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월드스타 (13)화 (14/582)

제13화. 알 속의 새 (3)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비행기에서 내린 서혜나와 이장혁이 입국 심사를 받고 있었다.

입국 심사관의 날카로운 눈빛과 까다로운 질문을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받아넘기면서도 둘의 정신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이윽고 입국 허가가 떨어졌다.

수하물을 챙긴 서혜나와 이장혁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탈탈탈-

캐리어의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침묵을 대신했다.

둘은 공항 앞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잡아탈 때까지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어디 가세요?”

“위더스 희귀질환센터로 가주세요.”

공항 택시 운전 7년 차. 어떤 관광지가 나와도 그곳의 명물을 소개할 자신이 있었던 홀든이 입을 딱 다물었다.

아무래도 이 동양인 부부는 여행하러 온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홀든은 처음 듣는 위치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하며 넉살 좋게 물어보려던 관광객 전용 멘트를 머릿속에서 삭제했다.

세 사람이 탑승한 택시 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불편한 공기에 홀든이 몸을 조금 들썩거릴 때쯤, 이장혁이 말문을 열었다.

“혜나야.”

“왜?”

잠시 대답을 미루던 이장혁이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당신 미국에 남는 거… 괜찮아?”

서혜나가 긴 숨을 내쉬었다.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인 복잡한 한숨이었다.

벤자민이 보낸 메일에는 ‘회복 원인 판정 불가. 최소 6개월 동안 정기적인 검진 필요’라는 소견이 적혀 있었다.

최소 6개월 정도는 미국에 머무르며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야 한다는 소리였다.

9살 된 아이를 미국에서 홀로 지내게 할 수는 없으니 서혜나와 이장혁 둘 중 한 사람은 미국에 남아 아이와 함께 생활해야 했다.

그리고 서혜나는 자신이 남기로 결정했다.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그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도현이 부모님을 찾지 않았다는 벤자민의 말이 머릿속에 남았다.

“이참에 우리 패션 브랜드 미국 진출이나 하지 뭐. 6개월이면 기반 마련하기엔 충분한 시간이니까.”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를 꾸며낸 서혜나가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당신이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아 걱정이야. 지금이라도 내가 남을까?”

이장혁의 말에 서혜나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결정 내렸잖아. 나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여보.”

이장혁은 자신의 아내가 한번 결정한 일은 무르는 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단호함에 반해 결혼을 결심했으니까.

이장혁은 신중한 편이었다. 여러 번 숙고하고 결론 내리기 때문에 결론에 다다르기까지의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다.

그리고 서혜나는 이장혁과 완전히 반대편에 서 있었다.

미국에서 처음 만났을 때도,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서혜나의 모습에 한눈에 반했다.

그녀와 가까워지면서, 서혜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단단하고 확고한 사람인지 깨달았다.

그런 아내이니, 이번 결정도 무르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장혁은 서혜나에게 같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아내를 타지에 보내는 게 걱정되니까.

그리고 걱정되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아이.

아들을 떠올리자 이장혁은 명치께를 묵직한 것이 답답하게 눌러오는 것 같았다.

이장혁은 애써 생각을 털어냈다.

“그럼 같이 남을까? 당신 미국에서 혼자 일하는 것보다 둘이서 같이 일하는 게 낫잖아.”

서혜나가 고개를 저었다.

두 명 모두 미국에 거주할 수는 없었다. Marine의 공동 대표인 두 사람이 모두 자리를 비우는 건 곤란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물어볼 수밖에 없는 남편의 마음을 알았다. 서혜나는 그의 말을 지적하기보다는 부드럽게 남편의 손 위에 손을 얹어 느린 박자로 토닥였다.

그게 거절의 의미임을 안 이장혁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아내의 마음을 돌릴 수 없음을 인정했다.

생각에 빠져든 아내를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았다.

서혜나는 곧 있으면 만나게 될 아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들과 처음으로 함께 살게 되는 거네….’

