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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부터 월드스타 (131)화 (132/582)

제131화. 그해, 가을, 겨울 (6)

오픈 하우스가 아이들이 준비해서 보호자들에게 보여주는 행사였다면, 할로윈 파티는 아이들을 위한 행사였다.

그래서 오픈 하우스 때처럼 준비할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일은 자원봉사로 지원한 학부모들이 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고학년은 이야기가 달랐다. 그들은 축제 날 부스를 열어 각자 스피치를 준비한다고 했다. 앨리슨의 말에 따르면, 최근 고학년은 스피치 때문에 야단법석이라고 했다.

3학년인 도현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도현은 파티에 거의 관심을 끄고 지냈다.

별일이 없다면 계속 그랬겠지만….

도현이 교탁에 서서 설명하는 해리 선생님을 몹시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Haunted house.

퍼레이드가 할로윈 파티에서 가장 큰 행사라면, Haunted house는 할로윈 파티의 꽃이었다.

“유령의 집에 자원봉사로 지원할 사람을 뽑을 건데, 하고 싶은 아이들은 손을 들어보렴.”

“선생님!”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지원하면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파티 전까지는 주로 점심시간에 모여서 유령의 집을 직접 꾸밀 거야. 그리고 할로윈 파티 날 유령 역할도 맡을 수 있어!”

유령 역할을 맡는다는 소리에 아이들이 술렁거렸다. 꽤 많은 아이가 관심을 보였다.

이어진 해리의 말이 아니었더라면, 과반수의 아이가 손을 들었을 것이었다.

“참가하고 싶은 아이들은 좀 더 신중히 생각하고 손을 들도록 해. 자원봉사에 지원하면, 앞으로 할로윈 파티 날이 될 때까지 점심시간에 놀지 못하거든.”

신나서 들썩거리던 아이들의 어깨가 얌전해졌다. 갑자기 김이 빠진 분위기에, 노는 것은 포기할 수 없다는 아이들의 의지가 느껴졌다.

해리가 웃음을 집어삼켰다.

“그래서, 지원할 사람 있어?”

반 분위기는 조용했다.

오히려 자기한테 하라고 시키면 어쩌나, 걱정하며 시선을 피하는 아이까지 있었다.

그때, 하얗고 작은 손이 조용히 올라왔다.

“도리?”

진이 놀라움이 담긴 눈으로 도현을 보았다. 도현은 특유의 차분한 낯으로 오른팔을 들고 있었다.

“도현이구나. 또 없니?”

“저요!”

진이 곧바로 손을 들자, 줄줄이 소시지처럼 다비드도 손을 들었다.

니콜라스는 진과 도현을 보며 갈등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과적으로 지원하지는 않았다.

그의 자유로운 성정상 무언가를 억지로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총인원은 도현, 진, 다비드, 윌리였다. 윌리는 평소 다비드와 곧잘 어울려 다니던 아이로, 다비드의 선택에 영향을 받은 거 같았다.

“생각보다 많이 지원했네.”

지원자 수가 0이 나온 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꽤 이례적인 일이었다. 애초에, 4학년까지로 제한하려던 걸 지원하는 숫자가 너무 적어 3학년까지 늘린 것이었다.

‘저 애 덕분인가?’

해리가 도현을 보았다.

도현이 손을 들고 나자, 소시지 엮듯이 하나하나 손을 들었으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았다.

해리가 종이에 네 명의 이름을 적었다.

“그럼, 이렇게 네 명이 지원하는 걸로 할게. 활동은 다음 주부터 시작할 건데, 정확한 건 다음 주에 알려줄 거야. 질문 있을까?”

“없어요!”

진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좋아. 그럼 이제 쉬는 시간!”

해리의 말에 아이들이 환호했다.

진이 빠르게 도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니콜라스도 이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도리! 왜 자원봉사에 지원한 거야? 난 네가 이런 거에 관심이 없을 줄 알았어!”

할로윈 파티를 주제로 떠들 때도 다른 아이처럼 흥분하지 않던 도현이었다. 진은 여지없이 도현이 할로윈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니콜라스도 궁금한 눈치였다.

“유령 역할을 맡으면 재밌을 거 같아서 지원했어.”

도현이 재차 말했다.

“유령 연기는 해본 적 없어서 말이야.”

“에이, 그게 어떻게 연기야? 그냥 단순히 놀래는 것뿐이잖아.”

“그런가?”

사실 유령의 집이 어떤 건지 잘 몰랐던 도현이 니콜라스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도현이 멋쩍은 표정으로 볼을 긁는데, 진이 눈을 빛냈다.

“좋은 생각이야!”

“좋은 생각이라니?”

