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알 속의 새 (4)
몇 가지 당부 사항과 함께 도현의 퇴원을 축하하려고 온 벤자민은 병실 내에 흐르는 음울한 분위기에 잠시 멈칫했다.
밴자민의 시선이 도현에게 닿았다가, 이어 멍하니 서 있는 젊은 부부에게 닿았다.
그는 금방 상황을 파악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인사에 정신을 차린 이장혁이 대답했다.
“네. 오랜만이네요, 벤자민 선생님.”
이장혁이 악수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벤자민이 손을 마주 잡았다.
그리고 짧은 사이.
이장혁의 얼굴을 살폈다.
이어 서혜나와 악수를 하면서 그녀의 얼굴을 살핀 벤자민은 결론을 내렸다.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고.
일 년에 몇 번.
연례행사처럼 병원에 방문하는 부부는 아이를 볼 때마다 항상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지금 짓고 있는 표정은 그때와는 사뭇 달랐다.
벤자민이 도현을 흘긋 보았다.
‘싫어하기 어려운 아이지.’
저렇게 반짝거리는데, 어떻게 싫어할 수가 있을까.
“퇴원 축하드립니다.”
벤자민의 인사에 이장혁이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서혜나도 거기에 말을 얹었다.
그들의 과한 감사 인사에 벤자민은 조금 부담스러워졌다.
도현의 병이 나은 건 자신이 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벤자민 선생님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진심이 묻어나는 인사에 벤자민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했다.
그건 기적이었다.
몇 년간 연구했지만, 끝끝내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어쩌면 너무 이른 시기에 발견된 병일 수도 있었고 어쩌면 인간의 손을 벗어난 문제일 수도 있었다.
벤자민은 과학을 믿었지만, 과학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는 않았다.
그 결과로 정희성은 사망했고, 아이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회복을 했다.
연구자의 입장으로선 오랫동안 연구했던 것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난다는 건 엄청난 타격이었고, 손실이었다.
“도현의 병이 나은 건 기적입니다.”
그러나 한 아이의 의사로서는 그 기적이 싫지 않았다.
벤자민이 세 가족을 눈에 담았다.
이제 저 안타까운 가족의 비극이 끝났으면 했다.
상념을 털어낸 벤자민이 입을 열었다.
“메일로 먼저 말씀드리긴 했는데 추가적으로 몇 가지 사항을 당부드리려고 왔습니다. 도현의 상태에 대해서도 다시 설명 드리고요.”
“아, 네. 그럼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미 했던 얘기와 도현의 상태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주의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 차근차근 모두 말했다.
부부는 벤자민의 말을 진지한 기색으로 경청했다.
그들을 마주 보면서 벤자민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정희성이 도현에게 축복을 남기고 간 것이 아닐까.
긴 대화를 끝낸 벤자민이 도현의 앞으로 걸어갔다.
몸을 살짝 숙이고선 말했다.
“퇴원 축하해요, 도현.”
“고마워요.”
아이는 평소와 같이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벤자민은 도현의 표정이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울고 웃고 떼쓰고.
여느 아이와 다를 바 없었던 때가 분명히 있었다.
몇 번 망설이던 벤자민이 결국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도현.”
“네?”
벤자민에게서 나온 말이 너무나 의외라 도현의 얼굴이 놀람으로 물들었다.
도현의 표정을 본 벤자민은 씁쓸한 감정을 느꼈다.
이제 고작 9살.
모국도 아닌 국가에서 홀로 입원 생활을 한 아이.
아이가 병원 사람들의 배척을 받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 여겨 외면해 왔다.
한번 외면하니 그다음은 쉬웠다.
아이를 무어라 부르든, 아이에 대한 어떤 소문이 돌든 거기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부정하지도 않았다.
벤자민은 방관자이자 가해자였다.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깜빡이는 도현의 말간 얼굴이 보였다.
오로지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자기만족을 위한 말이었다.
“아니에요. 그냥…. 퇴원 진심으로 축하해요. 앞으로 행운이 도현의 곁에 따르길 바랄게요.”
벤자민은 설명하기보다 덮어버리는 것을 택했다.
아까 한 말의 의미가 뭐냐고 물어보려던 도현은 벤자민의 표정을 보고 멈칫했다.
