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9화. 마주하는 것 (19)
“잘 들어가.”
“네, 메리. 오늘 감사했어요.”
“내가 해야 할 일인데 뭘.”
원래라면 이쯤에서 손을 흔들었겠지만, 메리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숙제 잊으면 안 돼. 그 가벼운 당부에 서혜나가 의아한 눈초리를 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지만, 둘 다 말해줄 생각이 없다는 듯 입을 다물고 있어 의문만 남길 수밖에 없었다.
손을 흔들며 모자를 배웅한 메리가 홀로 상담실로 들어가 생각을 재정리했다. 도현의 기세로 보건대, 집에 돌아가자마자 말을 꺼낼 거 같았다. 그렇다면 늦기 전에 당부를 해야겠지.
메리가 핸드폰을 들었다.
지잉.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 준비를 하고 있던 서혜나가 가볍게 울리는 핸드폰 진동에 앞으로 내밀었던 몸을 도로 뒤로 물렸다. 핸드폰을 어디다 두었더라. 주머니를 더듬어도 나오지 않자 핸드백을 열어보았다. 찾던 것을 발견한 서혜나가 핸드폰 화면을 켰다.
그리고 발신자의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반사적으로 옆자리를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낀 도현이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서혜나는 빠르게 기지를 발휘해 태연하게 웃었다.
“안전벨트 매고 있어. 아빠한테 연락이 와서 잠깐 답장 좀 보내고 출발할게.”
“네.”
이렇게 연락이 오는 건 자주 있던 일이라 도현은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고선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서혜나는 실수로라도 도현에게 화면이 보이지 않도록 몸을 미세하게 튼 후, 메시지를 확인했다.
[메리 스완슨 : 안녕하세요, 혜나 씨. 메리 스완슨입니다. 도현에게 숙제를 하나 주었는데, 혜나 씨의 협조가 필요해서 연락드렸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도현이 혹시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꼭 끝까지 들어주세요. 듣고 나서 바로 결정하거나 성급히 결론짓지 마시고 일단 가볍게 대화만 해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도현이 없을 때 연락 부탁드릴게요. 아, 이건 혜나 씨 숙제니까 꼭 지켜주셔야 해요. 한 가지니까 지켜주실 거라 믿을게요.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서혜나는 같은 문자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무슨 일이지, 싶다가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도현이 고민하는 일이야, 서혜나와 이장혁도 익히 알고 있었으니까. 아들이 힘들어 보여서 작위적으로 상황을 튼 게 몇 번이던가.
그런데 꼭 끝까지 듣고, 성급히 결론짓지 말라고.
후자는 몰라도 전자는 서혜나와 이장혁이 한 행동과 정반대되는 지시였다. 그렇다고 반발심이 들지는 않았지만…. 스멀스멀 불안이 차올랐다.
혹시, 도현의 이야기를 듣지 않은 게 잘못 판단했던 걸까?
도현을 위해서 한 일이 또 도현을 힘들게 만들었을까 생각하니 손끝이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곧, 서혜나가 고개를 흔들었다. 뭐가 되었든 간에 차 안에 가만히 앉아서 해결되는 일은 없었다.
부르릉.
시동을 걸던 서혜나는 문득 생각했다.
그런데 숙제….
한 가지가 아니라 두 가지잖아.
철컥.
집에 도착하고, 안전벨트를 푼 도현이 차에서 내렸다. 아직 몸이 작아서 내릴 때 조금 뛰듯이 내려오게 되어서 검은 머리카락이 공기 중에 흩날렸다가 가라앉았다.
평소라면 그 모습을 보고 파괴적인 귀여움에 남몰래 심장을 부여잡았을 서혜나는 긴장이 섞인 눈을 하고 있었다. 도현을 따라 차에서 내린 서혜나가 아주 작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저녁은 뭐 먹지? 아직 계획해둔 게 없는데.”
“아직 저녁 먹기엔 좀 이른 시간 아닌가요? 혹시 배고프세요?”
