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화. 표류 (9)
달칵.
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경쾌했다. 도현은 보조석에 앉아 야무지게 안전벨트를 맸다.
서혜나가 운전용 선글라스를 썼다.
“가는 데 조금 걸리니까 자고 있어도 돼.”
“괜찮아요.”
“그래? 노래라도 틀까?”
도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서혜나가 라디오를 틀었다. 잔잔한 팝송이 흘러나왔다.
차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한 달 만에 가는 병원이었다.
* * *
도현은 잠시, 차분히 생각해야만 했다.
“축하해요, 도현.”
벤자민이 도현을 보고 웃었다. 눈가에 주름이 접혔다. 벤자민은 센터에서 상당히 젊은 축에 속하던 의사였다. 퇴원하기 전에는 매일같이 봐왔음에도 알지 못했다. 어쩌면 눈을 들여다본 게 오랜만이라 그런지도 몰랐다.
시간이 지났구나. 눈가의 선 몇 개가 이유 없이 낯설었다.
옆에서 난 인기척에 도현이 고개를 돌렸다.
서혜나가 손을 꾹 쥔 채로, 잘게 떨고 있었다. 얼굴에 스쳐 지나간 감정은 분명 감격이었다.
“정말… 정말 우리 아들이….”
“네. 축하드려요, 혜나 씨. 이제 정말로 병원 졸업이군요.”
도현은 천천히 시간을 세어보았다.
벤자민이 말했던 육 개월은 아직 지나지 않았다.
도현의 의문을 눈치챘는지 벤자민이 덧붙였다.
“제가 6개월 정도 지켜보자고 말했지만, 지금 상황을 봐서는 더 확인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매번 병원에 올 때마다 수치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고 이제는 일반인들과 비교해도 놀라울 정도로 건강하군요. 확언을 할 수는 없지만, 완치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도현의 심장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뛰었다.
병이 다 나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애초에 병도 아니고, 보다 초월적이고 근원적인 문제에 가까웠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건 도현에겐 불필요한 확인치레에 불과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동요하는 걸까.
“서, 선생님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를 알 리 없는 서혜나는 몇 번이고 벤자민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혹스러워하며 서혜나를 말리던 벤자민은 이내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달았다.
“제 능력으로 고쳐준 게 아닙니다. 도현이 스스로 나은 거예요. 이런 감사 인사를 받기엔 제가 너무 부끄럽군요.”
한 달, 겨우 4주, 누군가는 그저 흘려보내는 시간.
그 짧은 시간이 지날 때마다 도현은 눈에 띄게 달라져서 왔다.
혼자서 기적처럼 회복한 환자는, 그 후유증조차 혼자 이겨냈다.
도현은 유독 벤자민을 무력하고 무능하게 만드는 환자였다.
아이를 치료하기 위한 명목으로 있었던 병원은 아이를 죽여가고 있었을 뿐이었다고, 자조적으로 생각했다.
결국, 도현은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았다. 벤자민이 손쓸 새도 없이 떠나버렸던 그 환자처럼.
도현의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 건 벤자민의 마지막 양심이자 죄책감이었다.
어쩌면 지난 몇 년간, 조금도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던 문제에 지쳤는지도 몰랐다.
본심이 어떠하든 아이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만큼은 진실이었다. 비록 그게 너무 늦은 일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벤자민은 속내를 꺼내 보이지 않았다. 한 번도 도현을 환자 이상으로 대해준 적이 없었다.
사무적인 진료를 받으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대화하고 싶어 하는 아이를 외면했던 그였다.
그러니 마지막까지 환자와 의사 정도의 관계로 남는 게 맞았다.
벤자민과 도현은 깔끔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의 배웅을 뒤로한 채 건물을 나온 도현은 기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도현아, 어디 안 좋니?”
멍해 보이는 도현에 서혜나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아.”
도현이 눈을 깜빡였다.
“아니에요. 진짜 다 나았다고 하니까 기분이 이상해서…. 그래서 잠시 생각이 많아졌나 봐요.”
도현의 말에 서혜나가 자리에서 멈춰 섰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도현이 서혜나를 바라보는데, 서혜나가 천천히 다리를 굽혀 도현과 시선을 맞췄다.
“고마워, 도현아.”
“네?”
“지금까지 이렇게 버텨줘서. 그래서 엄마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미안하다고.
이렇게 못난 사람이 엄마라서 미안하다고.
지난 모든 날을 후회하고, 후회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 전 괜찮아요.
내뱉는 숨결이 형편없이 떨렸다.
