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월드스타 (108)화 (109/582)

제108화. 특별한 이유 (3)

리암이 조금 진정한 후.

그들은 그제야 제대로 인사를 나눴다.

말로만 듣던 도현의 주변인들을 실제로 만난 이장혁이 설레는 얼굴로 눈을 빛냈다. 거의 연예인을 만난 일반인이라도 되는 양 구는 통에, 이번엔 리암이 부담을 느끼며 뒤로 물러났다.

이들을 보던 도현은, 한 명이 빠졌음을 깨달았다.

“맥, 애버리는요?”

“조카가 아파서 못 온대. 대신 돌봐야 한다고 했어.”

안타까운 일이었다.

도현은 애버리의 조카가 빨리 낫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그들은 왁자지껄 대화를 나누며 마르코 폴로 공항을 나왔다. 공항을 나온 리암이 주변을 휙, 휙 둘러보았다.

그런 리암의 앞으로 한 여성이 다가왔다.

“리암 호프 감독님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반가워요. 베니스 영화제 매니저 안젤라예요.”

그녀는 리암 일행을 에스코트하기 위해서 영화제 측에서 마중 나온 사람이었다.

그들은 안젤라의 안내를 따라 걸어갔다.

맥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공항 택시라며?”

“음….”

도현의 반응도 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항 택시를 타러 간다고 하며 안젤라가 안내한 곳은, 다름 아닌 나루터였기 때문이었다.

두 아이의 반응에 안젤라가 웃으며 말했다.

“베네치아는 일반 택시보다 보트 택시가 더 많아요. 금방 익숙해지실 거예요.”

리암과 로잔나도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다만 서혜나와 이장혁은 익숙한지, 벌써 보트 택시에 짐을 싣고 있었다.

베니스 영화제는 본섬이 아니라, 페리를 타고 20여 분간 이동해야 하는 리도섬에서 열렸다.

리도섬은 베네치아 본섬에서 동쪽에 위치한 섬으로, 모래톱이 쌓여 만들어진 야트막한 섬이었다.

맨발로 걸어도 부드러울 만큼 고운 백사장과 특유의 여유롭고 우아한 분위기에 사람들이 휴양 철에 많이 찾는 장소이기도 했다.

베니스 국제 영화제는 이 리도섬의 북쪽에서 열렸다.

베니스 영화제 측은 여러 행사에 참석해야 하는 리암 일행을 배려해서 리도섬에 있는 호텔을 숙소로 잡아주었다.

페리 선착장에서 내리자, 제일 먼저 베니스의 상징인 날개 달린 사자상이 보였다. 그 옆에는 절대 읽고 싶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적힌 영화제 일정표가 정리되어 있었다.

도현은 일정표를 확인하는 것을 포기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베네치아섬이랑 완전히 다르네요.”

도현이 감탄하며 말했다.

베네치아 본섬은, 마치 과거에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중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반면, 리도섬은 현대식 건물과 뻥 뚫린 시원한 자동차 도로들이 보였다.

마치 중세에서 현대로 시간 이동이라도 한 기분이었다.

겨우 페리를 타고 20분 거리에 있는 섬인데 이렇게 극과 극일 수가 있구나 싶었다.

도현의 말에 안젤라가 호텔로 안내하며 설명을 해주었다.

“리도섬은 근대에 개발된 섬이라 그래요. 그래서 베네치아 섬이랑 건축 양식이 많이 다르죠.”

“오오.”

맥이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이장혁이 슬쩍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역사가 짧아서, 베네치아 사람들이 리도섬을 조금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확실히, 베네치아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와 역사에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기는 했다.

안젤라가 안내해준 호텔은 페리 선착장에서 바로 보일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섬을 오갈 때 편할 것 같네요.”

로잔나는 위치가 퍽 마음에 든 눈치였다.

호텔에 체크인을 한 후, 안젤라는 편히 쉬시라는 말과 함께 돌아갔다.

그들은 방 앞에서 잠깐 멈칫했다.

2인이 쓸 수 있는 방 세 개가 주어졌는데, 어떻게 인원을 배분해야 할지 애매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방도 침대도 너무 작았다.

