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월드스타 (32)화 (33/582)

제32화. 투쟁 (12)

진은 입을 떡 벌린 두 사람을 보고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때?”

가슴을 쭉 펴고 묻는 모양새에 도현이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있는 사이, 흥미로움을 숨기지 못한 니콜라스가 대답했다.

“멋진데?”

“흐하! 그렇지? 멋있지?”

니콜라스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현은 그들의 사고 흐름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니콜라스가 도현의 팔을 툭 치며 꼬셨다.

“야. 재밌을 것 같은데 하자.”

“음….”

도현은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애초에, 한 번이라는 이유로 시작하면 안 되는 거였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숫자가 의미를 잃는 건 너무 쉬운 일이었다.

“딱! 진짜 딱 수행 평가만! 수행 평가만 하자! 응?”

“이왕 하는 거 화끈하게 가자!”

진과 니콜라스는 영리했다.

도현이 자신들에게 약하다는 걸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고 바로 그 점을 노렸다.

도현이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깔린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처럼.

“…수행 평가만이야.”

“이얏호!”

“예!”

도현은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 * *

세 사람은 수행 평가에 관련된 이야기를 좀 더 나누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스트레칭을 한 니콜라스가 방방 뛰며 수영장으로 달려 나갔다.

“쑤우~영~장! 오-예!”

과하게 신나 보이는 모습에 황망하게 그 뒷모습을 쳐다보던 진과 도현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풋!”

“킥!”

결국 웃음이 터져버린 둘이 한참을 키득거리다가 니콜라스를 따라서 달렸다.

“같이 가! 혼자 가지 말고!”

풍덩!

세 명의 아이들이 사이좋게 나란히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니콜라스는 물속에 들어오자마자 육지에 있다가 바다를 만난 물고기처럼 활개를 치며 돌아다녔다.

진은 그런 니콜라스를 보면서 꺄르륵- 웃다가, 어설프게 발을 동당거리며 앞으로 헤엄쳐 나갔다.

그리고 도현은.

수영장 벽을 잡고 멍하니 서 있었다.

니콜라스가 유유히 헤엄쳐 왔다.

“뭐 해? 수영해야지! 그렇게 서 있는 게 아니라!”

“수영 못 해.”

평소처럼 담담한 어투였지만, 어딘가 묘하게 끝이 늘어졌다.

니콜라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팔을 휘두르고 다리를 움직이면 되는 일 아닌가?

세상에서 수영이 제일 쉬웠던 니콜라스는 물과 낯을 가리는 도현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 일단 벽을 잡은 손을 떼야지.”

“가라앉을걸?”

“에이! 사람 몸은 물에 뜨게 되어 있어!”

니콜라스가 호언장담했다.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니콜라스를 보던 도현이 슬그머니 손을 뗐다.

“푸! 어푸!”

“어어? 야! 왜 이래!”

니콜라스가 놀라서 도현을 붙잡았다. 니콜라스의 팔에 기대 간신히 균형을 되찾은 도현이 다시 수영장 벽을 잡았다.

“장난…친 거지?”

도현이 니콜라스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니구나.”

침묵에서 답을 얻은 니콜라스가 희한한 것을 보듯 도현을 보았다.

물에 떠 있는 일이 침대에 누워 있는 것만큼 안락한 니콜라스에게는 도현이 아주 간단한 일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이내 엉망으로 공을 차던 도현을 떠올렸다. 니콜라스는 수긍했다. 아마 도현은 몸을 쓰는 일엔 재능이 없는 것 같았다.

“내가 가르쳐줄까?”

고민하는 것 같았던 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나 신경 쓰지 말고 놀아. 수영하고 싶다며.”

“나는 물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재밌는데?”

팔로 물살을 밀어내던 니콜라스가 몸을 뒤집었다.

“벽만 잡고 있으면 지루하잖아. 내가 알려줄게.”

더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한 도현이 수긍했다. 사실 배워서 나쁠 것도 없어 보였다.

한창 물에서 푸닥거리던 진이 불쑥 다가왔다.

“뭐야? 수영 배워? 나도 배울래!”

“뭐, 좋아. 이 니콜라스 님이 특별히 가르쳐줄게.”

어깨가 높아진 니콜라스가 신이 나 말했다.

