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월드스타 (77)화 (78/582)

제77화. 일곱 개의 꼬리별 (2)

다음 날.

잉꼬부부가 이른 아침부터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십이 첩 반상을 차리던 평화로운 아침.

세 사람은 바닥에 나뒹구는 뒤집개를 사이에 두고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십 분 전.

도현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서서히 잠에서 빠져나왔다.

규칙적인 생활 덕에 정신은 금방 맑게 개었지만, 낯선 방 풍경에 잠깐 적응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졸음을 몰아내며 몸을 일으키자, 상체를 덮고 있던 이불이 스르륵 떨어져 내렸다. 그 상태로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침대 밖으로 내려왔다.

하얀 발이 새벽빛에 푸른 기운이 감도는 바닥을 짚었다. 차가운 감각이 묘하게 불편했다.

도현의 시야에 실내용 슬리퍼가 들어왔다. 냉큼 슬리퍼를 신자 익숙함에서 오는 평온이 찾아왔다.

침대에서 내려온 도현은 팔을 위로 쭉 올렸다. 목도 돌려가며 스트레칭을 해주었다.

열다섯 시간 넘게 비행한 데다가 짐 정리까지 한 탓에 몸이 찌뿌둥했다. 병원에서 자주 하던 스트레칭을 쭉쭉 하며 지친 몸을 풀어준 후 방을 나왔다.

이른 시간인데도 주방에서 북적북적한 소리가 들렸다.

“어, 도현아. 잘 잤니?”

“피곤할 텐데 더 자지 않고.”

서혜나와 이장혁이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얼굴로 도현을 반겼다. 도현은 하루아침에 퀭해진 두 사람에 조금 당황했다.

‘많이 피곤하셨나?’

그리 생각하며 아침 인사에 답했다.

“전 잘 잤어요. 엄마 아빠도 잘 주무셨어요?”

“응. 엄마는 아주 푹 잤…?”

서혜나가 고장 난 기계처럼 정지했다.

멍한 표정을 짓던 그녀가 넋이 나간 목소리로 말했다.

“다, 다시 말해볼래, 도현아?”

“잘 주무셨어요?”

도현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툭!

이장혁의 손에 들린 뒤집개가 바닥에 떨어졌다. 도현이 당황해하며 한 발자국을 뗐다.

“아빠?”

“헉!”

이장혁이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지 않으면 비명이 새어 나올 것 같았다.

“나, 나는?”

서헤나의 말에 무슨 뜻인지 잠깐 고민하던 도현이 말했다.

“엄마?”

“!”

서혜나가 비틀거리다가, 테이블에 기대어 팔로 몸을 지탱했다.

“하, 하, 하, 하, 하!”

…웃으시는 건가?

아빠의 웃음소리가 조금 독특한 것 같다고 생각할 때였다.

“하, 한국어!”

이장혁이 간신히 한 단어를 완성했다.

그 외침을 듣고서야 도현은 이들이 이렇게 놀란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 많이 놀라셨어요?”

도현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목 뒤를 쓸었다. 놀랄 것이라고는 생각했으나, 예상보다 더 격한 반응이었다.

“어, 어, 어떻게 한국어를?”

도현이 산뜻하게 말했다.

“독학했어요.”

“도, 독학?”

이장혁이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되물은 말에, 도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넋이 나갈 정도로 놀란 이장혁과 달리, 서혜나는 조금 더 이성적이었다.

차분하게 손에 든 국자를 내려놓고 도현을 쳐다보았다.

“언제 공부한 거니?”

“여섯 살 때요. 그때 간병인이 한국어 문제집을 사다 줬어요.”

“여섯 살 때….”

술술 나온 대답에 서혜나가 아연히 중얼거렸다.

도현은 마치 마트료시카 같았다.

끝인가, 싶다가도 계속해서 툭, 툭 새로운 것이 튀어나왔다.

이번에도 그랬다.

여섯 살 때 독학한 한국어가 마치 이십 년은 넘게 한국에서 산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누가 들어도 현지인이라고 생각할 발음이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눈앞에 한국어로 유창히 말하는 아들을 보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믿기 어려웠다.

혹시 도현이 아팠던 게 너무 천재적인 두뇌 탓에 몸이 견디기 어려웠던 게 아닐까, 하는 추측에 이르기까지.

그때, 서혜나의 시야에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도현이 들어왔다.