몇 년 전 도현이 잠시 퇴원했던 때가 있었지만, 한창 브랜드가 성장하던 시기라 한국을 벗어나지 못했다. 도현은 서혜나가 고용한 가정집에 맡겨져 그곳에서 한 달 동안 생활했었다.

그러니 도현과 같이 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항상 확신에 가득 차 있는 서혜나였지만, 이번만큼은 아무것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다시 침묵이 내려앉은 택시가 도로를 가로질러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 * *

퇴원일이 다가왔다.

도현은 조금 생경한 기분으로 병실을 둘러보았다.

평생을 함께해 온 단출한 하얀 공간.

이곳을 떠난다는 게 실감이 들지 않았다.

테이블 옆에 단정히 놓인 가방을 보았다.

오랜 시간 병원에서 살았다기엔 너무 적은 짐.

그게 도현이 살아왔던 흔적의 전부였다.

등 뒤에 매단 바이올린 가방을 꼭 쥔 채, 병실 문만을 응시했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똑똑-

정적을 깨는 노크 소리에 도현의 얼굴에 조금 긴장이 서렸다.

“…들어오세요.”

분명히 도현의 목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문밖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도현은 재촉하지 않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어쩐지 문밖에 있는 그의 부모님도 자신처럼 긴장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문이 부드럽게 열리고, 젊어 보이는 부부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도현은 거의 일 년 만에,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뭐지…?’

도현의 눈이 당황으로 크게 떠졌다.

일 년 만에 만난 엄마의 얼굴이 울듯이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 * *

예정 없이 갑작스럽게 생겼던 아이였지만, 그렇기에 신의 선물이라고 여겼다.

단 한 번도 신을 믿어본 적 없는 서혜나인데도, 뱃속에서 움직이는 생명체를 느끼고 있노라면 기적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행복했다.

얼른 아이가 세상에 나와, 함께하길 바랐다.

그랬다.

분명 그랬었다.

‘그런데, 그런데 왜…?’

왜 갓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고 싶지 않았을까.

왜 아이를 미국에 두고 도망치듯 한국으로 갔을까.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병원 벽지만큼 희게 질린 얼굴을 한 작은 아이가 제 몸보다 커 보이는 가방을 멘 채로 거기에 서 있었다.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햇빛도 아이의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작았다.

또래 아이들보다 좀 더 작은 것 같았다.

‘내가….’

당황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면서도 다가올 생각을 하지 못하는 어린 아들이 눈에 시리게 박혔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내 아이인데.

“아….”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 아이인데.

바닥에 주저앉아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아들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내 아들.

하나뿐인 내 아들.

서혜나는 눈물조차 흘릴 수가 없었다.

그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하염없이 도현을 쳐다보았다.

평소라면 아내를 일으켜 세워주었을 이장혁도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도현을 마주한 순간부터 하려고 준비했던 말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던, 그들이 치료라는 명목하에 방치했던 아들을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둘의 모습에 당황스러운 빛이 서린 도현이 경계하던 것도 잊고 걱정의 말을 건넸다.

“괜찮으세요?”

그 말에 이장혁과 서혜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도현이는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한대요. …우리는 한국으로 가요.

언젠가 내렸던 결정이었다.

- 우리도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하잖아요. 아이에게 모든 삶을 빼앗길 순 없어요.

그렇게 합리화했다.

일이 바빠서.

병원이 너무 멀어서.

내게도 인생이 있으니까.

온갖 이유를 가져다 대며 죄책감을 희석시켰다.

이장혁은 조금 먼 과거를 떠올렸다.

‘언제부터였지?’

그들의 아들이 더는 전화를 걸지 않았을 때가.

일 년에 한 번. 만나러 올 때마다 애정을 갈구하는 눈으로 쳐다보던 아이가 멀리 떨어진 채로 거리를 유지하기 시작했을 때가.

이장혁의 입매가 꾸욱- 내려갔다.

하나씩, 하나씩. 자신이 저질렀던 일들이 떠올랐다.

끝없이 기억이 이어졌다.

기억의 무게에 짓눌려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폐를 옥죄던 무거운 공기 속에서, 서혜나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오랜만이네, 도현아.”

