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화. 로미오와 줄리엣 (5)
로미오와 줄리엣 배역 오디션은 다음 날 모두 끝이 났다.
배역이 꽤 많이 필요해서, 하기 싫은 몇몇 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 작은 역할이라도 하나씩 맡았다.
진과 니콜라스가 맡은 역할은 그들에게 정말 잘 어울렸는데, 진은 익살스러운 유모 역할을, 니콜라스는 불같은 티볼트 역할을 맡았다.
다비드가 맡은 로미오와 니콜라스가 맡은 티볼트 역할이 원수라는 점에서도 아주 찰떡이었다.
진은 극을 정할 때부터 거침없는 추진력과 리더십을 보여주더니 자연스럽게 감독의 자리까지 맡게 되었다.
말이 감독이지, 연기부터 각본, 소품, 총괄까지 모두 아우르는 중이었다. 2HV 때는 선생님들도 많은 데다가 다 높은 학년이라 드러내지 못했던 능력을 마음껏 펼치게 된 게 진은 몹시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현재.
아이들이 긴 타원형의 책상에 둘러앉아 있었다.
연극 팀 중에서도 각본 팀에 소속된 아이들이 모여 로미오와 줄리엣을 어떤 방향으로 각색할지 논의하는 중이었다.
“저 의견 있습니다.”
손 하나가 위로 번쩍 올라왔다.
진이 그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말해보세요, 다비드 데니얼 씨.”
“로맨스를 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원수 가문인데 사랑에 빠지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로맨스가 중심인 희곡에서 로맨스를 빼자는 놀라운 의견이 나왔다.
“로맨스를… 빼자고요?”
진의 눈이 번쩍 빛났다.
“로맨스를?”
“아, 아니. 싫으면 안 그래도….”
진의 기백에 압도된 다비드가 말을 황급히 주워 담으려는 찰나, 무언가 중얼거리며 생각하는 듯했던 진이 환하게 웃었다.
“그거 좋은 아이디어네! 그래! 아예 음모와 계략과 배신이 판치는 스릴러 서스펜스 드라마를 만드는 거야! 영감이 솟구치고 있어!”
“오오!”
아이들이 진의 의견에 동조했다.
뭐라고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도현이 진을 말려보려던 때였다.
벨벨벨- 벨벨.
때마침 수업이 시작됨을 알리는 벨 소리가 울렸다. 도현은 의욕으로 가득 찬 진을 잡지 못했다.
“도현! 오늘 너희 집에 가자!”
“우리 집에?”
“응! 나랑 같이 이야기 짜자!”
“그래, 좋아.”
도현이 선선히 승낙했다.
“그럼 각본 팀 애들 다 불러도 돼?”
“다?”
“응! 안 될까?”
각본 팀이라고 해봤자, 진, 그리고 진에게 끌려온 니콜라스, 진을 따라온 다비드, 그리고 연극 팀으로 오랜만에 만난 재키 정도가 전부였다.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애들이 괜찮다면.”
“좋았어!”
진이 주먹을 꽉 쥐곤 곧장 다른 아이들에게로 달려갔다.
진의 포섭은 성공적이라서, 그날 다섯 명은 모두 도현의 집에 모였다.
다비드는 겉으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도현의 집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도현의 집은 인테리어 하우스만큼이나 잘 꾸며져 있어서, 보는 맛이 쏠쏠했다.
‘쟤 집에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런데 진이 같이 가자는데 안 된다고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비드는 조금 어색한 기분으로 자리에 앉았다.
어색한 건 자신뿐인 것 같아서 더 불편했다.
케일리가 간식을 가져다주고, 그들은 본격적으로 작업에 착수했다.
“흐흐흐…. 이걸 이렇게 하면!”
진이 음흉하게 웃었다.
아이들이 모여 쑥덕대는 광경은 귀여워 보였지만, 언뜻 들리는 단어는 귀엽지 않았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재키와 니콜라스는 신나 했고, 그나마 정상적인 다비드는 잠시 이게 맞나 고민했다. 그러나 볼을 발갛게 물들인 진을 보자 아무렴 어떠냐 하는 심정이 되었다.
도현은 그들을 말려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포기하기로 했다.
포기하니 마음이 편했다.
과연,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될 뻔했지만, 다행히 척추동물에 해당하지 않아서 건강해진 꽃 주인 짬이 어디 가지 않는지, 재키가 내는 의견은 비범했다. 진은 그를 에이스라고 추켜세우며 무척이나 좋아했다.
