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알 속의 새 (10)
덩어리는 어딘가 화가 난 기색이었다.
【조금 나아지는 것 같더니 다시 제자리야.】
병실에서 사라진 이후 덩어리는 계속해서 도현을 지켜봤다.
대체 그 작은 머리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순리대로 조화롭게 섞이고 있어야 할 영혼이 자꾸만 어긋나고 있었기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아직 완전히 합쳐진 게 아니라 불안한 시기인데, 이 상태로 가다 보면 언제 균열이 생길지 모른다.’
문제가 그거 하나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덩어리가 보기에 작은 인간은 금방 꺼져버릴 촛불처럼 위태로웠다.
아니나 다를까.
덩어리의 불안이 현실이 되었다.
강렬하게 들려오는 작은 인간의 생각에 놀라 급하게 존재감을 모았다.
그 탓에 평소보다 작은 몸체를 일렁거리던 덩어리가 말했다.
【네가 그때 하려던 말을 이제야 알겠다. 넌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없어.】
확신에 가득 찬 덩어리의 통보 같은 말에 도현이 입을 다물었다.
사실이었으니까.
【정희성은 널 위해 영혼까지 바쳤는데! 너는 괜찮아질 마음이 전혀 없구나! 노력조차 하고 싶지 않은 거야, 그렇지? 지금 정희성한테 화를 내는 거잖아!】
흥분한 덩어리가 가열하게 말을 이었다.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작은 인간!】
한탄하듯, 비난하듯 쏟아지는 덩어리의 말.
그 말에 도현이 번쩍- 고개를 들고, 몇 번이고 혼자 속으로 삭였던 질문을 내뱉었다.
“제가 그렇게 잘못된 건가요?”
【하?】
“형은 저를 속이고, 이렇게 절 혼자 두고 떠났잖아요. 바라지 않던 삶을 남기고!”
오랫동안 꾹꾹 눌러왔던 진심.
자신을 두고 떠나버린 정희성에 대한 원망이 터져버린 둑처럼 흘러나왔다.
“마지막으로 인사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선. 모든 걸 자기 마음대로 결정해 버리고! 나는 그런 걸 원한 적이 없는데!”
도현의 외침은 비명과 닮아 있었다.
둘 다 살 수 없다면 그냥 여기서 끝내자던 도현은 진심이었다.
형의 영혼을 양분 삼아 숨을 쉬고 살아갈 바에야 차라리, 행복했던 기억을 가지고 세상에서 사라지길 바랐다.
도현의 목소리에 물기가 섞였다. 말을 하는 건지 울음을 뱉는 건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처절한 목소리였다.
“그렇게… 그렇게 형은 거짓말쟁이면서. 왜 나만 형과 한 약속을 지켜야 하나요?”
남은 생을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행복하게 살고 오라던 형의 말.
죽고 싶었다.
모든 걸 알게 된 순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죽고 싶었다.
그러나 형과의 약속이 도현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래서 죽지도, 살지도 않은 상태로 꾸역꾸역 시간을 흘려보냈다.
도현이 흐린 시야로 덩어리를 보았다.
“덩어리 님. 제가 그렇게 잘못된 건가요?”
도현의 말에 덩어리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죽음을 닮은 침묵 속에서 도현이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저는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덩어리 님.
넋을 놓은 채 중얼거리는 도현은, 지독하게 피곤해 보였다.
* * *
“오늘은 그림 안 그려?”
“그림?”
늦잠을 자다가 학교에 지각한 진은 3교시가 지나고 나서야 팔팔하게 살아났다.
좀비처럼 허우적대던 아침과 다르게 정신을 차린 진은 평소의 활기찬 모습을 되찾았다.
“응! 진짜 잘 그리더라! 우리 집에 있는 미술 작품 같았어!”
사실 진은 도현의 그림을 본 순간부터 수집 욕구가 타올랐다.
‘혹시 팔 생각 있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어제 보았던 도현의 눈빛을 떠올렸다.
진마저 뭉클해질 정도로 애틋했던 미소.
진은 욕심을 꾹꾹 눌러 접었다.
“줄리아 선생님도 엄청나게 칭찬하셨잖아. 그림 더 그릴 생각 없어?”
진의 말에 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림 그리는 데 별로 관심이 없어서….”
“정말? 그렇게 재능 있는데? 아까워!”
예술품 수집가인 엄마를 두고 있는 만큼 진은 나름대로 예술 작품을 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진이 보기에도 도현의 그림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단순히 기술적으로 뛰어난 것이 아닌,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진이 안타까운 심정으로 도현을 보았다.
“그럼 앞으로 아예 안 그릴 거야?”
진의 말에 도현은 조금 머뭇거렸다.
도현과 희성은 둘 다 핸드폰과 친하지 않아서,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조차 없었다.
둘 다 죽을 거라고 생각해서 어쩌면 무의식중에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한 건지도 몰랐다.
