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1화. 발아 發芽 (7)
베니스에서 최연소로 신인상을 수상한 동양인 소년, 퍼니 비디오에 나온 화제의 인물, 유튜브 조회 수 천만의 주인공.
그 세 가지는 도현에게 유명세를 주었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인터넷에 퍼져 나간 사진은 달랐다.
처음, 퍼니 비디오로 유명해진 사진은 유명함으로 또다시 유명해져서 전 세계 인터넷 곳곳을 돌아다녔고, 도현을 모르는 사람들도 사진은 보게 되는 경우가 생겼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은 사진 속 아이를 ‘소녀’라고 받아들이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생겨버린 것이다.
당황한 낯으로 입을 열었다 닫는 소년의 모습에 스튜디오 내에 웃음소리가 가득 찼다. 지금껏 그 나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유로운 태도로 토크 쇼에 임했기에 허술한 모습이 더욱 웃기고 귀엽게 느껴졌다.
도현이 이내 짧게 탄식을 내뱉더니 말했다.
“…전혀, 몰랐어요. 전혀.”
학교 가면 이제 이걸로 또 한바탕 놀림받게 생겼다. 도현의 안색이 살짝 안 좋아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랜디는 도현을 이 정도에서 봐줄 생각이 없었다.
“놀란 부분이 ‘세계에서 제일 예쁜’인가요, 아니면 ‘소녀’ 부분인가요?”
“…랜디, 정말 저한테 이러실 건가요?”
“오, 물론이죠. 그저 난 이야길(Talk) 하자는 거예요.”
병원을 나온 후로, 이도현 인생에서 단연코 최대의 위기였다.
매독스가 말하긴 했다. 랜디는 게스트를 놀리는 걸 좋아한다고. 하지만 선을 넘지는 않으니 유연하게 넘기면 된다고도 했다.
‘…유연하게 넘길 수가 없잖아요, 매독스.’
도현은 약간의 원망의 감정을 담아 속으로 생각하다가, 이내 눈을 감았다 떴다.
도현은 랜디와 눈을 마주치고는 어딘가 결연한 눈을 둥글게 휘며 웃었다.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자 왼쪽 뺨에 아주 옅게 인디언 보조개가 생겼다.
“물론 후자죠. 보면 아시다시피, 전 세계에서 제일 예쁜 ‘소년’이거든요.”
“와우.”
휘익-
랜디가 감탄사를 내뱉었고 방청객 측에서 환호와 휘파람 소리, 박수 소리까지 쏟아져 나왔다.
“이거,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여러분도 모두 그렇게 생각하시죠?”
- 네!
긍정의 대답이 여기저기서 돌아왔다. 언뜻,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나는 당당하다.
그렇게 자기 세뇌를 걸어봐도 뺨과 귀가 붉어지는 것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건 연기의 영역을 벗어난 일이었다.
붉어진 얼굴을 하고선 태연한 척 구는 도현의 치명적인 귀여움에 방청객과 랜디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랜디가 명절에 만난 삼촌이 조카를 놀리듯이 말했다.
“이제 보니까, 도현도 자신이 예쁜 건 이미 알고 있었네요.”
도현이 싱긋 웃었다.
“그럼요. 아침마다 거울을 보는데요.”
이미 망해버린 거, 조금 더 망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나.
도현은 반쯤 해탈한 상태로 입을 놀렸다. 잔잔해 보이는 표정 탓에 별로 티는 안 나지만, 부끄러움으로 인해 살짝 정상적인 사고를 벗어난 도현은 폭주 기관차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도현은 정신을 차리면 후회할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야유와 환호 소리에는 여유로운 척 웃기까지 했다.
“멋진 자신감이네요. 여러분, 이렇게 자신감이 가득해야 국제 영화제에서 최연소 수상자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는 겁니다.”
랜디가 박수를 치자 방청객들이 그를 따라 박수쳤다.
랜디는 정도를 넘지 않고 유쾌할 때 끊을 줄 아는 진행자였다. 한바탕 웃고, 박수를 유도하며 분위기를 환기한 랜디가 적절한 타이밍에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어쩌다가 줄리엣 역할을 맡게 된 건가요?”
도현은 바뀐 화제에 내심 안도하며 답했다.
“아, 제 별명 중 하나가 줄리엣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줄리엣 역할을 맡게 됐어요.”
“줄리엣이요? 잘 어울리는 별명이긴 한데, 어쩌다가 그런 별명이 붙은 거예요?”
“작년 봄인가…. 원래 리암은 저에게 이사야 역할을 맡기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저는 유 역할을 원했고, 우리는 내기를 했죠. 리암 앞에서 유를 연기해서 그가 저에게 유 역할을 맡기고 싶어지면 제 승리, 그렇지 않으면 리암의 승리로요.”
“영화 제작 과정에서 정말 흥미로운 일이 많았네요. 그래서 당신이 이겼겠죠?”
