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2화. 특별한 이유 (17)
[‘The Wanderer’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
[68th 베니스 영화제 화제의 수상작! ‘The Wanderer’]
[리암 호프 감독,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 소감 “살면서 가장 잘한 일” 화제]
보도가 잇따르는 가운데, 베니스 위원장의 연설을 마지막으로 제68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에드워드, 축하해요.”
올해 황금사자상의 주인공은, 모두가 처음부터 수상을 점쳤던 였다.
이변은 없었다.
“고마워. 그런데….”
에드워드의 시선이 단상 위를 향했다.
“심사위원장이 상당히 곤란해 보이는데 말이야.”
에드워드가 모호하게 웃었다.
폐막식이 끝난 후, 심사위원장 아나벨라는 기자들의 질문 폭격을 홀로 감당해내고 있었다.
“아나벨라! 왜 가 황금사자상이 아닌 은사자상을 받은 건가요?”
“가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이유가 있나요?”
“아나벨라!”
여기저기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공통적으로 ‘왜 가 황금사자상이 아니냐’ 하는 것이었다.
아나벨라는 이토록 질문이 쏟아질 줄 몰랐는지, 상당히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이내 그녀는 진정한 모습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수상작을 결정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심사위원회는 어떤 작품이 황금사자상을 받아야 할지 몇 시간 동안 고민하며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결정을 내렸어요.”
“이유를 설명해 주시죠!”
“결정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아나벨라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황금사자상의 선정 기준은 작품의 질, 탁월성, 예술성, 심미성, 그리고 얼마나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지와 같은 가치를 중점적으로 두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는 이 모든 가치에 부합했어요. 가 황금사자상을 받을 만한 영화라는 것은 심사위원단 모두가 동의했습니다.”
시상식이 끝났지만, 사람들은 어느새 아나벨라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현은 왠지, 아나벨라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곧 아나벨라는 기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황금사자상은 영예로운 상이지만,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죠. 황금사자상을 받은 작품은 영화제 규정상 다른 상을 받지 못하니까요. 심사위원 특별상은, 베니스를 놀라게 만들어준 배우에게 신인상을 주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아나벨라! 영화제 규정이 아니었다면, 가 황금사자상을 받았을 거란 얘긴가요?”
“는 황금사자상을 받기에 한 치의 부족함도 없었습니다. 제가 할 말은 이것뿐이네요.”
그 후에도 질문은 계속해서 쏟아졌다. 도현이 약간 넋이 나간 표정으로 에드워드를 보았다.
“그….”
“와우. 영화제 규정이 아니었으면, 황금사자상을 못 받을 뻔했겠는데.”
도현이 입을 달싹였다. 그런 도현을 본 에드워드가 잠깐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미안해할 필요 없어. 오히려 네가 속상해야 하는 일 아닌가? 바네사는 몰라도… 내 눈치는 안 봐도 돼, 도현. 음… 네 감독님 눈치는 봐야 할 수도 있겠는걸.”
에드워드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도현은 뒤늦게 리암이 생각이 나서,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리암은 붉어진 눈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리, 리암….”
도현이 말을 더듬었다. 손에 든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상 트로피가 괜히 무겁고 버겁게 느껴졌다.
그때였다.
리암이 도현을 보았다.
“도현….”
리암이 붉게 달아오른 눈에 힘을 주더니, 도현을 콱 껴안았다.
“다 네 덕분이다! 정말, 널 만난 게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야!”
리암에게 끌어안긴 채로, 도현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리암, 저 때문에 상을….”
“네 덕분에 상을 받은 거야.”
리암이 도현의 어깨를 한번 힘주어 잡고는 몸을 물렸다. 그러고는 도현의 어깨를 호탕하게 내리쳤다. 겉보기와 달리 힘 조절을 한 터라 그리 아프진 않았다.
“트로피 색깔이 뭐가 중요하냐. 다들 알면 됐지. 이 영화가 그 어떤 부족함도 없었다는 걸!”
은색인지, 금색인지가 중요할까?
리암은 확신했다.
를 본 이들은, 누구도 트로피 색을 떠올리지 못할 거라고.
