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알 속의 새 (2)
벤자민이 나간 병실은 조용했다. 도현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직전에 본 햇빛의 잔상이 어둠 속에서 아른거렸다.
도현은 기억 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정희성의 기억 속을.
기억 속 정희성은 덩어리와 대화하고 있었다.
수없이 떠올렸던 기억을 다시 되새겼다.
비디오테이프였다면 이미 테이프가 늘어났을 만큼 같은 구간을 반복해서 보았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감정을 섬세하게 헤집으며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해 안달했다.
【그만!】
기억이 순식간에 뚝- 끊겼다.
도현은 서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 앞에는 이젠 익숙해진 빛 뭉치가 떠 있었다. 화를 참아내는 것처럼 몸을 부풀렸다 쪼그라들기를 반복하는 모양새가 크게 심호흡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대체 언제까지 그럴 거야!】
머리가 웅웅거릴 정도로 강한 진동이 울렸다.
저번에 화를 내고 돌아간 이후로 일주일 만에 보는 덩어리였다.
가슴속 한구석에서 미묘한 친근감과 반가움 그리고 그리움이 차올랐다.
도현이 밭은 숨을 내쉬었다.
‘이건 내 감정이 아니야.’
덩어리에게 드는 감정은 자신의 것이 아닌 ‘정희성’의 것이었다.
도현은 그 친밀한 감정을 내리누르며 덤덤한 눈으로 덩어리를 마주 보았다.
“오랜만이네요.”
【오랜만? 오오랜마안?】
허! 덩어리가 탄식했다.
【언제까지 땅굴을 파나 보려 했더니 아주 끝도 없더구나! 응? 아주 자기 관짝 들어갈 굴까지 손수 파서 그 안에 들어갈 생각이더만!】
도현은 부정하지 않았다.
형이 숨을 거두고, 그의 삶을 물려받아 생을 이어간 순간부터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게 웃던 자신의 모습이 끔찍하기만 했다.
조금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조금 더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그랬다면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후회들이 도현의 발목을 잡고 매달렸다.
‘결국 내가 죽음으로 몰아간 거야. 형이 착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행동할 줄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돼. 내가 형의 죽음을 종용한 거나 다름없어.’
그렇게 생각하자 도저히 그의 삶을 자신의 것처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의 기억 속에서 밝게 웃는 자신의 얼굴이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도현은 억지로 ‘정희성’의 삶과 자신의 삶을 분리해 냈다. 한 몸에 두 개의 인격이 있는 것처럼 별개의 것으로 여겼다.
그로부터 한 달간, 도현을 만났던 순간부터의 기억을 반복해서 돌려 보았다.
그사이 해가 바뀌었지만, 도현은 여전히 과거에 살고 있었다.
그 속에서 원망을 찾아내기 위해 기억을 들추었다.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정희성이 도현을 원망했다면, 그에게 증오의 감정을 품었다면.
그렇다면.
【헛수고를 하는구나.】
어둡게 침잠한 도현의 검은 눈동자가 덩어리를 담았다. 흑요석 같은 눈동자에 비친 빛 뭉치가 하얗게 질린 얼굴에 기묘한 생기를 불어넣었다.
【어디 정희성이 그럴 인간이냐?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 왜 자꾸 그런 헛짓거리를 하는 거야?】
입술을 달싹여 보았지만, 덩어리의 말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건 지난 한 달간 같은 기억을 수백 번 돌려 보았던 도현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정희성은 도현을 원망하지 않았다.
죽음의 순간, 삶에 미련은 가졌을지언정 단 한 번도 도현을 탓한 적은 없었다.
도현을 원망하는 건 오직 도현, 자신뿐이었다.
【이제 그만 받아들여. 이미 영혼은 하나가 되었는데, 거부한들 무엇이 달라지겠어? 정희성도…. 아니, 정희성이 무엇을 바라는지는 네가 가장 잘 이해하고 있겠지. 이 세상 누구보다도 더.】
덩어리의 말이 맞았다.
잠에서 깬 그 순간부터, 도현은 정희성이 어째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든 것을 이해했으니까.
하지만 그래서였다.
