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월드스타 (102)화 (103/582)

제102화. 한 여름, 폭풍 (11)

도현과 서혜나, 이장혁은 생방송으로 <불량경찰> 제작 발표회를 보는 중이었다.

“우리 아들이 저런 배우들이랑 같이 촬영한 거구나….”

서혜나가 감탄의 의미를 담아 중얼거렸다.

배우들 면면들이 모두 익숙했다.

“촬영장에서 본 사람은 강이든이랑 고승호밖에 없어요.”

고승호 배우는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장면에서 짧게 함께 촬영을 했다.

“아, 맞아. 그랬다고 했지.”

서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말하는 게 참 능수능란하네.”

때마침 한 기자의 질문에 매끄럽게 답한 송승아를 보며 이장혁이 말했다.

“그러게요.”

도현도 동의했다.

저게 프로의 모습인가, 싶을 정도로 다들 대답하는 모습이 능숙해 보였다.

- 플래닛의 박상철 기자입니다. 강이든 배우님께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또다시 강이든에게 질문이었다.

“질문이 강이든한테 몰리네.”

“아무래도 가장 인지도가 있으니까.”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도현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화면 속의 강이든을 보았다.

이렇게 보니 그가 얼마나 유명한 인물인지 조금 실감이 되었다.

- 촬영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나, 즐거웠던 일이 있습니까?

무난한 질문이었다.

세 사람은 모두, 형식적이고 예의 있는 답변을 예상했다.

강이든이 마이크를 들었다.

- 다들 좋은 분들이고 촬영 분위기도 좋아서 촬영 내내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역시 형식적인 답이 돌아왔다.

- 다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강이든이 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도현은 무언가 불안한 느낌을 감지했다.

- 촬영장에서 만난 어린 배우가 기억에 남네요.

- 어린 배우요? 어떤 의미로 하신 말씀이십니까?

의외의 답변에 발표회장이 조금 시끄러워졌다.

- 말 그대로, 어린 배우 한 명이 있었는데 저도 놀랄 정도로 연기를 잘하더라고요. 그만큼 재능 있는 친구를 보는 게 오랜만이라, 같이 연기하는 게 재밌었습니다.

“저거… 혹시….”

서혜나와 이장혁의 시선이, 그들 사이에 있는 도현에게로 향했다.

- 누구인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 이틀 뒤 첫 방영 날에 보시면,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도현이 넋 나간 얼굴로 강이든을 볼 때였다.

“음… 도현아.”

“네?”

“이것 좀 볼래?”

이장혁이 인터넷 화면을 보여주었다.

[‘불량경찰’ 강이든 “촬영장에서 만난 어린 배우가 기억에 남아.”]

[‘불량경찰’ 강이든이 말한 재능 있는 배우는 누구?]

도현이 위의 기사를 하나 클릭해 보았다.

[강이든은 13일 오후 6시 NMC 사옥에서 열린 NMC 새 주말 드라마 ‘불량경찰’ 제작 발표회에서 “촬영장에서 만난 어린 배우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 어린 배우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강이든은 이번 ‘불량경찰’을 통해 영화 ‘은하도’ 이후 캐릭터 변신을 선보일 예정이다. ‘은하도’에서 거침없고 정의로운 캐릭터를 연기한 반면, ‘불량경찰’에서는 철없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한편, ‘불량경찰’은 오는 15일에 첫 방영 예정이다.]

다른 기사들도 내용이 비슷비슷했다.

물론, 이와 관련된 기사는 제작 발표회 기사 중에서 극소수밖에 되지 않았다.

쏟아지는 기사들 사이에서 눈 크게 뜨고 보면 조금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이렇게 기사로 올라온다는 것 자체가 도현에게는 굉장한 놀라움이었다.

“이거 아무리 봐도 우리 도현이지?”

“그럼, 도현이겠지.”

부모님은 이미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이장혁이 웃으며 말했다.

“이러다가 도현이 베니스 영화제에 노미네이트 됐다는 것도 알면 난리 나는 거 아니야?”

“설마요.”

리암과 도현은 무명 중의 무명이었다. 그런 감독과 배우에게 관심을 가질 사람들은 없을 터였다.

만약 거기서 상이라도 받으면 모르겠지만….

도현이 고개를 휙휙 저었다.

괜히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마음이 복잡해지기 마련이었다. 도현은 머릿속을 깨끗이 비우기로 했다.

* * *

“후우….”

도현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후웁. 도현아, 쉬고 싶으면 말해.”

“아직은 괜찮아요.”

도현이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다리는 꾸준히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 도현은 달리기하는 중이었다.

제주도에서 돌아온 이후.

도현과 서혜나, 이장혁은 다음 날 아침부터 여행 중에 한 말을 지켰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벼운 과일로 배를 채운 후 곧장 공원으로 나온 것이다.

도현이 아직은 어두운 하늘을 올려 보았다.

이 공원에 올 때마다 매번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가끔 가다 도현처럼 조깅하는 이들 빼고는 한산했다.

늘 활기와 생기로 넘치던 공원의 고요한 아침은 묘한 보람과 만족감이 들게끔 만들었다.

도현이 다시 다리를 뻗었다.

땅을 딛는 발이 자유로웠다.

도현은 달리기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었다. 땅을 박찰 때마다 온몸에 힘이 돌며,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해방감이 느껴졌다.

뛸 때는 숨이 막혀 헐떡거리지만, 힘든 시간이 지나고 나면 찾아오는 성취감도 좋았다.

탁. 타닥.