무언가 되묻는 게 익숙지 않은 도현은 결국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던 사이, 도현이 싼 짐을 들어 올리던 이장혁은 너무 적은 짐 양에 조금 의아해졌다.
“짐은 이게 다니?”
“네. 그게 전부예요.”
그 말에 이장혁의 표정이 설핏 굳었다.
그들은 무책임한 부모였지만, 적어도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선 부족함이 없도록 노력했다.
간병인에게도 항상 도현이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돈은 상관하지 말고 사도 좋다고 전해두었다.
그런데 이렇게 적은 짐이라니.
“혹시, 간병인이….”
이장혁은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간병인이 불친절하게 굴었는지, 사달라는 것을 사주지 않았는지.
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어떻게 물어보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눈치 빠른 도현은 이장혁이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깨닫고 부정했다.
“제가 필요한 물건이 없어서 그래요. 케일리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
실제로 도현의 일과는 책을 읽거나, 산책하는 것 정도가 전부였기 때문에 물건이 늘어날 틈이 없었다.
“…그래, 그렇구나.”
온갖 장난감을 가지고 놀 나이.
다른 아이들은 부모의 옷자락을 잡고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쓸 나이에 도현은 초탈한 듯이 굴었다.
가벼운 가방의 무게가 그 무엇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벤자민의 배웅을 받으며 병원을 나온 도현은 건물 밖의 땅에 발을 내디뎠다.
천천히 앞서가는 부모님을 보며 바이올린 가방끈을 매만졌다.
도현의 시선이 공원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공원에서 들었던 바이올린 선율이 귓가에 맴돌았다.
‘형, 저 이제 퇴원해요.’
이 말을 들을 대상은 사라졌지만, 들었다면 자기 일처럼 좋아했겠지.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범람하는 가운데 피어오르는 이질적인 감정이 있었다.
아마도, 형의 감정.
그게 꼭 괜찮다고, 기뻐해도 좋다고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도현의 숨결이 불안정하게 흐트러졌다.
‘괜찮을 리가 없잖아.’
작게 피어오르던 미약한 불빛이 다시 꺼졌다.
공원을 등진 도현이 부모님을 따라 택시에 탑승했다.
홀든은 한 명 더 늘어난 탑승객에 관심을 보이려다 세 사람 사이에 흐르는 무거운 적막에 다시 몸을 움츠렸다.
‘운전이나 해야겠네.’
네 명이나 작은 공간에 있었지만, 아무도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았다.
적막을 깨트린 건 의외로 서혜나였다.
“미리 알아봤던 집이 있어. 미국에 머물 동안은 거기서 살 거야.”
언제 감정을 갈무리했는지, 아까 전 울었던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멀쩡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도현이 관심을 보였다.
“어디에 있는 집인가요?”
“샌디에고 델마.”
병원에서만 있었던 도현은 샌디에고가 어디에 있는 동네인지 몰랐다. 그 사실을 아는지 서혜나가 설명을 덧붙였다.
“바다랑도 가깝고, 깔끔하고 조용한 동네야. 산책할 수 있는 공원도 잘 마련되어 있어서 살기 좋을 거야. 그리고 주택 앞마당에 작은 정원이랑 수영장도 있어.”
도현은 서혜나의 말을 따라 살게 될 집을 그려보았다.
부드러운 바다 내음과 넓게 펼쳐진 산책길, 그리고 도로를 따라 늘어진 주택 단지.
파릇한 꽃과 나무가 자라는 정원과 그 옆에 푸른빛이 일렁이는 수영장까지.
꿈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초등학교도 다닐 거야.”
“학교를 다닌다고요?”
도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내가 학교를 다닌다고?’
도현은 조금 얼떨떨한 기분에 휩싸였다.
퇴원하고 나면 병실이 아닌 집에서 살게 될 거란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학교에 다니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다녀본 적이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퇴원했으니까 학교에 다녀야지. 이미 학기가 시작된 후라 편입할 건데, 병원 수업이 인정되어서 2학년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붕 뜬 기분이었다.
이제야 퇴원했다는 게 피부로 와닿았다.
‘나 정말 퇴원한 거구나.’
