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화. 일곱 개의 꼬리별 (3)
“우리도 점심 먹어야지.”
“이왕 공원에 온 김에 시켜서 먹을까? 도현아, 어때?”
“전 좋아요.”
이장혁의 물음에 도현이 동의했다. 그들은 차로 돌아가 돗자리와 그늘막을 가져온 후, 잔디밭 위에 설치했다.
세 사람은 그늘막 안에 들어가 편히 앉았다. 바람이 산들산들 불자, 꽃이 흔들리며 미미한 단 향이 코끝을 스쳤다.
풍선은 들고 다니기 번거롭지 않게 손목에 묶어 놓은 채였다.
“이 공원 어때? 마음에 들어?”
“네. 평화롭고 꽃도 많고…. 마음에 들어요.”
“그렇지? 엄마 아빠도 여기서 자주 산책했거든. 길도 넓고 한 바퀴 돌면 거리도 꽤 되어서 산책하기 좋더라고. 집에서 멀지도 않아서 자주 올 수 있어. 앞으로 오고 싶을 때마다 말해.”
여기서 자주 산책하셨구나.
도현은 여름 방학 동안 이 공원에 자주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더 늦기 전에 주문해야지.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도현은 곧바로 대답했다.
“치킨이요.”
도현의 대답에 이장혁은 의외란 기색이었다.
“도현이가 치킨을 먹어본 적이 있었나?”
“미국에서 한 번 먹어봤어. 한국 치킨이랑은 좀 달랐는데… 시큼한 맛이더라고. 식초를 많이 넣는 것 같던데?”
서혜나의 대답에 이장혁이 난감해했다.
“이 주변에 미국식 치킨을 파는 곳은 없을 텐데….”
이장혁은 도현이 미국에서 먹었던 치킨을 먹고 싶다는 뜻으로 이해한 것 같았다.
“미국식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도현이 말하자, 서혜나가 의욕을 보였다.
“도현이한테 한국 치킨의 맛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잘됐네! 그럼 오늘 점심은 치킨인 걸로!”
이장혁은 잠깐 고민했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별로 몸에 안 좋은 음식만 먹는 것 같은데….
그래도 평소에는 건강하게 먹으니 이쯤은 괜찮을 거다.
이장혁이 결정을 내리고, 그들은 점심 메뉴를 치킨으로 결정했다.
문제는 치킨을 주문할 때 생겼다.
먼저 도현에게 무슨 맛을 먹고 싶은지 물어본 서혜나는, 도현이 상관없다고 하자 가벼운 투로 말했다.
“프라이드랑 양념으로 시킬 거지?”
“간장이 당기는데.”
“무슨 소리야. 도현이는 처음 먹어보잖아. 그러면 프라이드에 양념이 정석이지.”
“간장도 엄연한 메이저야. 양념은 그냥 소스 추가하면 되지 않아?”
“그건 그냥 양념 소스가 묻은 프라이드치킨일 뿐이야!”
평소에 죽이 잘 맞던 부부는 이 부분에서만큼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 작은 스파크가 튀었다.
프라이드와 간장을 번갈아 외쳐대는 두 사람에 도현은 어색한 표정으로 웃다가, 갑작스럽게 모인 시선에 어깨를 움찔했다.
“도현아. 너는 무슨 맛이 더 끌리니?”
“그래, 도현아. 편하게 말해봐.”
편하지 않았다.
도현이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냥 다 시키면 되지 않을까요?”
우문현답이었다.
* * *
그들은 따뜻한 김이 뿜어져 나오는 치킨을 펼쳤다.
서혜나가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진즉에 이렇게 다 시킬걸. 왜 매번 입씨름했을까.”
이장혁도 서혜나의 말에 동의했다.
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게 아니다 보니, 이상한 곳에서 아껴 쓰려는 경향이 있었다.
“앞으로 각자 먹고 싶은 맛을 시키는 걸로 하자.”
어쩌다 보니 1인1닭 가풍이 생긴 순간이었다.
도현은 볼을 긁적였다.
형은 음식을 시킬 때 굳이 고민하지 않고 먹고 싶은 건 다 시켰다.
그래서 형 기준으로 생각했는데, 혹시 부모님의 과소비를 종용한 건 아닌지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도현의 걱정은 모락모락 풍기는 고소한 냄새에 구석으로 밀려났다.
도현의 앞에 프라이드 닭 다리가 내밀어졌다. 뭐든 오리지널을 먼저 맛보아야 한다는 부부의 지론이었다.
