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화. 특별한 이유 (6)
루커트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는 루커트가 직장에서 일하고, 여자친구를 만나는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했다.
루커트가 여자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가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탁.
묘한 발걸음 소리가 겹쳤다.
루커트의 몸이 살짝 멈췄다가, 이내 다시 움직인 그의 발걸음 속도는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도에 맞춰 기묘한 소리도 느려졌다.
한적한 골목 어귀.
탁.
정적 속에서 울리는 발걸음 소리는, 묘한 두려움을 자극했다.
그때부터였다.
루커트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이상한 시선을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분 탓이라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벌떡!
루커트가 회사에서까지 느껴지는 기묘한 시선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관객들의 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평소처럼 그와 웃고 떠들던 직장 동료들이, 일제히 루커트를 응시하고 있었다.
루커트는 겁에 질려 곧바로 회사를 박차고 도망쳐 나왔다. 이로써 루커트는, 자신의 주변에 무언가 기묘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확신한다.
루커트는 자신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여자친구를 만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러나 여자친구 리안나는 그런 루커트의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는다.
“너무 일을 열심히 해서 피곤한 거 아닌가요?”
루커트가 겪은 일을 단순히 피로로 인한 신경과민으로 치부했다.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리안나에 루커트는 절망했다.
루커트는 마치 동물원 우리에 갇힌 동물이 된 것 같은 두려움에 홀로 맞서서 버텨내야 했다.
집 안에서조차 안심할 수가 없었다. 루커트는 나날이 초췌하고 피폐해져 갔다.
그는 결국, 이 상황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자신을 감시하는 모종의 세력을 찾아내고자 마음먹는다.
* * *
극장의 불이 켜졌다.
그리고 불이 켜지기도 전에,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영화에 대한 찬사의 박수를 보내는 중이었다.
관객들은 저마다 영화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았다. 제각각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점은 그들이 몹시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도현은 일어나 박수 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까맣게 물든 스크린을 보았다.
팔과 목에는 소름이 돋아 있었다.
루커트가 자세하게 파고들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숨도 쉬기 어려울 만큼 긴장감이 몰아쳤다.
루커트는 여자친구의 연락조차 받지 않고 오롯이 진실을 밝혀내는 일에만 매달렸다.
그러나.
그가 진실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모순점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끝까지 예상하지 못했어.”
도현의 주변에 있는 관객 중 한 명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모든 게 거짓이었다니!”
그랬다.
루커트의 생각과 다르게 그를 따라다니는 스토커도, 미지의 세력도 없었다.
모든 건 루커트의 환상과 환각에 불과했다.
찬찬히 되돌아 생각해보면, 힌트는 여러 곳에 존재했었다.
그가 아침마다 먹었던 하얀 영양제. 여자친구를 만나면서도 늘 데이트 끝에 집으로 되돌아왔던 루커트. 루커트의 말에도 이야기를 회피했던 리안나까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장치가 존재했다.
리안나는, 루커트의 여자친구가 아니라 그의 담당 의사였다.
“찝찝해….”
맥의 말대로였다.
탈출이라는 영화 제목과 달리, 루커트는 자신의 환상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진실을 알아내고 절망한 루커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검게 물들었던 화면은 이내 다시 밝아졌다.
그리고,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 준비하는 루커트의 모습을 비추며 끝이 났다.
도전적이고 실험적이면서, 동시에 충격적인 영화였다.
여운을 조금 털어낸 도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른 관객들처럼 영화와 이 영화를 만든 이들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박수가 아깝지 않았다.
“박수 소리가 끊이지를 않네.”
맥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이 멋진 영화를 위해 몇 분간 박수 치는 수고로움도 기꺼운 것 같아 보였다.
“대단하네요.”
도현이 감탄했다.
뒤늦게, 이런 작품이랑 자신이 찍은 영화가 경쟁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졌다. 어쩌면 이건, 약간의 부담감과 맞닿아 있었다.
영화도 무척이나 재밌었지만, 무엇보다 대단했던 건 에드워드 녹스의 연기였다.
강이든의 연기가 잘 짜여 있고 완벽하게 다듬어진 느낌이었다면, 에드워드는 감각적이고 강렬했다.