가지에 가지를 뻗고 나아가던 상상이 뚝 끊겼다.

어째서 잊고 있었을까? 지금은 그런 사소한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서혜나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몹시 비난하며 낯을 굳혔다.

심각한 분위기에 도현도 차츰 뭔가 잘못됐나 걱정이 들기 시작하던 때였다.

서혜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 다시 엄마라고 불러보지 않으련?”

“…….”

뒤집개를 줍고 있던 이장혁이 고개를 팍- 치켜올리고선 눈을 빛냈다.

“아빠도, 아빠도 불러줘!”

주춤.

그 기세에 밀린 도현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무의식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던 도현은, 물러설 기미가 없는 모습에 결국 반쯤 체념한 채로 시선을 비스듬히 내렸다.

“…엄마, 아빠.”

평소보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서혜나와 이장혁의 눈에 감동이 물결쳤다.

물론 엄마 아빠 소리를 처음 듣는 건 아니었다.

도현은 말 앞머리에 꼬박꼬박 호칭을 붙여 말하는 편이었으니까.

그러나 한국어로 듣는 건 느낌이 달랐다.

그들은 마치 처음으로 말문이 트여 엄마, 아빠를 옹알거리는 아기를 보는 것과 비슷한 감격을 느끼고 있었다.

“하, 한 번만 더!”

“하하….”

도현은 완전히 해탈했다. 모든 걸 내려놓은 도현은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아빠.”

“그래, 우리 아들!”

“엄마는? 엄마도! 엄마도 불러줘!”

“엄마.”

서혜나가 가슴을 부여잡으며 비틀거렸다.

“우리 아들은 천사가 틀림없어!”

서혜나의 천사설을 시작으로 아침 식사를 하는 내내 부모님의 주접이 이어졌다.

“우리 아들 천재 언어학자가 되는 거 아니야?”

“번역가일 수도 있지!”

호들갑을 부리며 추켜세우는 통에 도현은 음식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도 모르고 먹었다.

아침을 먹고 난 후에도 이장혁과 서혜나는 도현에게 계속해서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도현이 능숙하게 대답할 때마다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기도 하고, 기특해하기도 했으며.

특히 엄마, 아빠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얼굴이 헤벌쭉해졌다.

“풋!”

도현은 못 이기겠다는 듯이, 결국 그들을 따라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 * *

“저기 나비도 있네.”

이장혁의 손끝이 향한 곳에는, 하얀 꽃 위에 내려앉은 나비가 날개를 팔락이고 있었다.

“도현이 나비 좋아해?”

“음….”

도현이 고민했다.

도현은 몇 가지를 제외하고 대체로 명확한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편이었다. 결국 도현은 미적지근하게, ‘싫진 않은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공원은 마음에 들어?”

이번에는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 식사 후.

거실 소파에서 빈둥거리던 세 사람이 정한 행선지는 집 앞의 공원이었다.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고려한 결과였는데, 아직 비행의 피로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드디어 도현이랑 피크닉을 왔네.’

서혜나가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산책하는 도현을 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서혜나가 피크닉을 원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피크닉을 원한 건 다름이 아니었다.

도현은 종종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길 즐겼다. 그리고 그럴 때면 꼭 코코아를 먹을 때처럼 표정이 풀렸다.

그 표정을 보고서 피크닉을 가지 않는 게 더 어려운 일이었다.

발보아 파크같이 유명하고 으리으리한 공원은 아니어서 조금 걱정했는데, 도현이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잠시 쉬고 있던 나비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도현의 시선이 나비의 날갯짓을 따라가다가, 쨍쨍한 햇빛에 눈가를 찡그렸다.

여기저기서 대화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미간을 좁히며 손바닥으로 햇빛을 가리던 도현도 눈매를 누그러트리곤 옅게 웃었다.

“공원 한 바퀴 돌까?”

서혜나가 꺼낸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나란히 꽃을 구경하며 걸었다.

꽃이 만발한 공원이라서 바람이 불 때마다 꽃향기가 실려 왔다.

“아, 저기 풍선 판다. 도현아, 풍선 사줄까?”

“…풍선을요?”

왜 그런 걸 사는지 이해할 수 없단 표정이었다.

그 표정에 이장혁은 웃음을 참다가 도현의 손을 잡고 그 앞으로 걸어갔다.