냠.
두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조금은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한 입 문 도현의 눈이 동그래졌다.
‘맛있다!’
미국에서 먹었던 것과 달리 시큼하지도, 느끼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강했다.
프라이드와 간장을 열심히 외쳐대던 서혜나와 이장혁은 손도 대지 않은 채로 도현이 치킨을 먹는 모습을 구경했다.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게 이런 건가 싶었다.
프라이드를 먹고 나자, 양념과 간장 닭 다리가 눈앞에 내밀어졌다. 도현은 하나하나 차례대로 맛을 보았다.
원체 많이 먹지 않는 터라 닭 다리 세 개를 먹자 슬슬 배가 불렀다.
도현이 입맛을 다시는데, 서혜나가 불쑥 물었다.
“그래서 도현이는 뭐가 제일 맛있었어?”
서혜나의 질문에 도현의 낯이 진지해졌다.
양념은 조금 맵긴 했지만, 매운맛과 단맛의 궁합이 환상적이었고, 프라이드는 짭짤 고소한 게 자꾸만 당겼으며, 간장은 달면서 짠맛이 묘하게 조화로웠다.
도현이 끙끙거리며 결정 못 하고 있자, 이장혁이 도현의 어깨를 도닥였다.
“괜찮아. 어차피 앞으로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시켜 먹으면 되니까.”
도현은 좋아하는 맛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다 사주면 되니까!
현명한 말에 서혜나가 크게 감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 * *
까만 밤하늘에 별 몇 개가 희미하게 반짝였다.
도현은 푹신한 의자에 앉아, 이젠 눈 감고도 형체를 그릴 수 있는 바이올린 가방을 습관처럼 껴안았다.
계획과 다르게 꽤 열심히 돌아다녀서, 온몸이 노곤했다.
도현은 나른함과 피곤함의 경계선에서 밤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하루를 돌이켜 보았다.
닭 세 마리는 세 사람이 배가 터지도록 먹고도 남는 양이었다. 과식한 세 사람은 배가 꺼질 때까지 공원을 빙빙 돌았다.
열심히 걷기 운동을 하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후, 다시 그늘막으로 돌아와 몸을 뉘었다. 잠깐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금방 저녁이었다.
그들은 이장혁이 예약해둔 한정식집으로 향했다.
정갈하게 나오는 음식은 치킨의 자극적인 맛과 다른 매력이 있어서 도현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다.
그대로 집으로 돌아갈까 했는데, 이장혁이 묘하게 서운해했다. 도현과 첫 나들이나 다름없는데 금방 들어가자니 아쉬웠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주변에 있는 카페에 들러 허니 브레드를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대화 주제는 주로 어딜 놀러 갈까, 하는 내용이었지만 간간이 도현의 한국어에 대한 말도 나왔다. 부모님은 여전히 한국어로 말하는 도현이 낯선 것 같았다.
도현이 팔걸이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었다. 손바닥에 입술을 묻고 잠시 가만히 있다가, 미약하게 달싹였다.
엄마, 아빠.
아주 작은 소리가 방 안에 맴돌다 조용히 사라졌다.
- 그런데 왜 그동안 영어만 쓴 거니?
의아함이 담긴 그 물음에, 도현은 그냥 영어가 익숙해서 그랬다고 답했다.
도현이 눈을 내리깔았다.
바이올린과 다르게, 한국어를 독학했다는 말은 진실이다.
기술과 육체가 부조화를 일으키는 바이올린과 달리 한국어가 놀라우리만치 능숙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익숙해서 영어만 썼다는 말은 거짓이다.
태연하게 거짓을 입에 담는 게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진실을 밝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검은 눈동자가 밤하늘을 담았다.
그들은 알 수 없고 알 필요 없는 기억의 한 페이지를 펼쳤다.
잔상처럼 남은 꽃향기 대신, 병원 특유의 서늘하고 우울한 공기가 코끝에서 감돌았다.
그러나 얇은 유리창 너머 하늘만큼은 오늘 아침처럼 맑은 날이었다.
아이의 시선이 푸른 하늘에 닿았다가, 부산스레 짐을 챙기고 있는 젊은 부부에게 옮겨 갔다.
아이의 시선을 눈치챈 여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엄마랑 아빠는 이제 갈게. 잘 치료받고 있을 수 있지?
- 네.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에, 수긍의 말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는 목 뒤로 본심을 삼켰다.