“그게 싫어요.”
【뭐?】
“덩어리 님 말이 맞아요. 형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아요. 저를 조금도 원망하고 있지 않다는 것도, 제가 행복해지길 바란다는 것도 전부 알고 있어요.”
덩어리는 도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근 한 달 동안 처음으로 내뱉는 진심이었다.
정희성의 영혼과 하나가 된 이후로 도현의 생각을 듣기가 어려워졌다.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왔다면, 지금은 무언가를 강렬하게 생각할 때 집중해야만 엿볼 수 있었다.
‘아마 정희성의 영혼 탓이겠지만….’
도현의 생각을 자유로이 들을 수가 없으니 저 작은 인간이 조그만 머리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땅을 파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려우니 속이 터졌다.
하나로 융합된 영혼 속에서 균열의 조짐이 보이고 있으니 더욱 초조했다.
‘이대로 계속 부정한다면 균열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조율자의 역할을 떠나서, 그날 들었던 바이올린 연주값 정도는 해야 했으니까.
【그러면 왜 부정하고 있는 건데?】
한참 뒤에 대답한 목소리는 너무 가느다랗고 미약해서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았다.
“괜찮은 건 형뿐인걸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덩어리의 몸이 작게 흔들렸다. 더 이야기해 보라고 종용하는 몸짓에도 도현은 입을 다물었다.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깊게 가라앉은 표정에 더는 재촉할 수가 없었다.
‘한 달 만에 진심을 내비쳤어. 억지로 재촉하면 역효과만 나겠지.’
덩어리는 뭉쳐서 붙잡아 놓았던 존재감을 풀었다. 빛 뭉치가 흩어지고 방 안에는 도현 혼자만이 남았다.
도현은 잠시 덩어리가 사라진 자리에 시선을 주다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검은 눈은 또다시 기억 속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조율자가 지켜보고 있었다.
* * *
“도현아, 산책하는 건 어때?”
케일리의 물음에 도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벤자민 선생님이 산책을 자주 하는 게 좋다고 하셨잖아, 응? 나가서 조금만 돌고 오자. 봐, 오늘 날씨도 정말 좋아.”
케일리의 말처럼 창문을 통해 보이는 바깥 풍경은 날이 좋아 보였다.
한겨울의 추위가 가셨는지 사람들은 조금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있었고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만물을 감싸 안을 것처럼 내려앉은 따사로운 노란빛의 햇볕이 그 모든 광경을 지극히 평화롭고 아름답게 비추었다.
케일리는 도현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이제 내일이면 도현의 부모님이 오는 날이었다.
그건 도현의 퇴원일이기도 했고, 케일리가 도현을 간호하는 마지막 날임을 의미하기도 했다.
‘마지막 날.’
케일리가 손끝을 말아 쥐었다.
처음엔 이 아이를 맡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끔찍했다.
그런 스스로를 탓하면서도 새어 나오는 감정을 조절할 수가 없었다.
케일리가 기억 속 어느 한 시점을 떠올렸다.
‘안녕하세요, 케일리.’
첫날, 그녀를 보고 차분하게 인사하던 아이. 아이답지 않은 무표정한 얼굴엔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지나쳐버릴 만큼 옅은 부드러움이 스며들어 있었다.
살짝 상기되었던 두 뺨과 귓가는 아마 새로 만나게 된 간병인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었을 테고.
다가오지 않고 그저 가만히 쳐다보던 검은 눈은 아이의 방어 기제이자 그녀에 대한 배려였을 것이다.
그런 아이니까.
자신은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아이의 곁에서 떨어지고 싶다는 생각에만 급급했었다.
그래서.
케일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당황했던 그때의 자신은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떨어트렸다.
가방을 다시 주울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자 조심스럽게 다가온 도현이 가방을 주워 들었다.
‘이거….’
탁!
긴장한 기색으로 자신에게 뻗는 손을 그대로 쳐내었다.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아이의 몸이 기우뚱- 기울다가 간신히 중심을 되찾았다.
‘…아. 미안해요.’
무엇이 그리 미안한지, 표정을 굳힌 아이가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뒤로 물러섰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그게 그들 사이의 거리라는 듯이.
