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정희성
홀로 남은 병실.
피부를 타고 스며들어 오는 한기에 정희성이 몸을 떨었다.
그런 스스로가 우스워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언제부터 혼자인 걸 외로워했다고.’
정희성이 침대맡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의 기억이 아주 오래전, 이제는 흐릿한 과거를 찬찬히 되짚었다.
* * *
남구로역 화장실 두 번째 칸.
정희성은 그곳에 버려진 아이였다.
아기는 살고 싶었는지 시끄럽게 빽빽 울었다. 지나가던 여성이 그 소리에 이끌려 올 정도로 크게.
태어나자마자 차가운 바닥에 방치된 아기는 조금만 늦었으면 위험했을 거라고 했다.
보육원 원장은 그 의인에게 감사하라는 듯이 말했지만, 정희성의 생각은 좀 달랐다.
‘아깝네.’
이게 그가 느낀 감상의 전부였다.
그는 비슷비슷하게 생긴 아기들 중에서도 귀엽게 생긴 아기였다고 했다.
그에겐 육아일지나 사진첩을 만들어줄 부모가 없었으니, 원장의 말밖에 증명할 길이 없었지만 그렇다니 믿을 수밖에.
눈에 띄는 외모로 자주 입양을 갔고, 우습게도 입양을 간 만큼 파양을 당했다.
이유는 다들 같았다.
‘아기는 얌전하고 착한데, 이상하게 볼수록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요.’
나중에는 입양을 간다고 질투하던 아이들조차 어차피 다시 버려질 거란 걸 깨달았다.
그건 자신을 데리러 온 새로운 양부모의 손을 잡은 정희성도 마찬가지였다.
웃기는 촌극이었다.
그렇게 기대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정해진 수순처럼 파양을 당하고 되돌아와도, 보육원에는 그를 반기는 이들이 아무도 없었다.
‘원장님! 쟤랑 같은 방 쓰기 싫어요!’
‘쟤 옆자리에 앉기 싫어요!’
그는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으니까.
그러나 그런 감정에 버거워할 여유조차 없었다.
‘죽어! 죽어! 죽어서 내 눈에 띄지 마!’
어리기에 더욱 선명한 날것의 악의가 그를 향했다.
언어적으로 이루어졌던 폭력은 자연스럽게 육체적 폭력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보육원 원장이 침묵했다.
그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폭력에 복종하기도 했고, 때로는 폭력을 휘둘렀다.
함부로 건들 수 없도록.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도록.
왜 사는지도 모른 채 독기로 가득 차서 아득바득 살아남았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같을 것 같던 일상에 변화가 찾아왔다.
‘이 아이를 입양하고 싶어요.’
거절했다.
이미 끝을 알고 있는데 멍청한 짓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부부는 끈질겼다.
한 달 동안 주말마다 정희성을 찾아왔다.
온갖 달콤한 음식과 폭신한 인형, 질 좋은 옷 따위가 하나둘씩 익숙해졌다. 모난 돌처럼 삐죽빼죽했던 아이는 그 따스함에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오래전에 버렸던 기대가 다시 가슴 속에서 싹텄다.
이 사람들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가.
아이는 결국 부부의 손을 잡고 보육원을 나왔다.
부부는 아이에게 친절했다. 정말 친자식처럼 아끼고 보듬어 주었다. 그래서 정희성은 그게 계속될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한 달이 지나자, 부부가 아이를 찾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매일같이 손을 잡고 놀이터에 나가던 게 이틀에 한 번, 사 일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그렇게 점점 줄어들다가 이내 손을 잡아주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는 미련했다.
미술 시간에 만든 종이접기를 들고 부부의 방 앞을 서성였다.
‘선물해 주면 좋아할까?’
그런 기대를 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는 방 안에서 들린 말소리를 들었다.
‘여보. 아이를 다시 돌려보내고 싶어요. 정말 사랑해 줄 자신이 있었는데…. 친아들처럼 아껴주려고 했는데. 왜지? 왜 이렇게 아이가 싫은 걸까요? 갈수록 그 아이가 더 싫어져요. 여보, 내가 왜 이러는 걸까요?’
혼란에 가득 찬 목소리였다.
‘데려온 아이를 다시 보낼 순 없어요. 우리가 책임져야 해요. 힘들더라도,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만 키우기로 합시다.’
‘그 아이가 집 안에 있는 게 싫어요.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게 끔찍해요!’
‘그래도 이미 입양한 걸 주변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잖아요. 아이를 파양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겁니다. 괴롭겠지만, 최대한 없다고 생각하고 경제적인 지원만 해주도록 해요.’
남자가 여자를 달랬다.
아이는 그들이 자신을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구겨진 종이학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짧은 안락에 젖었던 두 눈에 독기가 서렸다.