도현은 태평하게 이것저것 의견을 내며 그들의 아이디어를 보완해갔다.
각본 팀은 다음 날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마다 모였다. 아이들이 모여 속닥대는 것을 보던 해리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직접 모여서 자율적으로 활동을 하는 게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해리는 아이들이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다비드가 질린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 * *
다음 날.
연극 팀은 모두 한 반에 모였다.
“흠, 흠. 해리 선생님.”
“응?”
“저희가 이야길 한번 각색해 봤는데요, 들어 주실래요?”
“벌써 말이니? 대단하네.”
해리의 말에 아이들의 어깨가 으쓱했다. 진이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말했다.
“일단,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중요한 부분만 추려서 준비해 봤어요. 지금 보여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지.”
흐뭇한 표정으로 답한 해리가 진의 손에 들린 각본으로 추정되는 종이를 건네받으려는데, 갑자기 다비드와 도현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할 말이 있는 건가?
해리가 의아해하는데, 진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옛날 옛날에, 이탈리아 베로나 영지에는 몬터규 가문과 캐플릿 가문이 있었어요.”
응?
해리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천천히 진이 말한 ‘보여준다’의 의미를 깨달았다.
“두 가문은 앙숙이라고 불릴 정도로 무척이나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틈만 나면 싸워대는 통에, 베로나의 영주는 도시 내에서 싸움을 일으키는 사람은 모두 사형에 처할 거라고 할 정도로요! 그러던 어느 날, 캐플릿 가문에서 연회가 열렸습니다.”
도현이 조용히 걸어 나왔다. 걸음걸이는 사뿐했고, 턱의 각도는 우아했다. 한 손을 공중에 띄우고 있는 게 꼭 드레스를 잡은 것 같았다.
그때, 재키가 도현을 보고 말했다.
“줄리엣, 너도 이제 결혼할 때가 되었구나. 오늘 연회에서 파리스 백작님을 잘 보고, 그를 사랑하도록 노력해보렴.”
“네, 어머니.”
줄리엣이 공손히 대답했다.
보여준다는 게 이런 뜻이었다니!
해리는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서 혀를 깨물어가며 웃음을 참아야 했다.
어머니가 나가자, 조신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줄리엣이 천천히 턱을 들었다.
“…응?”
해리가 저도 모르게 의아한 소리를 냈다.
표독스러운 눈빛을 한 도현이 입매를 비틀었다.
“결혼? 하! 결혼이라니! 파리스랑 결혼하느니 파리랑 결혼하고 말지!”
“푸흡!”
해리가 뿜었다. 콜록대던 해리는 얼빠진 표정으로 도현을 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간이 연극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나 가련한 줄리엣은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줄리엣은 결혼을 하지 않을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답니다. 한편, 캐플릿 가문의 저택 앞에는 몬터규 가문의 로미오가 와 있었어요. 그는 로절라인이라는 아름다운 아가씨를 사랑했지만, 로절라인이 수녀가 되면서 실연을 당한 상태였어요.”
이번엔 다비드가 걸어 나왔다. 불이라도 난 것처럼 새빨개진 얼굴로 눈을 질끈 감았다 뜨더니 대사를 쳤다.
“세상에 로절라인보다 아름다운 여인이 있을 리가 없어! 비록 머큐소를 따라오기는 했지만, 오늘은 로절라인의 아름다움을 떠올리는 날이 될 거야.”
“그러나 로미오는 줄리엣을 본 순간 한눈에 반하고 만답니다. 줄리엣이 로절라인보다 훨씬 아름다웠거든요!”
“세상에! 저 여인은 누구지? 저토록 아름다운 여인은 처음 보는군! 심장에서부터 피어난 사랑의 불꽃이 온몸 구석구석으로 흘러가 금방이라도 타버릴 것 같구나!”
다비드는 부끄러워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면서도 성실하게 연기를 하고 있었다. 애처로울 정도였다.
해리는 넋을 놓은 상태로 ‘저 대사는 대체 누가 짠 걸까’란 의문을 가졌다. 정답은, 다비드가 수치스러워하는 걸 눈치챈 진이 작은 장난을 친 것이었다.
“한편, 줄리엣도 로미오를 알아봤어요. 그녀의 오빠인 티볼트가 몬터큐 가문 놈이 연회를 망치러 왔다며 화를 내는 걸 들었기 때문이었죠.”