이런.
서혜나가 황급히 시간을 확인했다. 4시 15분. 도현의 말대로 저녁 식사 이야길 꺼내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시간을 확인한 서혜나가 멋쩍게 웃었다.
“음… 배고프진 않은데. 미리 생각해두면 좋을 거 같아서.”
“그래요?”
다행히 서혜나의 대답이 이상하지는 않았는지 도현이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뭘 생각하는 걸까. 서혜나가 아닌 척 도현을 주시하는데, 별안간 도현이 고개를 들었다.
“저는 국물이 있는 음식이 좋을 거 같아요. 아니면 스튜같이 부드러운 음식이요.”
…그거 고민한 거였어?
괜히 긴장이 풀리는 기분에 서혜나가 픽, 웃었다. 그럼 저녁은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보고 한식과 스튜 중에서 정해야겠다는 서혜나의 말에 도현이 긍정의 의미를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정원을 가로지나 막 집에 발을 들인 순간이었다.
“혹시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으신 게 아니면, 제게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
서혜나가 천천히 도현을 돌아보았다. 이미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던 도현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 * *
거실 소파에 앉은 도현이 물개 인형을 품에 안았다. 인형에 애착을 형성할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말랑한 촉감이 느껴지자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테이블에는 코코아가 놓여 있었다. 상담실에서 맡았던 향긋한 냄새와 다르게 달달한 향이 훅 끼쳤다. 디저트도 진저 쿠키 같은 종류가 아니라 엄마 표 수제 빅토리아 케이크였다.
시각과 후각으로 감지되는 것들은 이곳이 상담실이 아니라 집이라는 걸 실감케 하기 충분했다. 이젠 정말 예행연습도 아니고, 제3자도 아니라 당사자에게 말을 꺼내는 거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지?”
“네.”
서혜나는 도현의 이야길 기다리는 눈치였다. 도현은 잠깐 의아함을 느꼈다. 저번까지는 분명 말을 꺼내려고 할 때마다 막았던 거 같은데, 지금은 왜 들으려고 하는 거지? 갑작스레 바뀐 태도가 이상했다.
혹시 메리에게 미리 언질을 받은 걸까? 하지만 도현은 내내 엄마의 옆에 있었다. 서혜나가 메리에게 무언갈 전달받을 타이밍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불현듯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나, ‘하고 싶은 말’이라고 했지. ‘할 말’이나, ‘해야 할 말’이 아니라. 생각해보니 놀라웠다. 의식하고 한 말이 아니기에 더더욱.
도저히 과학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마법적 존재에 가까운 건 자신인데 꼭 메리가 마법을 부린 것만 같았다. 지금도 그랬다. 긴장이 되긴 했지만, 두통이 일 만큼 두렵거나 하지 않았다.
결과는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은 대화하라는 메리의 말 때문일까. 이 대화의 끝에 무슨 결론이 날지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그저 말을 하고 싶었다.
아무래도 메리가 마법을 부린 게 맞는 거 같았다.
“저번에, 힘들면 말할 필요 없다고 하셨잖아요.”
도현이 말문을 떼자 서혜나가 조용히 도현을 응시했다.
“지금은 말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 꺼낼 이야기는 도현에게서 비롯된 문제였다. 그렇기에 엄마의 걱정까지 받는 건 너무 비겁하고 이기적인 일이었다. 도현이 버거워하는 걸 보면 자연히 동정심과 연민이 들고 말 테니까. 그래서 부러 못 박듯이 단호히 말했다.
그리고….
도현은 순간 난감해졌다.
이 년에 가까운 시간. 꽁꽁 숨겼던 마음을 꺼내려 하자니 무엇부터 꺼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술술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말문이 막힐 줄은 몰랐다.
그래도 도현은 그다지 초조해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참았는데 이 잠깐을 못 참을 리가. 도현은 성급히 입을 열기보다는 그간의 시간을 차분히 떠올려 보았다.
