못했다.
이상한 아이.
어린 날의 볼품없었던 나를 떠올리게 하는 아이.
일정 선 이상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다.
분명 그랬는데.
정희성이 얼굴을 쓸어 내리다가, 도현을 보았다.
도현은 조심스럽게 정희성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 작은 머리로 무슨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하는지 세상 온갖 근심을 끌어안고 있었다.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지만, 지금 도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누군가 자신을 걱정해 준다는 건 생각보다 속이 간질거리는 일이었다.
정희성은 문득 겁이 났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맹목적인 호의가 두려웠다.
그때, 도현의 작은 손이 정희성의 손 위로 올라왔다. 그 따뜻한 온기에 정희성이 몸을 움찔 떨었다.
처음 그를 부축했을 때를 제외하고 도현이 그에게 스스로 닿아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작은 온기에.
“하.”
그가 모르는 사이 조금씩 무너져, 형태만이 남았던 벽이 완전히 허물어졌다.
“하, 하하. 하하하!”
손을 뒤집어 작은 손을 꼭 쥔 정희성이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지긋지긋한 생의 마지막에 내가 너무 불쌍해서 내려준 선물인 걸까?
“왜 이제야 나타났냐.”
그 뜬금없는 말에 도현이 의아한 눈빛을 띠었다.
정희성은 자신이 한 말이 우스워 실실 웃었다. 평생 병원에서 살았다는 꼬마를 원망하는 것을 보니 자신도 갈 데까지 간 것 같았다.
정희성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를 보호하던 벽은 이제 없었다.
그러나 따끈한 작은 손을 쥐고 있으려니, 다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희성이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시시한 과거사인데, 듣고 싶어?”
그 말에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희성이 회상하듯 손가락으로 침대를 두어 번 톡톡 두드렸다.
처음 쓰러졌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전부터 몸이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올 게 왔구나라는 심정일 뿐이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하고 혼자 바이올린이나 가지고 놀았다.
이변이 생긴 건 이 년 후였다.
희귀병이 의심된다는 의사의 말.
원인조차 알 수 없고 치료법도 없는, 자신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에 한 명뿐이라는 병.
그래도 상관없었다.
할 만큼 했다고 여겼으니까.
이게 내게 주어진 끝이라면 그냥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이올린 연주를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사의 권고는, 그렇게 넘길 수가 없었다.
“그건 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했어. 싫으나 좋으나, 언제든.”
조금 머뭇거리다가 한숨처럼 털어놓았다.
“좋고 나쁘고가 아니야. 바이올린은 그냥 내 일부였어. 그게 없으면 내 삶은 성립되지 않으니까. 일부가 떨어져 나갔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근데, 다들 그러잖아. 일단 살아 있어야 그다음이 있다고. 나도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바이올린보다는 목숨이 중요한 것 같더라고.”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거창하게 말했지만 결국 뻔한 이야기지. 하나를 위해서 하나를 포기하는 거, 살면서 어쩔 수 없는 일이거든. 아쉽긴 해도 어쩔 수 없잖아?”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 가벼운 태도였다.
도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거짓말쟁이.”
아까는 눈빛을 숨기지 못하더니, 이번에는 손끝의 떨림을 숨기지 못한다.
속아주려고 해도 속아줄 수가 없었다.
그는 아직도 금방이라도 활을 쥐고 싶을 정도로 바이올린을 좋아하고 있었다.
정희성의 말을 들으면서, 도현은 깨달은 것이 있었다.
연기를 하고 나면 이상하게 축 처지던 몸.
그게 단순히 기운이 빠져서 드는 탈력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 것 같았다.
‘아마 형이 바이올린을 할 때 건강이 나빠진 것처럼, 나는 연기를 할 때 그런 거겠지.’
과학적으로 파고들면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겠지만, 도현은 어쩐지 이게 정답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현이 정희성을 보았다.
“왜 자꾸 거짓말을 해요?”
“뭐? 기껏 말했더니 거짓말이라니. 내가 거짓말을 왜 해?”
“그것도 거짓말이네요.”
정희성의 얼굴에 금이 갔다. 그러나 도현은 확신할 수 있었다.
연기를 계속한다면 건강이 더욱 나빠질 거란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도현은 여전히 연기가 좋았다.
연기를 하지 않고 오랫동안 산다고 행복할까?
‘그럴 리가 없지.’
오히려 불행해질 게 분명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저도 좋아하는 일이 있으니까요.”
“그게 무슨,”
“저는 연기하는 게 좋아요. 책 속의 등장인물처럼 울고, 웃고, 화내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그렇게 온갖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 보면, 꼭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거든요. 평범하게 울고 웃는… 그런 사람이요.”
그렇게 말하는 도현은, 생명을 얻은 그림처럼 밝게 피어났다.
정희성은 저도 모르게 넋을 잃고 도현을 보았다. 감정 표현이 크지 않던 아이는, 그 속에 반짝이는 빛을 품고 있었다.
정희성은 이제야 도현이라는 사람을 마주 본 것 같았다.
“그거 아세요? 제가 벤자민한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오늘이 고비일지도 모른다는 말이었어요. 아무리 자주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말이 있더라고요. 그 말만큼은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었어요. 당연하잖아요.”
“도현아.”
“모두가 제 끝을 바라볼 때마다 날 살린 건, 날 기다려준 건 연기뿐이었어요. 그 욕심이 제게 버팀목이었거든요.”
정희성과 눈을 마주친 도현이 한 음 한 음 힘을 실어서 말했다.
“전 내일 죽더라도, 오늘은 연기하고 싶어요. 형도 그렇죠?”
정희성이 침음을 흘렸다.
“바이올린 연주하고 싶잖아요.”
자신의 말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확신하는 목소리였다. 정희성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정희성을 보던 도현이 손에 쥐고 있던 책을 펼쳤다. 펼쳐진 페이지를 확인한 도현이 책을 정희성에게 넘겼다.
갑작스럽게 내밀어진 책을 정희성이 어정쩡하게 받아드는 것을 보면서 도현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정희성이 시선이 도현의 얼굴에 닿았다. 도현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조금 넓은 자리로 가서 섰다.
순간.
도현의 얼굴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아무런 빛도 들지 않는 눈동자는 썩어 문드러진 시체처럼 악취를 풍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