도현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고민하듯이 중얼거렸다.
“몬터규? 몬터규는 원수 가문인데 왜 오늘 연회에….”
“줄리엣은 유모를 시켜 로미오와 머큐소의 대화를 엿듣게 했어요.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답니다!”
도현의 얼굴에 오만한 미소가 깃들었다.
“내게 반했다고? 원수 가문이지만, 눈은 제대로 달린 것 같구나!”
도현이 코웃음을 쳤다. 도도하고 오만한 표정을 짓던 도현이 멈칫하더니, 의미심장한 눈빛을 했다.
“가만… 나를 좋아한다는 말이지? 꽤 쓸 만한 패가 될 수 있겠어!”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얼굴이 아주 자신만만해서, 해리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진의 명랑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줄리엣은 로미오를 이용해서 파리스 백작과의 결혼을 물릴 생각이었답니다.”
그사이 다비드가 도현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검지와 엄지로 손끝을 슬쩍 잡고 목을 쭉 뒤로 빼는 게, 싫어 죽겠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대사는 성실히 외워, 해리는 조금 애잔한 심정으로, 니콜라스는 웃겨 죽겠다는 얼굴로 다비드를 보았다.
“미천한 제 손이 거룩한 성전을 더럽힌 거라면, 그 점잖은 죄가 바로 이것이니, 수줍은 순례자인 제 두 입술이 기다리다가 부드러운 키스로 거친 손자국을 씻어 내겠소.”
“선량하신 순례자님, 손을 너무 야단치지 마세요. 바른 신앙심이 당신의 손에 보였으니까요. 아! 이런, 유모가 절 부르네요. 아마 어머니가 절 찾으시나 봐요.”
도현이 수줍게 웃으며 인사했다.
“연회장에서 만난 날 밤, 로미오는 몰래 줄리엣의 저택 밑에 찾아왔습니다. 그는 완벽하게 잠입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유모를 시켜 로미오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던 줄리엣은 이미 알고 있었어요.”
도현이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매달았다.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군. 아주 좋아. 이대로 그가 내게 공개적으로 청혼하도록 해야겠어! 몬터규는 원수 가문이니, 아버지께서 쉬이 받아들이지 않으실 테지! 그리고 내가 그를 사랑해 다른 이와는 혼인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혼인을 미룰 수 있을 거야. 그러면 그가 내게 좀 더 확실히 반해야겠지.”
차가운 목소리로 말한 도현이 몇 발자국 걸어 나왔다. 우수에 찬 눈빛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오, 로미오, 당신은 왜 로미오인가요?”
대체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 흘러가는 것인가.
해리는 기가 차다 못해 말문이 막혔지만, 은근히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날 밤, 홀로 사랑의 고백을 하는 줄리엣을 본 로미오는 서로의 사랑을 확신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다음 날 곧바로 로런스 신부님을 찾아갔죠. 줄리엣과 비밀 결혼식을 치루기 위해서였어요. 유모에게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줄리엣은-.”
“비밀 결혼식? 이런 멍청한 실수를! 비밀 결혼식이라니! 그러면 아무런 소용도 없잖아!”
분노하던 도현이 돌연 심호흡을 했다. 두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냉철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침착해, 줄리엣. 일단 이 비밀 결혼식부터 해결해야 해. 그리고 공개적으로 청혼하라고 구슬리면 돼. 일단 비밀 결혼식부터 불가능하도록 해야겠어…. 유모! 티볼트, 내 오라버니를 불러줘!”
“줄리엣은 티볼트에게 거짓말을 해서, 수도원에 가달라고 부탁했고 약속 장소로 나오던 로미오와 티볼트는 줄리엣의 계획대로 마주치게 되었답니다. 줄리엣은 두 사람이 시비가 붙어서 로미오가 약속 장소에 나오지 못하길 바랐어요. 그러나 줄리엣은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어요. 바로, 연회장에서 로미오를 본 티볼트가 그에 대한 살의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결국 두 사람은 결투를 벌였고, 티볼트는 로미오의 손에 목숨을 잃고 말았답니다. 로미오는 도시에서 싸움을 한 죄로 베로나 영지에서 추방되었고요.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가엾은 줄리엣은 충격에 잠겼어요.”
“나… 난 그저 로미오가 결혼식에 오지 못하게 하려고 한 것뿐인데… 오라버니가… 오라버니가!”