“리암이 누우면 발이 남을 것 같은데요?”

도현의 말에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다.

끙, 리암이 앓는 소리를 냈다.

“무명 감독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하루 이틀이면 몰라도, 며칠간 생활하기엔 무척이나 불편할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는 듯했던 서혜나가 제안했다.

“여기는 영화제 참석할 때 간간이 쉬는 용도로 쓰고, 숙소는 베네치아섬에 새로 잡는 게 어때요?”

영화제가 진행되는 기간 내내 리도섬에만 머물 게 아니라면, 베네치아에 숙소를 잡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로잔나에게 향했다. 로잔나가 이 호텔의 위치를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을 기억한 탓이었다.

로잔나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개막식보다 먼저 도착했으니, 베네치아에서 묵는 것도 괜찮겠네요.”

그녀가 보기에도, 이 숙소는 조금 불편할 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베네치아에 새로운 숙소를 잡기로 의견을 모았다.

“베네치아로 가기 전에 영화제 사무실에 가서 출입증부터 받는 게 어때요?”

“겸사겸사 구경도 하면 되겠네요!”

로잔나의 말을 서혜나가 받았다.

그들은 잠깐 호텔에 짐을 내려놓은 후 영화제가 진행되는 Palazzo del Cinema에 들렀다.

도착하자마자 눈에 띄는 건 채도 높은 빛깔의 레드 카펫이었다.

“나 레드 카펫 실제로 처음 봐.”

맥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이리저리 구경했다. 수많은 셀레브리티들이 이 길을 걸었다고 생각하니 왠지 멋있어 보였다.

“리암. 그런데 우리도 레드 카펫을 걸어요?”

도현의 질문에 맥이 일시 정지했다.

“당연히 걸어야지! 초청되어서 온 건데.”

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내가?

내가 레드 카펫을?

상상하니 그렇게 웃기고 우스울 수가 없었다. 방금까지는 그저 멋있어 보였던 레드 카펫이 갑자기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레, 레드 카펫은 유명한 사람들만 걷는 거 아니에요?”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을 보면, 모두 한 유명 하는 인물들만 보였다.

“유명한 사람들이 걸은 것만 주목받는 거지.”

“그럼 우리한테는 관심 없겠네요.”

도현이 웃으며 농담조로 말했다.

‘쟤는 심장이 철로 되어 있나?’

맥은 벌써부터 아득한데, 도현은 별로 신경조차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가끔 가다 이해할 수 없는 대범함을 보여주는 도현이었다.

그들은 레드 카펫을 지나쳐 영화제 사무실에 들어갔다.

리암이 미리 서혜나와 이장혁을 Marketing manager로 등록해놓은 덕에, 두 사람도 출입증을 받을 수 있었다.

“출입증을 가지고 있으면 바리케이드가 있는 곳도 입장이 가능하시고, 영화제 동안 진행되는 모든 스크리닝을 무료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보러 가시기 전에 인터넷에서 따로 예약하셔야 해요.”

“알겠습니다.”

리암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출입증을 받아 챙겼다. 사무실을 나온 여섯 사람은 제각각 목에 출입증을 걸었다.

리암은 조금 감격한 표정으로 출입증을 매만졌다. 비단 리암뿐만 아니라 로잔나와 맥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꿈을 꾸고 있나….”

맥이 중얼거렸다.

차라리 꿈인 게 더 현실적이었다.

용기 내 지원한 독립 영화 오디션에 덜컥 합격해 영화를 찍은 것도 종종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데, 심지어 그 영화가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되어서 지금 이탈리아 땅을 밟고 있었다.

“현실이에요, 맥.”

도현이 웃으며 말하자, 그제야 안심이 된 듯 맥이 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시네마를 좀 더 둘러보았다.

시네마 내부에는 뷰티 브랜드의 로고가 박힌 한 부스가 있었는데, 이번 해에 베니스 영화제를 지원한다는 것 같았다. 맥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기웃거리다가, 메이크업을 해 줄까 묻는 사람에 기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구경을 마친 후, 호텔에 들러 다시 짐을 가지고 나와 베네치아섬으로 향했다.