도현은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뒤로 밀려나는 건물과 나무 위에 자신의 얼굴이 언뜻 비쳤다.
환자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던 옛날과 달리 평범한 아이처럼 보였다.
그게 너무 낯설게 다가왔다.
도현이 생각에 잠긴 것을 눈치챈 서혜나가 말을 멈추었다. 서혜나의 말이 끊기자 차량 내부가 다시 조용해졌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정적에 백미러로 뒷좌석을 흘끔 살펴보던 이장혁의 눈이 도현이 꼭 쥔 가방끈에 닿았다.
“등 뒤에 멘 가방은 뭐니?”
“…바이올린 가방이요.”
“바이올린?”
애가 바이올린을 배운 적이 있었나?
이장혁의 눈이 의아한 빛을 띠었다.
“바이올린을 켤 줄 아니?”
그 물음에 도현은 조금 고민했다.
손가락이 짧고 살이 부드러워 기술적으로 조금 서투를지는 모르지만, 연주 자체는 프로 바이올리니스트 수준으로 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정희성이 평생을 갈고닦은 능력이었고, 도현은 그 삶을 물려받았으니까.
손가락이 터져서 피가 흐를 때까지 연주하고 연주했던 경험은 정희성의 경험이자 도현의 경험이었다.
하지만….
“켤 줄 몰라요.”
그건 형의 삶이지 자신의 삶이 아니었다.
도현은 익숙하게 느껴지는 연주의 감각을 애써 지워냈다.
“이 바이올린은 선물받은 거예요.”
도현이 덧붙인 말에 무어라 더 물어보려던 이장혁이 주춤했다.
바이올린을 선물받을 만큼 친밀한 사이.
서혜나에게 전해 들었기 때문에 도현에게 그런 존재는 한 명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도현을 지난 한 달간 무기력과 우울감에 휩싸이게 한 원인이라는 것도.
이야기를 잘못 꺼냈음을 깨달은 이장혁이 수습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렸다.
“그 옷은 케일리가 사준 거니? 잘 어울리는구나.”
도현은 자신이 입은 옷을 내려다보았다.
흰 스웨터에 검은 청바지.
“희성 형이… 사준 거예요.”
“희성 형?”
“바이올린을 선물해 준 형이요.”
“아…. 그렇, 구나.”
이장혁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당황스러움보다 자괴감이 더 컸다.
아직 슬픔을 이겨내지 못한 아이를 두 번이나 들쑤신 꼴이었다.
아무리 의도치 않은 실수였다지만….
‘아니, 실수가 아니야. 아이에 대해서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벌어진 일이야.’
이장혁은 참담함에 눈을 감았다.
* * *
두런두런 들리는 말소리에 도현이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언제 잠든 거지….’
나른한 기분을 떨쳐내며 등받이에 기댔던 몸을 일으켰다.
완전히 잠에서 깬 도현은 택시가 멈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지?’
의아함에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옆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집에 도착했어.”
“아!”
도현은 택시가 멈춰 선 곳이 한 주택 앞이란 것을 한 박자 느리게 알아챘다.
“방금 도착한 건가요?”
도현의 물음에 서혜나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십 분도 더 전에 도착했지만.’
잠든 아이의 얼굴이 너무 편안해 보여서 깨울 수가 없었다.
아이답지 않은 서늘함도, 경계와 긴장의 기색도 없이 편히 잠든 얼굴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물론 정차해 있었던 시간만큼 택시 요금을 추가로 줘야 했지만, 도현이 몇 시간을 잠들어 있었다고 해도 깨울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이제 내리자.”
자연스럽게 진실을 숨긴 서혜나가 차 문을 열고 나왔다. 도현도 그 뒤를 따라 택시에서 내렸다.
“크다…!”
도현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었다.
눈앞에 보이는 주택은 도현이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울타리 너머로 주택이 높게 솟아올라 있었다.
“이층집이야. 위에 다락방도 있어. 두 명이 살기에 충분할 거야.”
도현이 보기엔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크기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도현은 한 번 더 놀랐다.
예쁘게 정돈된 정원 안에 물이 가득 찬 수영장이 있었다.
미리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색다른 감상을 가져다줬다.
‘이 집에서 내가 살게 된다니….’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