도현이 의아해하자, 진이 조금 높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도리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배우잖아! 그런 도리가 유령 역할을 맡으면 어떻겠어? 분명, 무척 재밌는 상황이 펼쳐질 거야!”

‘재밌는’이라는 부분에 유독 강세가 들어갔다.

“오오! 그러네!”

니콜라스가 흥미를 보이며 거들었다. 곧, 진과 니콜라스는 신이 나서 시시덕대며 떠들었다.

그 재밌는 상황이, 모두에게 재밌는 상황은 아닐 것 같았지만….

‘뭐, 어때.’

도현이 두 사람을 따라 웃었다.

친구들이 신나 하는 모습을 보니 마냥 즐거운 도현이었다.

* * *

일주일은 금방 지나갔다.

할로윈 파티를 위한 유령의 집 자원봉사 모임(The Haunted House Volunteer Group for the Halloween Party), 줄여서 2HV.

모임명이 너무 길어서 부르다 지친 교장 선생님께서 대충 줄여 부른 게 명칭이 되었다. 다비드는 끔찍한 작명 센스라며 비난했다.

2HV의 멤버들은 모두 강당에 모인 상태였다.

델마 아카데미는 교장 선생님이 학교 행사에 무척이나 진심이었기 때문에, 한쪽에는 유령의 집으로 사용할 커다란 박스가 놓여 있었다.

지도하는 선생님 중 한 분이 줄리아 선생님이셔서 도현은 잠시 반가운 기분을 느꼈다.

줄리아도 도현과 진을 보고 무척이나 반가워하며 기뻐했다.

오늘은 유령의 집 테마를 정하는 날이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네다섯 명씩 나누어 한 조가 되도록 했는데, 해리 반 아이들은 수가 많아 다 같은 조가 되었다.

조끼리 모여서 각자 아이디어를 낸 후, 의견을 모아서 가장 좋은 아이디어를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해리 조-진이 임시로 지었다-는 기묘한 적막에 감싸여 있었다.

이들 조합은 사실 굉장히 묘했다.

일단, 진과 다비드의 관계는 짝사랑 상대와 짝사랑 당사자였다.

문제는 짝사랑 상대가 도현과 친하다 못해 베스트프렌드 관계라는 것과 짝사랑 당사자가 도현과 무척이나 오묘한 사이라는 점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데면데면하면서도 진이라는 연결 고리가 있었고, 동시에 해결되지 않고 지나간 찝찝한 과거사가 있었다.

평소에는 니콜라스와 늘 함께했고 그럴 때면 두 사람이 다투어 시끌벅적했다. 그래서 몰랐는데, 이리 남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윌리는 다비드와 어울려 다니며 도현과 그다지 대화를 해본 적 없는 사이였다. 그는 도현에게 거리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기실, 작년에 다른 반이었던 아이들은 도현을 어려워했기에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앞자리인 데다가 같은 조인 아일라와 로건이 특이한 경우였다.

짝!

진이 손뼉을 크게 쳤다.

큰 소리에 주변에 있는 다른 조원들까지 쳐다봤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은 진이 말했다.

“아이디어 있는 사람?”

명랑한 목소리에 경직되었던 분위기가 풀렸다. 은근히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던 다비드의 얼굴도 밝아졌다.

“공동묘지는 어때?”

“공동묘지는 너무 단순하지 않을까? 유령이 숨을 곳이 없을 거야.”

다비드는 자신의 의견이 반려당했음에도,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 과학자의 연구소는? 온갖 괴물들이 있는 거지!”

진이 의견을 내보았으나, 이번에는 윌리가 콘셉트라도 과학은 싫다고 진저리쳐서 기각되었다. 윌리는 과학 발표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말과 표정에서 진정성이 느껴졌기에, 진은 깊이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수긍해 주었다.

도현은 문득, 재키를 떠올렸다.

‘재키가 있었다면 좋은 의견이 나왔을 거 같은데.’

아직 감염될 뻔했으나 척추동물이 아니라서 건강해진 좀비 꽃을 잊지 못한 도현이었다.

문득, 도현의 눈에 강당에 있는 문이 들어왔다.

“저기는 뭐에 쓰는 곳이야?”

“저기? 원래 창고였는데, 강당 밖에 창고를 새로 지어서 이젠 안 써. 애들이 가끔 탈의실로 쓰는 곳이야.”

도현의 말에 대답해준 건 윌리였다. 고맙다고 말한 도현이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창고를 보았다.

“있잖아.”

도현이 무어라 말하자, 진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잠깐만 기다리라고 말한 후, 벌떡 일어나 줄리아 선생님께 토도도 달려갔다.