얼마나 더 뛰었을까.

아침 해가 점점 떠오르며, 잿빛이 희미하게 섞여 있던 하늘이 완연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앞서 뛰어가던 서혜나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말했다. 그에 멈춰 선 도현이 허리를 숙이고 숨을 골랐다.

그리고 서혜나는 그런 도현을 묘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솔직히 조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얼마 달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 긴 세월 동안 병원에만 있었던 도현이니 체력이 많이 약해져 있을 거라 여긴 것이다.

그러나 도현이 보여준 모습은 예상과는 달랐다.

일단, 도현은 꽤 잘 달렸다.

그제야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도 건강한 편이라던 벤자민의 말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그것만 해도 놀라운데, 더욱 그녀를 놀라게 만든 건 도현의 체력이 아닌 정신력이었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이, 달리기는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체력이 좋다고 해서 무조건 더 달릴 수 있는 게 아니고, 체력이 나쁘다고 해서 덜 달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도현은 자신의 체력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으면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달렸다.

흐트러진 숨소리와 상기된 얼굴이 아니었다면 도현이 편안하게 달리고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첫날, 놀란 서혜나가 힘들지 않았냐고 묻자.

- 힘들긴 한데, 참을 만해요.

이런 답이 되돌아왔다.

고통을 참는 게 무척이나 익숙하다는 얼굴이었다. 서혜나는 좀 더 세심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그 후로, 서혜나는 좀 더 도현을 자세히 살펴보며 적당한 때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게 몇 번 반복되다 보니, 도현과 이장혁은 자연스럽게 서혜나가 끝을 선언할 때 달리기를 멈추는 것에 익숙해졌다.

“집으로 들어가서 씻자. 땀으로 온통 젖었네.”

“그래도 오전이라 바람이 불어서 다행이에요.”

도현의 말에 이장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낮에는 못 달리지. 요즘 같은 날씨에는…. 날이 조금만 더 풀리면 딱 좋을 텐데.”

아쉬움이 묻어나는 어투였다.

날이 좀 더 풀렸을 땐, 아내와 아들은 다른 곳에 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세 사람은 집으로 돌아와 깨끗하게 씻었다. 뽀송뽀송한 상태로 돌아온 도현은 개운한 기분에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켰다.

잠시 후, 씻고 나온 서혜나와 이장혁이 아침상을 차렸다.

세 가족은 식탁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밥을 먹었다.

그때까지는 세 사람 모두 컨디션이 매우 좋았다.

그러나.

덜덜덜덜덜덜.

“당신 다리 부서지겠다.”

“아, 미안.”

이장혁이 다리를 떨던 것을 멈췄다. 서혜나를 돌아보던 이장혁이 말했다.

“근데 여보. 목 돌아가겠어.”

목을 쭉 빼고 시계를 보던 서혜나가 하하, 웃으며 목을 제자리로 돌렸다.

서혜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무 일찍 일어났나 봐. 시간이 너무 안 가.”

“도현이는 침착한 것 같은데?”

“정말? 역시 우리 아들… 도현아, 뭘 그리는 거니…?”

“네? 꽃을 그리고 있… 아.”

도현이 손을 멈췄다.

스케치북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선이 마구잡이로 그려져 있었다.

“도현이도 마찬가진가 보네.”

서혜나가 피식 웃자, 도현이 목 뒤를 쓸어 내렸다.

세 사람이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는 이유는, 오늘이 <불량경찰>의 첫 화가 방영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안 되겠다.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겠어.”

“특단의 조치요?”

서혜나의 말에 도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만 기다려봐.”

서혜나가 방으로 들어갔다.

이장혁과 도현이 의아한 시선을 나누는데, 서혜나가 다시 문을 열었다.

“여보! 이리로 와서 좀 도와줘.”

이장혁이 일어나 서혜나가 든 것을 나눠 들었다. 그들이 가까이 오자 도현의 눈이 커졌다.

“이불을 왜…?”

“도현아. 시간이 안 가는데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을 때는 뭘 해야 하는지 아니?”

서혜나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시간이 지날 때까지 자는 거야!”

그녀가 열심히 이불을 폈다. 이장혁도 옆에서 도왔다.

어느새 푹신푹신한 이불이 거실 한가득 깔렸다. 원래 깔려 있던 카펫 위에 몇 겹으로 깐 탓에, 침대 못지않은 푹신함을 자랑했다.

“이제 자자.”

서혜나가 이불 위에 벌렁 누웠다.

도현이 황당한 눈빛으로 엄마를 보았다.

물론 도현도 종종 낮잠을 자긴 하지만… 이건 너무 본격적인 거 아닌가?

그러나 이장혁도 꾸물꾸물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도현아, 안 자?”

이 상황에서 잠이 올 수 있나?

도현이 반신반의하며 이불 위에 몸을 눕혔다. 이불이 보들보들하고 좋은 냄새가 나서 금방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잠이 올 리가….

…….

도현의 눈꺼풀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올 리가 없어야 하는데… 졸렸다.

여름 햇빛이 거실에 동그란 빛 모양을 만들었고, 오랫동안 켜놓은 에어컨 덕에 실내 온도는 딱 좋았다. 움직일 때마다 이불에서 바삭바삭 소리가 나니, 백색 소음을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결국, 길게 하품한 도현은 졸음에 저항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평화로운 오후였다.

그 시각.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실시간으로 댓글이 달리고 있었다.

[오늘 불량경찰 첫 방송!]

오늘 10시 본방사수!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