오직 두 소년과 바이올린 연주 소리만이 귀에 남을 테니까!
자부심이 잔뜩 묻어나는 말이었다. 도현이 리암을 보다가, 그를 따라 웃었다.
“좋은 말이네요, 리암.”
도현은 완전히 모든 걸 훌훌 털어내고, 순수하게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그들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었다.
* * *
베니스 수상이 이루어진 건 한국 시간 기준으로 깊은 새벽이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이 소식이 널리 퍼진 건, 아침이 밝아왔을 때였다.
- 한국의 어린 배우, 이도현이 아홉 살이라는 역대 최연소 나이로 제68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도현 배우는 베니스 국제 영화제뿐만 아니라, 세계 3대 영화제를 통틀어 가장 어린 나이에 연기상을 받은 배우입니다.
베니스, 김보람 특파원입니다.
-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영화제인 베니스 국제 영화제가, 리암 호프 감독의 데뷔작이자 배우 이도현이 주연으로 출연한 데뷔작인 에 심사위원 특별상과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상을 선정했습니다.
아홉 살의 나이로 수상을 한 배우는 칸, 베를린, 베니스 등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이번이 처음입니다.
는….
틱.
-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연소로 신인상을 수상한 배우 이도현의 수상 소감이 화제인데요, 몸보다 큰 트로피를 들고 해맑은 얼굴로 상을 처음 받아본다고 말하는 모습이 네티즌들의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틱.
- 가 관심 속에서, 안타깝게도 황금사자상이 아닌 은사자상을 받았는데요. 이에 관해서 베니스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장이자 이탈리아의 국민 배우인 아나벨라 그라소가 한 기자 인터뷰가 화제입니다. 아나벨라 심사위원장은 가 황금사자상 선정 조건을 모두 충족했다고 밝히며, 영화제 규정상 배우 이도현에게 신인상을 수여하기 위해 2등 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여한 것으로….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이들은 아침 뉴스를 통해 이 소식을 접했다.
은서네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새벽까지 깨어 있었던 은서를 제외하고, 은서의 엄마와 아빠는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은서의 엄마가 회사 갈 준비를 하다 말고 침대에 앉아서 감탄사를 터트렸다.
“애가 참 대단하기도 하네.”
“그 뭐야, 최고상이 황금사잔가 뭐시긴가라며. 인터넷에서는 황금사자 받을 거라고 난리를 치더만….”
“2등 상이 어디야! 그리고, 뉴스에서 그러잖아요. 황금사자상 줄 수 있었는데 애한테 신인상 주려고 2등 상 줬다고! 그럼 더 대단한 거지! 연기력으로 인정받았다는 소리 아니에요.”
아빠의 말에 엄마가 타박했다.
실제로, 뉴스에서는 아나벨라의 인터뷰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나벨라는 한 치의 논란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확실하게 제 뜻을 전하고 있었다.
- 이도현이라는 배우를 발견한 게 이번 베니스 영화제의 의의에 가장 부합하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그뿐 아니라, 이도현에 대한 찬사까지 늘어놓았다. 이는 심사위원장인 아나벨라뿐만 아니라 다른 심사위원도 마찬가지였다.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네.”
결국, 은서의 아빠도 혀를 내둘렀다.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은서가 흐뭇한 표정으로 보았다.
<불량경찰> 1화가 방영된 후, 도현은 잠깐 화제가 되었지만 금방 잊힌 것도 사실이었다.
실상, 은서까지 파도 파도 나오지 않는 정보에 백기를 들었을 정도이니 오죽할까.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이도현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도현의 영상과 사진, 움짤이 가득했다. 특히, 까치발을 하는 움짤과 상을 처음 받는다며 맑게 웃는 움짤이 인기가 많았다.
자신이 파던 연예인이 유명해졌다는 데서 오는 기쁨과 내가 먼저 알아봤다는 자부심, 그리고 왠지 모를 아쉬움.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오후가 되자, 커뮤니티에 화제가 된 것은 다른 내용이었다.
[그래서, 방랑자는 어디서 볼 수 있는 거야?]
나도 보고 싶다. 엄청 극찬하는 거 보니까 진짜 기대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