도현은 문득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을 떠올렸다.
‘형과의 기억을 그림으로 남길까?’
자신이 한 생각에 도현이 눈을 깜빡였다.
형과 함께했던 순간들로 스케치북을 가득 채우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비록 그게 그리움을 달래기 위한 헛된 일이라고 해도.
생각을 마친 도현이 대답했다.
“가끔 그릴 것 같아.”
진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정말? 그리게 되면 나중에 꼭 보여주라! 어제 그린 그림도 너무 따뜻하고 좋았거든. 나까지 행복해지는 기분이었어.”
도현이 느낀 형을 고스란히 담아낸 그림이었다.
그런 그림을 보고 행복을 느꼈다는 진의 말에 울렁거림을 느낀 도현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으, 빨리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아! 그러고 보니 어제 얘기한 건 어떻게 됐어?”
“!”
완전히 잊고 있었다.
“혹시 사과했어? 응?”
도현이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의도치 않게 진의 조언을 따른 셈이 되었다.
‘어제는 너무 정신이 없었으니까.’
갑자기 나타나 불같이 화를 내고 간 덩어리를 떠올렸다.
- 아무튼 죽을 생각은 하지 마라! 내가 그 꼴을 두고 볼 것 같더냐? 꿈 깨! 내가 있는 한 넌 죽을 수 없어!
한참을 침묵하던 덩어리는 협박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말을 외치고는 사라졌다.
‘내가 괜히 그런 말을 해서….’
도현이 후회하고 있는데, 진의 명랑한 목소리가 상념을 깨트렸다.
“진짜 사과한 거야? 으음, 그런 사람들은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진심으로 분해하는 기색에 도현이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아니, 사과는 못 했어. 어제 못 만났거든.”
“아아, 그렇구나.”
“오늘 가서 사과드리려고. 나도 무례하게 굴었으니까.”
잠시 밝아졌던 진의 얼굴이 다시 시무룩해졌다. 도현의 표정이 확고해 보이자 가타부타 하지 않고 수긍했다.
“그래…. 무례하게 군 건 사과드리는 게 맞지.”
도현이 그런 진을 보며 생각했다.
‘그냥 활발하고 착한 애인 줄 알았는데 알수록 독특하네.’
자존심이 세고 가치관이 분명한데, 그렇다고 고집스러운 성격은 아니었다.
첫날부터 도현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온 것을 생각하면 사회성도 좋아 보였고, 실제로 반 아이들이 진의 곁에 자주 모이는 걸 보면 반의 인기인인 것 같았다.
시원시원한 성격과 보는 사람마저 기분 좋아지는 쾌활한 미소.
확고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유연한 사고.
진은 작은 태양 같은 아이였다.
‘왜 이런 애가 나와 친해지려고 하는 걸까?’
도현은 문득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밝은 미소를 띤 진과 달리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
초라하고 볼품없었다.
* * *
등에 멘 바이올린 가방이 오늘따라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공원에 가까워질수록 도현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평소보다 두 배는 느린 속도로 걸었지만, 결국 공원 입구에 도착하고 말았다.
복잡한 눈빛으로 입구를 바라보던 도현이 심호흡을 한번 했다.
‘들어가자.’
마음을 단단히 먹은 도현이 공원 안으로 발을 디뎠다.
약속을 잡은 것도 아니고, 이틀 전에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도현은 그가 지금 공원에 있을 거란 기묘한 확신이 있었다.
‘역시.’
남자는 저번처럼 벤치에 앉아 흰 종이에 무언가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도현이 조금 가까이 다가가는데.
번쩍!
리암의 고개가 번개같이 들렸다.
잠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큼, 크흠!”
짧은 침묵을 깬 건 리암의 헛기침 소리였다.
도현은 추를 매단 듯 무겁게만 느껴지는 발을 억지로 옮기며 리암의 앞으로 다가가 섰다.
입술을 달싹이던 도현이 입을 열었다.
“저….”
“그….”
동시에 나온 소리에 도현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먼저 말씀하세요.”
“큼, 아니, 난 괜찮으니 너 먼저 말해.”
아저씨 먼저….
꼬마 먼저….
양보가 끝없이 이어지는 웃지 못할 상황에 도현이 결국 백기를 들었다.
“사과드리고 싶어서 왔어요. 저번에 무례하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시원스럽게 나온 도현의 사과에 리암은 조금 뻘쭘해졌다.
어린애랑 싸운 것도 모자라, 사과도 저쪽에서 먼저 했다.
‘완전히 한심한 인간이 된 기분이군….’
실제로 한심한 인간이었다.
짧은 자아비판을 마친 리암이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 감상을 물어본 건 난데 내가 너무 속 좁게 굴었던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소리 지르면 안 되는 거였는데…. 내가 미안하다.”
리암은 성인 남성 사이에서도 덩치가 큰 편에 속했다.
