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화. 특별한 이유 (8)
희미했던 바이올린 소리가 선명해짐에 따라, 화면도 점점 밝아졌다.
곳곳에 촛대와 십자가, 성모 마리아의 조각상이 놓인 고풍스러운 집에서 한 소년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그런 소년을 온화한 인상의 중년의 부부가 자랑스러운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바이올린 소리에 자연스러운 소음과 발소리가 섞이다가, 화면이 전환되며 얼룩지고 해진 운동화가 보였다.
휘익.
허공에 떠오른 은색 나이프가 희게 빛났다가 소년의 손에 도로 안착한다.
짧게 입꼬리를 끌어 올린 소년이 나이프를 주머니에 욱여넣고 거리로 향했다. 비딱하던 걸음걸이가 반듯해지더니, 이내 아무런 위화감 없이 행인들 사이에 섞여 들어갔다.
사람들이 오가는 복잡한 거리를 비추던 화면이 도로 집 안 풍경으로 바뀐다.
눈을 내리뜨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소년이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선명하리만치 푸른 눈이 화면에 잡힌다.
화면이 계속해서 교차한다.
툭.
“뭐야!”
소년과 부딪힌 신사가 성을 냈다.
“길을 걸을 땐 주변을 잘 살펴!”
짧게 일갈한 신사가 마저 갈 길을 재촉한다. 소년의 시선이 잠시 그 등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소년이 다시 느긋하게 발걸음을 뗐다.
짝짝짝!
박수 소리가 들리며, 활을 잡은 단정한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
“잘하더구나. 실력이 많이 늘었어.”
부모님의 칭찬에 소년이 푸른 눈을 접으며 기쁜 듯 웃었다. 소년과 부모님이 나누는 다정한 대화 소리가 들리고.
소년의 푸른 눈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겹쳐졌다. 하늘 위로 검은 광택이 흐르는 무언가가 떠오른다.
그것을 소년이 잽싸게 잡아챘다.
“그러게. 길을 걸을 땐 주변을 잘 살펴야지.”
비꼬는 듯, 조소가 어린 목소리였다.
짧게 웃은 소년이 사람들 사이에 도로 섞여 거리를 걷다가, 외진 골목길로 빠졌다.
“뭐?”
유의 표정이 사납게 일그러진다. 매서운 시선에 찔린 제이콥이 어깨를 움츠렸다.
“그럼 왜 여기 있는데?”
“놔, 놔줬어.”
“짭새가?”
“지갑 주인이….”
어물거리는 제이콥에 유가 짜증 섞인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그에 옆에 있던 아이가 신이 나 떠들어댔다.
“얘 손 잡고 설교를 하더라니까? 하느님을 믿으라는 둥, 어쩌라는 둥. 쟨 도망도 못 치고 붙잡혀서 빌빌대더라. 한심한 새끼!”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모습에 유가 신경질적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예민하게 날 선 시선에 목소리 크기가 힘을 잃고 점점 작아졌다.
“어, 어? 유! 어디 가!”
“집에.”
제이콥이 걸린 탓에 어차피 한동안은 공쳤다.
유가 한숨을 쉬며 돌을 걷어찼다.
* * *
“그 멍청한 새끼가 실수를 해서!”
지나가는 짭새를 보던 유가 욕을 지껄였다. 혹시나 해서 나와 봤는데, 역시 순찰을 돌고 있었다.
경찰 옆을 지나갈 땐 태연했던 얼굴이, 지나치자마자 거칠게 구겨졌다.
울분을 풀려는 듯이 발길이 닿는 대로 정처 없이 걷던 유의 눈이 한 곳에서 멈췄다.
정돈한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짧게 깎인 잔디와 크지 않은 하얀 성당.
그 주변을 오후의 공기가 붉은빛을 머금으며 떠다니고 있었다.
어지러운 도시 속에서, 홀로 고요하게 멈춘 것만 같은 풍경에 유가 홀린 듯이 그 광경을 보았다.
너무 하얘서 햇빛이 묻어날 것만 같은 외벽을 보다가, 자신의 신발을 본 유가 눈가를 찡그렸다.
“…됐어. 그냥 가자.”
옅은 체념이 섞인 목소리였다.
그 순간.
바람을 타고 미약한 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유의 발걸음이 멈췄다.