그 후로 아이는 놀이터에 가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놀 시간에 책을 읽고 공부를 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누가 봐도 착한 아이처럼 굴었다. 싹싹하고 예의 바른 거죽을 뒤집어썼다.
어디에서도 환영받을 수 없다면, 최대한 모든 걸 이용하겠다고 마음먹었으니까.
부유한 경제 상황과 사회적 시선에 민감한 부부.
이보다 완벽한 환경이 어디 있겠는가.
아이는 이 집을 나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좀 더 확실한 게 필요해.’
그 순간 아이의 눈에 양어머니가 들어왔다.
그녀는 바이올린 선생님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꿨지만, 재능의 한계에 부딪쳐 현실과 타협한, 그런 평범한 인간.
아이는 환하게 웃었다.
방법을 깨달았으니까.
작은 손이 바이올린을 들었다.
* * *
여자는 금방 아이의 천재성을 알아보았다.
자신은 가지지 못했던, 평생을 갈구했던 것이 아이에게 있음을 깨닫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연주하는 아이를 보며 질투했고, 열등감을 느꼈다.
그리고 끝내 인정했다.
그녀가 바라왔던 것을 아이가 이뤄줄 수 있음을.
매일같이 연습시켰다.
이상하게도 아이가 연주할 때면 기이한 불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여자에게 한 줄기 구원이나 다름없었다.
사랑해 주고자 데려온 아이였다.
사랑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데려온 아이였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이유도 없이 꺼려하며 배척하고 있었다. 그런 자신이 신물이 날 정도로 혐오스러웠다.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떨어져 나가는 감각에 중독되어, 더 혹독하게 연습시켰다.
아이는 군말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현을 타고 피가 흐르고 활을 든 팔의 근육이 경련해도 누구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어딘가 미쳐 있었다.
타고난 재능과 더불어 다른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연습량이 합쳐지자, 아이를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온갖 명성 있는 국제 대회에 나가 우승했다.
최연소 타이틀은 그에게 있어서 흔한 것이었다.
나중에는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는지도 잊어버렸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는 청년이 되었다.
정제되지 않은 어린 시절과 달리 가면을 쓰는 법을 익혔다.
그 누구와 일정 거리 이상 가까워지려 하지 않고 선을 지켰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도 그를 특별히 싫어하거나 혐오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명성과 외관에 호감을 갖기도 했다. 처음 그를 만난 날 온갖 달콤한 것들을 쥐여 주던 그의 양부모처럼.
그러던 중 그의 삶에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막 출산한 양어머니를 찾아 병원에 들어서면서도 귀찮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더는 예전처럼 부부의 집에 붙어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이미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였고, 몇 달만 지나면 성인이 되었다. 부부에게 버려져 보육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공포는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문을 열며 생각했다.
‘집을 나가는 시기가 앞당겨질 수도 있겠네.’
그게 전부였다.
무심한 시선이 병실 안을 훑었다.
그리고 보았다.
개나리빛의 작고 일렁이는 무언가. 그가 숨을 쉬는 것도 잊고 그것을 응시했다.
아기의 심장 주변에서 움직이는 그것은 너무 작고 미약했다.
사랑스러웠다.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순간이었다.
그 작은 생명은 ‘정희운’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그 순간부터 그의 삶에는 한 가지 목적이 생겼다.
공연을 하러 해외에 가서도 아기를 위한 물건을 샀다. 아기가 좋아하며 웃는 모습을 생각하면 행복해지는 건 쉬웠다.
비록 그런 모습을 자신에게는 한 번도 보여준 적 없었지만.
아기도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그가 다가가기만 하면 끔찍하다는 듯이 울었고, 쳐다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다른 것은 청년이 아기를 사랑한다는 것뿐이었다.
아무도 반기지 않는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그래도 보고 싶으니까.
그렇게 구차하게 살았다.
콘서트가 끝난 어느 날.
세상이 뿌옇게 변했다. 온몸이 타들어 가는 작열감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반사적으로 손에 쥔 바이올린을 품에 안고선.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입원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의 세상은 한 번 더 극적인 변화를 마주했다.
슬픈가?
글쎄.
어느 순간부터 몸이 약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대로 죽으면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아, 한 가지.
동생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슬펐다.
동생이 그를 찾아올 리는 없으니까.
희귀병 판정을 받았다.
괜찮았다.
세상은 점점 그를 잊어갔다.
그것도 괜찮았다.
바이올린을 그만두라는 진단을 받았다.
괜찮아야 하는데.
그가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았다.
아, 그래.
괜찮지가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이렇게 큰 의미가 되었던 걸까.
‘…알아야 할 필요는 없겠지.’
이제 다 끝났으니까.
그는 바이올린의 줄을 풀었다.
그리고.
꼬맹이를 만났다.
