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월드스타 (47)화 (48/582)

제47화. 무너지는 세계 (11)

영화 속 유와 이사야의 관계는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길거리에서 미리 촬영했던 부분을 스킵하고 넘어가니, 진도가 확 당겨진 것이었다.

맥과 도현은 종종 서로의 배역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좀 더 배역을 깊이 이해하기 위함이었다.

대화를 나눌수록 도현은 맥에게 감탄했다.

그리고.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

맥이 들었다면 기겁할 생각을 했다.

유와 어울려 지갑을 훔친 게 이사야에게 있어서 전환점이었다면, 오늘 촬영하는 장면은 유가 다시 한번 변화를 겪는 계기였다.

도현은 유의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기 위해 노력했다.

유는 혼자인 게 익숙했다. 버려지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이사야가 유를 버리기 전에, 유는 먼저 이사야를 버리고자 했다.

고해 성사는 그런 의미였다.

둘러쓴 가식에 의해 지금은 억지로 곁에 있겠지만, 결국엔 떠날 것임을 알기에.

그러니 그 전에 너를 최대한 고통스럽게 만들겠다는, 유치하고 질 낮은 괴롭힘이었다.

그런 유에게 이사야는 바이올린을 내민다.

그게 유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고 네 곁에 있겠다고 말하는 이사야가….

도현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런데 그럴수록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답답한 기분이 들어 미간을 찌푸리는데, 리암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복잡한 생각을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유가 제 앞에 놓인 바이올린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왜 보고만 있어?”

이사야가 묻자 유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뭐야?”

“뭐긴 뭐야. 선물이지. 너 가지라고. 부담 갖지 마. 나 어렸을 때 연습용으로 썼던 거니까.”

“왜?”

“같이 연주하고 싶어서.”

“왜?”

“그러고 싶으니까?”

“그러니까. 왜?”

모르는 문제를 맞이한 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그제야 유가 십 대 초반인 제 나이다워 보였다.

이사야가 성경을 읽어줄 때처럼 단정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있잖아, 유. 나는 너와 만난 걸 후회하지 않아. 네 덕분에 내가 얼마나 멍청한 인간이었는지 깨닫게 되었거든. 널 원망하지도 않아. 널 더 알게 된 게 기쁘니까.”

이사야의 말이 길어질수록 유의 얼굴이 굳어갔다. 마치 들으면 안 되는 것을 들은 사람처럼 넋이 나가 이사야를 보았다.

“그래서 나도 알려주고 싶어졌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유, 내가 약속했잖아. 네게 증명해 주겠다고.”

유는 전처럼 차갑게 비웃을 수가 없었다.

동정, 연민, 기만을 찾았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오로지 순수한 선의.

때 묻지 않은 호의만이 존재했다.

유의 까만 눈동자가 동요했다.

“네가 먼저 증명해 달라고 했잖아. 너도 네 말에 책임을 져.”

처음 만났을 때, 가까이 다가오지 않으려던 유를 쿠키와 연주 소리로 살살 꾀던 그때처럼.

장난기를 한 움큼 베어 물고 유에게 말했다.

유는 이해할 수 없는 걸 목도한 기분이었다.

어떻게 너는 이럴 수가 있을까.

기만했고 의심했다. 음습하게 발목을 잡아채 끌어내렸다. 사실 이사야가 자신을 혐오하고 경멸하더라도 납득할 수 있었다. 아니, 여태껏 그러지 않은 게 이상하다 여겼다.

그런데 대체 왜 너는.

도현이 유의 감정에 완전히 몰입하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너 바이올린 소리 좋아하잖아.”

- 형, 바이올린 좋아하잖아요.

도현이 눈가를 찡그렸다. 노이즈가 끼는 것처럼 기억이 파고들었다.

“분명히 즐거울 거야. 내가 장담할게. 그러니까 같이 해보자.”

도현은 집중을 깨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니까, 유는 자신의 삶에 끼어든 이사야를 원망한다….

모르고 살아도 될 걸 알게 해서.

아니, 아니다.

원망을 사칭한 감정은 애정이었다.

너는 왜 이제야.

- 왜 이제야 나타났냐.

아.

유, 아니 도현은 느릿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바이올린이 흐릿하게 보인다.

기시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유는 형과 달랐다. 일단 형은 유처럼 못돼먹지 않았으니까.

그런데도 자꾸만 형을 떠올리게 했다.

저를 보는 이사야의 푸른 눈 위로 검은 눈동자가 겹쳐졌다.

애틋한 통증이 심장을 죈다.

