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월드스타 (132)화 (133/582)

제132화. 그해, 가을, 겨울 (7)

“이 성은 오래전에 영지민을 아끼는 백작과 그런 백작을 존경하는 영지민들이 사는 아름다운 영지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영지민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사라진 영지민들은 며칠 뒤에 인근의 풀숲에서 발견되었는데, 모두 수분이 사라진 것처럼 말라붙은 모습을 하고 있었어요.”

한 박자 쉰 도현이 말을 이었다.

“이 일이 반복되자 영지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해요. 사람의 피를 먹이로 삼는 괴물이 영지에 산다는 소문이었죠. 그 소문은 날이 갈수록 크기를 부풀렸고, 모든 영지민이 두려움에 떨었어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밤이 되면 아무도 집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을 정도로요.”

도현은 어조를 달리하고 다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의 말로부터 의심의 싹이 피어나기 시작해요. 바로, 백작이 그 괴물이라는 의심이었어요. 백작은 최근 몇 년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고, 영지민들에게 연설할 때도 늘 커튼 뒤에서만 모습을 보였거든요. 몇몇 이들은 괴물이 된 백작이 모습을 숨기려고 한 거라고 말했어요. 그러나 그동안 백작의 통치는 훌륭하고 자애로웠기 때문에, 대다수의 영지민은 그 말을 믿지 않았어요. 상황이 바뀐 건, 풀숲에서 백작을 봤다는 사람이 등장했을 때부터였어요.”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아이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까지 집중해서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듣기 좋은 목소리와 발음 덕에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리고….”

도현의 스토리텔링 능력은 뛰어나서, 사람들은 마치 구연동화를 듣는 것처럼 빠져들었다.

감탄사를 내뱉기도 하며, 마지막에는 놀라거나 감수성이 풍부한 이들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여기까지가, 저희가 생각한 이야기예요.”

도현이 말을 마쳤다.

다른 선생님들이 모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 와중에, 줄리아만이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도현이구나.’

줄리아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놀라지 않는 그녀였다.

“그걸 다 이 짧은 시간에 생각해낸 거니?”

선생님 중 한 명이 놀라움이 역력한 기세로 물었다. 도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조원들 다 같이 의견을 내면서 만들었어요.”

도현의 말에 다비드가 찜찜한 표정을 지었다.

다 의견을 낸 건 맞았지만, 솔직히 저기서 80%의 지분은 도현이었다. 말을 별로 많이 하지도 않았는데도 그랬다.

아이들이 생각 없이 툭툭 뱉으면, 그걸 잘 손질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이어서 결과물을 뚝딱뚝딱 만들었다.

도중에 뇌를 거치지 않고 헛소리를 했는데, 태평한 표정으로 고갤 한번 끄덕이더니 그걸 재밌는 아이디어로 재탄생시키기까지 했다. 다비드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오히려 문제가 있냐는 듯 고개를 기울였더랬다.

“그, 그래. 잘했구나.”

“감사합니다.”

도현이 해리 조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이어서 한 팀 정도 더 발표했지만,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진이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그 팀을 보았다.

잠시 후.

각자 괜찮다고 생각하는 아이디어를 뽑기로 했을 때,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해리 조의 아이디어가 선택되었다. 해리 조를 선택하지 않은 건 단 한 표뿐이었다.

“이제 테마는 정해졌네요. 물론, 아이들을 위한 유령의 집인 만큼 너무 무서운 부분은 조금 다듬어야 할 것 같지만….”

줄리아의 말에 도현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최대한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쉽게 만들었는데, 거기에 신경 쓰다 보니 다른 부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맥베스>와 같은 소설을 읽고 자란 도현은,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조금 둔감한 면이 있었다.

“그럼 내일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할 거예요. 다들 오늘 수고했어요. 다들, 유령의 집 준비에 관해서는 친구들에게 말하면 안 되는 거 알죠? 한번 멋지게 해봅시다!”

“네!”

아이들이 합창하듯이 입을 모아 말했다.

그렇게, 2HV 첫 모임이 끝났다.

반으로 돌아온 도현과 진은 니콜라스에게서 질문을 받았다. 가서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이었다.

“글쎄. 비밀인데?”

진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시선을 도현에게로 돌렸지만, 도현은 눈동자를 미끄러트려 그 시선을 피했다.

니콜라스가 배신감 어린 표정을 짓자, 진이 ‘그러게, 자원봉사에 지원했어야지’라고 말하며 건방진 표정으로 약 올렸다.