“네. 제가 이겼죠. 별명이 붙은 건, 이 이후의 일이에요. 이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저를 축하해주기 위해서 재밌는 일을 꾸몄거든요. 그날따라 친구들이 절 피해서, 저는 조금 외로운 상태였어요. 점심시간에도 친구들이 저를 놔두고 어딘가로 사라져서 속상한 심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죠.”
도현이 그때를 떠올리며 잔잔히 웃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스토리텔링을 하듯이 풀어내는 이야기에 스튜디오 내의 모든 사람이 귀를 기울였다.
“저는 창가 자리였는데, 창문에 작은 돌멩이가 날아오더라고요. 창문을 열자마자 제 머리 위로 꽃비가 쏟아져 내렸어요. 제 친구들이 저를 축하해주기 위해서 화단의 꽃들을 모조리 파내서, 제게 뿌려준 거예요. 그때 그 모습이 줄리엣을 연상시켰나 봐요. 그날부터 줄리엣이라는 별명이 생겼어요."
“오, 정말 낭만적인 이유네요. 상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데요.”
“음. 그 꽃들을 다시 화단에 심어야 했다는 것만 빼면 따뜻한 이야기죠.”
장난스럽게 말하는 도현에 랜디가 반문했다.
“그걸 도로 심었다고요?”
“교장 선생님이 아끼는 화단의 꽃들이었거든요. 다행히 친구들이 꽃을 꺾지 않고 뿌리째 뽑아 와서 다시 심을 수 있었어요. 대신에 뿌리에 흙이 묻어 있어 제 눈에 흙이 좀 들어갔지만요.”
사고뭉치 아이들의 에피소드에 스튜디오 분위기가 훈훈해졌다. 마찬가지로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던 랜디가 물었다.
“그 친구들도 영상 속에 등장했나요?”
“네. 유모 역할을 맡은 친구와 티볼트 역할을 맡은 친구예요. 제 가장 친한 친구들이죠.”
어딘가에서 생방송으로 보고 있던 두 아이가 감동의 눈빛을 글썽이는 것도 모른 채, 도현은 환하게 웃었다.
* * *
“오늘 수고했어요. 아주 능숙하게 하던데요?”
랜디가 도현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도현이 슬쩍 웃으며 답했다.
“랜디 덕분이죠.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중간에 조금 난감하긴 했지만, 재밌었던 건 사실이었다. 한 마디 한 마디 많은 사람이 집중하고 리액션을 보여주는 건, 메리와 상담하는 것과는 다른 새로운 감상을 가져다주었다.
마치 이 순간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묘한 감각. 그건 촬영장에서 카메라 앞에 설 때와는 또 다른 감각이었다.
“토크쇼에서 말했던 그 친구. 에드워드 맞죠?”
“어떻게 알았어요? 그 친구 맞아요. 연기에 미친 친구라… 만나면 내내 연기 얘기만 하거든요. 도현의 얘기를 꽤 많이 했어요.”
역시 그랬구나.
토크쇼에서 그의 이름을 밝혀도 됐을 텐데, 아마 도현에게 오는 스포트라이트가 분산될까 봐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것 같았다.
고마운 배려였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어떻게 돼요? 또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직 정해진 작품은 없어요. 하지만, 최대한 빨리 배우로 복귀할 예정이에요.”
“그건 좋은 소식이네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새 작품 들어가면 내 토크 쇼에 나와요. 적극적으로 홍보해줄 테니까.”
랜디의 어필에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랜디와 헤어지고 도현은 엄마와 스튜디오를 나왔다. 토크 쇼는 저녁 시간대에 하는 만큼, 밖에 나오자 검푸른 하늘과 서늘한 공기가 반겼다. 방금까지 바글바글한 사람들 틈에 있었다는 게 어쩐지 환상처럼 느껴졌다.
“춥진 않아? 단추 잠그자.”
딱히 의견을 물은 건 아니었는지, 서혜나가 곧장 도현의 카디건 단추를 잠갔다.
카디건을 단정히 정리해준 서혜나가 허리를 펴고선 말했다.
“우리 아들 잘하던데?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어.”
“괜찮았어요? 사실 속으로는 좀 긴장했는데.”
“겉으로는 조금도 티 안 났어.”
서혜나의 말에 도현이 안심했다.
“아, 그 사진 나왔을 때 빼고.”
“…….”
짓궂은 목소리로 놀리는 서혜나에 도현이 침묵하는데, 핸드폰이 길게 울렸다. 핸드폰을 연 도현은 화면에 찍힌 이름에 핸드폰 화면을 서혜나에게 보여주었다.
“아빠도 봤나 보다!”
고개를 끄덕인 도현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 도현아!
“아빠.”
수화기 너머로 흥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도현은 이장혁의 말에 간간이 대답하며, 가끔씩 웃음을 터트렸다.
특별한 밤이었다.
* * *
[배우 이도현 ‘랜디 쇼’ 게스트로 등장!]
[‘랜디 쇼’ 이도현, ‘방랑자’ 비하인드 스토리 공개!]
[“전 세계에서 제일 예쁜 소년이거든요”, 이도현 발언에 네티즌 무한 공감해….]
[랜디 쇼] 이도현 자기 객관화 – (자막 有)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