호기심이 가득 찬 검은 눈동자가 성당을 응시했다. 돌아가기로 한 것을 잊었는지, 조금씩, 소리가 들리는 근원지로 걸어갔다.
창문을 통해 비치는 방 안에서,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입은 한 소년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유가 창문 옆의 벽에 기대어 연주를 훔쳐 들었다. 통통 튀는 바이올린 음색에 내내 뚱했던 유의 눈매가 부드럽게 풀렸다.
바람이 살랑이며 불어와 눈을 감은 소년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보는 이까지 나른함에 젖어 들 것 같은 광경이었다.
유의 눈이 불만스레 뜨였다. 갑자기 연주가 멎은 탓이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창문 가까이 몸을 가져다 댔다. 방 안을 엿볼 심산이었다.
그때였다.
드르륵!
창문이 활짝 열리고, 햇빛이 두 소년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었다.
푸른색과 검은색의 눈동자가 놀람을 담아 크게 떠졌다.
어리둥절한 소년의 음색이 울렸다.
“누구….”
와락!
순식간에 얼굴을 구긴 유가 홱 몸을 틀어 성당 반대편으로 뛰어갔다.
“어! 야! 어디 가!”
뒤에서 유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점점 작아지다가 이내 들리지 않게 되었다.
남은 소년만 황망히 그 모습을 응시했을 뿐이었다.
* * *
힘껏 찌푸린 눈썹, 뚱한 입매.
유는 현재 성당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소매치기하면서도 귓가에 바이올린 소리가 아른거렸다. 그대로 잠들고만 싶었던 평온함이 아쉬워, 자꾸만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조금만 듣고 가는 거야, 조금만.”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변명을 했다.
눈치를 보듯 주변을 살핀 유가 이내,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 건물 외벽으로 다가갔다.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어제와는 다른 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매단 유가 잔디밭에 풀썩 주저앉았다. 양손은 깍지를 끼고 벽에 등을 기댔다.
하루, 이틀.
일주일, 이주일.
한 달이 되었을 땐, 이미 이 시간은 유의 일상이 되어 있었다.
유가 몰래 듣는 것이 아니라, 소년이 유를 모른 척해주고 있다는 걸 알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안녕?”
소년이 그들 사이의 암묵적인 불문율을 깨고 말을 걸었다.
창가 아래에 앉아 있던 유가 고개를 들었다.
“오늘은 도망가지 않네?”
소년이 신기하다는 듯이 말하자 유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일어나려는 기색에 이사야가 황급히 유를 말렸다.
“나는 이사야야. 이사야 라샤펠. 너는?”
“…유. 성은 없어. 그냥 유야.”
“유. 그렇구나! 꼭 애칭 같네.”
고아라는 걸 알았을 텐데도 이사야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면 나도 샨이라고 불러줘. 부모님이 나를 이렇게 부르시거든.”
유가 뭐 이런 게 다 있냐는 눈빛으로 이사야를 보았다.
그 차가운 시선에도 굴하지 않은 이사야가 유의 앞에 바구니 하나를 쑥 내밀었다.
“이거 먹을래? 나 혼자 먹기엔 너무 많거든.”
유의 시선이 쿠키에 고정되었다.
고아인 유가 거절하기에는, 심히 유혹적인 제안이었다.
갈등하는 걸 알았는지, 이사야가 좀 더 연습해야겠다고 들으란 듯이 중얼거리며 바구니를 창문턱에 올려놓고 갔다.
바구니와 이사야를 번갈아 보던 유는 결국.
와작!
쿠키를 씹어 먹었다.
유의 눈이 동그래졌다.
입 안에서 씹히는 초콜릿 조각들이 달았다.
* * *
무너져 버린 경계심을 다시 세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닫혔던 창문이 열리고, 창문 사이로 인사말이 오가고.
시시한 대화를 하거나 쿠키를 나눠 먹는 게 익숙해졌을 땐.
하얀 외벽은 더는 그들을 가로막는 벽이 되어주지 못했다.
사각, 사각.
학교 숙제를 하는 이사야의 맞은편에서, 유가 팔을 괴고 눈을 감고 있었다.
열린 창문 사이로 온화한 햇빛이 두 아이를 비췄다. 평화로운 어린아이들의 모습은, 꼭 천국의 광경을 보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이사야는 자신이 따라 적던 시의 한 구절을 보았다.