그때, 아이가 받아주지 않았다면 기회조차 없었을 거란 걸 모르지 않는다.
서혜나는 아이에게 언제나 죄인이었고, 염치없이 아이의 상냥함에 기대어 기회를 얻어낸 비겁한 부모였다.
자신의 무능과 이기심이 지독하게 끔찍하고 혐오스러웠지만, 그녀는 익숙하게 갈무리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오래된 버릇이었다.
자기연민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감정들은 모두 잘라내어, 새카맣게 탄 잿더미 같은 속에 아무렇게나 던져 넣었다.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에게조차도 동정받아선 안 될 사람이었다.
서혜나는 행복한 얼굴로 눈매를 둥글게 접으며 환히 웃었다.
오늘은 기쁜 날이니까.
“고마워, 도현아. …우리 아들.”
별다른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은 담백한 말이었다.
도현은 그 담백한 단어 사이에 미묘하게 빈 행간을 눈치챘다.
그녀가 끝내 삼켜버린 말을 짧게 고민하다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 * *
특별한 날인만큼 서혜나는 손수 음식을 해주고 싶어 했다.
그녀의 바람대로, 그들은 장을 보고 집으로 향했다.
장 봐 온 음식들을 차례로 꺼내어 정리하던 차였다. 도현아, 서혜나가 나지막이 도현을 불렀다.
“엄마 잠깐 아빠랑 전화 좀 하고 와도 될까?”
“네. 전 이거 정리하고 있을게요.”
평소라면 정리는 엄마가 할 테니 가만히 있으라고 했을 서혜나가 급히 사라졌다.
빨리 전화하고 싶다는 조급함이 느껴졌다.
도현은 새로 구매한 허브를 통후추 그라인더 옆에 예쁘게 진열해 놓았다.
고기는 냉장고에 넣고, 기타 야채는 엄마가 씻기 편하도록 접시에 놓고 나니 할 일이 없었다.
‘전화가 끝나려면 얼마나 걸리려나.’
도현은 시간을 가늠해 보다가, 잠깐 정원으로 나가 산책하기로 마음먹었다.
병원에서 나온 순간부터 싱숭생숭한 마음이 도저히 진정되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리하고 있겠다던 애가 갑자기 안 보이면 엄마가 놀랄지도 몰랐다.
도현은 행선지를 밝히고 나가고자 마음먹었다.
서혜나의 방 앞에서 노크하려던 순간이었다.
하아….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도현은 손을 든 그대로 멈칫했다.
이어 작은 소리가 들렸다.
“그 얘긴 아직 안 꺼냈어…. 쉽게 꺼낼 수 없기도 하고….”
남의 대화를 엿듣는 게 예의가 아님을 알았다.
그러나 도현은 이상하게도 노크를 하거나,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기이한 예감에 붙들린 듯 그 자리에 못 박힌 것처럼 서 있었다.
“응. 한국으로 돌아가긴 해야 할 텐데….”
쿵.
도현의 심장이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응. 아니, 도현이는 별말 없었어.”
더는 대화를 들을 자신이 없었다.
숨을 죽이고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겨 방문에서 멀어졌다가, 일정 거리를 벌리자 빠른 속도로 뛰어 나갔다.
탁 트인 정원에 나와서야 도현은 숨을 뱉을 수가 있었다.
왜 잊고 있었을까?
아니.
도현이 눈을 비스듬히 내리깔았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사실 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잊고 싶었을 뿐이었다.
벤자민의 말을 듣던 순간부터, 심장에 스며들던 흐릿한 불안감이 선명한 어둠이 되어 심장을 집어삼켰다.
기뻐해야 마땅한 일이었다.
걱정에 불안해하는 부모님을 볼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다.
그러니 잘된 일이었다.
부모님은 이제 일어날 리 없는 가능성과 원인 없는 걱정에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
잘된 일인데….
숨이 막혔다.
이 집도, 정원도, 학교도, 진도, 니콜라스도, 리암도, 맥도. 모두 미국에 있는데, 도현은 더 이곳에 남을 핑곗거리가 없었다.
더 남을 핑곗거리가….
흠칫.
도현은 자신이 한 생각에 놀랐다.
서혜나는 몰라도 도현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병이 다 나았음을!
그런데도 모른 척 미국에 남았다. 그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누렸다.
자신의 끔찍한 이기심에 경악했다.
미국에 남고 싶다는 욕심은, 부모님의 희생을 전제로 한 지독히 자기중심적인 욕망이었다.
