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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부터 월드스타 (85)화 (86/582)

제85화. 일곱 개의 꼬리별 (10)

- 부유한 중산층 집에서 자란 어른스럽고 의젓한 아이라더라. 정말 우리 도현이랑 딱 맞지.

이 말은 들은 도현은 속으로 부정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같다.

자신은 차분하고 생각이 많은 편일 뿐이지, ‘어른스러움’과는 거리가 있었다.

바로 이 부분에서 도현은 답을 얻었다.

타인의 시선에서 ‘어른스럽다’라고 평가되는 것.

만약 송하도 그런 캐릭터라면?

그저 말수가 적고, 성격이 차분할 뿐인데 그러한 모습을 어른들이 오해한 거라면? 혹은 그렇게 보이기 위해 송하가 의도했던 거라면?

대본을 만든 작가가 여기까지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도현은 자신만의 정답을 찾아 나갔다.

점점 캐릭터의 가닥이 잡혔다.

도현은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갔다.

‘송하는 왜 집을 나왔을까.’

어떤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 송하의 성격은 완전히 다른 방향이 될 것이다.

도현은 곧바로 답을 찾기보다는 우회해서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곁가지들을 하나둘 발견하다 보면 어느 순간 거대한 나무가 그려져 있을 테니까.

도현은 대본을 다시 읽었고,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송하는 부모님을 많이 사랑해.’

근거는 대본에 이미 나와 있었다.

길을 잃었냐는 질문엔 작게 대답하면서, 부모님이 학대하냐는 뉘앙스의 질문에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도현은 가출한 것과 별개로, 부모님이 오해받길 원치 않는 마음은 애정에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했다.

대본에는 수많은 단서가 있었지만, 동시에 한 인물을 구축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단서가 있었다.

남은 여백은 도현이 채워가야 하는 것.

도현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송하의 과거를 그려가기 시작했다.

‘만약 처음부터 부모님의 사이가 안 좋았다면, 이혼 이야기에 가출을 감행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는 건 어색하게 느껴져.’

도현은 확신했다.

‘예전에는 분명 화목한 가정이었을 거야.’

도현이 즐겁다는 듯이 눈을 빛냈다. 하나의 캐릭터를 이해하고 나아가 생동감을 부여하는 건, 연기 못지않은 즐거움을 주는 일이었다.

도현이 상상의 나래를 펼쳐갔다.

* * *

도현의 일상은 연기 연습이 추가된 것 외엔 겉보기에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영화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친구들과 전화도 했다.

다만 영화를 볼 땐 비슷한 감정을 찾았고 그림을 그릴 때는 송하와 관련된 그림을 그렸다.

친구들과 통화할 때만이 작은 휴식 시간이었다. 이조차도 맥과 통화할 땐 연기에 관한 얘기들만 잔뜩 했다.

기실, 거의 모든 활동이 오디션을 위한 준비였다.

이에 보다 못한 서혜나와 이장혁이 도현을 끌고 공원으로 나왔다.

꽃향기도 맡고 바깥바람을 쐬라는 의도였으나….

이장혁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도현이 공원에 와서도 대본을 펼치곤 눈을 떼지 않고 있던 탓이었다.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딱 그 모양이었다.

이장혁은 도현을 말리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방향으로 접근했다.

“오디션 준비는 어때? 잘되어 가고 있어?”

이장혁의 질문에 도현이 고개를 들었다.

대본에서 시선을 돌리는 것에 성공한 이장혁이 서혜나를 향해 주먹을 쥐었다. 서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본격적인 연습은 시작하지 않았고… 캐릭터 분석 중에 있어요.”

“그래? 분석은 잘되어 가고 있어?”

“괜찮은 것 같아요.”

도현은 자신의 일을 대체로 축소해서 말하는 편이었으니, 저 소리는 ‘아주 잘되어 가고 있다’ 정도로 이해하면 되었다.

“그래? 아빠한테도 알려줄 수 있을까? 말하면서 머릿속이 정리되기도 하잖아.”

도현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무래도, 자신의 해석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던 차였다.

도현이 조금 신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송하의 행동에서는 세 가지 특징적인 부분을 발견할 수 있어요. 과시성, 의외성, 그리고 의사 표현이요.”

“어?”

“결국, 세 가지 모두 통하는 면이 있지만… 세분화하자면 그래요. 일단, 저는 가출이라는 행위에서 상당히 과시적인 느낌을 받았어요. 자신이 느낀 감정이나 충격을 표출할 방법 중에서, 유달리 적극적이고 과시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어어….”

“또, 송하의 가출은 굉장히 의외성을 띠고 있어요. 그건 송하가 평소에 어른스럽고 의젓하다고 평가받는 아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고 봐요. 평소에 그렇게 의젓하던 아이가 가출한 건 부모님께 남다른 충격으로 다가올 테니까요.”

