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6화. 특별한 이유 (11)
극장에 불이 들어왔다.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영화의 내용을 곱씹었고, 누군가는 바이올린 소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으며, 누군가는 엔딩 크레디트에 오른 이름을 발견하고 제 눈을 의심했다.
그 기묘하기까지 한 정적에, 팀도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하며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리암의 얼굴은 굳어져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드워드 녹스였다.
짝짝짝!
수많은 시선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오로지 영화와 이 영화를 만든 이들을 향해 찬사의 박수를 보냈다.
뒤이어.
짝짝짝!
하나둘씩,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현이 입을 다물었다.
앉아 있던 사람들이 천천히 일어나 박수 치는 광경은, 그로 인해 극장 안이 박수 소리로 가득 채워져 가는 순간은, 심장이 터질 듯 벅찬 감각을 선사했다.
그건 마치 홍수 같았다.
쏟아지는 박수 소리에 리암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뒤늦게 실감이 났는지, 눈가가 붉게 달아올랐다.
이곳에 자리한 팀 모두가 그랬다.
그들이 열심히 만든 영화가 인정을 받고, 이토록 열렬한 박수를 받으니 이상하게도 서러워졌다. 기뻐해야 맞는데, 웃음보다 눈가가 시큰해졌다.
다행인 것은, 우는 것이 그들뿐만이 아니란 것이었다.
박수 치는 사람들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몇몇은 아직도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붉어진 눈으로 그 광경을 보던 리암이, 이내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리암이 도현과 맥을 보았다.
그에게 최고의 순간을 선사해준 배우들이었다.
그때였다.
가장 먼저 일어나 박수쳤던 에드워드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맥은 얼음이 되었다.
“에, 에, 에드워드 녹스…!”
맥이 말을 더듬었다.
“오, 이 영화를 만드신 감독님이시군요. 정말 잘 봤습니다.”
에드워드가 손을 내밀자, 리암은 얼떨떨하게 악수를 했다. 이어, 에드워드의 시선이 맥에게로 닿았다.
“이사야! 이사야구나! 연기가 정말 뛰어나던걸.”
“가, 감사합니다!”
에드워드의 칭찬에 맥이 얼어붙고, 그런 맥을 보며 익숙하다는 듯이 웃은 에드워드가 도현을 보았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네?”
그가 중얼거린 말에 도현이 반문했다.
도현의 의아한 표정에도, 에드워드는 마냥 기껍다는 듯이 웃었다. 다 큰 어른이고, 무척이나 성숙하고 신사 같은 인상인데도 그 순간 무척이나 어려 보였다.
누가 보아도 기쁨에 가득 찬 얼굴로 환히 웃고 있었다.
“반가워. 난 에드워드 녹스야.”
“이도현이에요.”
도현은 에드워드의 손을 가볍게 잡으며 악수했다. 에드워드가 손에 한번 힘을 주었다가 풀었다.
와우, 에드워드가 감탄사를 흘렸다.
“방금까지 스크린에 나왔던 배우랑 완전히 다른 인상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다를 수가 있지?”
스크린 속의 유는, 누가 보더라도 거칠고 험하게 자란 아이였다. 제 몸을 지키기 위해 가시를 뾰족뾰족하게 세우고 있는 고슴도치 같은 아이기도 했다.
그러나 에드워드의 눈앞에 있는 도현은 아니었다. 모로 보나, 교육을 잘 받은 태가 났다.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이 아이에게 어울리는 배역은 단연코 이사야라고 생각했을 터였다.
“정말 놀라웠어. 그런 연기라니…. 정말 천재적이라는 말 외에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을 정도야!”
“감사합니다.”
그 말에서 묻어나는 진심에, 도현도 기꺼이 웃으며 화답했다.
자신의 주연 배우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모르는 이를 찾기 힘든 할리우드 스타가 친분을 다지고 있는 것을 보며 리암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제 세상도 알 때가 됐다.
도현이 얼마나 위대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자신이 감독이면서, 남의 일처럼 관조하는 리암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정말 뛰어난 영화였습니다.”