도현의 얼굴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괴로운 듯 울먹이다가, 입술을 잘근잘근 짓씹더니 눈을 번뜩 빛냈다.
“이건 모두 로미오의 탓이야! 그의 탓이라고! 내 오라버니는 죽었는데 그는 왜 살아 있는 거지?”
“오….”
해리는 의미 모를 감탄사를 흘렸다. 이제 해리는 완전히 영혼을 놓은 채로 연극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머리를 비우고 보니 재밌긴 했다. 그래서 더 자괴감이 들었다.
“가엾은 줄리엣의 마음속에 복수심이 불타올랐어요. 줄리엣이 복수를 계획하는 사이, 캐플릿 가문은 티볼트의 죽음을 잊기 위해 줄리엣의 결혼식을 서둘렀답니다. 결혼식이 얼마 안 남았을 때, 줄리엣은 신부님을 찾아갔어요.”
“전 로미오와 결혼을 약속했어요. 신부님, 전 파리스 백작과 결혼할 수 없어요. 제발 절 도와주세요.”
“줄리엣은 마시면 이틀 동안 죽은 사람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주는 죽음의 비약을 받았습니다.”
“이거라면…!”
작은 병을 든 도현이 비뚜름하게 웃었다. 눈은 180도 정도 돌아서 맛이 간 것 같았다.
“파리스 백작과 결혼식 전날, 줄리엣은 죽음의 비약을 마셨습니다. 도시는 줄리엣의 죽음으로 비탄에 빠졌죠. 신부님은 줄리엣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로미오에게 전하려고 했지만, 줄리엣이 미리 손을 써둔 탓에 전달에 실패하고 말았답니다. 줄리엣이 죽은 줄 안 로미오는, 몰래 베로나 영지로 돌아와 줄리엣의 무덤 앞에 섰습니다.”
바닥에 담요를 깔고 반듯이 누운 도현의 앞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다비드가 외쳤다. 다비드는 이제 수치심을 내던지고 극에 몰입한 것 같았다.
고동색 눈동자가 비탄에 잠겼다.
“줄리엣! 사랑하는 내 연인, 내 심장, 내 영혼아! 어찌 나를 떠나는가!”
“슬픔에 잠긴 로미오가 울고 있는데, 누군가 로미오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파리스 백작이었어요. 파리스 백작은 추방된 로미오가 죽은 약혼녀의 묘에 몰래 잠입한 것을 보자, 그를 체포하기 위해 공격을 시도했고 로미오는 그것을 막는 과정에서 그를 죽이고 말았답니다.”
다비드가 탄식했다.
“비극이구나! 나는 운명의 노예에 불과하구나! 이제 그만 이 비극을 끝내고 싶다. 줄리엣, 그곳에서 기다리시오. 내 지금 당신을 따라가리다.”
다비드가 무언가 마시는 척을 하더니 푹 쓰러졌다.
잠시 후.
번쩍!
줄리엣의 눈이 떠졌다.
“로미오…? 로미오…? 세상에, 파리스 백작님?”
도현의 목소리가 가냘프게 떨렸다. 그러다가 이내.
“세상에 어쩜… 어쩜….”
바들바들 떨리던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
“어쩜 이리 완벽할 수가! 아하하하! 꼴좋구나, 둘 다!”
도현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쓰러진 다비드를 부여잡고 웃는 도현은 좋게 봐줘도 미친 것 같았다.
“그래! 로미오, 네가 날 찾아올 줄 알았어! 그래서 유모에게 일부러 부탁했지! 파리스 백작이 내 묘에 오는 시간에 맞춰서 널 들여보내 달라고 말이야! 넌 그것도 모르고 유모가 도와준다며 고마워했겠지? 멍청하기는!”
툭.
도현이 다비드를 밀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표독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이제 나는 자유야!”
“그리하여 줄리엣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우와아!”
짝짝짝짝!
여기저기서 박수가 쏟아졌다. 진이 해맑게 웃었다.
진이 기대가 가득 담긴 눈으로 해리를 쳐다보았다. 두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눈빛에서 ‘어때요? 어때요?’ 묻는 게 그대로 읽혔다.
“진?”
“네?”
진이 해사한 표정으로 묻자, 해리가 인자하게 웃었다.
“안 돼.”
“쳇.”
진이 혀를 차는 것을 본 해리는, 얘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잠시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