“오오….”

넋 나간 표정을 짓던 이장혁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리고 이런 과시성과 의외성은 결국, 송하의 의사를 표현하는 장치예요. 자신이 충격받았다는 걸 이렇게 과시적이고, 의외인 방식으로 보여줌으로써 부모님의 이혼에 항의하는 거죠. 최종적으로, 부모님이 이혼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이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가출이라는 형태로 표현된 거예요.”

“그, 그걸 모두 계산해서… 가출을 했을까?”

조심스러운 이장혁의 질문에 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겠죠. 이건 송하의 무의식에 잠재된 충동을 유추해본 거에 불과하니까요. 송하가 표면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슬픔, 원망… 음, 그리고 상처받은 만큼 되돌려 주고 싶은 어느 정도의 치기 어린 이기심이 전부일 거라고 생각해요.”

아들이 너무 똑똑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어요.”

서혜나와 이장혁은 의문이 든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왜, 어른스럽고 의젓한 송하가 가출이라는 방식을 사용했을까요? 너무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어른스럽고 의젓한이라는 전제를 조금 비틀어 봤어요. 혹시, 그렇게 보이는 것뿐은 아닌지 말이요.”

이 부분에서 도현은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그러나 결국, 단서를 찾은 건 대본이었다.

도현이 대본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어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이송하 : (불안한 눈빛으로 올려 본다.)

이송하 : (다급히) 안 돼요! 엄마 아빠한테 연락하지 말아주세요. 경찰 아저씨, 제발요!

“이 부분이 왜?”

서혜나가 의아해하자, 도현이 차분히 제 생각을 말했다.

“저는 이게 송하의 성격이 드러난 부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충동적으로 가출을 하긴 했지만, 자신이 벌인 행위에 겁을 먹고 불안해하고 있잖아요. 부모님께 연락하려는 강을 막은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고요. 그러니까, 송하는 겁이 많고 생각이 많은 아이예요.”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송하의 어른스러운 성격도 이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부턴 제 상상이지만…. 겁이 많은 송하는 부모님의 불화를 보며 불안함을 느꼈을 거예요. 혹시 자신이 잘못하면 부모님의 사이가 더 나빠지지는 않을까, 혹시 부모님이 자신을 귀찮아하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자신이 떠올린 가정에 두려움을 느꼈던 거죠. 그런 불안과 두려움이 송하를 얌전한 아이로 만들었고, 그런 얌전함이 타인의 눈에는 어른스럽게 비친 거죠.”

도현이 명료하게 결론을 내렸다.

“송하는 아주 겁이 많고, 부모님을 사랑하는 평범한 어린아이예요.”

이장혁이 놀라움에 입을 벌렸다. 캐릭터 분석이 덜 끝났다면 도와주면서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이미 도현은 알아서 척척 해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잘.

‘내가 분석해도 저렇게 못 할 것 같은데.’

이장혁이 혀를 내둘렀다.

“혹시, 다른 의견이나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까요?”

조용한 부모님에 도현이 고개를 기울였다.

“아니, 내가 보기엔 완벽해.”

“엄마도.”

두 사람의 말에, 색다른 의견이 나오지 않아 아쉬워하길 잠깐.

‘그럼 해석은 이 정도면 되려나?’

도현이 다음으로 할 일을 머릿속으로 추리며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말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도현 놀아주기(?) 1차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 것 같았다.

결국, 맛있는 점심을 시켜 먹고 집에 돌아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 * *

피크닉을 다녀온 다음 날.

도현이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송하를 해석할 때만 해도, 해석만 끝나면 일이 술술 풀릴 줄 알았다.

그러나 또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송하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지 않고, 직접 송하의 심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하니 막막했던 것이다.

부모님께 여쭤보려고 해도, 아직 퇴근 시간이 아니라 한참 기다려야 했다.

이 문제는 운 좋게도, 혹시나 해서 보낸 문자에 맥이 전화를 걺으로써 해결되었다.

서혜나와 이장혁이 알았으면 아까워서 땅을 쳤을 일이었지만… 도현은 그저 잘되었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도현의 고민을 경청한 맥이 말했다.

- 캐릭터 해석은 잘했으면서 그게 왜 어려워?

“저는 송하의 감정을 모르잖아요.”

-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그냥… 아, 이건 가정이다. 완전히, 일어날 리 없는 가정이야! 오해하지 마!

“괜찮으니까 말해봐요.”

- 그냥, 네 부모님이 이혼한다고 가정하고, 그때 네가 어떤 심정이 될지 생각해보면 되지 않아?

“…아.”

도현이 오묘한 감탄사를 흘렸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한다면….

“음….”