공항에서 부부가 헤어질 때,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두 눈에 얼마나 큰 슬픔과 아쉬움이 어렸던가.
게다가 도현은 엄마가 밤에 아빠와 자주 통화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안 돼.
도현이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숙였다.
더 욕심 부리지 말자. 더는 안 돼.
머릿속을 치고 올라오려는 생각을 애써 내리누르며, 몇 번이고 반복해서 생각했다.
세게 짓누른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
* * *
이장혁과 전화를 마친 서혜나는 후련한 마음으로 도현을 찾았다.
한국으로 귀국하는 건에 대해서는 아주 예전부터 이장혁과 의견을 나눴다.
그들이 내린 최종 결론은 ‘도현이 원하는 대로 하자.’였다.
물론 남편이 보고 싶고 뼛속까지 한국인으로서 타지 생활을 하는 게 마냥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도현이 행복한 게 중요했다.
어차피 도현의 행복이 부부의 행복이었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일을 벌인 참이었다. 남아 있을 시간이 길어진다면 좀 더 기반을 탄탄히 다질 수 있으리라.
그리 생각하며 주방으로 갔는데, 도현이 보이지 않았다.
방으로 갔나 싶어서 이 층으로 올라갔는데 방에도, 다락방에도, 연습실에도 도현은 없었다.
‘어딜 간 거지?’
서혜나가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시 일 층으로 내려가는데 때마침 집 안으로 들어오는 도현과 마주쳤다.
“정원에 있다가 온 거니?”
“아, 네. 잠깐 산책했어요.”
서헤나는 당황한 마음을 진정할 수 있었다.
그래, 집에서 아들이 어디 사라질 리가 없지 않나. 괜히 과하게 놀란 것 같았다.
“지금 저녁 만드실 거죠?”
“응. 아, 그 전에. 아빠가 도현이한테 전화 걸겠다고 했는데….”
지이잉-
기다렸다는 듯이 주머니 속에 있는 핸드폰이 진동했다.
“아빤가 보다.”
서혜나의 말에 도현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발신인은 그녀의 말대로였다.
도현은 통화 버튼을 누르고 귓가에 가져다 댔다.
- 도현아, 아빠야.
“네. 잘 지내셨어요?”
- 아빤 잘 지냈지. 그보다 도현아, 소식 들었어. 다, 나았다고…. 그동안 정말 잘 버텨줬어. 고맙다, 도현아.
도현은 서혜나와 이장혁이 부부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둘 다 가장 먼저 하는 말이 ‘고맙다’라는 말이었다.
- 이제 몸은 완전히 괜찮은 거니? 어디 불편한 곳은 없고?
“네, 괜찮아요. 불편한 곳도 없고요.”
- 그래. 그래도 혹시나 어디 안 좋은 곳 있으면 꼭 말해야 해. 알았지?
이장혁은 완치 소식을 듣고도 걱정을 완전히 덜어내지 못했다. 그래도 목소리에 숨기지 못한 기쁨이 느껴졌다.
아들과 남편이 통화하는 걸 흐뭇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서혜나가 소매를 걷어붙였다.
도현이가 전화할 동안 맛있는 저녁 식사를 차릴 생각이었다.
아주 중요하고 특별한 날이니까 솜씨를 최대한 부릴 생각이었다.
서혜나가 저녁을 차리는 사이, 도현은 이장혁이 묻는 말에 얌전히 대답했다.
- 아하하, 그래?
이장혁은 별것 아닌 이야기들에 매우 즐거워했다. 간간이 목이 막힌 듯 말을 더듬을 때도 있었다.
- 그러면 엄마랑 천천히 얘기 나누고….
“네, 그럴게요.”
안부 인사까지 마친 도현이 전화를 끊었을 때였다.
어느새 식탁 위는 화려한 음식이 점령한 채였다.
도현은 통화 기록을 확인했다.
1시간 9분 03초.
상당히 오랫동안 통화를 한 것 같았다. 도현은 수저를 가져다 놓으며 저녁상을 완성했다.
두 사람은 가까이 붙어 앉아 조금 특별한 저녁을 먹었다.
통통한 새우를 쿡 찍어서, 토마토 파스타 면을 돌돌 말았다. 잇새로 새우 살이 톡, 터지는 식감과 매콤새콤한 토마토소스가 퍼져 나갔다.
시어링이 완벽하게 되어 살짝 붉은 속살을 드러낸 스테이크도 씹어 넘겼다.
엄마가 잔뜩 신경 써서 요리한 만큼 맛있을 게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별다른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