강이든이 자유로운 몸짓으로 감정을 표현했다면, 에드워드는 행동보다 눈빛으로 열 가지의 감정을 설명했다.
무엇이 더 우위라고 정할 수는 없었지만, 에드워드의 연기가 도현에게 무척이나 깊은 인상을 준 것은 사실이었다.
미국에서만 있었을 때보다 도현의 세계가 훨씬 넓어지며 확장되고 있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배우고 경험하며, 도현은 차츰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엄마의 말을 따라 한국에 간 건 큰 행운이었다.
그들은 상영관을 나와서 저녁 식사를 먹고 호텔로 향했다.
영화제에서 주최하는 파티가 밤 11시부터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라 도현과 맥의 나이가 어린 관계로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풀썩!
맥과 도현은 침대 위로 쓰러졌다.
“힘들었다….”
맥이 이불에 머리를 박은 채로 중얼거렸다.
저녁을 먹을 때까지는 신났는데, 방에 들어오자마자 배터리가 나간 기계처럼 순식간에 방전되어 버렸다.
육체의 문제보다는 정신적 문제에 가까웠다.
“워낙 큰일이 지나갔으니까요.”
도현도 조금 지친 기색으로 말했다.
“큰일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냐.”
“네? 당연하죠.”
맥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맥이 어리바리하게 구는 내내, 도현은 알아서 척척 움직였다. 일전의 레드 카펫만 하더라도 그랬다.
도현은 조금 신나 하는 것 같긴 했지만, 그 외에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심지어 리암까지도 긴장해서 굳어 있었는데!
평소에도 워낙 범상치 않은 도현이었으니, 이런 일조차 그에게는 별일 아닌 건가 싶었다.
맥의 눈빛에 도현이 한쪽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맥은 대체 저를 어떻게 보는 거예요?”
“어떻게 보긴. 애늙은이지.”
떠오르는 기억에 도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 맥. 저 말 안 한 게 있어요.”
“뭐?”
“맥이 저한테 제가 가출했을 경우를 연기하면 프리패스라고 했잖아요? 사실 그 말 듣고 자유 연기를 창작 대본으로 정했어요.”
“엉? 진짜?”
처음 듣는 얘기에 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진짜 가출한 장면 연기한 거야?”
“그건 아니고….”
도현이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화려했던 낮과 다르게, 이불을 뒤집어쓰고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소박한 저녁을 보내는 두 아이였다.
* * *
그 시각 한국.
새벽 늦은 시간까지 학회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밤을 새운 은서가 눈을 비볐다.
“오늘 안에 보내야 하는데….”
학회 같은 걸 왜 들었을까?
뒤늦은 후회를 하며 한숨을 쉬는 은서였다.
하루 내내 눈 빠지게 보고서를 작성하다 보니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조금만 쉬었다가 하자, 진짜 조금만.”
휴식도 필요한 법이었다. 은서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변명하며 자주 들어가는 커뮤니티를 켰다.
그녀는 문득, 한동안 까먹고 있었던 존재가 떠올랐다.
은서의 손가락이 검색창에 ‘송하’라는 두 글자를 입력했다.
검색 키를 누르면서도 은서는 별 기대가 없었다.
그들의 불길했던 예감대로 송하는 1화에만 등장하는 역할이었고, 송하가 등장하는 장면을 나노 단위로 캡처한 그녀에게 더 이상 모을 떡밥이란 없었다.
아무리 최애라고 한들, 먹이가 없으면 시들해지는 법이었다.
눈에 불을 켜고 정보를 찾아다녔던 초반과 다르게 은서는 어느 정도 해탈한 상태였다.
은서의 손가락이 다소 성의 없이 마우스 휠을 내렸다.
“응?”
한동안 새로운 게시물이 없었는데, 못 보던 게시물이 올라와 있었다.
[불량경찰 송하 근황 찾았다!]
근황?!
눈길을 끄는 제목에 은서가 황급히 게시물을 클릭했다.
[불량경찰 송하 근황 찾았다!]
(레드카펫 위에 서 있는 도현의 사진)
지금 베니스 영화제에 있대! 정장 입은 게 이렇게까지 귀여울 일인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