“어, 감사… 헉!”
리암이 숨을 들이켰다.
의 감독이자,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를 넘나들며 수많은 히트작을 낸, 이제는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든 감독.
바네사 올슨이 리암을 보며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암도 바네사의 영화는 모조리 꿰고 있었다.
리암이 넋이 나간 채로 바네사와 악수를 했다.
“영화에 담긴 메시지가 정말 흥미로웠어요. 완벽함이란 결국, 하나의 불완벽한 요소를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데미안>의 카인의 표적으로 설명한 게 상당히 인상 깊더군요. 초반에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나눌 때 단순히 성경 공부를 하는 줄 알았는데 모든 게 이어져 있었어요. 그래서 작품 제목이 방랑자인 거고요.”
바네사는 진심으로 감명받은 표정이었다.
“<데미안>을 이런 식으로 재해석할 수 있을 줄이야! 최고라는 말이 부족하게 느껴지네요. 에드워드가 박수 치지 않았다면, 저도 계속 넋을 놓고 있을 뻔했어요.”
최고의 찬사였다.
“이번이 첫 번째 데뷔작인가요? 세상은 천재적인 감독의 이름을 하나 알게 되겠군요.”
그 순간에도 박수 소리는 이어지고 있었다. 이제 눈물은 다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리암은 목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감사합니다, 올슨 씨. 과분한 칭찬이네요.”
“바네사로 충분해요. 뛰어난 작품에는 그에 맞는 평가가 필요한 법이죠. 그런데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공동 저자에 배우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바네사가 은근히 꺼낸 이야기에 리암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대해서 사람들이 의아해할 거란 건 이미 예상했다.
“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저와 유 역할을 맡은 배우가 같이 썼습니다. 도현은 공동 저자에 이름을 올리기에 자격이 충분하죠.”
“세상에, 정말이군요.”
바네사가 몇 번 더 감탄사를 터트리며 놀란 눈으로 에드워드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도현을 보았다.
배우가 시나리오 작가인 경우가 드물긴 했지만 없는 건 아니었다. 스스로 감독까지 맡아 영화를 제작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으니까.
그러나 저 아이의 나이와 영화의 수준, 그리고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가 문제였다.
아이가 만들었다기엔 너무나 수준 높고 철학적인 요소가 녹아든 영화였다. 그리고 그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는, 수많은 연기자를 만나온 바네사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런데 시나리오까지 썼다고?
그 생각을 눈치챘는지, 리암이 말했다.
“도현은 굉장히 영특합니다. 때론 저보다 더 재치 있고 기발한 생각을 해내죠. 저 아이에게 나이는 숫자일 뿐이에요.”
그건 리암의 진심이었다.
만약, 리암이 나이를 떠나 도현을 한 사람으로서 존중하지 않았더라면, 공동 저자에 올리지 않았을 터였다.
“진정한 천재는 저 소년이죠.”
“그거참… 인상 깊은 말이네요.”
바네사가 도현을 눈여겨보았다.
에드워드와 무슨 대화를 하는지, 은은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 바네사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기억되었다.
한편.
“이도현이면 한국 출신인가?”
“한국을 아세요?”
“한번 내한한 적이 있었거든. 좋은 나라였지. 내 팬이 많았어.”
에드워드는 도현에게 무한한 관심을 보이는 중이었다.
에드워드의 질문 폭격을 받던 도현도 문득 떠오른 것을 물어보았다.
“어제 스크리닝에서 눈이 마주쳤던 분 맞죠?”
“알아봤나 보네.”
에드워드가 유쾌하게 웃었다.
“얼굴을 꽁꽁 싸매고 있어서 기억에 남았거든요.”
“그러지 않으면 밖에 돌아다니기가 힘들거든.”
에드워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맥은 자신과 대화를 나눌 때와 별다를 것 없는 도현의 태도에 혀를 내둘렀다.
그때, 에드워드가 고개를 돌렸다.
“이제 박수가 잦아드는군.”