조금만 더 대화해요, 조금만 더 시선을 주세요, 조금만 더 함께 있어주세요, 조금만….
속마음은 닿을 수 없기에 속에 담아둔 마음일 뿐이다.
그중에서 아이가 밖으로 꺼낼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어서 침묵했다. 때문에, 부모님은 아이가 말수가 적다고 여겼다.
그때, 부모님이 작은 목소리로 무어라 떠들었다.
낯설고도 익숙한 언어였다.
아이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을 했다.
‘한국어로 말하면 놀랄까?’
단순한 의문은 곧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어졌다.
- 잘 지내고, 나오지 말고 안에서 쉬어.
탁.
병실 문이 닫혔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창가로 걸어갔다. 거기서 한참을 서 있자, 건물 밖으로 나오는 부부가 보였다.
유리창에 손바닥을 댄 채로 부부가 멀어지는 것을 눈에 담았다.
얇고 투명한 유리창일 뿐인데 그들 사이의 거리는 이렇게나 멀었다.
아이는 그들의 사이를 가로막는 벽을, 보이지 않는 선을, 단절된 공간을 넘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막연한 한 줄기 물음에서 시작한 희망을 잡아챘다.
간병인에게 한국어 문제집을 부탁했다. 언제나 물질적으로는 부족한 적 없었기 때문에, 원하는 것은 금방 손에 쥐어졌다.
모르는 언어를 홀로 익힌다는 건 각오했던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한국어가 늘수록 크기를 키워가는 희망에 문제집을 놓을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창밖에 비친 사람들의 옷차림이 점차 두꺼워졌다.
바람이 차가워져서 창문을 열 때보다 닫을 때가 더욱 많아졌을 때쯤.
기다림이 끝났다.
차게 식은 손끝을 말아 쥐었다. 긴장 때문에 손바닥이 자꾸만 축축하게 젖었다.
언제 말해야 좋을까?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워 작게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빨리 놀라게 해주고 싶은데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설렘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감정에 심장이 떨렸다.
시간은 잡을 새도 없이 흘러가, 그날 봄과 똑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부산스럽게 짐을 챙기는 부모님, 푸른 하늘, 서늘한 병실의 공기.
아이는 초조해졌고, 초조함이 용기의 등을 떠밀었다.
뻣뻣하게 다가가서 손을 뻗었고.
옷자락을 채 쥐기도 전에, 그들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쪽을 보고 있지 않았으니 어쩌면 우연이었을지도 몰랐다. 혹은 알고서 한 건지도 몰랐다.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었으나, 알 용기 또한 없었다. 떠밀린 용기는 고작 그뿐일 뿐이었다.
아이는 천 자락이 스치고 지나간 손을 보다가, 팔을 내렸다.
- …응? 무슨 일이니?
가면을 쓴 것 같은 미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들은 조금 의아해하다가, 다시 짐을 쌌다.
학습된 패배감이나 무기력이었을까.
겨울만 기다렸던 것이 무색하게도, 아이는 무척이나 쉽게 포기했다.
열심히 입 안으로 굴렸던 ‘엄마, 아빠’가 덧없이 흩어지는 걸 관조했다.
필요 없어진 책을 모두 치웠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감정을 모두 담아 페이지 사이에 구깃구깃하게 집어넣고, 덮었다.
그렇게 기다림이 없는 계절이 찾아왔다. 변한 건 없었다. 그저 더는 한국어를 공부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겁이 참 많았다.
뭐가 그리 무서워서, 내보이기조차 포기했다.
‘그때 조금 더 용기 냈으면 어땠을까.’
도현이 눈을 감았다 떴다.
의미 없는 가정이었다.
부모님과 도현은 많은 부분이 닮아 있었다.
다가가기 두려워 결국 잡지 않은 건 매한가지였다.
조금 늦었지만, 조심스레 덮었던 페이지를 펼쳤다. 사이에 끼어 눅눅해진 감정의 먼지도 후후, 털어내었다.
그때 흩어졌던 단어들이 모여 입 안에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나가고 싶다고, 내보내 달라고 시위하는 것 같았다.
도현은 결국 입술과 혀로 형체를 그려냈다. 몇 번이고 발음했다. 낯설던 입 모양이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
더는 소리 내어 말하는 게 두렵지 않았다.
그래서 도현은 웃었다.
도현은 과거의 한 조각을 이제 그만 놓아주기로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