“일단, 중요한 건 긴장하지 않는 거야. 편안하게 몸을 맡기는 게 우선이거든. 그러려면 물을 겁내면 안 돼.”

도현이 진지하게 경청했다. 바람직스러운 학생의 태도에 니콜라스가 흡족한 표정을 했다.

“자, 자. 너희 둘 다 여기 잡고, 몸에 힘을 빼봐.”

도현이 니콜라스가 설명하는 대로 수영장 가장자리를 짚고 몸에 힘을 뺐다.

다리가 붕- 떠오르면서 귓가에서 물이 찰랑거렸다. 이상한 기분에 도현이 조금 버둥대자, 몸이 다시 가라앉았다.

“움직이면 안 돼! 그냥 가만히 있어! 괜히 바둥거리면 더 가라앉아!”

니콜라스의 말에 도현이 몸에 주었던 긴장을 풀었다.

코와 입은 물 밖에 있는데, 귀를 비롯한 몸 전체가 물속에 잠겨 있는 괴상한 기분에 익숙해질 때쯤, 니콜라스가 말했다.

“이제 천천히 다리를 번갈아 가면서 움직여. 간단하게 생각해. 그냥 다리를 최대한 곧게 뻗고, 발목의 움직임을 느끼면 돼.”

도현이 다리를 번갈아 가면서 움직였고, 진이 신이 나서 빠르게 물장구를 쳤다.

“좋아. 이게 플루터 킥이야. 쉽지?”

“응!”

진이 밝게 대답하고,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니콜라스는 괜찮은 선생님이었다.

그 후로도 니콜라스는 성실하게 수업했다. 한 번쯤은 장난을 칠 줄 알았는데 생각과 다르게 진지하게 가르쳤다.

직접 몸을 움직이며 하나하나 설명한 니콜라스가 시범을 보여준다며 끝에서 끝까지 한 바퀴를 돌고 왔다.

진과 도현이 물개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수영하는 니콜라스의 모습은 정말이지, 근사했다.

“자. 이제 직접 해봐!”

도현은 애써 긴장을 지우며 짚고 있던 손을 뗐다.

겁이 없는 진은 이미 니콜라스가 가르쳐준 대로 수영하고 있었다.

그 폼이 꽤 괜찮아 보여서 도현은 내심 수영이 쉬운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오른쪽 팔을 힘차게 뻗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꼬르륵.

“푸, 어푸!”

선 자세로 다시 수영장 가장자리에 돌아온 도현이 마음을 가다듬었다.

‘너무 급하게 해서 그런 거야. 다시 해보자.’

그렇게 심기일전하여 다시 손을 뻗었다.

그리고.

꼬르륵-

도현은 믿을 수가 없었다.

체력이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운동 신경이 좋지 않은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믿기지 않게도 도현은….

몸치였다.

“야. 원래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선생 된 도리로서 학생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니콜라스가 딱하다는 듯이 보았다.

어느새 도현의 옆에 다가온 진도 도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괜찮아. 넌 잘생겼잖아! 줄리엣이 물에 빠지면 로미오가 구하러 달려올 거야!”

위로인지 놀림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짠한 시선 속에서 도현이 주먹을 꽉 쥐었다.

“해낼 거야.”

“뭐?”

“해낼 거라고.”

“어어. 무리하는 건 안 좋…. 그래. 미안. 열심히 해라.”

도현을 말려보려던 니콜라스가 곱게 물러났다.

도현이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가슴께에서 찰랑이는 물을 노려보았다.

이쯤 하니 오기가 생겼다. 도현은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도현이 다시 한번 팔을 뻗었다.

* * *

니콜라스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도현을 보았다.

계속 가라앉는데도 도전하는 근성도 놀라웠고, 그렇게까지 하는데도 나아지질 않는 운동 신경도 놀라웠다.

“니키.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너는 말릴 수 있어?”

진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다시 팔을 뻗는 도현을 보았다.

“…아니.”

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편.

도현은 끊임없이 자신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있었다.

‘머릿속 이론은 완벽해. 그런데 몸이 따로 놀아. 병원에서만 살아서 근신경계가 발달하지 않아서 그런가?’