진의 이야기를 들은 줄리아 선생님이 한쪽에서 다른 선생님들과 대화를 하는 게 보였다.

잠시 후.

환한 미소를 지은 진이 달려와 도현의 옆에 풀썩 앉았다.

“된대!”

“정말? 고마워!”

도현이 기뻐했다.

도현이 낸 의견은, 박스의 한쪽 벽을 뚫어서 창고 문과 연결할 수 없냐는 것이었다.

그러면 공간 자체도 넓어질뿐더러, 문을 하나의 장치로 이용할 수 있었다.

“아! 나 좋은 생각 났어. 그러면, 스토리를 짜는 게 어때?”

“스토리라니?”

진의 말에 다비드가 관심을 보였다.

“원래 유령의 집은 온갖 유령이 나와서 겁을 주는 거잖아! 그런데 그렇게 하지 말고, 하나의 스토리를 짜서 체험형 부스로 만드는 거야!”

여전히 윌리는 이해가 가지 않는 눈치였다. 진은 더 이상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말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손님은 앨리스가 되는 거야. 그리고 유령의 집을 모험하는 거지!”

이번에는 윌리도 이해한 것 같았다.

진의 의견에 모두가 좋다고 입을 모아 얘기했다. 다들, 흥미로운 스토리를 짤 생각에 신이 난 것 같았다.

“그러면 유령의 집에 들어가기 전에, 스토리 배경을 간략하게 설명해줘도 좋을 것 같은데?”

“아예 안내자 역할을 만드는 건 어때?”

아이들이 저마다 의견을 낼수록, 점점 유령의 집 스케일이 커지고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처음의 어색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한번 의견이 나오기 시작하니 둑이 터진 댐처럼 온갖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도현은 간간이 의견을 냈지만, 그럴 때마다 다른 아이들의 아이디어를 보완하거나 때론 무척이나 기발한 생각을 내어서 이야기는 점차 풍부해져 갔다.

“자, 애들아! 이제 각 조마다 어떤 아이디어를 생각했는지 말해보자.”

줄리아 선생님이 아이들을 모았다.

아이들이 모두 모이자, 각 조에 한 명이 나와서 어떤 테마를 짰는지 설명하도록 했다.

해리 조에서 나간 사람은 도현이었다. 도현은 진이 비주얼 담당이 나가야 한다는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걸 못 들은 척했다.

안타깝게도, 살짝 달아오른 뺨은 숨길 수 없어 다비드가 피식 웃고 윌리가 웃음을 터트렸다.

도현은 줄리아 선생님 쪽으로 걸어갔다. 뒤를 돌아보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자신을 쳐다보는 이들이 보였다.

3학년부터 5학년까지 있었는데, 고학년에서 아는 얼굴은 앨리슨이 전부였다.

도현은 태연히 저를 응시하는 사람들을 가볍게 훑어보았다. 낯선 사람들의 앞에서 발표하는 게 전혀 두렵지 않은 눈치였다.

도현은 평소에는 수줍음이 많은 편이었지만, 의외로 남들 앞에 나서서 무언가를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실제로 맥이 심장이 철로 되어 있나 의심한 전적이 있었다.

“저희는 하나의 이야기를 생각해 봤어요. 테마를 설명하기에 앞서, 강당에 있는 창고와 박스를 이어 두 공간을 활용한다는 전제를 깔고 생각했다는 것을 밝혀둘게요. 이건 선생님들께 미리 가능하다고 허락을 받았어요.”

교장 선생님이 몹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박스를 연결하는 게 수고스럽다는 의견이 나올 때 자신이 그 수고스러운 일을 할 테니 허락하자고 말한 게 그였다.

“유령의 집을 방문하는 손님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가 되는 거예요. 그들은 저희가 만든 유령의 집을 모험하는 거죠. 거기엔 이야기도, 숨겨진 복선도, 찾아내야 할 진실도 있어요.”

도현은 진의 말을 인용해서 차분히 설명했다.

“이 유령의 집에는 유령뿐만 아니라 안내자 역할도 필요해요. 방문자들이 어떤 곳에 들어왔는지, 무슨 상황인지 알려줄 수 있는 안내자요. 안내자는 방문자를 단순히 유령의 집이 아니라 하나의 이상한 세계로 안내할 거예요. 안내자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설명한 후에 다시 말하도록 할게요.”

도현의 말은 귀에 쏙쏙 박혔다.

처음에는 앞에 나와서 설명하는 사람이 그 유명한 줄리엣이라는 소리에, 조금 수군거리던 아이들이 조용히 하기 시작했다.

도현이 옅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테마는 ‘멈춰버린 백작의 성’이에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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