첫 퇴원, 그리고 6개월간의 시간… 그때는 무슨 기분이었더라. 아, 그래. 그때도 그랬다. 그때도 나 때문에 미국에 남는다는 게 부담스럽고 버거웠지. 그래도 이토록 마음을 짓누르는 죄책감까지는 아니었다.
그게 어느 순간 죄책감이 되었더라.
엄마가 아빠와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아니면 한국으로 가기 싫은 내 마음을 깨달았을 때? 그것도 아니면 완치 판정을 받고선 그 문제를 모른 척 넘겼을 때?
시작점은 불분명했다.
확실한 건, 계속해서 켜켜이 쌓여갔다. 묵을수록 떼어내기 힘든 먼지처럼. 아니면 갈수록 녹이 스는 쇳덩이처럼.
도현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서혜나가 기특하면서도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 순간까지 엄마를 걱정하지는 않아도 돼. 저번에도 말했지만, 엄마 아빠는 도현이 네가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하니까 넌 좀 더 너를 생각해도 괜찮….”
“아니요.”
서혜나가 동그래진 눈으로 도현을 보았다. 도현이 말에 끼어든 게 내심 놀라운 눈치였다. 도현은 언제나 말이 끝날 때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렸으니까.
“저는 지금까지 충분히 이기적이었어요.”
예상치 못한 말이었는지 서혜나의 눈이 더욱 커졌다. 원래도 시원하게 트인 눈이라 더욱 극적으로 보였다.
도현은 가만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꽤 오랫동안, 꾹꾹 누르고 눌러 납작하게 묻어두었던 말을 꺼냈다. 그 위에 쌓인 흙먼지를 털고 덮어 두었음에도 전혀 흐려지지 않은 말을, 문장을 입 밖으로 꺼내려다가.
- 일방적 통보가 아니라 대화요.
대화.
대화…. 도현은 대화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모르는 아주 어린 아이가 되어버린 심정이었다. 지금 내가 꺼내려던 말이 대화가 맞나? 대화가 뭐였지? 머릿속이 꼬이는 건 순식간이었다.
메리가 뭐라고 했더라? 그러니까, 내 생각을 말하고 타인의 생각을 듣는 것. 통보가 아니라 소통. 맞아, 대화는 그런 거였지.
엉망이었던 머리가 차차 진정되자, 도현이 입을 열었다.
“한국으로 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흐릿한 안개 속에서 길을 찾는 것처럼 조금은 느릿한 말투였다.
“인지하고 있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도 했어요.”
엄마는 제대로 듣고 있을까. 나는 제대로 말하고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출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어쩌면 유일한 순간일지도 모르는 지금, 조금만 더 솔직해지기로 했다. 목소리가 너무 우울하게 들리질 않기를 바라면서.
“다 알고 있었는데 모르는 척했어요. 그러니까, 제 욕심 때문에요.”
“도현아, 나는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한국에 가고 싶어 하셨잖아요.”
“…….”
서혜나는 목구멍이 꿰매진 사람처럼 넋을 놓고 도현을 쳐다보았다.
“아빠가 외로워하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정말로 다 알고 있었어요.
마지막 말까지 쏟아내었다.
문장으로 내뱉으니 이토록 단순했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절망감과 무력감, 죄책감과 혐오, 분노와 자괴감 같은 것들이 들끓고 있었지만, 말을 하면서 점차 깨달았다.
도현에게는 여러 선택지가 있었다. 도현은 부모님을 앞에 앉혀두고 몇 날 며칠 그 문제로 얼마나 고민했는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죄책감이 자신을 어떻게 좀먹어 갔는지 말할 수 있었다. 말한다면 그들이 들어줄 거란 것도 알았다.
하지만 도현은 절대 그럴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어떻게, 감히?
동정을 구하려는 의도가 아니더라도 동정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과장 없이 전달하더라도 투정처럼 들릴 테고, 태연한 척 말해도 원망으로 다가갈 것이다.