거대한 체구의 성인 남자가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쳤는데 아이가 울지 않은 게 용했다.
새삼 그렇게 생각하니 자기 자신이 너무 쓰레기 같았다.
리암이 덩치에 맞지 않게 쪼그라들었다.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르고, 도현의 안색을 흘끔흘끔 살피던 리암이 슬쩍 운을 띄웠다.
“그런데….”
리암이 한곳에 곱게 포개어 놓은 시나리오를 만지작거렸다.
“큼! 크흠! 그… 뭐냐. 그, 그 있잖아.”
“네?”
알 수 없는 말에 도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마른 입술을 혀로 한 번 축인 리암이 말했다.
“조금 수정했는데 다시….”
도현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큼. 그러니까 다시….”
“다시 읽어볼 수 있냐고요?”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리암이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현과 말싸움을 했던 날.
정신적 충격을 입은 리암은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다시 써가며 다짐했다.
건방진 꼬마의 입에서 재미없다는 소리가 나오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그렇게 심기일전하며 밤을 꼬박 새워 완성된 시나리오를 들고 하루 내내 공원에 죽치고 앉아 도현을 기다렸지만….
노을이 지고 어둑해진 밤하늘에 가로등 불빛이 들어올 때까지 도현은 공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리암은 허탈함과 실망감을 느꼈지만, 이해는 했다.
‘성질 나쁜 아저씨를 보러 오는 게 더 이상한 일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어느 정도 기대를 버리고 공원에 나왔는데, 도현이 떡하니 나타난 것이다!
리암은 찾아온 기회를 수치심 따위로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또 재미없다고 할 수 있나 보자!’
그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도현은 자신의 앞에 내밀어진 시나리오를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팔락- 팔락-
시나리오가 한 장, 두 장 넘어갔다.
이틀 전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시나리오를 읽어 내려가는 도현을 리암이 긴장한 기색으로 쳐다보았다.
콩. 콩.
리암의 심장이 ‘나 여기 있어!’라고 주장하듯이 빠르게 맥동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지막 페이지에서 눈을 뗀 도현이 시나리오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어, 어떠냐?”
리암의 물음에 도현이 잠시 망설였다.
망설임의 기색을 읽은 리암이 재빨리 말했다.
“곱게 포장하고 그런 거 필요 없으니까 그냥 솔직하게! 솔직하게 어떤지 말해줘.”
“솔직하게요…?”
“그래! 재미있는지 재미없는지! 너 그거 잘하잖아, 꼬마야!”
도현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리암을 쳐다보자, 리암의 표정이 조금 해쓱해졌다.
‘설마 또…?’
불길한 기운을 느낀 리암이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도현이 입을 열었다.
“재미없어요.”
리암의 두 눈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그런 리암을 복잡한 표정으로 보던 도현이 생각했다.
‘아저씨의 시나리오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시나리오는 이틀 전과 상당히 많은 부분이 달라져 있었다.
길게 늘어지던 부분도 좀 더 박진감 있게 바뀌었고, 주연 중 한 명은 완전히 새롭게 바뀌어 있었다.
도현은 마지막 장면을 곱씹었다.
이사야가 도망치도록 도와주고, 기꺼이 웃으며 죽음을 맞이하는 유.
몇 번이고 망설이던 도현이 결국 입 안에서 맴돌던 말을 밖으로 꺼내었다.
“아저씨.”
“음?”
“저 말고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와그작-
가까스로 유지하던 평정심이 깨져버린 리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 시나리오는 더 읽고 싶지도 않다는 건가?’
사납게 일그러진 리암의 얼굴에 놀란 도현이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그냥 제가 유의 감정에 공감할 수 없어서 그래요. 이건 시나리오의 문제가 아니라, 제 개인적인 문제에 더 가깝고요.”
도현의 말을 듣던 리암의 표정이 점점 차분하게 변했다.
“꼬마야, 그걸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리암의 말에 도현이 눈만 깜빡였다.
“동네 공원에서 만난 꼬마 하나 납득시키지 못하면 그게 어떻게 영화가 될 수 있겠냐.”
리암이 지향하는 바는 확고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
그 안에 든 철학적인 의미까지는 파헤치지 못하더라도, 인물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는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영화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연구까지 해야 간신히 알아낼 수 있는 예술 영화는 리암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는 애초에 그렇게 고상한 사람도 아니었다.
좀 더 노골적이고, 과시적이면서도 파고들면 새로운 감상이 나오는 영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리암이 조용히 시나리오를 정리하다가 말했다.
“여기엔 언제 또 올 거냐?”
도현이 또 온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 물음.
그 물음에 도현의 눈매가 살짝 구겨졌다.
“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나는 너를 납득시킬 거라고 분명히 말했다.”
쓸데없는 고집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런 고집이 리암이 삶을 지탱해 온 방식이었다.
멍하니 리암을 쳐다보던 도현이 한참 뒤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항복의 표시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