- 뭐야 그 김빠진 콜라 같은 반응은?

“조언은 고맙지만, 그 가정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요.”

- 네가 부모님이 따로 살아서 그런가? 다른 나라에 계신다며. 그럼 그럴 수도 있겠네.

“음, 그렇죠.”

설명하기도 굉장히 복잡 미묘한 문제라 그렇게 넘어갔다.

- 으음…. 그럼 부모님 말고. 네가 굉장히 좋아하면서, 서로 친밀한 두 사람 없어?

바로 떠오른 인물이 있었다.

“…있는 것 같아요.”

- 그래! 그 두 사람이 싸워서 영영 서로를 안 보려고 하는 거야. 그럼 어떨 것 같아?

진과 니콜라스를 떠올린 도현을 모르는 맥이 신나서 말했다.

송하가 부모님에게 느끼는 감정을 진과 니콜라스에게 빗대자니 굉장히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도현의 머리는 이미 그 상황을 떠올리고 있었다.

지난 시간 동안, 그들이 화기애애한 시간만을 보낸 건 아니었다.

진도 그렇고 니콜라스도 그렇고 굉장히 자기 주관이 뚜렷해서, 종종 부딪칠 때가 있었다.

‘싸웠다’라고 표현할 만한 일은….

니콜라스의 집에 놀러 갔을 때였다.

니콜라스가 잠시 방을 나간 사이, 진이 과자 하나를 꺼내 먹었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온 니콜라스는.

- 야! 그걸 왜 먹어!

기겁하다가, 나중에는 화를 냈다.

- 내가 나중에 먹으려고 아껴둔 거란 말이야!

얼마나 억울했던지 눈이 발개진 채였다.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니콜라스에 처음에는 미안해하며 사과하던 진도 표정이 굳어갔다.

- 내가 새로 사다 주면 되잖아!

- 잘 안 파는 과자거든? 힘들게 구한 거라고!

두 사람은 결국 언성을 높여 다퉜다. 도현은 둘 사이에 서서 이러지도 못 하고 저러지도 못 하고 우왕좌왕했다.

종종 가볍게 다투는 것은 봤어도, 이처럼 큰소리를 내며 감정이 격해진 건 처음 봐서 당혹스러움이 컸다.

사태는 소리를 듣고 달려온 나르샤가 제 몫으로 놔두었던 과자를 니콜라스에게 줌으로써 해결되었다.

과자를 입에 문 니콜라스는 뒤늦게 이성이 돌아왔는지 상당히 뻘쭘한 기색으로 과자를 우물거렸다.

진은 기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팔짱을 끼고 옆을 보고 있었다.

- 야….

조심스러운 부름에도 진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러자 니콜라스가 소심한 몸짓으로 진에게 과자를 밀었다.

- 야, 이거 맛있는데… 같이 먹자.

니콜라스 나름의 화해 요청이었다.

- 진짜 맛있는데….

니콜라스가 소심하게 중얼거리자, 진이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 나도 먹어봐서 알거든?

- 아, 맞다.

니콜라스가 머쓱한 표정으로 뒷목을 문질렀다. 그 모습을 한심한 눈초리로 보던 진이 한숨을 폭 쉬더니 손바닥을 내밀었다.

- 맛있긴 하더라.

- 그치?

결국, 세 사람이 사이좋게 과자를 나눠 먹는 것으로 끝이 났다. 얇은 쿠키 사이에 초콜릿이 층층이 쌓인 과자는 정말 맛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훈훈한 결말에 은은하게 미소를 짓던 도현이 아차, 했다.

‘이게 아니었지.’

도현이 고개를 털며 바짝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니까, 만약 둘이 계속 화해하지 않았다면… 영영 서로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면.

…그럼 어쩌지?

도현이 얼굴을 찡그렸다.

“아주, 아주 슬플 것 같아요. 두 사람을 좋아했던 만큼, 더욱요.”

- 그렇지?

도현이 생각하는 것을 잠자코 기다려 주었던 맥이 답했다.

- 그 기분을 떠올려. 그러면 송하의 마음도 공감이 되지 않아?

“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정말 고마워요, 맥.”

처음, 연기 연습을 도와달라던 도현의 말에 기겁하며 뿌리쳤던 맥이었다.

그러나 끊임없는 도현의 공세에 결국 백기를 들더니, 나름대로 조언해주기 위해 애썼다.

- 뭐, 네가 영화 찍을 때 도와준 거 갚았다고 생각해.

맥이 심드렁히 답했다.

도현은 잘게 웃다가, 알았다고 답했다. 두 사람은 좀 더 대화를 나누다가 전화를 끊었다.

도현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아까 느꼈던 감정을 다시 떠올렸다.

감을 잡았으니, 남은 건 연습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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