그러니까 그럴 수 없었다.
도현이 속으로 웃었다.
메리의 말이 맞았다. 끊임없이 생각하는 버릇은 스스로를 자신만의 세계에 가두어 버렸다. 만약 내 말이 어떻게 들릴지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생각 없이 모든 걸 드러냈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도현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태생부터 그것이 불가능한 부류의 인간이었다.
이기적으로 굴어서 미안하다는 사과도 마찬가지였다.
당장이라도 소리 내어 죄송하다고 하고 싶지만, 도현은 그러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문제의 원인이 되는 상황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나 의도 없이 내뱉는 사과는 자기만족에 불과할 뿐이란 걸 알고 있어서. 이 순간조차 한국에 가겠다는 확신도 그 무엇도 없는 도현이 입에 담아봤자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내려는 이기적인 발버둥에 불과할 것임을 아니까.
그러니 이게 최선이었다.
지금 꺼낸 이야기가 도현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바닥까지 끌어 모은 용기였다. 이 이상은 할 말이, 혹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심상치 않은 파동을 느껴 몰래 훔쳐보고 있던 덩어리가 갈 길이 멀다고 한탄하며 존재하지도 않는 뒷목을 잡았지만, 그걸 알 리 없는 도현은 후련한 눈빛을 했다. 마치 모든 걸 다 덜어낸 듯이 가벼운 표정이었다.
이제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
도현은 그동안 이 순간을 수없이 상상해 보았다. 상상 속에서 상대는 때로는 실망했고, 때로는 분노했으며, 때로는 슬퍼했고, 때로는 기뻐했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다 괜찮다는 얼굴로 웃었다.
그리고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된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도현이 눈을 깜빡였다. 새카만 광물 같은 눈동자가 가려졌다가 드러나기를 반복했다.
“얘기해줘서 고마워. 말하기 힘들었을 텐데.”
…뭐지?
도현은 진심으로 당혹스러워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약간은 붕 뜬 듯, 현실과 유리된 것 같았던 감각이 순식간에 깨져 나가며 현실로 내동댕이쳐진 느낌이었다. 몽롱했던 정신에 찬물이 쏟아져 내렸다.
얼떨떨한 눈이 서혜나를 향했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한 거니?”
“…퇴원, 했을 때부터.”
“그랬구나.”
도현의 상상 속에서는 단 한 번도, 이처럼 침착한 낯으로 대응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럼, 왜 내가 한국에 가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했어? 내가 그렇게 보였어?”
“…그건.”
도현이 곤란한 표정을 짓자,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던 서혜나가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는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제발 그것만은 아니길 바라는 표정이기도 했다.
“혹시 전화 내용을… 들은 거야?”
서혜나는 거의 매일 밤 이장혁과 통화했다. 그리고 입버릇처럼 당신을 보고 싶다거나,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 수많은 통화 중에 한 번을 도현이 들었다면.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서혜나는 그게 긍정임을 알았다. 순간 서혜나의 얼굴에 거대한 충격과 공포가 스쳐 지나갔다.
도현이 그 눈에서 초조함과 당혹, 그리고 수치스러움을 읽어내기 전에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일렁이며 세차게 흔들리던 눈동자가 눈꺼풀에 가려졌다.
그 상태로 서혜나는 꽤 오랜 시간을 있었다. 그녀는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을 간신히 삼켜내고 있는 거 같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흐른 후.
“그래, 들었구나.”
다시 떠졌을 때는 속은 어떻든 겉으론 침착함을 되찾은 뒤였다.
메리의 문자를 봐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차분히 생각해보는 게 아니라 다급함에 눈이 멀어 우선적으로 도현에게 아니라고 변명부터 시작했을 테니까. 그렇게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어서 진심으로 다행스러웠다.
서혜나는 깨달았다. 그건 엄마로서, 혹은 한 아이에게 속죄해야 하는 어른으로서 본능에 가까운 직감이었다.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을.
(다음 편에서 계속)