새로운 숙소를 본 서혜나가 마음에 든다는 듯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넓디넓은 호텔은 거실을 공유하고 방이 네 개가 딸린 곳이었다.

부부와 어린아이 둘이 각각 한 방씩 쓰고, 로잔나와 리암이 홀로 방을 쓰기로 했다.

맥이 호화로운 방을 보고 질린 표정을 지었다.

“안 들어오고 뭐 해요?”

도현이 방문 앞에 서 있는 맥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맥이 고개를 저었다.

“됐다. 네가 뭘 알겠냐.”

맥이 성큼성큼 방 안에 들어와, 캐리어를 풀었다.

“이러니까 꼭 친구랑 여행 온 것 같지 않아요?”

도현이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에 맥도 동의했다. 도현의 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했던 날이 떠오르기도 했다.

도현과 맥은 짐을 정리하며 파자마 파티 날 있었던 일을 주제로 수다를 떨었다.

생각난 김에 진과 니콜라스에게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문자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이잉-

핸드폰이 울렸다.

도현은 발신인의 이름을 확인한 후, 웃음을 띠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 피렌체에서 베네치아로 간 거야?

“응.”

- 이제 진짜 금방이네! 내가 다 떨린다…! 나도 가고 싶었는데.

진의 목소리가 조금 시무룩해졌다. 도현이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된 것을 안 후, 이탈리아에 가고 싶다고 떼를 썼지만… 여행이란 게 가고 싶다고 언제나 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부모님의 일정과 맞지 않아 결국 실패하고 만 진이었다.

- 베니스 영화제면 유명한 사람들 엄청 많이 오잖아. 부럽다.

미련이 철철 넘치는 목소리였다. 도현도 진과 같이 영화제를 구경하지 못하는 게 아쉽긴 했다.

도현이 부드러운 투로 말했다.

“나중에 돌아가서 어땠는지 말해줄게.”

- 으응, 꼭이야! 아, 나도 내일 반 배정 나오면 알려줄게!

베니스 영화제 기간과 델마 아카데미의 개학 날이 겹쳤기 때문에, 도현은 학교를 며칠간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이, 델마 아카데미의 1학기가 새로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반 배정 생각하니까 떨린다.”

- 나도. 으으… 같은 반이 돼야 할 텐데.

진의 말에 도현은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 그렇게 될 거야!

진이 큰소리를 쳤다. 왠지 진이 그렇게 말하니 정말 말대로 될 것 같았다.

“내일이 개학이야?”

옆에서 듣고 있던 맥이 말을 걸었다. 도현이 그렇다고 대답하는데, 수화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옆에 맥이지?

“응. 바꿔줄까?”

- 응! 부탁해!

도현이 맥에게 핸드폰을 넘겼다.

맥이 이건 또 뭐냐는 듯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건네받은 때였다.

- 감히 나만 쏙 빼고 도리랑 놀아?

“허어?”

맥이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현은 잠시, 맥에게 핸드폰을 건네준 것을 후회했다.

- 도리 며칠간만 맡기는 거니까, 곱게 데리고 있다가 돌려줘야 해!

도현은 당연히 맥이 황당해할 줄 알았다. 그러나 맥은 잠깐 어이없어하다가, 곧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그으래. 내가 잘 데리고 있을 테니까, 너는 열심히 학교 수업이나 듣고 있어!”

- ……!

맥의 얼굴에 승리의 미소가 올라왔다.

- 내, 내가 졌다….

진이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몹시 분한 기색이었다.

저보다 어린 애를 이겨 먹고 신이 난 맥이 희희낙락하며 도현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도현은 뿌듯해하는 맥을 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진.”

- 나는… 내일 가져갈 책가방 싸러 갈게….

“어, 그, 그래….”

뚝.

전화가 끊겼다.

도현이 맥을 빤히 쳐다보았다.

“뭐! 왜!”

“…아니에요.”

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맥은 어쩐지, 이겨놓고 진 기분이 되었다.

“얘들아! 밥 먹으러 가자!”

“네!”

도현은 이따가 진에게 문자를 보내야 되겠다고 생각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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