* * *
정희성이 손에 들린 바이올린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내 마지막을 함께할 건, 역시 너겠지.”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바이올린을 들었다.
금방이라도 현을 그을 것 같았던 팔이 멈춰 있었다.
어떤 곡을 연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흐음, 뭐가 좋으려나.”
구차하고 구질구질한 인생이었지만, 마지막 순간만큼은 괜찮게 끝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수많은 작곡가의 이름과 곡명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드보르작? 아니야. 하이든… 음, 별론데. 생상스? 좋긴 한데, 흠. 슈베르트, 멘델스존, 비발디….’
다 애매했다.
누구나 알 법한 거장의 곡부터, 현대 애니메이션 곡까지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다 별로였다.
그 어느 것도 마음에 차지 않자,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운명처럼 그의 눈에 붉게 저물어가는 노을이 들어왔다.
마지막까지 발악이라도 하는 듯이, 마지막이라 더욱 타오르는 것처럼 강렬한 붉음이 오색 빛깔로 찬란히 빛났다.
누가 노을이 아름답다고 했나.
저건 처절한 절규였다.
아.
그는 자신이 연주할 곡을 깨달았다.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그리고.
활이 날카롭게 음을 가로질렀다.
음표 위를 질주하는 것처럼 화려한 기교를 펼치며 활을 쥔 오른팔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몰아치는 폭풍처럼 격동적인 음악 속엔 미묘한 섬뜩함이 흐르고 있었다.
연주가 점점 더 풍부해진다. 한 대의 바이올린에서 나는 소리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정희성이 유쾌하게 웃었다.
그에게 ‘잔잔함’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의 삶에 부드러운 선율은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다.
활이 길게 미끄러지고, 분위기가 반전된다.
심장이 얼어버릴 것같이 시린 음색이다. 어느새 축축하고 음울한 죽음의 향기를 흘린다.
듣는 이마저 우울하게 만들어버릴 것같이 무기력하게 현 위를 움직인다.
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점점 느리게. 점점 멈추듯이.
소리는 이제 금방이라도 끊길 것 같다.
그러다, 음 하나가 이상한 방향으로 튀었다. 다시 음울하게 울리는 음색에 착각인가 싶을 때 또 한 번 이상한 음이 울렸다.
그 이상한 음에 점점 귀를 기울인다.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선율이 조금씩 그 음을 따라 노래하고 있었다.
따라가다가, 멈추고, 따라가다가 멈추는 음에 마음이 답답해지려는 찰나,
아, 그래. 너를 만났다.
억눌러 왔던 것을 쏟아내듯이 활이 정신없이 현 위를 자유롭게 유영한다. 답답함이 모두 가시고, 강렬한 카타르시스가 몰려온다.
연주는 점점 더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차가운 죽음의 사신이 뒤를 따라오고 있지만, 이제는 두려움에 떨지 않는다.
그저 달리는 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강렬한 비브라토에 이어 왼손이 화려한 피치카토를 펼친다.
마지막을 불태우는 노을처럼, 변화무쌍하게 음이 바뀐다.
빠르게, 더 빠르게, 아주 빠르게.
이내 속도가 절정에 다다르고,
활이 강렬하게 현을 가로질렀다.
텅-
“하아- 하아.”
정희성이 숨을 몰아쉬었다.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매달렸다.
이마에는 어느새 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그의 유일한 청중을 바라봤다.
“어땠어?”
【…뭐, 괜찮네.】
덩어리가 잔잔히 일렁이며 말했다.
【내가 들은 진동 중에서 제일 들을 만하구나.】
그 말에 정희성이 하하. 소리 내며 웃었다.
“영광이네.”
정희성이 바이올린을 내려다보았다. 바이올린 줄 두 개가 끊어져 있었다. 정희성이 그런 바이올린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덩어리를 보고 웃었다.
“이제 준비됐어.”
덩어리가 정희성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잠시 망설이던 덩어리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없어?】
정희성이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았다.
너무 많아서, 그냥 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모든 게 미련으로 남을 테니까.
대신 해야 할 말을 하기로 했다.
정희성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고맙다.”
【…뭐?】
“내게 준 선물도, 부탁을 들어준 것도, 모두 고맙다.”
덩어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희성은 처음으로, 덩어리의 표정을 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끝까지 이상한 영혼.】
정희성이 조금 웃었다. 퉁명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을까. 덩어리의 표정을 상상하다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시간이 늘어날수록, 미련만 가득해질 뿐이니까.
조금 뒤, 따뜻한 기운이 온몸에 퍼져 나갔다.
꼭, 엄마 품속에 안긴 기분이었다.
흐려져 가는 정신 속으로 작은 목소리가 울렸다.
【너는 내가 본 영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혼이다.】
‘이상한 영혼이라며.’
그렇게 생각하며 웃었는데,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꽤 괜찮은 결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