“그러게요.”
꽤 오랫동안 울렸던 박수 소리는, 천천히 잦아들고 있었다. 흥분에 감싸였던 극장이 조금씩 진정을 되찾아 갈 때.
도현이 리암을 보았다.
도현의 시선을 받은 리암이 자신이 할 일을 깨닫고 큼, 큼, 목을 풀었다.
그러고선 달아오른 눈시울을 한 채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제 배고프실 테니, 다들 저녁 식사하러 가시죠!”
리암의 말에 로잔나가 풉, 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뒤풀이 때도 알아봤지만, 말을 도통 멋있게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 베니스까지 와서 하는 인사가 ‘저녁 식사하러 가시죠’라니.
‘참 한결같은 사람이야.’
로잔나가 웃음기가 담긴 눈으로 리암을 보았다.
리암의 인사말이 끝났음에도, 극장은 여전히 어수선했다. 저마다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중인 탓이었다.
타다다닥. 타다닥!
뜨거운 현장의 분위기에 한국 기자들의 손놀림이 더욱 빨라졌다.
‘이건 대박이다!’
몇 안 되는 한국 기자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이런 엄청난 뉴스를 최대한 빠르게 써서 올려야만 했다.
기자들은 경쟁하듯이 너도나도 기사를 써서 올렸다.
* * *
[이도현 주연 ‘The Wanderer’, 베니스 영화제 10분간 기립 박수]
[‘The Wanderer’ 스크리닝 현장, 호평 일색]
[68th 베니스, ‘The Wanderer’ 공식 상영 후 10분간 기립 박수 쏟아져….]
[‘The Wanderer’ 상영 후 찾아온 침묵… 에드워드 녹스가 침묵 깼다]
[(사진= ‘The Wanderer’ 공식 스크리닝이 끝난 후 극장)
리암 호프 감독의 데뷔작이자 한국의 배우 이도현의 첫 스크린 데뷔작, ‘The Wanderer’가 제68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된 후 기묘한 침묵이 극장 안을 감돌았다.
침묵을 깨고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친 사람은 다름 아닌, 경쟁 부문 초청작 ‘Escape’의 주연 에드워드 녹스였다. 에드워드 녹스의 박수를 시발점으로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지며 관객들은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
이 기립 박수는 10분간 이어져, 베니스 역사상 손꼽히는 기립 박수 장면을 만들어냈다.
한편, 베니스 국제 영화제는 지난 8월 29일부터 9월 8일까지 11일간 이탈리아 베니스 리도섬에서 개최된다.]
- 에디 ㄷㄷㄷ 레드 카펫 나타날 때부터 심상치 않더라니.
⌞에드워드 연기 덕후로 유명하지 않음? 영화가 엄청 마음에 들었나 봄.
⌞진짜 그런 듯. (기사 링크) 여기 사진 보면 에드워드 엄청 활짝 웃으면서 도현이랑 대화 나누고 있음!
⌞기사 들어가 봤는데, 에드워드 10년 차 팬으로서 감별해 보자면 저건 찐 웃음임.
⌞선생님, 어째서인가요?
⌞웃는데 한쪽 눈만 감았잖음. 에드워드 사회생활용 미소 지을 땐 안 저럼.
⌞ㅋㅋㅋㅋㅋㅋ 웃음 감별사냐고.
- 나 솔직히 별로 기대 안 했는데… 반응이 엄청 좋나 봐.
⌞10분 간 기립 박수 ㅁㅊ.
⌞10분이 많이 긴 거임?
⌞재작년에 오현석 감독 영화가 베니스에서 4분간 기립 박수 받았어.
⌞거기까지 갈 것도 없이, 에디 형 영화가 9분간 기립 박수 받음. 참고로 가장 유력한 황금사자상 후보 ㅇㅇ.
⌞그럼 개 쩌는 거네.
- 근데 침묵할 정도면 영화가 얼마나 재밌었던 거야? 나도 보고 싶다.
⌞나도!