뒤늦게 자신의 행동을 자각하고 아이의 얼굴을 보았을 때, 하얀 얼굴에 흐드러지게 피었던 붉음은 사라지고 희게 질린 어린아이가 거기에 있었다.
창을 등지고 서 있는 아이의 얼굴에 드리워졌던 긴 그림자가 아이를 집어삼킬까 봐 덜컥 두려워졌다.
불가해한 두려움과 거북함, 자괴감에 휩싸여 정신없이 병실을 빠져나왔다.
그만두고 싶었다.
아무리 연봉이 높다고 해도 그만두고 싶었다. 그만둘 거라고 생각했다.
핸드폰을 들어 아이의 부모님에게 몇 번이고 전화를 걸려고 시도했다.
‘그만둬야지. 그만둬야 하는데….’
그림자 아래 숨었던 아이의 얼굴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결국, 전화를 걸지 못한 채 아침이 밝았다.
다음 날, 무작정 도현의 병실 앞에 선 케일리는 충혈된 눈으로 한참을 노려보다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풍경 속에서, 검은 눈동자가 엉망이 된 그녀의 모습을 담았다.
이윽고 봄날 바람처럼 간지러울 만큼 부드럽고 여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고, 그저 그 자리에서.
‘안녕하세요, 케일리.’
그때 케일리는 직감했다.
이 아이를 떠나지 못할 거라고.
그렇게 아이를 떠나지도, 가까워지지도 못한 채 지지부진한 시간이 흘렀다.
아이는 그녀가 꺼리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을 텐데도 아무런 티도 내지 않았다. 아이는 항상 한결같았다.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계속.
케일리는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두 눈에 힘을 주었다.
이 어리고 작은 아이에게 자신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도현에게 느꼈던 두려움과 거북함이 깨끗이 사라져 버린 날 이후로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온몸을 저릿하게 만드는 이 감각은 후회였다.
케일리는 도현을 눈에 담았다.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아니, 적어도 그녀가 벌인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었다.
그러나.
‘도현은… 원하지 않을 거야.’
케일리는 직감했다. 지금의 도현에게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한들, 그게 도현을 위한 일이 되지는 않을 거라고.
도현은 완전히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사과는 용서를 강요하는 것에 불과했다.
본성이 여리고 착한 도현이라면 그녀의 사과를 무시하지 않겠지만….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도현을 이용하는 행위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케일리는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마지막 날이란 생각을 애써 머릿속에서 몰아내며 도현을 향해 부드러이 말했다.
“생각할 게 많을 때는 산책이 도움이 돼.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는 것보다 머리도 맑아지고 기운도 솟아날 거야.”
도현이 퇴원 날이 가까워져서 생각이 많아진 거라고 판단해서 한 말이었다.
실상, 도현의 사정은 조금 달랐지만, 케일리의 말에 도현이 처음으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 반응에 케일리가 재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바깥바람 좀 쐬면서 걷다 보면 복잡한 머릿속도 정리가 될 때가 많아. 조금만 걷다가 오자. 응?”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생각에 잠겨 앉아 있는 아이가 너무나 걱정스러웠다. 같이 책을 들고 놀이를 하던 때가 멀게만 느껴졌다.
간절한 케일리의 눈빛에 도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어!’
속으로 기쁨의 탄성을 내지른 케일리가 도현이 마음을 바꾸기 전에 냉큼 겉옷을 들고 왔다. 도현에게 겉옷을 입혀 주면서도 내내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그 얼굴에 도현은 조금 어색함을 느끼는 동시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케일리의 반응이 변한 것도 결국 형이 희생한 결과물이었다.
병원 밖으로 나온 케일리는 도현을 공원으로 이끌었다.
도현은 공원 입구에 서서 가로등과 멀리 떨어진 곳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벤치를 보았다.
‘벤치에 앉아서 쉬고 싶은가?’
도현의 시선을 나름대로 해석한 케일리가 벤치에서 쉬겠냐고 묻자 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소년의 시선이 공원 곳곳에 닿았다.
어딜 보아도 형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