완벽한 순간이었다.
관객들의 얼굴에 편안한 미소가 떠올랐다.
영화를 보러 온 에드워드 녹스가 생각했다.
‘잔잔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인가?’
이 분위기대로 흘러간다면 그럴 것 같았다.
자극적인 느낌은 없었지만, 두 아역의 연기와 영화의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영화였다.
그러나.
‘그러면 좀 아쉽겠군.’
에드워드가 보일 리 없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분위기가 있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그것을 보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닌 사람이었다.
‘좀 더, 격렬하고 강렬할 거 같았는데 말이지.’
저렇게 조그만 소년에게서 어째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에드워드가 본 도현은 그랬다.
저 안에서 터질 듯한 무언가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에드워드는 그게 무엇인지 몹시 궁금했다.
‘아직 초반밖에 오지 않았으니.’
에드워드가 다시금 영화에 집중했다.
“신부님?”
이사야가 환한 얼굴로 노년에 접어든 신부님을 반겼다. 이사야와 신부님이 정답게 이야기했다.
“아, 알고 계셨어요?”
“그럼요. 매번 간식거리를 들고 오고, 교리실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니 모를 리가요.”
“하하, 그러네요.”
이사야가 멋쩍게 웃었다. 신부님과 이사야가 유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네? 아니에요! 별일 아닌걸요. 집에 있는 건 항상 남으니까….”
이사야가 멈칫했다.
신부님이 마음을 괴롭히는 일이 있으면 편히 말하라고 하자, 이사야가 못내 안타까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유는 부모님이 없거든요.”
기이하게도, 묘하게 들뜬 목소리였다.
“정말 제겐 별일이 아니니까요.”
이사야가 웃었다.
그동안 보았던 천사 같은 미소가 아닌, 무언가 신경을 불안하게 긁는 미소였다.
완벽해 보였던 일상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 * *
“유.”
유의 감겼던 눈이 떠졌다. 숙제를 하던 이사야가 유를 보고 있었다.
“미사에 참석해보지 않을래?”
이사야가 평소처럼 웃었다.
그들은 몰랐다.
완벽하다는 건, 미세한 균열만으로도 모든 게 어그러진다는 것임을.
* * *
“샨은 무슨 생각인 거야.”
유가 작게 중얼거렸다.
미사.
미사라니.
고아에게 미사가 가당키나 한가?
유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걸 수락한 내가 제일 머저리지.”
유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뇌가 어떻게 된 것 같았다.
그런데도 나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왜일까.
픽.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유가 바보처럼 피식, 피식 웃으며 길을 걸었다.
가는 길에 길거리에서 한 남성의 지갑을 털기도 했다. 숙련된 솜씨의 소년에게는 길을 걷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안에 든 100달러 지폐 다섯 장을 본 유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오늘은 운이 좋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유의 눈이 지갑에 끼워진 가족사진에 닿았다. 웃음기가 맴돌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서늘하게 식은 표정과 반대로 눈에는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관객들은 이 장면으로 인해, 유가 가족과 관련해 어떠한 일이 있었음을 짐작했다.
“…재수 없게.”
유의 손에서 가족사진이 쓰레기처럼 찢겨 나갔다. 땅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는 유의 감정은 모호했다.
터벅.
더러운 운동화가 사진을 밟고 지나갔다. 남자의 웃는 얼굴이 운동화 밑창에 사정없이 짓밟혔다.
끼이익.
허름한 건물의 문을 열자 낡은 경첩에서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때였다.
“여어, 유.”
서늘한 공기를 타고 잔뜩 쉬고 발음이 뭉개진 목소리가 들렸다.
퀭한 얼굴, 비죽거리며 웃는 표정, 욕심이 번들거리는 눈동자.
유가 속한 소매치기 굴의 주인이자 폭군이었다. 유는 지갑을 몸 뒤로 숨겨 보았지만, 이미 그의 눈에 든 후였다.
퍼억, 퍽!
황량한 건물에 둔탁한 소리와 소년의 억누른 음성만이 울렸다. 다른 이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있는지, 꼭 닫힌 방문들을 고요하기만 했다.