‘이렇게 해야겠다’란 생각은 머릿속에 있었는데 몸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냥 단순히 재능이 없는 것일 수도 있었지만, 도현은 애써 그 가능성을 무시했다.

가장자리로 돌아온 도현이 몸에 힘을 풀고 심호흡을 했다.

니콜라스와 진이 대체 뭐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물만 뚫어져라 쳐다보던 순간이었다.

도현은 기이한 흐름을 느꼈다.

그건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했고, 거꾸로 움직이기도 했으며, 같은 자리에서 요동치기도 했다.

‘저게 뭐지?’

도현은 그것을 좀 더 집중해서 보았다. 어느 순간부터 커다란 흐름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 흐름을 따라 슬쩍 팔을 뻗자.

사아악.

저항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팔이 부드럽게 물살을 헤치고 움직였다.

도현은 놀란 표정으로 제 손을 보았다.

이건 마치….

물이 스스로 길을 열어준 것 같았다.

한번 깨닫고 나자 도현은 어디로 움직여야 가장 효율적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지체할 것 없이 팔을 뻗었다.

그리고 믿기지 않게도.

촤악!

도현의 팔이 물살을 가르고, 뒤이어 몸이 그 뒤를 따랐다. 도현은 해냈다는 성취감에서 오는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비록 몸치인 것은 여전해 중간 지점에서 다시 가라앉았지만, 이것만 해도 엄청난 성과였다.

물에 풍덩 빠지고, 다시 발버둥 쳐서 둥둥 뜨고, 헤엄치고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도현의 몸은 천천히 전진했다.

손끝에 닿는 딱딱한 느낌에 물장구를 치던 발이 멈췄다.

푸하!

도현이 고개를 들었다.

손에 닿는 벽을 두어 번 더듬은 도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맞은편에서 진과 니콜라스가 놀란 표정으로 도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 끝까지 헤엄쳐서 온 거야?’

도현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에 맺힌 물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다시 자신이 서 있는 곳 한 번, 진과 니콜라스가 있는 곳을 한 번 보았다.

와.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물결처럼 흐드러지는 미소를 베어 문 채였다.

* * *

도현의 기적 같은 실력 향상 이후.

실컷 헤엄치고, 서로에게 물장난을 치며 실컷 논 셋은 금방 기진맥진해졌고,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하자 진과 니콜라스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풀썩!

둘을 배웅하고 돌아온 도현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방금까지 신나게 놀던 아이라기엔 심각한 표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깐 기쁜 나머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었다.

‘분명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어. 마치 흐름을 읽는 듯한….’

이런 이야기는 어디서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 순간.

도현의 앞에 있는 공간이 흐릿하게 일그러졌다.

갑작스러운 현상에 놀랄 법도 한데, 도현은 잠깐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고선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덩어리 님?”

【이제 놀라지도 않네.】

하얀빛 뭉치를 발견한 도현의 얼굴에 반가움과 어색함이 차올랐다.

- 아무튼 죽을 생각은 하지 마라! 내가 그 꼴을 두고 볼 것 같더냐? 꿈 깨! 내가 있는 한 넌 죽을 수 없어!

‘마지막 만남이 그랬으니까….’

덩어리는 도현의 어색함을 눈치채지 못하고 말했다.

【네게 알려줄 게 있어.】

“네?”

【아까 수영장에서 있었던 일 말이야.】

덩어리의 말에 도현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걸 어떻게…?”

【큼, 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느냐, 작은 인간아.】

말을 돌리려는 의도가 확 티가 났다.

‘그러고 보니 덩어리 님은 항상 필요한 순간에 나타나셨어. 혹시 계속 지켜보고 계시는 걸까?’

도현이 정답에 가까워져 가는 가운데, 덩어리가 서둘러 말했다.

【네가 보았던 거. 그게 뭔지 고민하고 있었지?】

“네. 이상한 걸 봤어요. 마치 물이 흐르는 방향을 눈으로 본 것 같았어요. 이게 뭔지 알고 계신 건가요?”

【그걸 알려주려고 온 거니까. 흠…. 너, 내가 처음 나타났던 날, 이상한 현상을 겪은 거 기억나?】

도현의 기억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자신에게서 흘러나오던 맑은 하늘빛의 연기.

그리고 형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강렬한 노을색의 빛무리.

【그래, 그거!】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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