* * *

점심시간만 할애하면 될 거라고 했던 말과 다르게, 2HV 모임은 시도 때도 없이 이루어졌다.

유령의 집 스케일이 무척이나 커졌기에 그만큼 신경 쓸 부분도 많아진 탓이었다.

줄리아는 아이들이 싫어할까 봐 조금 걱정했으나, 애초에 이런 활동에 흥미가 있어 자율적으로 모인 것이라 오히려 즐거워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이건 이렇게 하면 될까?”

“네. 그대로 하면 될 것 같아요.”

“줄리엣! 이것도 좀 봐주겠니? 최대한 깔끔하게 잘랐는데, 괜찮은지 잘 모르겠어.”

“훌륭한데요, 앨리슨?”

줄리아가 신기한 눈빛으로 도현을 보았다.

고작 며칠 흘렀을 뿐인데도, 2HV는 한눈에 봐도 도현을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도현보다 나이가 많은 4, 5학년들이 있을뿐더러, 선생님들까지 있는데도 그랬다.

‘묘하단 말이야.’

도현은 시키면 누구보다 잘 해냈지만, 시키지 않으면 나서서 무언갈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기주장이 센 것도 아니고, 아이들을 리드하려고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도현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꿀이라도 발라뒀나.’

줄리아가 픽, 웃었다.

* * *

도현이 이처럼 열심히 학교생활을 즐기고 있을 때.

한국은 그 전날 올라온 기사로 인해 떠들썩해진 상태였다.

그 기사는 바로.

[아역부터 월드스타! <방랑자>로 세계적 명성을 거머쥔 이도현 배우를 만나보다.]

무비데일리의 온라인 잡지에 실린 도현의 인터뷰 기사였다.

이 기사는 애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조금 늦게 올리게 되었는데, 이는 화제성이 가장 높아졌을 때 인터뷰 기사를 풀기 위함이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 의도는 정확히 들어맞았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도현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사람들은 유와 이송하를 합쳐서 만든, 일명 '유송하앓이'를 하며, 이 신비에 싸인 어린 배우를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그러던 중 올라온 인터뷰 기사는 마치 사막의 단비나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전하리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단독 인터뷰가 되어버린 기사였기에 그 효과는 더욱 폭발적이었다.

그 안에 담긴 내용도 상상치 못했던 것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맑고 투명한 검은 호수에 별이 떠다니는 것 같은 신비로운 눈동자를 가진, 한없이 순수하면서도 성숙한 표정의 아름다운 소년.

이도현 배우에게 받은 첫인상은 이러했다.

그는 달려온 나를 위해 친절히 숨을 고르라 말하며 물을 건네주었다. 잔잔한 물결같이 차분하고 다정한 목소리에 나는 다시 한번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게 이도현 배우와의 첫 만남이었다.

두 번째 만남은 잔잔한 재즈가 흐르는 빈티지 카페였다. 그곳에서 나는 인터뷰를 위해 이도현 배우를 기다렸다.

종소리가 울리고 들어온 이도현 배우는 인터뷰가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수줍어하거나 주눅 든 기색 없이 여유로웠다.

<방랑자>에서 연기한 인물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의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은 샌디에이고의 바다를 닮은 것인지도 몰랐다. 인터뷰가 시작된 후, 이도현 배우는 자신이 샌디에이고에 있는 학교를 다니고 있음을 밝혔다.

이도현 배우는 어릴 적부터 미국에서 살아왔으며, 한국인이었지만 동시에 미국 국적을 가진 미국 시민이었다.

이도현 배우와의 인터뷰는 몹시 흥미로웠다. 영화에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헤매며 삶을 방랑하는 거친 해일과 같은 캐릭터를 연기한 그는, 실제로는 새벽녘의 호수를 닮은 사람이었다.

때론 재치 있게, 때론 심도 깊게. 어린 나이를 걱정하며 인터뷰를 준비해 갔던 게 무색하게도 나는 그와 인터뷰하며 나이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인터뷰가 끝난 지금도 여전히, 나는 이 재능 넘치며 사랑스러운 소년의 차기 행보를 상상하면 가슴이 뛴다. 그가 그려낼 미래가 무척이나 기대되는 바이다.

아래는, 이도현 배우와의 문답을 기록했다.]

인터뷰 기사와 관련해 인터넷 커뮤니티는 뜨겁게 달궈졌다.

[ㅁㅊ 이도현 외국인이야?]

(인터뷰 기사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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