보는 이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질 만큼 유는 고통스러워 보였다. 한참이나 유를 때리고 나서야 만족했는지, 조안이 지갑을 주워 들었다.
“처음부터 순순히 주면 맞을 일도 없었잖아?”
탁.
조안이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더러운 건물 바닥에 소년이 홀로 남았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평온한 공기에 감싸여 바이올린 소리를 들었던 소년이 현실에 내동댕이쳐져 오물이 가득한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동시에, 관객들도 현실에 끌어 당겨졌다. 환상적이었던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마주 본 것 같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킥!”
유가 몸을 둥글게 말고, 끅끅대며 웃었다.
‘왜 웃는 거지?’
너무 맞아서 정신이 나간 건가 싶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관객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꼬깃하게 접힌 100달러 지폐 다섯 장이, 유의 손 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방금…?’
그제야 관객들은 유가 맞을 때 왜 몸을 웅크렸는지 깨달았다. 독한 성격이었다. 혀를 내두르는데, 유의 웃음소리가 울렸다.
“하하하!”
유가 배를 부여잡고 크게 웃었다. 재밌다는 듯이 눈물까지 훔치며 웃다가.
천장을 노려보며 까득, 이를 갈았다.
망할.
유가 작게 욕을 중얼거렸다.
짙은 허탈함과 자기혐오가 서린 목소리였다.
* * *
변화란 때론 폭력적으로 다가와 사람의 운명을 헤집고 찢어발긴다.
얻어터진 배를 부여잡고, 그 망할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성전에 발을 들인 소년은, 그 모든 선택이 어리석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소년은 이곳에 오면 안 됐다.
“이사야 형제님께선 참으로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느님을 흠숭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이리 몸소 행하시니.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지요.”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유의 얼굴에 회의가 깃들었다.
신부의 말이 이어졌다.
화면이 유의 한 손을 붙잡고 있는 신부와 도현의 모습을 담았다. 그건 어쩌면 유를 보고 있는 신도들의 시야 같기도 했다.
먼지 한 점 묻지 않은 제의복을 입은 정갈한 신부님과 지저분하고 초라한 행색의 소년.
그들이 작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유의 귀에 천둥처럼 박혀 들었다.
천둥이 남긴 충격은 유를 파고들어 그의 영혼과 육신을 사나운 아귀처럼 뜯고, 헤집고, 깨트려, 끝끝내 너절하게 만들었다.
“우리 모두 형제님을 위해 기도합시다.”
잔잔하고 성스러운 주기도문이 울려 퍼졌다.
유의 눈동자가 누군가를 찾아 주위를 더듬었다. 소년의 시선이 멈춘 곳에는 눈을 감고 주기도문을 외는 이사야가 있었다.
이사야.
유의 입술이 이사야의 이름을 그리며 달싹였다.
이사야는 소년의 곁이 아니라, 저곳에 있었다. 하얗고 깨끗한, 유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저들만의 세계에.
한 공간에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곳에 있었다.
결코 닿을 수도 겹칠 수도 없는 곳에.
이사야, 이러려고 불렀어?
검은 눈이 일그러지며 환상이 비쳤다. 소년을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던, 떼어낼 수 없는 악몽 같은 환상이.
이사야의 얼굴 위로 까맣게 물든 두 남녀가 보인다.
- 딱한 것. 이제 우리가 네 가족이란다.
아이가 그 말에 손을 뻗었다.
이사야를 향해 손을 뻗던 유가 허공에서 주먹을 쥐었다.
유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높은 천장, 깨끗한 바닥, 단정한 옷을 입은 신도들, 손을 잡은 늙은 신부, 선한 얼굴을 한 이사야.
그 모든 것에서 홀로 동떨어진 채로.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어차피 신앙인들은 모두 눈을 감았으니, 소년을 볼 수 있는 건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지고한 존재밖에 없었다.
파랗게 튀던 증오는, 이내 검게 식었다.
일그러졌던 눈썹이 원래대로 돌아가고, 악물었던 턱에 힘을 풀었다. 소년의 얼굴은 처음 성전에 발을 디뎠을 때와 같아졌다.
주기도문이 서서히 잦아들고.
정적 속에서 이사야가 천천히 눈을 떴다.
마치 그 날과 같았다.
처음 만난 날처럼, 환한 성전의 불빛 아래서 파란색과 검은색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