⌞국내에 수입될까? 저거 독립 영화라던데, 외국 독립 영화는 잘 수입 안 되잖음.
⌞한국인이 주연인데… 아마 될 듯?
한국인 배우가 베니스에 호평을 얻어냈다는 사실 외에도, 작품 자체에 관한 관심이 조금씩 커져갔다.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베니스에 초청되었을 때만 해도, 이름보다는 ‘송하’ 혹은 ‘가출 소년’이라고 불렸던 것과 다르게.
[베니스를 감동시킨 배우 이도현… 공식 상영 후 찬사 쏟아져.]
[국민 드라마 ‘불량경찰’ 송하에 이어 베니스 영화제까지? 베일에 감싸인 배우 이도현을 알아보자!]
이제는 ‘이도현’이라는 글자가 들어갔다.
인터넷에서 ‘The Wanderer’에 대한 관심은 식지 않고 더욱 불타올랐다.
그에 따라 같이 불타오른 건, 한국의 기자들이었다.
플래닛 뉴스 본사, 문화연예부 팀.
“보도 자료 빨리빨리 받아서 내보내!”
박상철이 초조한 얼굴로 외쳤다.
그들은 베니스 영화제에 직접 참석하지 못해서, 손가락이나 빨며 자료를 받아야 하는 신세였다.
박상철이 낭패란 표정을 지었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관심이 쏠릴 줄은 몰랐다.
지금 인터넷은 과장 조금 보태서 베니스 영화제에 관한 기사가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불량경찰의 인기, 최연소라는 수식어, 그리고 올해를 포함해서 2년 동안 초청을 받지 못한 한국 영화계의 상황이 맞물려 만들어낸 현상이었다.
국민들은 자국에 대한 애정이 솟아오를 수 있는 사건을 놓치지 않았다.
“얼마를 제시하든 알겠다 하고 바로 기사로 올려!”
“티, 팀장님! 새로운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뭐?”
박상철이 눈을 크게 떴다.
[‘The Wanderer’ 영화 엔딩 크레디트 작가에 이름을 올린 한국의 어린 배우!]
[리암 호프 감독과 ‘The Wanderer’의 공동 저자의 정체는?]
[‘The Wanderer’ 엔딩 크레디트 ‘Written by Liam Hoff and Do-hyun Lee’ 현지 반응 ‘충격적’]
박상철의 입이 벌어졌다.
이미 활활 타오르는 장작에 기름을 쏟아붓는 격이었다. 그의 생각대로, 기사에는 미친 듯이 댓글이 달리고 있었다.
- 아니, 공동 저자에 이름을 올렸다고? 진짜?
- 누가 내 눈이 잘못된 거라고 말해줘요.
⌞저도요….
- 어떻게 9살짜리가 영화 작가에 이름을 올릴 수가 있음?
⌞심지어 9살에 주연으로 베니스에 초청됐어요….
⌞그것도 경쟁 부문….
⌞관심받으려고 어그로 끈 거 아님?ㅋ
⌞누가 관심받자고 영광 독차지할 수 있는데 나눠주냐? 넌 네가 금덩이 하나 받을 수 있는데 관심받으려고 반 갈라 줄 거냐?
- 이쯤 되면 불량 경찰은 송하가 출연해준 거 아님?
⌞ㅋㅋㅋㅋㅋㅋㅋ ㄹㅇ. 출연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절해야 할 듯.
⌞오바 ㄴㄴ해.
⌞실제로 베니스 초청 기사 뜨고 불량경찰 시청률 오름;; 절은 아니더라도 고마워해야 하는 건 맞는 듯.
불량경찰 제작발표회 날까지만 해도, 강이든이 재능 있다고 칭찬한 배우가 이렇게까지 이슈가 될 줄은 몰랐다.
아니, 비단 그뿐만 아니라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 어린 배우가 한국에 이토록 커다란 돌풍을 불러올 것이라고!
아이의 작은 발걸음에서 움튼 폭풍의 씨앗이, 이내 무럭무럭 자라나 거대한 폭풍이 되어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