서투르지만 길을 잃지 않고 똑바로 향해오는, 받아본 적이 없어서 주는 것조차 미숙한, 그리하여 더욱 안타까운 애정이 소낙비처럼 쏟아져, 피할 새 없이 순식간에 흠뻑 젖어버렸다.

작은 아이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그 당시 형이 느꼈던 감정이 선명히 떠오르자, 도현은 느닷없이 서러워졌다.

이리 느낄 수 없었다면 믿지 못했을 만큼이나, 형의 기억 속에서 도현은 이유 없이 안타까울 정도로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다만, 알게 되었기에 기꺼웠고.

그보다 훨씬 아팠다. 고통이었다.

때론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때도 있었다….

깜짝 놀란 맥과 리암이 달려와 등을 두들기는 게 느껴졌지만, 통제를 벗어난 감정은 멈출 수가 없었다.

* * *

결국 NG가 났다.

도현이 시간을 지체한 것에 대해 사과하며 다시 촬영하자고 했지만, 리암에게 욕만 얻어먹고 집으로 빠르게 모셔졌다.

집으로 도현을 데려다 놓고도 리암은 사라지지 않았다.

서혜나가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전해 듣고선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도현과 함께 있었다.

그렇게 도현은 서혜나에게 무사히 인수되었다.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탓에 도현은 조금 얼떨떨했다.

“촬영이… 많이 힘드니?”

힘들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그만두라고 할 기세였다.

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촬영은 재밌어요. 같이 하는 사람들도 다 좋은 사람들 뿐이고요.”

도현은 이거나 안고 있으라며 리암이 품에 쥐여 주었던 인형을 만지작거렸다. 고래의 볼이 꾹 눌렸다.

“그냥, 제 문제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도현이 말한 의도가 어떻든 간에, 서혜나의 귀에는 ‘내 일이니까 상관하지 마’ 정도로 들렸다.

서혜나는 지금껏 도현의 의견을 존중했다.

도현은 9살이라 보기 어려울 만큼 사고가 깊었기에 단순히 아이 다루듯 할 수가 없었을 뿐더러.

자신이 도현의 일에 참견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혜나는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격이니 뭐니 생각할 시간에 아이에게 더 다가가는 게 맞지 않았을까?

시간을 두고 함께한다면 천천히 나아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도현에게 있어서 자신은 남이나 다름없었다.

서혜나는 결단을 내렸다.

“도현아.”

“네.”

“무슨 일 때문인지 말해줄 수 있을까?”

고래의 볼을 누르던 손이 뚝- 멎었다. 서혜나는 기다리지 않고 이어 말했다.

“영화 촬영 전에, 엄마랑 약속했잖아. 힘든 일이 있으면 말하기로. 그래서 엄마도 도현이를 믿고 응원해 준 거고.”

“이건 제 개인적인 문제-”

“그래도 엄마는 불안해. 도현이가 촬영 중에 또 힘들어할 일이 생길까 봐.”

도현은 입을 다물었다.

촬영 도중 눈물을 쏟아내고 꺽꺽댔던 모습을 떠올리면, 엄마가 불안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생각이 났어요.”

“생각?”

“희성 형이요.”

“…도현아.”

서혜나가 간신히 신음을 삼켰다.

“저 진짜 괜찮아요. 연기 도중에 잠깐 기억이 떠올라서… 그래서 조금 놀랐던 거예요.”

도현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도현이 앉았던 위치에 동그랗게 파인 자국이 서서히 펴졌다.

“저 올라가서 다음 촬영 장면 좀 연습할게요.”

서혜나는 올라가는 도현을 붙잡지 않았다. 않은 건지 못 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도현이 스스로 그 사람 얘기를 꺼낸 건 이 집에 오고서 처음이었다. 여기서 물러나는 게 맞았다.

맞는데, 왜 이리 속이 싸한지.

도현이 자신을 거부하는 것보다, 도현에게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다는 게 그녀를 힘들게 했다.

* * *

도현은 연습실 벽에 기대어 다리에 팔을 감싼 채 홀로 앉아 있었다.

나름 괜찮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형은 작은 조각 하나만으로 도현을 손쉽게 무너트렸다.

겨울은 지나갔고 이젠 형과 함께한 적 없는 계절이 다가왔는데, 소년은 여전히 겨울바람이 서늘하던 병실에 있었다.

함께하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했다.

사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간절히 바란다.

이건 모두 꿈이고.

이제 곧 형이 노크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올 거라고.

그러면 아주 잠깐 울겠지만, 곧 기뻐서 웃을 텐데.

형은 정말 무책임했다.