도현은 손을 감싸는 온기에 눈을 동그랗게 뜨곤 이장혁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마음에 드는 거 골라봐.”

도현은 풍선보다 붙잡힌 손이 신경 쓰여 자꾸만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그러자 이장혁이 마음에 드는 게 없냐며 재촉했다.

도현은 애써 신경을 떼어내 풍선 가판대를 보았다.

토끼, 사자, 기린, 몬스터…. 온갖 모양의 풍선들이 걸려 있었다.

여전히 풍선을 사는 일을 이해할 수 없었던 도현은 눈이 마주친 토끼 풍선을 골랐다.

“이거요.”

도현이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풍선을 팔던 아저씨가 사람 좋게 웃었다.

“우리 왕자님은 토끼로 드릴까요? 자아, 여기 있다.”

도현에게 토끼 풍선을 받던 순간이었다.

“엄마아! 나 쩌거! 나 토끼!”

“토끼? 알았어, 알았어. 여기 토끼 풍선 하나 주세요.”

“아… 이걸 어쩌지.”

아저씨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토끼 풍선이 더 없는데…. 우리 공주님, 고양이 풍선은 어때요? 고양이 풍선도 있는데!”

“시러! 나 토끼! 토끼 조아!”

엄마의 종아리도 넘지 않을 것 같은 작은 여자아이였다.

도현은 눈썰미 좋게, 아이의 머리카락을 묶은 머리끈에 조그만 토끼 인형이 달려 있음을 알아챘다.

도현이 아빠와 마주 잡은 손을 살짝 잡아당겼다.

“응? 왜?”

이장혁이 몸을 숙이자, 도현이 작은 목소리로 속닥였다. 이장혁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은혜야, 토끼 풍선은 엄마가 나중에 사줄게. 응?”

“시러어. 토끼! 토끼 풍선 사조오!”

볼을 퉁퉁 불리고 생떼를 쓰는 은혜 앞에 불쑥 하얀 손이 내밀어졌다. 은혜가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들었다.

“여기 토끼 풍선.”

“아, 안 이래도 괜찮은데… 어휴, 미안해서 어쩌지.”

미안해하는 여성에 도현이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

“저는 토끼 풍선이 아니어도 괜찮아서요.”

“어쩜, 애가 착하기도 하지. 은혜야, 오빠가 양보해준대. 오빠한테 고마워~ 하자.”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은혜는 묵묵부답이었다. 오히려 엄마의 다리 뒤로 숨기까지 했다.

가지고 싶은 거 아니었나?

괜한 오지랖을 부린 건가 싶어 도현이 민망해지려던 찰나였다.

쏘옥.

작은 손이 툭 튀어나와 도현의 손에서 풍선을 쏙 빼 갔다.

“어머, 얘가? 오빠한테 고맙다고 인사해야지!”

엄마가 달래봐도 요지부동이었다.

“낯을 가리는 애가 아닌데… 오늘따라 이상하네.”

곤란해하는 눈치에 서혜나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애가 낯선 사람이니까 무서워할 수도 있죠.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아니, 얘가 정말 이런 애가 아닌데….”

여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도현은 멀뚱히 서 있다가, 빼꼼 고개를 내민 은혜와 눈이 마주쳤다.

지이-

뚫어져라 쳐다보는 눈길에 도현이 당황하다가 조심스레 인사를 건넸다.

“어… 안녕?”

어색하게 손도 살짝 흔들어 보았지만, 은혜는 입을 꾹 다물고 도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뭐지? 뭐가 마음에 안 들었나?

도현이 혼란에 젖어가고 있는데, 여성이 도현을 보며 말했다.

“우리 은혜한테 양보해줘서 고마워. 은혜가 토끼를 키워서 그런가, 토끼만 보면 사족을 못 쓰거든. 혹시 다른 풍선 마음에 드는 거 있니? 아줌마가 사줄게.”

괜찮다고 말하려다가, 고마움이 찐하게 담긴 시선에 도현은 아까 풍선을 팔던 아저씨가 열심히 어필했던 고양이 풍선을 가리켰다.

스스로 아줌마라 칭한 윤경희는 기뻐하며 고양이 풍선을 도현의 손에 쥐여 주었다.

“감사합니다.”

“어유, 감사하긴 뭘. 내가 고맙지. 애가 참 야물딱지기도 하네. 애 몇 살이에요?”