“네.”

“…짐은, 다 챙겼니?”

“네. 다 챙겼어요.”

서혜나의 시선이 가방으로 향했다. 한 사람이 살던 곳을 정리했다기엔 너무 적은 짐.

하얗기만 한 병실의 텅 빈 내부도 둘러보았다.

그동안은 다른 곳에 신경이 쏠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아이가 쓰기엔 너무 큰 방이지만, 하루를 보내기엔 너무 좁은 공간.

그리고, 그들이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조금도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아이.

서혜나가 마음속 깊은 곳에 켜켜이 쌓아두었던 말을 터트렸다.

“미안해.”

아주 오랫동안 묵은, 낡고 헤진 말이었다.

말을 뱉고 나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아니, 나는, 난.”

서혜나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눈동자가 불안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이내.

부서져 버린 둑처럼 모든 게 쏟아져 내렸다.

“미안해, 내가 미안해.”

서혜나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미안해.”

그러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내 아들.”

최악이었다.

서혜나가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도현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현실감이 들기엔 너무 비현실적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한 박자 늦게 그 말뜻을 깨달았다.

쿵!

어디선가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무엇인지 도현은 알 수가 없었다.

병적으로 하얗던 도현의 피부가 더욱 희게 질렸다. 도현은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려던 부모님을 붙잡은 적이 있었다.

수십, 수백 번의 고민 끝에 용기를 내어 잡은 손을 부드럽게 떨쳐내던 몸짓.

그림 같은 미소를 얼굴에 띠고 바쁘다는 말을 담던 입술.

모든 게 당장이라도 손에 잡힐 듯 생생했다.

빈손이 서늘했다.

이상한 감각에 손을 한참이나 내려다보던 도현의 머릿속이 차가워졌다.

‘내 영혼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거야. 부모님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

도현은 덩어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자신이 불완전한 영혼을 타고났다는 것.

그래서 ‘완전한 영혼’이 그를 배척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덩어리의 말을 조합해 보면, 부모님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있었던 건 나야.’

실제로 정희성의 기억을 가지게 된 도현은 알고 있었다.

부모라는 존재가 어디까지 무책임해질 수 있는지.

입양과 파양을 반복하고, 마지막으로 입양된 곳에서조차 쫓겨나지 않기 위해 투쟁하던 형의 삶을 기억하며 수없이 눈물을 흘렸기 때문에 잘 알았다.

그렇기에 부모님이 자신을 버리고자 했다면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 있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부모님은 최선을 다했다.

정말 그들이 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한 것이다.

‘내게 문제가 있었던 건데 부모님이 자책감에 시달릴 이유는 없어.’

생각을 정리한 도현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의 앞에 서자, 이렇게 가까이에서 눈높이를 맞춰 마주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으로 가까이서 본 엄마의 얼굴은 생각보다 젊어 보였고, 또 자신과 닮아 있었다.

누가 보아도 모자지간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건 서혜나도 마찬가지였다.

가까이서 본 아들은 그녀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살짝 서늘해 보이는 눈매와 입술 모양이 그랬다.

반듯한 눈썹과 코, 섬세한 얼굴형은 남편을 쏙 빼닮아 있었다.

도현이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괜찮아요.”

돌덩이처럼 굳은 부모님의 얼굴에 도현이 재차 말을 이었다.

“전 괜찮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사과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떻게?”

“네?”

뜬금없는 말에 도현이 반문했다.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어? 어떻게 원망하지 않을 수가 있어?”

“여보.”

이장혁이 서혜나의 팔을 잡았다.

도현이 눈가를 작게 찡그렸다.

무슨 대답을 바라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제가 원망해야 하나요?”

말을 한 도현은 순간적으로 숨을 멈추었다.

“왜 그런….”

똑똑-

도현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문에 닿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부모님에게로 닿았다.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건지 묻고 싶었다.

‘그런데 그걸 알아야 할까?’

그 질문에 도현은 대답할 수 없었다.

찰나의 순간, 고민하던 도현은 결국 선택했다.

“들어오세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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