내 행복을 멋대로 빼앗고서, 행복하게 살라니.

형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만, 자꾸만 자신이 없어진다.

도현이 무릎 사이에 고개를 푹 숙였다.

오늘만 이렇게 있자.

내일부턴 다시 괜찮아지는 거야.

그러니까 오늘만.

* * *

“컷! 오케이!”

재빨리 말을 뱉은 리암이 도현에게 다가갔다.

“꼬마, 너 괜찮냐? 어디 이상한 데는 없고? 기분은? 혹시 우울하거나 그러진 않아?”

어지럽게 쏟아지는 리암의 질문에 도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이상한 곳도 없고, 기분도 나쁘지 않아요. 우울하지도 않고요.”

도현은 조금 난감했다.

사람들이 모두 도현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것이 걱정에서 발로된 행동임을 알았지만… 부담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도현은 더욱 씩씩하게 행동했다. 밝은 모습에 하나둘 안심하며 평소의 모습을 되찾는 와중에.

여전히 시선을 떼지 못하는 둘이 있었으니.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네, 정말이요.”

“일단 쉬고 다시 하자.”

“괜찮다니까요?”

“누가 뭐래? 내가 쉬고 싶다고. 너도 이 나이쯤 먹어봐라. 오래 서 있으면 몸이 힘들어요.”

도현을 괜히 타박한 리암이 휴식을 선언했다.

도현의 어이없다는 시선에도 리암은 꿋꿋했다.

리암이 이렇게 과민 반응하는 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서혜나와 만나 계약서를 체결한 날.

그날 저녁에 리암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혹시 계약을 무르자는 말을 할까 봐 긴장했던 리암은 생각지도 못한 내용에 얼이 빠졌다.

- 도현이가 우울증을 앓고 있어요.

그때 얼마나 기겁했던가.

자세한 사정을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하면서, 조곤조곤 설명하는 서혜나의 음색은 차분했다.

서혜나의 걱정과 다르게, 도현은 촬영장에 잘 적응했고 즐거워 보였다. 그래서 조금씩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어제 본 장면은 충격이었다.

리암은 오늘 촬영하러 오기 전까지 자신이 좀 더 신경 써야 했다고 자책했다. 촬영장에서 일어난 일은 모두 그의 책임이었으니까.

리암의 과잉보호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또 한 명.

“야.”

자연스럽게 도현의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던 맥이 도현을 불렀다.

“네?”

“어제 왜 갑자기 운 거야?”

“연기에 너무 몰입했나 봐요.”

“그래?”

맥은 미심쩍어하면서도 수긍했다.

“걱정했어요?”

“걱정 안 했거든?”

맥이 고개를 홱- 돌렸다.

맥은 어제부터 너무 혼란스러웠다.

사실 맥은 오디션 날 있었던 일을 어느 정도 잊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섬세한 성미가 아니었을 뿐더러.

무엇보다 당사자가 그것에 연연해 하지 않는 탓이었다.

본인이 괜찮다는데 뭐.

그리 생각하며 어물쩍 넘겨버렸다.

어차피 도현은 조금 남다른, 애 같지 않은 애였으니까. 되도 않는 핑계로 합리화하면서.

그런데 어제 도현이 펑펑 울어버렸다!

도현이 그렇게 울 수 있다는 건 맥에게는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소리와 진배없었다.

도현도 결국 애였다.

그게 맥의 양심을 저격했다.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양심은 안녕하냐?

맥의 자의식 중 하나가 맥을 끊임없이 공격했다.

맥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야.”

아까와 똑같은 부름.

도현이 의아한 낯으로 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맥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주먹을 꼭 쥐고 있었는데, 꼭 한 대 치고 싶어 하는 사람 같았다.

멀리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리암이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내가 뭘 잘못했나?’

도현이 때 아닌 성찰을 하는데.

“미안.”

“네?”

“미안하다고!”

사과인지 윽박인지 모를 외침.

도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오디션 날, 너한테 욕하고 밀친 거, 그거 미안하다고.”

“아.”

도현이 탄성을 내뱉었다.

“때리려는 게 아니었네요.”

“하? 내가 널 왜 때려?”

맥이 어이없단 표정을 짓자, 도현이 조금 머쓱하게 웃었다.

“사과받을 거야, 말 거야?”

맡겨 놓기라도 한 말투였다.

그러나 목덜미가 터질 듯이 붉었다. 결국 도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뭐, 뭐야. 왜 웃는데? 내 사과가 웃겨?”

맥이 버럭 화를 내려던 찰나.

“아니에요. 사과받을게요.”