“도현이는 아홉 살 됐어요.”

“아홉 살이요? 세상에. 아홉 살밖에 안 됐는데 엄청 의젓하고 얌전하네요.”

“그렇죠? 저도 종종 놀라요.”

그들은 자연스럽게 도현을 주제로 이야기를 했다.

그들의 입에서 쏟아지는 칭찬에 도현은 고양이 풍선을 쥔 채로 멀뚱히 서 있었다.

무어라 대화를 나누던 윤경희가 작게 웃었다.

“어머, 애기 엄마 겸손하시다. 엄마 아빠를 닮았는지, 좀이 아니라 엄청 예쁜데요? 아닌 게 아니라, 멀리서 봤을 때 무슨 연예인 가족인가 했다니까요?”

“은혜도 완전 공주님처럼 예쁜데요. 엄마랑 코를 쏙 빼닮았네.”

대화를 이어가는 흐름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혹시 친분이 있던 사이였나 도현은 조금 헷갈렸다.

“도현이 엄마, 도현이 정말 연예인 시켜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제가 유치원에서도, 아니 유치원이 뭐야, 텔레비전에서도 이렇게 예쁜 애를 본 적이 없거든요.”

서혜나는 그녀의 칭찬이 듣기 좋은 눈치였다. 아닌 척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가고 있었다.

그사이, 도현은 은혜와 미묘한 신경전을 펼치는 중이었다.

도현이 아닌 척 다른 곳을 보면, 은혜가 도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고개를 슬쩍 돌리려 하면 화들짝 놀라 숨어버리는 것이다.

몇 차례 서로의 얼굴에 금칠하며 대화를 나누던 세 사람은, 덕담을 마지막으로 대화를 마쳤다.

“은혜야, 이제 밥 먹으러 가자.”

한참 대화를 나누다가, 점심시간이 되었음을 깨달은 윤경희가 그리 말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잡아당기는데 은혜가 몸에 힘을 주었다.

“은혜야? 밥 먹기 싫어?”

도리도리.

은혜가 자리에 버티고 서서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은혜야, 밥 먹으러 가야지. 응? 은혜 배 안 고파? 엄마는 배고파서 배가 꼬르륵, 하는데.”

엄마의 능숙한 어르고 달래기 스킬에 망부석같이 서 있던 은혜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럼 점심 맛있게 드세요.”

서로 인사를 나누고 뒤돌아 헤어지던 순간이었다.

“어, 어! 은혜야! 어디 가!”

엄마를 잘 따라가던 은혜가 돌연 손을 뿌리치고서 뒤돌아 달려갔다. 윤경희는 곤란함을 느끼며 은혜를 뒤쫓아 갔다.

짧은 다리를 바지런히 옮겨 도도도 뛰어간 은혜가 도현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난데없이 옷이 당겨지는 기분에 도현이 몸을 틀었다.

거기엔 한 손에는 토끼 풍선을 쥐고 한 손으로는 도현의 옷자락을 잡은 은혜가 있었다.

도현이 고개를 갸웃하는데.

“…토끼.”

“토끼?”

“고마어.”

도현이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아까부터 계속 노려보던 게 이것 때문이었나?’

그리 생각하자 바람이 빠지듯, 작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걸로 홀로 고민하고 이내 용기 내었을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몽실거렸다.

도현이 은혜와 눈을 마주치고 눈매를 둥글게 접었다. 햇빛이 얼굴 옆면에 비쳐서 새까맣던 눈동자에 조금 갈색빛이 감돌았다.

“토끼 소중히 대해줘.”

은혜의 눈이 조금 커졌다가 꾸덕꾸덕, 고개를 움직였다.

“…웅!”

어른들은 그 모습을 흐뭇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은혜야, 인사도 했으니 이제 가자. 아빠 기다리신대.”

“아랏서.”

은혜도 이번에는 별다른 반항 없이 엄마를 따라갔다.

그러나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뒤를 흘끔 돌아보았다.

마침, 뒤를 돌아보았던 도현과 시선이 딱 마주쳤다.

도현이 살랑살랑 손을 흔들자, 은혜도 활짝 웃었다.

“은혜 뭐 먹고 싶어?”

엄마의 목소리가 귀에 담기지 못하고 스쳐 지나갔다.

서은혜. 다섯 살.

토끼 탄 왕자님을 만난 날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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