“어. 그, 그러냐?”

“네. 솔직히 맥이 사과할 줄 몰랐는데….”

“큼, 크흠.”

“사실 그렇게 기분 나쁘지도 않았으니까요.”

“뭐?”

맥이 미간을 팍- 찌푸렸다.

“바보야? 왜 기분이 안 나빠?”

“…기분이 나빠야 해요?”

“당연하지!”

그게 자기 일이란 걸 잊어버렸나 보다.

“나는 누가 나한테 그따위로 지껄였으면 코피 터트렸어!”

그러니까, 본인 코피를 터트려 달라는 소린가?

도현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도 모르고 맥이 열불을 냈다.

“역시 화도 안 내길래 뭔가 이상하다 싶었더니! 너 완전 호구였구나!”

맥이 갑작스럽게 잔소리를 시작했다. 누가 시비 걸면 주먹으로 돌려줘야 한다. 병신들한테 만만하게 보이면 더 함부로 굴 뿐이다. 누가 위인지 똑똑히 알려줘야 한다···.

맥 혼자 동물의 왕국에서 사는 것 같았다.

“제가 정말 화났으면 맥이 사과해도 안 받아 줬을걸요?”

“그건! 그건 그렇지만···.”

결국 맥은 말을 잃었다.

“그래도 제가 호구라서 화해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잖아요, 그렇죠?”

생글, 웃는 얼굴에 무어라 대답할 말을 찾을 수 없어 그저 헛웃음을 짓다가.

이내 지금 상황이 우습게 느껴져 웃음을 터트렸다. 그에 도현도 맥을 따라 웃었다.

도현이 편하게 웃는 얼굴을 처음 마주한 맥이 얼빠진 채로 도현을 보았다.

아.

나 얘랑 친해지고 싶었구나.

맥은 늦은 깨달음을 얻었다.

* * *

전날 있었던 일을 만회라도 하듯이 도현은 무서운 집중력을 보여주며 연신 오케이 사인을 받아냈다.

모든 게 순탄한 가운데 가장 큰 문젯거리는 바이올린을 연습하는 장면이었는데, 원인은 맥이었다.

그러나 충분히 상정하고 계획을 세웠기에 큰 차질이 생기진 않았다.

그리고 바이올린을 배우는 장면에서 도현의 바이올린 실력은 빛을 발했다.

직접 연주한 것은 아니지만, 흉내만으로도 얼마나 멋있는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도현은 몸소 보여주었다.

유가 지닌 음악적 재능을 탁월하게 연기한 도현을 왈트가 눈으로 불이라도 붙일 것처럼 뜨겁게 바라본 것만 빼면 별것 없이 지나갔다.

촬영이 모두 끝나고 영혼까지 탈탈 털린 맥이 리암의 차로 들어가 털썩- 쓰러졌다.

도현도 그 맞은편에 앉으며 피곤한 눈을 문질렀다.

“너 녹음은 촬영 끝나고 한댔나?”

“네. 이사야랑 같이 있는 장면은 다 따로 녹음을 따기로 했으니까요.”

“녹음할 때 나도 구경 갈까···.”

“왈트도 있는데요?”

리허설을 한 날.

도현은 직접 연주하는 것에 동의했다.

그리고 리암과 합의 끝에 어떻게 할지 정했는데, 하나는 이사야의 바이올린은 왈트가 맡는 것이었고, 하나는···.

“헉! 내가 그걸 왜 깜빡했지! 열심히 해라. 집에서 응원할게.”

맥이 진절머리를 냈다.

“왜요? 구경하고 싶다면서요?”

“됐어! 필요 없어!”

진심으로 학을 떼는 반응이 웃겨서 몇 번 더 언급했다. 리암이 운전석에 탈 때까지 맥은 고통받아야 했다.

* * *

도현이 촬영 중에 울었던 날 이후로.

“마시멜로 먹을래?”

“방금 초콜릿 먹었어요.”

“끄응. 그럼 코코아는?”

“지금 마시고 있잖아요?”

“담요! 담요라도 덮을래?”

“···이미 세 겹인데요.”

아무래도 더운 미국 서부, 게다가 여름에 가까워져 가는 날씨에 담요를 덮고 땀을 흘리던 도현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리암의 과잉보호 및 주책은 심해지는 것 같았지만.

그 외엔 별다른 문제 없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평화롭고 순조로운 날들에 사람들이 그날 일을 잊고 경계심을 풀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문제는 언제나.

“야!”

맥이 황급히 도현의 어깨를 잡았다.

“야! 이도현!”

사람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 찾아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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